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10
* * *
‘이런 식이군.’
겉으로 보기에 베에모트는 멀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다.
물론 베에모트는 욕심이 많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 욕심만큼이나 녀석은 겁이 많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
베에모트에게 그 ‘나무’는 디아블로였다.
‘이 녀석의 꿈은…… 악마들의 왕이 되는 것.’
‘꿈’이란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잠에 빠져든 상태에서도 꾸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할 때에도 쓰이는 말이다.
이 이름의 파편은 그런 꿈을 증폭시킨다.
열매가 더 달콤해 보이도록.
오를 수 없던 것처럼 보이던 나무가 낮아 보이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너 뭐, 뭘 하는 거냐?
주위가 온통 이빨로 가득 찼다.
베에모트가 겁을 집어먹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를 비틀어, 주위의 이빨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애초에 무정형의 혼돈이 노리는 건 그의 꿈이었다.
콰득-!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오래된 꿈의 파편’을 포식합니다.]베에모트의 몸을 물어뜯는 이빨들.
-끄아아아-!
그워어어어-!
베에모트가 비명을 질렀다.
거 대한 황소가 울부짖으니 그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유원은 계속해서 귀청을 흔드는 베에모트의 울부짖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엄살은.”
-끄아앙…… 응?
비명을 지르던 베에모트는 불식간에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이빨들이 몸을 씹어 대고 있는데,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마치 몸이 아닌 다른 걸 씹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뭐야?
“말했잖아. 널 먹으려는 게 아니라고.”
콰득, 콰드득-.
혼돈의 이빨들은 베에모트의 속에 깃들어 있는 꿈의 파편을 먹어치웠다.
이름의 크기는 작았지만 녀석의 덩치가 워낙 큰 탓에, 포식에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아.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오래된 꿈의 파편’을 포식하였습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허기를 호소합니다.]녀석에게 깃들어 있던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속 빈 강정이네.’
생각보다 너무 작은 이름에 유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바쁘게 올라가던 중 멈춰 섰건만, 스탯이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아쉬움만 커졌다.
이름이 손상된 무정형의 혼돈은 전보다 더 큰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이 녀석 배를 채우려면 아마…….’
위대한 꿈꾸는 자.
현재로써는 그 녀석의 이름을 먹어치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스스-.
베에모트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깜깜한 혼돈과 이빨들이 사라졌다.
두려움을 느껴 한동안 몸부림을 치던 베에모트는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정신 좀 드냐?”
-정신이고 뭐고, 뭐가 달라진 게 없는…….
화아악-.
그 순간.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디아블로가 마기를 뿜어냈다.
“지났다, 5분.”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그는 어느새 손에는 바닥에 떨어뜨려 놓았던 칼을 쥐고 있었다.
-히이익!
쿵-.
디아블로가 뿜어내는 마기와 살기에 겁을 집어먹은 베에모트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기억이 갑자기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다른 악마들을 꿰어 내 디아블로를 몰아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이런 멍청한 짓을?’
이건, 계란을 모아 바위를 깨 보겠다는 멍청한 발상이었다.
다른 악마들은 몰라도 베에모트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디아블로가 어떤 괴물인지 말이다.
“이제 내가 저 녀석 목을 치면 되는 거냐?”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일 것이다.
디아블로는 그게 무엇이든 유원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생각해, 칼을 들어 올렸다.
지금 당장에라도 베에모트의 목을 쳐 버릴 생각으로.
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
핏:-.
베에모트의 등 위에서 뛰어내린 유원은 그런 디아블로의 앞을 막아섰다.
“저 녀석, 항복할 거다.”
“항복? 그걸 내가 받아 줄 것 같으냐?”
디아블로는 코웃음을 쳤다.
“한 번 이빨을 드러낸 녀석은 두 번도 드러내는 법이다.”
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강한 베에모트는 무스펠하임의 한쪽을 차지한 이후, 자신의 자리를 탐내 하고 있었다.
한 종족의 왕이 되는 것.
그것은 디아블로의 바로 아랫자리를 차지한 베에모트가 품을 수 있는 최고의 욕심이었다.
“지금 여기서 죽여야 된다. 그래야 이 싸움은 끝이 나.”
“그 반대지.”
“반대?”
“여기 있는 게 베에모트를 따르는 무스펠하임의 악마들이라면, 저들을 멈출 수 있는 것도 베에모트뿐이야.”
유원의 말에 디아블로의 미간 주름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어차피 이리된 거, 확실하게 아래에 둬라. 서약을 하고, 목숨을 살려 줘. 이참에 무스펠하임까지 네 아래에 두면 된다.”
“무스펠하임까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디아블로는 김빠진 표정을 지었다.
“귀찮은데, 그건…….”
“계속 다스리는 건 베에모트고. 대신, 그 베에모트가 네 아래로 들어오는 거지.”
“저놈을 용서해 주자는 거냐?”
“용서는 무슨. 밑에 두고두고 부려 먹어.”
-히익!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는 지 짧게 비명을 지르는 베에모트.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디아블로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물었다.
“방금 그건, 뭐였냐?”
“저 녀석에게 깃들어 있던 꿈을 잡아먹었다.”
“꿈을? 뭔 소리야?”
“왕이 되고 싶었던 건 맞지만 원래 이렇게까지 했을 놈은 아니야. 그러니까 벌을 내릴 거면 반만 내려.”
알씀달쏭한 이야기.
역시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디아블로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좋다. 그렇게 하지.”
