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7
* * *
“언제 이리된 건지…….”
이랑진군은 언월도를 움켜쥐며 한숨을 쉬었다.
주위에는 천계의 랭커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옥황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 두는 것 같소.”
차박-.
물기로 가득한 바닥을 밟으며, 한 푸른 눈의 중년인이 걸어왔다.
“슬슬 결단을 내릴 때가 된 것 같소만, 대장군.”
푸른 눈과 검은 머리의 중년인.
그의 얼굴을 본 이랑진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하백?”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얼굴과 이름이었다.
한때 천계에 몸을 담았으나, 처녀를 탐하여 마을 하나를 홍수로 잠기게 한 죄로 쫓겨난 하이랭커.
그가 다시 천계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이랑진군은 더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왜긴, 새로운 시대가 열리지 않았소이까?”
“어떤 시대라도 그대는 환영받지 못해. 경고했을 텐데? 바다의 밑바닥에 붙어서 기어 나오지 말라고.”
이랑진군은 하백을 향해 언월도를 겨누었다.
“변태 같은 네놈의 취향은 천계의 이름을 더럽혔다.”
“그토록 고고한 천계의 지금 꼴을 보십시오. 옥황도, 나타태자도, 탁탑천왕도. 모두 죽고 없지 않습니까?”
천계를 지탱하던 하이랭커들이 모두 사라졌다.
모두 손오공과의 싸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제천대성에게 겁을 먹고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나라면! 그런 겁쟁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짧은 연설 끝에 이랑진군을 둘러싼 장수들이 바닥을 찍어 호응한다.
수백 명의 장수들이 이랑진군을 잡기 위해 함정을 팠다.
이 자리에서 이랑진군은 혼자였다.
하지만.
“이상하군.”
이랑진군은 겁을 먹는 대신, 턱을 쓰다듬으며 하백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그대는 이리 용감하지 않아.”
하백.
그는 자신의 목숨을 누구보다 아끼는 겁쟁이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많아 자주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곳에 장수들을 모아 자신을 노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건 역시, 어딘가 이상했다.
‘그렇다면…….’
“또 그들인가.”
빠득-.
화우우우-.
이랑진군의 주위로 살기가 번져 나갔다.
그의 분노는 눈앞에 있는 하백이 아닌, 다른 곳에 향해 있었다.
관리자.
천계대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태상노군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인 망할 놈들.
그들이 이번에는 하백을 이용해 다시 한번 천계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군.”
이로서 천계의 몰락은 자명해졌다.
또한, 이번 일로 더 확실해진 게 있었다.
“-장수로서.”
자신은 우두머리로서 어울리지 않는다.
어울리는 쪽은 칼, 창을 사용하는 장수다.
그걸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부웅, 부우웅-.
이랑진군의 창끝이 붓이 되어 허공을 그었다.
“천구(天拘)여.”
허공에 그려진 개의 형상이 실체를 드러냈다.
늑대와 같은 덩치에 하얀 털로 뒤덮인 개 위에 올라탄 이랑진군은 언월도를 높이 치켜들었다.
“가자.”
천계의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그는 다시 장수가 되었다.
* * *
“데바만이 문제가 아니었나.”
옷을 갖춰 입은 제우스는 키트에 전달된 문자들을 확인했다.
마왕과 하늘. 천계와 니벨룽겐…….”
여러 길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내전이 일어났다.
“무림이나 원탁과 같은 중견 길드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중소 규모의 길드에서도 힘을 합쳤고요.”
“새 시대를 열겠다? 말은 좋군.”
헤르메스의 보고에 제우스는 조소를 지었다.
새 시대.
말은 좋았다.
하지만 결국 그건, 자신들이 더 위로 치고 올라가 권력을 잡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송사리들에게 이 자리를 내줄 순 없지.’
제우스는 그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우리 쪽은? 수상한 움직임은 없느냐?”
헤르메스는 탑 곳곳에 수많은 눈과 귀들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제우스는 그를 통해 정보를 얻어 왔다.
“올림포스는 조용해요. 이상하리만큼.”
“확실히 작위적이군.”
“작위적이요?”
“징조가 없었다. 이렇게나 많은 배신자들이 생겨났다면, 분명 그만한 징조가 있어야 할 텐데 말이지.”
헤르메스의 눈들은 이 탑 어디에나 존재했다.
오래전부터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이용해 랭킹 관리국과 같은 눈들을 퍼뜨리는 게 목표였다.
실제 그만큼은 아니지만 덕분에 올림포스의 정보력은 탑에서 제일을 다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을 눈치채지 못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신이 밝혀진 이후까지도 징조를 발견하지 못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작위적이야. 그것도 아주…….”
“작위적이라니요?”
“뭔가 개입됐다.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확신에 찬 제우스의 말에 헤르메스는 손을 저었다.
“에이, 설마요. 이 많은 길드에, 우리 눈을 피해서 개입할 수 있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말도 안 된다며 웃는 헤르메스.
하지만 제우스는 고개를 들어, 뻥 뚫린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너도 본 적 있지 않으냐? 그런 녀석들을.”
“어…….”
그 순간, 헤르메스 역시 하늘을 보았다.
지금은 푸른색을 되찾았지만.
십 년 전, 저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해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었다.
미래의 존재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올림포스는 물론이고, 탑의 모든 것들은 온통 쑥대밭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관리자들 중에 비슷한 녀석이 있으리라는 법은 없지.”
이건 관리자들이 먼저 시작한 싸움이었다.
