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08
* * *
길드 십이지신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열두 명의 랭커들.
그들은 각기 어깨 위에 동물 모양의 배지를 차고, 가게 하나를 독차지했다.
“거리가 텅 비었군.”
“다들 모인 거지?”
“잘하는 건진 모르겠군.”
“지금은 어느 한쪽이든 붙어야 할 때야.”
“브라닐을 믿어 보자고.”
사람이 많은 탓인지 한 명씩만 말을 보태도 꽤 시끄러웠다.
십이지신의 길드장.
브라닐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우리에게 오지 않겠느냐?]그의 머릿속에 관리자의 음성이 떠올랐다.
[곧 큰 싸움이 있을 거다. 우리의 편에 서거라. 그러면, 십이지신은 지금보다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을 거다.]그것은 유혹이었다.
관리자.
이 탑의 절대자와 같은 존재들이 건네는, 달콤한 유혹.
하지만 브라닐은 그것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거라면 저희는 빠지겠습니다. 큰 파도에 휩쓸려 죽느니, 이기는 쪽에 붙지요.”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것.
그게 바로 브라닐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싸움의 승산이 반반이라고 판단했을 때의 일이었다.
하나.
[무슨 생각인지 안다, 브라닐.]그런 브라닐의 계산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관리자는 브라닐의 뒤에 나타나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네게 꿈을 보여 주마.]스륵-.
브라닐의 눈꺼풀이 열리며, 탁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십이지신의 랭커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브라닐. 정말 괜찮은 거냐?”
호랑이의 뱃지를 가슴에 찬 남자가 물었다.
“정말 이대로, 올림포스와 싸워도.”
올림포스.
명실상부한 탑 최강의 길드.
그들의 영향력은 탑 전체에 퍼져 있었다.
최강의 랭커인 제우스가 다스리며, 지옥의 왕인 하데스가 있는 곳.
그런 올림포스와 싸운다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우리끼리 싸우는 게 아니다.”
“알아. 관리자들도 있고, 다른 길드에서도 도움을 줄 거라는 거.”
“하지만 그래도 저긴 하늘의 신전이야.”
“제우스가 벼락 한 발만 던져도 우린…….”
동료들은 아직까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아무리 쪽수가 많다 해도, 관리자가 함께한다 해도.
감히 제우스와 싸운다니,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꿈을 봤다.”
십이지신의 길드장.
브라닐만은 예외였다.
“위대한 꿈을 꾸는 자를 만났지.”
“위대한 꿈을 꾸는 자?”
“그게 누군데?”
브라닐의 눈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그렇기에 브라닐은 자신의 오랜 친구들을 설득했다.
“못 믿겠으면 날 믿어. 그와 함께라면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브라닐.
그를 따라 십이지신의 랭커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갔다.
그와 함께 66층의 곳곳에 퍼져 있던 랭커들이 거리로 나온다.
구름 위까지 솟아 있는 거대한 산 위쪽.
그곳에 있는 하늘의 신전의 주인, 제우스를 잡기 위한 행렬이 이어졌다.
* * *
화륵-.
손오공의 두 눈이 환하게 타올랐다.
화안금정을 불태우며 신전의 아래를 내려다본 손오공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온다, 와.”
그 말과 함께 옆에 있는 제우스의 옆구리를 쿡쿡 쑤신다.
벼락을 날리던 제우스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대체 왜 분신을 여기에 놓고 간 거냐?”
“왜?”
“정신 사납다. 좀 비켜 있어.”
옆에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손오공 탓에 집중력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탑 곳곳에 위치한 관리국 위.
그곳을 하나하나 요격하는 건, 제우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밑에 떨거지들은 어쩌고?”
“네가 가서 치워.”
“비키라면서?”
“그럼, 저것들을 치우는 데 내 옆에 계속 붙어 있을 생각이냐?”
제우스의 말에 손오공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산을 올라오는 랭커들.
그들이 하늘의 신전에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계속 여기 붙어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뻔뻔한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뭐…….”
드륵-.
옆에 놓아 둔 여의봉을 챙기며, 손오공의 분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심한 것보단 낫지.”
몽글-.
분신의 발아래 구름이 생겨났다.
제천대성의 권능을 이어받은 분신은, 근두운의 일부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팟-.
근두운을 타고 자리에서 사라지는 분신.
제우스는 그런 분신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슬슬 입질이 오는군.”
츠츠, 츠츠츠-.
제우스의 마력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연못의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에 앉아 숨을 골랐다.
마력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렇게까지 힘을 퍼부은 건 10년 전에 있던 전쟁 이후로 처음이었다.
‘얼마나 쉴 수 있으려나.’
아래에서 을라오고 있는 랭커들은 손오공의 분신에게 맡겨 두었다.
전부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체라면 모를까, 녀석은 어디까지나 분신이니까.
하지만 시간을 조금 벌어 주는 정도면 충분했다.
‘오거라.’
벼락의 신전.
그 중앙에 앉아 숨을 고르며.
“축제를 준비해 두마.”
제우스는 곧 오게 될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 * *
“커져라-.”
“커져라-.”
“커져라-.”
척, 척척-.
세 명의 손오공들이 여의봉을 겨누었다.
갑작스럽게 전장에 난입해 여의봉을 겨누는 손오공들.
그들을 보며 기겁한 천계의 장수들이 소리를 질렀다.
“모두 산개하-.”
여의-.
투쾅-!
세 발의 여의봉들이 전장을 휩쓸었다.
천계의 장수들이 여의봉에 짓이겨지고, 그 아래에 깔려 정신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지원.
이랑진군이 손오공의 분신들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알고 오긴 뭘 알아.”
“우리한테 물어도 몰라.”
