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18
* * *
휘이이-.
바람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정신을 차리니 아난타는 어딘가에 서 있었다.
타르타로스의 바닷속이 아니었다.
단단한 땅의 느낌과 흙 내음이 코끝으로 느껴졌다.
‘어디지? 여긴.’
잠에라도 든 걸까.
아니면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여기로 오게 된 걸까.
주위를 둘러보자, 검게 죽은 수풀과 나무들, 그리고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들리는.
메에에-.
산양의 울음소리.
한 방향이 아니었다.
숲 곳곳에서 들려오는 산양의 소리에, 아난타는 생소한 종류의 오싹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난타의 머릿속에 마지막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분명…….’
자신의 발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있던 거대한 무언가.
그것에 잡아먹혀 삼켜질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몸은 멀쩡했다.
창에 관통당한 배의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치료된 건 아니었지만 시간이 꽤 흘렀는지 어느 정도 지혈이 되어 있었다.
“상처 때문인가.”
획-.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뒤쪽.
나무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유원이 있었다.
“정신 차리는 게 늦네.”
“여기 숨어 있었던 겁니까?”
“말이 좀 이상한데?”
유원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널 피해서 내가 왜 숨긴 왜 숨어?”
“…….”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승기는 유원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건 아난타도 알고 있었다.
다만, 유원이 사라졌기에 그리 말했을 뿐이었다.
“여긴 어딥니까?”
“검은 숲.”
“검은 숲?”
“원래 저 녀석들이 살던 곳이지. 저놈들의 어미와 함께.”
메에에-.
메에에에-.
유원의 말에 대답하듯 우는 산양들.
그들의 울음소리에 아난타는 계속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산양들이 두려운 게 아닌데도, 온몸이 오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든, 산양이 얼마나 많든 상관없었다.
“장소를 바꿔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습니까?”
치지, 치지지-.
무슨 연유에서인지 배의 상처는 꽤 나아졌다.
체력도 충분했다. 다시 싸우기에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질 거?”
아난타가 회복할 시간을 주면서까지, 유원이 이곳으로 그를 부른 이유가 있었다.
“있지. 아주 많이.”
쩌억-.
흠칫-.
발밑서 느껴진 전과 같은 느낌에 아난타가 주춤했다.
발아래. 검게 변한 땅.
그 속에, 잠시 정신을 잃기 전에 보았던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긴 검은 숲이라는 곳이거든.”
저벅-.
몸을 기대고 있던 나무에서 등을 뗀 유원이 아난타를 향해 다가왔다.
“다들 잘 모르는 게 있더라고. 우리가 이겨 낸 아우터라는 놈들이 가진 힘이, 겪어 본 게 전부일 거라고 착각하지.”
그렇게 말하며 유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그랬고 말이지.’
겪어 본 적 없기에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연했다.
아자토스가 만들어 낸 벽을 넘어간 플레이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자토스의 기억을 얻고 난 후, 유원은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녀석들은 탑 안쪽에서 편하게 숨 쉬기도 힘들어해.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힘이 다르니 당연하지.”
탑의 바깥.
아우터들이 사용하는 힘은 탑의 세계를 구성하는 ‘마력’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물고기가 밖에서 살 수 없듯.
그리고 사람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듯아 그들 역시,탑의 안쪽으로 들어 와 편히 숨을 쉬고 힘을 사용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요그 소토스’가 필요했다.
세계의 하늘.
자신들이 편히 숨을 쉴 수 있는 세계의 지붕이 말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당신…….”
오싹, 오싹-.
몸이 저리다.
아난타는 아까부터 느끼던 오싹한 느낌의 정체를 깨달았다.
땅과 나무가 검게 변한 숲.
이건, 단순한 장소가 아니었다.
‘숲이 살아 있다.’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검은 숲의 염소.
슈브 니구라스를 대표하는 저 이름은 단순히 천 마리의 산양들을 부리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 이름의 진짜 힘은 ‘천 마리의 새끼’가 아닌, ‘검은 숲’에 있었다.
지이익-.
검은 숲의 나무에서 뿔이 돋아난다.
그렇게 돋아난 뿔 아래로 염소의 머리와 몸통이 자라나고, 작은 산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에에-.
생명을 얻은 염소가 눈을 껌벅이며 처음 울음을 흘렸다.
잠깐 사이, 검은 숲의 산양이 탄생하는 과정을 본 아난타가 황당한 듯 입을 벌렸다.
“뭐 이런…….”
“이곳에선 누구든 산양이 될 수 있다.”
유원은 막 태어난 산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산 자의 힘과 영혼. 그리고 육신을 거름으로 삼아, 이 숲은 무한히 움직이지.”
검은 숲에는 수많은 육신과 영혼이 녹아 있었다.
이 숲은 그런 곳이었다.
“너 정도면 어지간한 랭커 수만 명보다 더 기름진 양분이 될 수 있을 테고.”
칙-.
발아래에서 들린 소리에 아난타가 놀라 고개를 숙였다.
땅이 긁힌 자국.
저도 모르게 유원에게서 멀어지려고 한 걸음 물러난 흔적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아니, 도망칠 수 있나?’
도망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 따위에 목숨을 걸 만큼, 아난타는 비합리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누구보다도 실리를 추구했다.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면 물러나면 된다.
전에도 한 번 그랬던 적이 있었으니 그리 어려운 선택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처음 널 잡으러 갔을 때부터 이랬어야 했다.
먼저 여기로 끌어들이고, 절대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어야 했어.”
