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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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전 내부는 20평 남짓한 크기로 그리 크지 않았다.
그곳에서 유원을 기다리고 있던 건,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하고 잠깐 마주했던 천마의 앞모습이었다.
“왔냐.”
천마가 눈을 떴다.
유원은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천마 천무진.
그는 무림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며, 하이랭커이자 천마신교의 하늘.
무력과 천마신교라는 세력으로 하이랭커에 오른 그는 지금껏 대외적인 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천산에 틀어박혀 있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오직 시험을 주관하는 것뿐인데, 통과자가 없으니 일각에서는 그가 죽은 게 아니냐는 소리가 나돌기까지 했다.
“부르셨다 들었습니다.”
유원은 고개를 들고 천무진을 바라보았다.
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장신.
좌우로 넓게 퍼진 어깨와 그 몸을 뒤덮는 붉은색의 용포.
턱선과 옆머리 아래까지 뒤덮는 짧은 수염과 눈매.
그는 상석에 앉아 있으면서도 유원과 비슷한 눈높이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유원은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팔은 괜찮으냐?”
천무진의 물음에 유원은 한쪽 팔을 흔들어 보였다.
“보시다시피.”
[‘밤’의 영향으로 체력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 : + 102%]유원이 차고 있는 검, 흑야검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효과를 발휘하는 검이었다.
체력과 마나를 빠르게 회복시켜 주는 효능을 지닌 흑야검은 밤이 되고부터 빠르게 유원의 몸을 낫게 하고 있었다.
“좋은 칼이군. 탐이 날 만큼.”
“교주께서 쓰시는 칼보다는 못할 텐데요.”
“내가 그런 쪽으로는 욕심이 많아서 말이지.”
천무진은 다른 쪽에서는 초탈했으면서도 유독 칼에 욕심이 강했다. 그런 성격 때문에 한때 천마고(天魔庫)에는 탑에서 사라진 여러 병장기가 숨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건 안 됩니다. 자기 무기 하나 관리 못했다고 잔소리해 댈 아저씨가 있어서.”
“헤파이스토스인가? 그는 그럴 자격이 있지.”
“아저씨를 아십니까?”
“모른다. 대신, 그가 만든 칼을 몇 자루 쥐어 볼 기회는 있었지.”
역시.
칼에 대한 천무진의 욕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라면 아무리 많은 포인트가 있어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그런 걸 몇 자루나 쥐어 봤다니 말이다.
“부르신 이유는 뭡니까?”
“성격이 급하군.”
“시간은 금 같은 거니까요.”
“하긴, 좋은 마음가짐이야.”
천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2미터가 넘는 키가 일어서자, 마치 거인족이라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마지막 시험. 바로 시작하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유원은 팔을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아직 이 모양입니다만.”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을 뿐이지, 아직 싸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유원은 가능하면 시험을 만전의 상태로 치르고 싶었다.
그래야 같은 시험이더라도 더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지금 당장 시험을 치르는 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천무진은 휙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 팔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까.”
저벅, 저벅-.
아무것도 없는 벽으로 향하는 천무진.
유원은 팔을 쓸 일이 없다는 말에 의아해 하면서도 천무진이 왜 벽을 향해 걸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곧.
우우웅-.
작은 아지랑이와 함께 천무진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법인가?’
[화안]유원은 서둘러 화안을 사용해 천무진이 사라진 자리를 살폈다.
역시, 천무진이 앉아 있던 자리 뒤쪽으로 희미하지만 진법의 흔적이 보였다.
‘천산 아래에 깔려 있는 것과는 다르다. 훨씬 정밀하고 난해한 게…….’
“안 들어오고 뭐 하나?”
천무진의 목소리였다.
재촉하는 말에 유원은 진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첫 걸음은 어렵지 않게 뗄 수 있었는데, 분명 벽이라고 생각했던 교주전의 안쪽 벽면이 뻥 뚫려 있었다.
이이잉-.
귓속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화안’이 ‘진혼진법(鎭魂眞法)’에 저항합니다.] [‘화안’이 ‘진혼진법(鎭魂眞法)’에 저항을 실패합니다.]화안으로도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진법.
‘이건 뚫을 수 없다.’
자칫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그대로 진법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때였다.
콱-.
거대한 손바닥이 어깨를 움켜잡고 안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귓속에 들리던 이명과 어지러움도 사라졌다.
[천마동(天魔洞)에 입장하였습니다.] [천마신교의 마지막 시험을 시작합니다.]어지럽게 흔들리던 시야가 돌아왔다.
유원은 고개를 한 번 흔들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이 천무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주위는 온통 어두웠는데, 습하고 넓은 통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동굴이었다.
천무진은 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유원은 어둡고 습한 동굴을 밝히기 위해 불을 피워 그것을 횃불처럼 손 위로 들었다.
유원은 긴장의 끈을 당기며 천무진의 뒤를 따라갔다.
“천마령은 익혔나?”
천무진이 말을 걸어왔다.
유원은 그 뒤를 따르며 대답했다.
“네. 스킬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다루는 게 좀 더 편하겠군. 세상 참 좋아졌다니까.”
나이 든 할아버지 같은 말이지만 천무진이 하는 말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현존하는 랭커들 중, 손에 꼽을 만큼 오랜 시간을 살아온 고대의 랭커였다.
“싸우는 걸 보니 훌륭하더군.”
난데없는 칭찬.
“앞으로 잘 부탁하지.”
“부탁이라니요?”
유원은 무슨 소린가 싶어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잘 부탁한다니.