자신들은 거기에 응하고 있을 뿐.
그리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원을 가실 겁니까?”
현재 올림포스는 탑 최강의 길드였다.
관리자들과의 싸움에서도 가장 앞장서야 하는 위치.
결국 관리자들이 이 싸움에서 이길수록 올림포스는 더 위험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놈들이 하는 장난에 어울려 줄 필요는 없다.”
제우스는 관리자들이 짜 놓은 판에 휩쓸릴 생각이 없었다.
놈들이 언제부터 지금 같은 상황을 그렸는진 몰라도, 그 그림대로 움직였다간 결과는 뻔한 일이다.
“그쪽은 다른 놈에게 맡기지. 적임자가 있으니.”
“아버지는요?”
“저쪽에서 도전장을 던졌으니-.”
저벅-.
제우스는 자신의 공간 가운데.
“나 역시, 파격(破格)을 보여 줘 야겠지.”
우물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늘 하늘을 향해 던지던 벼락을, 손에 쥐고서.
* * *
51층의 관리자.
앙상하게 마른 거지의 행색의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 꼴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감추기 위한 이 행색도 머지않았다.
그는 언제나 꿈을 꾸었다.
언젠가 이 모습을 벗어나, 자신들이 탑을 활보할 그날을.
길드. 플레이어.
그들을 발아래 두어, 진짜 탑의 주인이 되는 날을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관리자님.”
51층 관리자의 심복.
이름을 가진 심부름꾼, ‘적손’이 그를 향해 박수를 쳤다.
어린아이 정도의 키를 가진 그였지만 심부름꾼 중 그 정도면 꽤 큰 편에 속했다.
“아직 이르지. 축하 받기엔.”
“이미 다 온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거대 길드 중 태반이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이 싸움에서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관리자들이 택한 방법이었다.
“뭐가 그리 불안하신 겁니까?”
“그 김유훈이라는 놈 말이다.”
최근 천계대전에서 이름을 떨친 플레이어.
관리자는 그가 계속해서 속에서 걸렸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드는군.”
“기우일 겁니다.”
“그렇겠지.”
천계대전에서 몇 명의 관리자가 죽었든 상관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관리자는 훨씬 더 많았고, 무엇보다 플레이어들의 전력도 꽤 약화되었다.
승기는 이미 기울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녀석이 함께 있는 이상, 소토스가 직접 오지 않고서야 변수는 없을 테니.”
100층의 관리자.
그를 떠올린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싸움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존재 덕분이었다.
시작부터 승리가 보장되어 있는 싸움.
아우터들의 왕인 요그 소토스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에야,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이런 불안감이…….’
미래 예지.
그와 관련된 능력을 가진 자신이었다.
명확한 미래는 아니더라도, 예지에 가까운 초월적인 직감을 가진 만큼 그는 지금의 기분을 마냥 헛것처럼 취급할 수 없었다.
“과, 과…… 관리자님.”
옆에서 말을 더듬는 심부름꾼.
그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밖에…….”
“뭐가 말이냐?”
김유훈에 관한 생각으로 정신이 팔려 있던 관리자가 심부름꾼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하늘.
그 위로 황금색 물결이 보였다.
“저거, 벼락 아닙니까?”
“뭐?”
제우스의 벼락이 왜 여기에?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순간.
번쩍이는 황금의 창이 아래로 떨어졌다.
콰릉-!
* * *
100층.
탑의 가장 높은 곳이자, 랭커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세상.
그만큼 그곳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에게도 .
관리자들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100층의 관리국 위.
치지, 치지지-.
벼락이 뭉쳐져 관리국을 노리고 있었다.
“제우스의 짓인가.”
“이 정도 거리를 넘어서 벼락을 던지는 건 쉽지 않을 텐데.”
“공연히 마력만 낭비하는 짓이다. 피할 시간도 충분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벼락은 위력이 강할수록, 그리고 거리가 멀수록 소모하는 마력의 양도 함께 늘어난다.
무엇보다, 벼락을 날리기까지 걸리는 시동 시간도 함께 늘어나 피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가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라면 하나뿐이다.
“도발하는 건가?”
각 층의 관리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요격.
이 행동이 뜻하는 건, 관리자들에 대한 도발뿐이었다.
“도발에 응하는 놈도 있을지도 모르겠어.”
“주의를 해야 되지 않겠나?”
“팀을 짠다면 제우스라고 해도 못 잡을 건 없지. 이렇게 마력까지 낭비해 줬으면 오히려 기회가 될지도 모르고.”
“그놈을 얕보면 안 된다. 머리가 비상한 놈이니.”
관리자들 중 제우스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그는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
랭킹 관리국을 보유한 만큼, 관리자들은 제우스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어차피 상관없지 않나?”
스윽-.
한 관리자의 시선이 창밖을 보며 뒤돌아 서 있는 관리자에게로 향했다.
“제우스가 위대한 꿈꾸는 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맞아. 이쪽에는 크툴■가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벼락을 올려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는 관리자들.
100층의 관리자 크툴■.
아자토스와 함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그의 존재 덕분에, 그들은 이 싸움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요그 소토스나 아자토스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야.”
그 말이 떨어지는 그 순간.
스으으-.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100층의 관리자가 자취를 감추었다.
위대한 꿈꾸는 자.
100층의 관리자에게 붙은 이름.
아우터에게서 파생된, 거대한 이름 중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탑은, 그가 만들어 낸 꿈을 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