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12
* * *
“처음부터 왕이 되려던 건 아니었지.”
그리 옛날이 아닌 십수 년 전.
제우스는 오딘과 만나 술을 한 잔 걸치던 때를 떠올렸다.
“아스가르드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어. 적이 많았지. 요툰하임도, 무스펠하임도. 모든 거인들이 우리 적이었으니.”
“거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서로 마찬가지였군.”
“그래. 피차 마찬가지였군. 하하!”
제우스와는 달리 오딘은 꽤 술을 즐기는 주당이었다.
그는 벌써 독한 럼주를 몇 통째 입속으로 들이붓고 있었다.
“그때의 난, 그저 한 명의 병졸이었네.”
“오딘 왕이 병졸이라.”
“상상이 안 되는가?”
“아무래도.”
“난 오히려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적응이 되질 않아.”
오딘은 술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개의 세상을 통치하는 거대한 나라이자 길드.
아스가르드.
“내가 왕이라니…….”
맑은 술잔의 표면에는 그 위대한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 비춰져 있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네. 누군가는 그러더군. 난 훌륭한 통치자라고.”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
그는 비슈누와 더불어 제우스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니.
그리 긴 시간은 아니나, 어린 시절에는 그를 동경했던 적도 있었다.
그처럼 위대한 왕이 되겠노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데 혼자 부정하는 게 무슨 의밀까. 또, 기왕 해야 하는 거라면 못하는 것보단 잘하는 게 낫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난 가끔 그때의 꿈을 꾸네.”
꿈.
그걸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오딘의 눈은 활활 타올랐다.
“어깨에 짊어진 모든 걸 집어던지고, 마음껏 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꿈을.”
그를 추억하거나 그리워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만한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만남도 짧았다.
하지만 왜일까.
그의 죽음 이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콰릉-!
구부정하게 휜 허리의 관리자를 향해 벼락을 내던졌다.
온몸에 힘이 넘쳤다.
벼락이 깃든 신전은, 제우스의 세상이었다.
‘의미 있는 죽음이라…….’
오딘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아스가르드의 국운을 건 싸움 속.
수많은 아우터들과 맞서 싸워, 전장의 선봉에 서서 왕이 아닌 전사로서 죽음을 맞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냉철한 제우스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런데.
‘있을지도 모르겠어.’
마지막 오딘이 죽는 순간을 보았을 때.
그가 웃으며 죽은 걸 보고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전사.
아직까지 제우스는 그런 자리에 올라 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그들은 ‘왕’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벼락이 깃든 신전’이 ‘마나의 주인’에 저항합니다.] [‘벼락이 깃든 신전’이 ‘마나의 주인’에 저항에 성공합니다.] [모든 전격 속성의 마력이 200% 증폭됩니다.]몸속에 깃들어 있던 벼락의 기운이 폭발했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제 우스는 양팔을 활짝 벌렸다.
콰르릉-!
신전 안쪽의 공간에 벼락이 내리쳤다.
그걸 막고 피하기 위해 관리자들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이내.
번쩍-!
신전의 천장에서 벼락의 비가 내리쳤다.
“제- 우스-!”
파지지-!
얼굴이 일그러진 조타쿠아가 다시금 제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자잘하게 내리는 벼락의 비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군.’
그렇다면 오히려 좋다.
싸움이 감정에 지배당하면 공격과 수비, 모든 게 직선적이고 뻔해지기 마련이었다.
유원이 차타구아를 죽인 덕분에 가장 까다로운 상대가 쉬워졌다.
손에 창을 움켜쥔 제우스가 그녀를 보며 눈을 빛냈다.
부우웅-.
쩌렁-!
창과 두 손이 부딪치며 굉음이 울렸다.
그 사이, 다른 관리자들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신전의 벽을 두드렸다.
“막혔다!”
“이쪽도!”
벼락이 깃든 신전.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그 속에서 관리자들은 평소처럼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걸 준비하고 있던 건가?’
제아무리 제우스라 해도 홀로 조타쿠아를 비롯한 네 명의 관리자들을 상대할 순 없었다.
관리자들의 권능은 마력에 대한 지배권을 빼앗는 데 있었고, 그들의 앞에 모든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지닌 힘의 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공간은 그런 관리자들의 권능을 반대로 거스르는 힘이 있었다.
자신감의 원천이 이것이었다.
관리자들의 권능에 대적할 공간을 만들고, 반대로 자신은 힘을 배가시키다니.
애초에 제우스는 이곳에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안일하게 생각했다. 아니, 안일해도 된다고 생각했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려 관리자가 네 명이었다.
그것도 95층의 관리자, 조타쿠아가 함께한.
제아무리 제우스가 날고 긴다 해도, 헤라클레스나 제천대성이 함께하지 않는 이상 다른 변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권능에 대적하는 공간을 만들어 냈을 줄이야.
‘일단, 이 공간을 먼저 벗어나야-.’
“쉽게 벗어날 순 없을 거다.”
서늘한 목소리.
깜짝 놀란 관리자가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푸욱-.
치짓, 치지-.
제우스의 손끝에서 시작한 벼락의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다.
“오투예그!”
다른 관리자의 외침.
어느새 조타쿠아는 신전의 벽에 처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공방에서 그녀가 밀린 듯했다.
이내, 위기감을 느낀 관리자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냈다.
화륵-.
쩌쩍, 쩌저저-.
회색빛으로 이글거리는 불꽃.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그는 불꽃 속에서 눈을 빛냈다.
-제우스!
그는 포효를 질렀다.
벼락으로 가득찬 신전에 차가운 냉기로 인한 서리가 내려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쏴아아-.