유원은 아난타를 처음 잡으러 갔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유원은 자신이 있었다.
제아무리 괴물왕이라 하더라도 절대 지지 않으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이 실수를 만들고 말았다.
아난타는 도망을 택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머리를 반쯤 포기하면서까지 완벽을 기했다.
힘에서 지는 건 괜찮다.
힘이 부족하다면 힘을 키우면 된다.
혼자서 안 된다면 동료를 모으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실수는 용납할 수 없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었다.
평소처럼 제대로 싸울 판을 마련했다면 말이다.
“이제 선택해라.”
칼을 쥔 손을 아래로 내린 채.
“더 싸울지, 아니면 굴복할지.”
유원은 눈에 보이는 격차를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이래도 싸울 생각이냐고.
그 질문에 아난타가 어떤 결정을 할지.
그건 유원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는 생각했다.
격차를 보였음에도 싸우기를 결정하든, 이대로 굴복하든 말이다.
어느 쪽이라도 이상할 건 없었 다.
그리고 몇 초 후.
아난타는 결정을 내렸다.
콰릉-!
대뜸, 기습적으로 유원을 향해 전격을 뿜어내는 아난타.
츠츠츠-.
그리고 그런 유원의 앞을 ‘어리석은 혼돈’의 이름이 막아섰다.
뿜어진 전격이 혼돈에 막혀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소멸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더 이상의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검은 숲 곳곳에서 산양들이 튀어나왔다.
메에에에-.
메에에-.
검은 숲의 산양들은 이름을 가진 존재를 자신들의 어미로 인식했다.
그들은 자신의 어미를 공격한 아난타에게 분노했다.
검은 숲 전체가 떠들썩해지자, 아난타는 처음보다 더 오싹한 기분을 느꼈다.
“대답은 이거면 됐고…….”
아난타의 몸이 빛을 뿜어내며, 몸이 용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캬아아아-!
또다시.
검은 숲에 온몸이 전격으로 뒤덮인 황금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개의 머리를 가진 채로.
-다시 한번 해봅시다.
* * *
아난타의 저항은 격렬했다.
쿠릉, 콰우웅-!
번쩍-!
상당수의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그는 남은 머리로 브레스를 뿜어내고, 제우스처럼 하늘에서 천둥번개를 불러일으켰다.
하나.
다른 무엇보다도 역시, 장소가 나빴다.
아난타의 모든 공격은 유원의 몸에 둘러진 어리석은 혼돈을 뚫어 내지 못했다.
그의 온몸을 혼돈의 이빨들이 물어뜯고, 산양들은 아난타의 눈과 살점을 파먹었다.
마아아아아-!
명명되지 않은 거대함에 어느새 아난타 이상으로 거대해진 산양은 아난타의 몸통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사이.
유원에게 잠시 정신을 쏟지 못하고 있던 그를 향해, 다시 한 발 창이 날아왔다.
[‘니르’가 시동됩니다.]츠츠츠츠-.
콰우웅-!
투창과 함께 가속화된 창은 아난타의 몸통을 꿰뚫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었던 아난타였다.
그리고 그런 아난타에게 니르의 시동은 결정타가 되기 충분했다.
기이잉-.
환한 빛이 다시 한번 아난타의 몸을 휘감았다.
이내 그는, 잔뜩 상처를 입고 온몸이 넝마가 된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더는 일어나 있을 힘도 없는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쩌억-.
그런 아난타를 집어삼키려는 이빨.
유원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야, 그거. 먹지 마.”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고개를 갸웃합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배고픔을 호소합니다.]“먹고 싶으면 다른 녀석으로 줄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고민에 빠집니다.] [‘무정형(無定形)의 혼■’이 고개를 끄덕입니다.]스으으-.
검은 숲에 모습을 드러냈던 거대한 이빨이 자취를 감추었다.
애초에 아난타는 탑 안쪽의 존재였다.
큰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정형의 혼돈이 군침을 삼킬 만한 부류는 아니었다.
진짜 식사는 다음에.
그렇게 유원은 이름을 거두고는 만신창이가 된 아난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충격입니다.”
배에는 처음보다 더 큰 구멍이 뚫리고, 팔과 다리는 너덜너덜해져 손으로 쥐어짜면 뜯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더 싸울 수 없는 몰골.
그는 가장 큰 상처인 배의 구멍을 내려다보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못 이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나 차이가 날 줄이야.”
질 걸 알면서 싸우는 건 절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 숲 전체가 유원의 영역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질 싸움은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난타가 싸움을 걸 수 있었던 이유는, 유원의 속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군.’
유원도 역시, 그런 아난타의 확신을 알고 있었고 말이다.
녀석을 죽이는 건 그리 큰 득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처음부터 유원은 아난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을 도와 싸우라고.
그렇게만 하면 특정 조건하에 자유를 주겠다고.
이 싸움은 그걸 두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최소한 아난타에게는 목숨이 보장되어 있는, 그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싸움.
그걸 알기에 아난타는 포기하지 않고 싸움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완전히 졌습니다.”
아난타는, 유원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는데 말이지. 힘들게 모은 머리가 아깝잖아?”
이 싸움에서 아난타는 기껏 모은 머리 중 반절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타인의 생명을 먹어치워 강해지는 아난타의 힘이 반절로 줄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난타라고 해서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거야 다시 모으면 됩니다. 먹잇감은 바깥에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회복할 방법이야 차고 넘쳤다.
아난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유원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어차피 당신이 시킬 일이야, 뻔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