“제우스가 이리로 가라던데?”
세 명의 분신들이 하나씩 대답을 내놓았다.
천구를 타고 언월도를 휘두르던 이랑진군의 몸에는 축축한 땀이 흘렀다.
수십 개의 물의 창을 만들어 그에게 날리려던 하백은 분신들의 등장에 당황해 뒷걸음질을 쳤다.
“제…… 천대성?”
제천대성.
랭킹 3위로, 이제는 단신으로 천계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알려진 최상위 하이랭커였다.
천계를 먹어치울 생각을 하던 하백이었지만 그는 선뜻 제천대성을 상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와 잘못 척을 졌다간, 천계를 손에 넣더라도 금방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기에.
“도와줄 필요는 없었다만.”
“지금 여기 이것들만 있는 줄 알아?”
“저 밖엔 더 깔렸어.”
분신들의 말에 이랑진군의 눈살이 구겨졌다.
그 역시 알고 있었다.
천구(天狗)의 후각은 천 리 거리 밖의 사람을 찾을 정도고, 주변의 상황 정도는 이랑진군도 모르지 않았다.
“너 혼자 뚫긴 힘들걸?”
알고 있었다.
이건 자신을 잡기 위한 덫이다.
그걸 뚫고 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빚은 갚도록 하지.”
같은 시각.
손오공의 분신들이 탑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재밌는 거 하고 있었잖아?”
“이쪽은 누가 적이야? 가브리엘? 아니면 미카엘?”
“가브리엘인 거 같은데?”
미카엘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가브리엘의 앞에도.
“이쪽은 너무 재미가 없는데…….”
“뭣이야, 이 원숭이 놈아?”
원탁의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멀린에게도.
탑 곳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손오공이 용병으로서 바쁘게 움직였다.
* * *
65층의 세계, 무스펠하임.
그 세계는 금방이라도 멸망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쿵, 쿠웅-!
우지끈-!
거대한 생명체가 움직이니 땅이 무너진다.
그 생명체의 주위로는 온갖 악마들이 날개를 펼치며 날고 있어,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듯했다.
푸확-!
멀리 날아가는 참격.
거기에 맞서, 거대한 생명체는 입에서 불을 뿜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던 두 사람.
“난장판이군.”
유원은 디아블로의 마기로 인해 붉어진 하늘 아래, 악마들이 싸움을 벌이는 걸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 멀리서까지 보이는 거대한 생명체.
한 번 본 게 전부였지만 잊어지질 않는 모습이었다.
“베에모트였나?”
“못생겼어.”
단풍을 머리 위에 얹고 있는 판도라는 드물게 악평을 남겼다.
그만큼 베에모트의 생김새는 못생겼다.
거대한 황소를 닮은 그 생명체는 작은 섬과 같은 크기를 자랑했으나, 상대해 본 경험이 있던 유원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덩칫값 못하는 건 여전하네.”
쩌억-!
멀리, 하늘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디아블로의 일격.
베에모트는 다른 악마들과 함께 힘을 모아 디아블로를 막아 내고 있었다.
“넌 뭐냐?”
“인간 아니야 이것들?”
슬금슬금 악마들이 유원과 판도라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적으로 인식한 모양.
하지만 어중간한 실력을 가진 악마들이 아무리 모여 봤자였다.
“나 이 녀석 알아.”
“이놈?”
“아니, 이 남자 말고 여자. 판도라다!”
“판도…….”
판도라의 얼굴은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악마들에게서도 마찬가지.
플레이어인 악마들은 키트를 통해 탑의 유명 인사들을 알고 있었고, 그중에는 판도라의 사진도 몇 장 섞여 있었다.
“여, 여긴 왜 온 거냐?”
한 악마의 물음에 판도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관리자 여기 없어?”
“관리자……?”
판도라의 대답에 악마는 눈을 크게 뜨고는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다른 놈들도 더 불러 와!”
“뭐야, 저놈들도 적이야?”
“판도라가 상대면 베에모트 님이 직접 오셔야 할 텐데?”
“일단 불러!”
관리자를 찾는다는 한 마디에 악마들은 유원과 판도라를 적으로 인식했다.
두 사람이 우연히 지나가던 중이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여기서도 난 찬밥이네.”
악마들에게 철저히 무시를 당한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제깟 놈들의 관심이야 뭐 아무려면 어쩌랴 싶었지만,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비슷한 일을 한두번 겪은 게 아니었다.
“힘내.”
“힘!”
판도라와 단풍이 유원을 위로했다.
이런 식의 위로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래…… 낼게. 힘.”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 유원은 고개를 들어 베에모트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디아블로와 맞서 싸우고 있는 녀석.
생긴 거나 싸우는 건 볼품없었지만, 유원이 위로 올라가던 걸 멈춘 이유는 바로 저 녀석 때문이었다.
“여기선 저놈인가.”
[‘오래된 꿈의 파편’을 발견하였습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이빨을 드러냅니다.]무정형의 혼돈은 한때는 마치 레이더 역할처럼 사용하기도 했던 이름이었다.
모든 이름을 먹어치우려는 탐욕스러운 녀석.
특히나 녀석은 이름이 불안정한 만큼 유원이 알던 때보다도 더 굶주려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유원은 지금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어딘가 작위적이다 싶더라니만…….”
삽시간에 일어난 탑의 혼돈.
데바의 배신을 통해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눈앞에 떠오른 이름을 통해 유원은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위대한 꿈을 꾸며, 모든 꿈꾸는 자들을 유혹하는 힘을 가진 존재.
“네 녀석이 관리자로 있었다 이거지.”
십 년 전.
아우터와의 싸움에서 관리자들이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소토스가.
“크를루야.”
그리고 아자토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