속에서 빠르게 타오르는 마력을 느끼며, 제우스는 자신이 꿰뚫어 낸 관리자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일단 하나.”
* * *
63층.
아스가르드의 황금성이 위치한, 한때는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던 곳.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그 성의 병사들은 한 불청객의 등장으로 잔뜩 긴장해 있었다.
“대, 대체 뭡니까? 저건.”
“쉿. 저건이라니? 미쳤냐? 들으면 어쩌려고?”
“에이, 설마 이 거리에서 듣겠습니까?”
“상위 하이랭커들의 육감을 무시하지 마라. 그놈들은 우린 상상도 못할 괴물들이야.”
아스가르드에 막 들어온 신입 병사의 말에 그의 상관은 진땀을 흘렸다.
저 멀리. 황금성의 입구.
그곳에는 거구의 남자가 상처로 가득한 등을 내보인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대체 헤라클레스가 여긴 왜 온 건지…….”
헤라클레스.
랭킹 2위.
올림포스의 2인자이자, 탑의 랭킹에서도 그의 아버지인 제우스 다음으로 랭크된 하이랭커.
그는 단신으로 어지간한 거대 길드 하나쯤은 박살 낼 정도의 힘을 가졌다 알려져 있었다.
올림포스라는 거대한 길드의 지배자인 제우스와는 달리, 그는 오로지 혼자만의 무력으로 랭킹을 손에 쥔 존재였으니 말이다.
“낸들 아냐. 용건을 물어도 요지부동이니.”
“눈 마주치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놈의 눈빛이…….”
퍽-.
“놈, 놈 하지 말라니까, 새끼야!”
분명 헤라클레스의 성품은 꽤 온화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니, 온화한 걸 넘어 그는 어지간하면 살생은 물론이고 주먹조차 잘 휘두르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당장 기간토마키아에서 영웅이라 불렸던 그는 꽤 오랜 시간 시골에 틀어박혀 나무꾼으로 살았단 소문이 있을 정도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소문,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실제로 본 헤라클레스의 눈빛은 소문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딱히 살벌하다거나 무서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일전을 앞둔 기백 같은 게 보였다.’
일개 병사라지만 그는 황금성을 지키는 플레이어였다.
랭커는 되지 못했더라도 90층까지 승탑에 성공한 실력자.
그런 만큼, 헤라클레스에게서 느껴지는 기백을 통해 무언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곧…… 큰 전투가 있을 거다.”
이미 헤라클레스의 소식은 황금성의 주인인 토르와 발키리들에게 전달해 두었다.
아마 얼마 안 가 반응이 돌아올 터.
그리고 이후에 시작될 싸움의 적은 둘 중 하나였다.
“헤라클레스든, 아니면 더 큰 적이든.”
* * *
가부좌를 틀고 앉은 헤라클레스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큰 전투를 앞둔 지금.
제우스도, 손오공도, 유원도 없는 지금 자신은 굳건한 성문이 되어야 했다.
“대, 대체 뭡니까? 저건.”
멀리서 들려온 한 병사의 목소리.
작은 목소리였지만 ‘저건’이라는 말 때문인지 유독 귀에 잘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너무하네, 그래도.’
흐트러진 집중력.
헤라클레스는 멋쩍게 웃으며 한 손으로 볼을 긁적였다.
‘둘 중 여길 선택했는데.’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황금성으로 내려오기 전.
제우스가 손오공에게 분신들을 이용해 다른 길드의 안전을 부탁하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역할을 물었다.
그에게는 헤르메스의 수많은 눈이 있었다.
또한, 그는 누구보다도 탑의 정세를 대국적으로 보는 자.
헤라클레스는 그에게 자신을 장기 말로 이용할 것을 자처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의 대답은 썩 명쾌하지 않았다.
“이곳과 아스가르드. 네가 있어야 할 곳이.”
하늘의 신전에서 제우스는 고민 에 빠졌다.
자신이 관리자라면.
이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 어느 쪽에 먼저 싸움을 걸어 올 것인지를.
“제 몸은 하납니다.”
“그래. 하나지.”
“설명해 주십시오. 무슨 소린지.”
명쾌한 대답이 없자, 헤라클레스는 설명을 독촉했다.
대체 그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을까.
여전히 고민하는 얼굴로 제우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플레이어들에게서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중, 올림포스는 특히 더 그렇지.”
오딘이 살아 있을 때라면 모를까.
현재의 탑에서 올림포스는 명실상부한 최강의 길드였다.
물론, 아스가르드는 여전히 건재했다.
궁니르를 손에 쥔 토르는 더 시간이 흐르면 제2의 오딘이 될 것이고, 지배하는 층을 비롯한 세력은 여전했으니 말이다.
다만.
‘오딘’이라는 거인의 부재는 분명 뼈아픈 손실이었다.
“놈들의 선택지는 셋 중 하나다. 내가 있는 이곳을 치거나, 아니면 오딘이 없고 약해진 아스가르드를 치거나-.”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둘이면서, 선택지가 왜 셋입니까?”
“성질 급한 건 원숭이를 닮은 게냐? 친구를 잘못 사귀었군.”
제우스의 핀잔에 헤라클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중간에 말을 자르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다음 선택지가 무엇인지 따위는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마지막은 둘 모두를 동시에 치거나다.”
“둘 모두를…….”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알 수 있었다.
“맞다. 네 몸은 하나지.”
그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헤라클레스.
제우스를 제외하면 이 탑 내에서 두 번째로 강력한 거대한 전력.
“그러니 네가 선택하거라.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를.”
지금껏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수천수만의 목숨이 죽거나 살아왔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