철그럭-.
디아블로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다시 등에 걸었다.
“대신, 다음은 없다. 또 한 번 막아서면 그땐 네놈 목부터 그어 버릴 테니 그리 알아라.”
“물론. 또 오지랖 부릴 일은 없을 거다.”
그건 유원의 입장에서도 사양이었다.
무슨 특별한 사이도 아니고, 유원도 두 번씩이나 베에모트를 구해 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지금은 확인하기 위한 자리에 베에모트가 있었을 뿐.
“베에모트!”
디아블로의 외침에 베에모트의 큰 덩치가 움찔거렸다.
“들었지? 어쩔 거냐?”
-하, 항복이다! 무조건 항복!
당장 디아블로 혼자만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갑작스레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나, 그의 옆에 있는 판도라까지.
지금 더 싸우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건 자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보다, 내가 왜 이 미친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고!’
덕분에 앞으로 디아블로에게 한동안 죽기 직전까지 괴롭힘당할 게 분명해졌다.
하지만 베에모트가 속으로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잠시 지나가던 길, 베에모트를 저지한 유원은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다.
그러기 전.
잠시 디아블로를 보던 유원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럼 이제, 할 일 없지?”
“응? 할 일?”
유원의 물음에 디아블로는 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나야 늘 한량이긴 하다만.”
“저놈이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알 것 같은 대답인데.”
“시비 거냐?”
“할 거 없으면 같이 가자. 싸우다 말아서 흥도 깨졌을 텐데.”
유원의 말에 디아블로의 눈이 반짝였다.
디아블로는 손오공과 같은 싸움광이었다.
같은 종족과의 싸움이라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싸우던 도중 멈추게 된 건 흥이 깨지는 일.
“재밌는 일이 있나 보지?”
“있다. 대신, 가능하면 죽이지는 마.”
“그건 재미없는데?”
“관리자나 심부름꾼들은 죽여도 된다. 죽이면 안 되는 건 우리같은 플레이어들만이야.”
불살(不殺)의 조건이 붙었다.
손에 사정을 둬야 한다는 말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디아블로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뭐,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할 일도 없고.”
유원의 동행을 수락한 베에모트가 물었다.
“그런데 그 일이라는 건 뭐냐?
얼마나 올라가야 되지?”
“한 층만 가면 된다.”
“66층이면…… 용건이 제우스였나?”
디아블로는 설마 하는 생각에 베에모트를 바라보았다.
“나한테 저놈의 배신을 알려 준 것도 제우스였다.”
그 말에 유원은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알 수 있었다.
‘역시 헤르메스의 눈들인가.’
관리국과 같은 수준의 정보력을 가지는 게 제우스의 목적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그가 탑 곳곳에서 일어난 내분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올림포스의 세력과 제우스 개인의 무력.
그리고 관리국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정보력까지.
‘표적이 될 거다.’
제우스라고 해서 그걸 모르지 않을 것이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자신이 제일 먼저 관리자들의 표적이 될 거라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헤르메스의 눈들을 이용해 곳곳에서 발생한 내분을 먼저 해결하려 했으니.
‘놈들을 막아 낼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도박을 하려는 거거나.
유원이 발걸음이 급해졌다.
“가자.”
* * *
치짓-.
자리에 앉아 있던 제우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휴식은 충분히 취했다.
손오공의 분신 덕분이었다.
“원숭이, 이럴 때 일은 제대로 하는구나.”
스윽-.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을 맞을 때 이리 축 늘어져 있을 순 없었다.
그건 올림포스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부끄러운 자세였으니까.
쾅-!
제우스의 방으로 들어오는 문이 부서지며,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앞으로는 브라닐.
십이지신의 길드장을 비롯한 여러 길드의 수장들이 있었다.
“어서들 오게.”
막 잠에서 깨어난 터라 어딘가 노곤한 기분이 들었다.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다만.
“환영은 하지만,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은데.”
“죄송하지만 제대로 찾아왔습니 다.”
저벅-.
긴장한 기색의 브라닐이 앞으로 나섰다.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 역시, 나름대로 살 길을 찾아 편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살 길이라…….”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또한, 더 높이 올라가려는 욕심도 이해해.”
정곡이 찔린 듯, 잠시 주춤하던 브라닐은 제우스의 눈을 응시했다.
맞는 말이었다.
생존.
목적이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관리자가 아닌 플레이어들의 편에 섰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브라닐은 알고 있었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베다와 같은 여러 거대 길드가 있는 한, 이 세계에서 십이지신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난 너 같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욕심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이니.”
치짓-.
제우스의 손가락 끝에 벼락의 기운이 깃들었다.
“하지만 이 무대는 너희에게 너무 일러.”
흔히 밑바닥에 있는 랭커들이 저지르는 실수였다.
그들은 100위권 안쪽의 최상위권 하이랭커들은, 그 힘의 격차가 일반적인 랭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채 살아간다.
랭킹과는 별개로 거대 길드에 잠깐 몸이라도 담았다면 알 수 있는 사실을 말이다.
“너희는 아직, 더 높은 세상을 알지 못한다.”
고작해야 제천대성의 분신 따위 하나를 넘어섰다고 자신감이 생긴 거라면.
“그러니, 내가 지금부터 그걸 알려 주지.”
알려 주면 된다.
작은 길드에서 몸담아 숫자가 전부라 생각하는 저 무지렁이들에게.
제우스, 자신이 누구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