뜻 모를 말이었다.
저벅, 저벅-.
조용한 동굴 안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는 크게 들렸다.
화륵-.
유원의 손안에 있던 불이 흔들렸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닌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의 알’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의 알’이 군침을 삼킵니다.]알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천마동의 끝,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였다.
보라색으로 흔들리는 빛.
그리고 마나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이질적인 감각.
‘진짜 있었네.’
이 정도 거리까지 와서야 느껴질 만큼 희미했지만, 이건 분명 탑 바깥에서 온 힘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은 훨씬 미리부터 느끼고 반응하고 있었다.
‘무슨 x래곤볼 레이더도 아니고.’
거리가 가까워지자 빛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불’이었다.
[‘거화’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흔들립니다.]보라색으로 이글거리는 불길.
불은 그리 크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크기였는데, 도깨비불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유원은 그 불길에서 어딘가 모를 본능적인 거북함을 느꼈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타들어 갈 것만 같다. 유원은 크게 호흡하며 겨우 가슴을 옭죈 긴장감을 떨쳐 냈다.
천무진은 그 불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화(聖火)다.”
“성화?”
“우리는 그렇게 부르고 있지.”
신성한 불이라니.
이름 한 번 단순하다 싶었다. 게다가 성화라고 이름 붙여진 스킬은 유원이 알기론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리 신성한 힘도 아니고 말이지.’
이름부터가 오류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이름이란 본질이 무엇이냐보다는 어떻게 불리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
오랜 시간 동안 이것이 ‘성화’라 불렸다면 이미 시스템은 이 힘을 성화라고 인식했을 것이다.
“오래전, 신교가 천산에 자리를 잡고 이 불을 발견했을 때부터 이어져 오던 예언이 있었다. 신교는 이 불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그 주인을 찾아야 한다고.”
천무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신교의 초대 천마도, 그다음 천마도, 그리고 내 스승님도. 모두 그렇게 살다 가셨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예언이라…… 별로 와 닿는 이야기는 아니네요.”
“시대를 따라가기엔 지루하고 고루한 이야기지. 그리고 그런 걸 믿고 따르는 게 바로 나 같은 늙은이들의 공통된 버릇이고.”
“정말 그 예언을 믿습니까?”
“천마신교는 문파(門派)이기 전에 종교다. 종교란 믿음이 흔들리면 근간이 흔들리는 법이지.”
신교에 대한 천무진의 믿음은 유원의 말에도 한 치 흔들림이 없었다. 역대 다른 천마들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아왔지만, 그는 여전히 신교에 염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탑에는 신교보다 훨씬 큰 세력이 존재하고, 또한 나보다 강한 자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난 그로부터 성화를 지키기 위해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성화를 보상으로 걸고 시험을 만든 겁니까?”
“그래. 덕분에 난이도가 이 지경이 됐지.”
10층의 플레이어에게 진법을 파훼하라고 하질 않나, 랭커와 싸워 버텨 내라고 하질 않나.
유원은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의 시험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시험이라는 탈을 쓰면 성화를 숨기고, 보호할 수 있을 테니까.’
유원은 허공에 떠서 이글거리고 있는 성화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검천주. 그 녀석은 이걸 본 적이 있다.”
성화를 바라보는 천무진의 눈동자 속에 보랏빛의 불빛이 비춰졌다.
“……이겨 내진 못했지만.”
당연한 말이다.
아우터 갓의 힘은 이제 막 10층에 오른 플레이어 가 이겨 낼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랭커조차 이겨 내기 힘든 불이니, 검천주가 이겨 내지 못했을 만했다.
“그래도 불가능한 시험은 아닐 거다. 만약 그랬다면 관리자가 이 시험을 허락했을 리도 없으니.”
천무극이 유원을 돌아봤다.
“마지막 시험이다.”
화악-!
그 말과 동시에 주먹만 한 크기의 성화가 부풀어 오른다.
“이 불길 속에서 살아남아라. 그리고 견뎌 내라.”
화르르륵, 화륵-.
점차 커져 가는 불길.
여전히 열기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은 금방이라도 유원의 몸을 집어삼키고 뼛속까지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성화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성화(聖火)’를 견뎌 내십시오.] [포기를 선언 시, 시험은 종료됩니다.]시험의 내용이 공개되며 동시에 떠오른 메시지.
유원은 보라색으로 이글거리는 불길 속을 바라보았다.
성화는 동굴의 천장을 넘어, 빠르게 크기를 불려나갔다. 아마 직접 걸어가지 않아도 이대로 조금만 있으면 저것은 자신을 집어삼킬 것 같았다.
화르륵, 화륵-.
점차 커져 가는 불길.
천무진은 보랏빛의 불길을 바라보다 유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어려운 건가.’
저런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니.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시험이었다. 팔괘로에서 40일을 넘게 버텼다는 제천대성의 일화가 있다지만, 그건 제천대성이 탑의 꼭대기에 가까워질 무렵에나 받은 시험이었다.
‘신무극 그 녀석도 마찬가지였지.’
검천주 신무극은 성화의 바로 앞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이 시험에 도전하지 못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포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이건 랭커조차도 먹어치우는 불이니.’
천무진 역시 이 시험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유원이 풍백림의 주먹을 받아 낼 만한 실력을 지녔다 해도, 이 불가해(不可解)한 힘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도 천마령은 얻었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 즈음.
저벅-.
가만히 서서 성화를 바라보고 있던 유원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쩌억-.
성화는 마치, 어서 들어오라는 듯 유원을 향해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