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20
* * *
쿵, 쿵, 쿵-.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가 산을 울렸다.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산의 정상까지 올랐다.
“멀리도 계시는구먼.”
100층.
탑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튜토리얼의 관리자에게는 너무 먼 세계였다.
더군다나 이 산은 그런 100층의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그렇게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100층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앞으로 손을 뻗었다.
쫘아악-!
산의 정상이 갈라지며, 그 속으로 보랏빛의 배경이 드러났다.
100층의 관리자.
위대한 꿈을 꾸는 자는, 늘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저벅-.
관리자는 그가 있는 세계로 발을 들였다.
현실과 이상의 사이. 꿈을 꾸는 자들이 모이는 곳.
위대한 꿈의 세계로.
척, 척-.
성난 발걸음을 움직이던 관리자는 어느 순간 발을 멈췄다.
위아래의 구분이 없는 보랏빛의 공간에서.
그는 위대한 꿈을 꾸는 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플레이어들이 집결하고 있소이다.”
아래에 있다고 해서 세상일에 무지한 건 아니었다.
거대 길드에 대한 관리자들의 개입 이후,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를 중심으로 한 플레이어들의 집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봉인에서 깨어난 아난타로 인해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언젠가는 벌어졌어야 할 일.
처음과는 달리,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이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대도 느끼고 있지 않소? 뭔가 달라졌다는 걸.”
벌써 열 명이 넘는 관리자들이 죽었다.
그중 넷은 아난타에게 잡아먹힌 것이지만.
희생을 치른 것에 비해, 결과는 패색이 짙었다.
“검은 숲의 이름이 등장했소.”
1년 전.
괴물왕 아난타와의 싸움에서 등장한 산양들로 인해, 관리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체 왜.
사라졌다 생각한 그녀의 이름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 건지.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거요. 그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지만 확인했지 않소? 검은 숲의 여왕이…….”
-그녀만이 아니다.
위대한 꿈이 말했다.
-더 많은 이름을 가진 존재가 있었다.
“더 많은 이름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튜토리얼의 관리자는 눈썹을 치켜떴다.
검은 숲만 하더라도 놀랄 일인 데, 다른 이름들이 또 있다니.
-혼돈의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
“니알라 토텝 말이요?”
-아니. 그보다 더 위였다.
“그보다 위……?”
관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돈의 이름은 딱 두 개뿐이다.
그리고 그중 어리석은 혼돈의 이름을 지닌 니알라 토텝을 제외하면 다른 혼돈의 주인은 한 명뿐이었다.
“말도 안 돼!”
그는 저도 모르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건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무조건 멈춰야 하오. 무조건!”
-이름은 가졌지만 그는 아자토스가 아니었다. 니알라 토텝이 혼돈의 이름을 가졌다고 아자토스가 될 수 없듯이 말이야.
“그래도…….”
-어차피 이제 와서는 멈출 수 없어. 설령 그가 진짜 돌아왔다 하더라도 말이야.
멈추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아자토스. 요그 소토스. 슈브 니구라스. 니알라 토텝…….
위대한 꿈을 꾸는 자는 그들이 두려워 웅크려 있었다.
그렇게 기다려 온 세월이 만 년이 훌쩍 넘었다.
더 이상 기다리느니, 차라리 모험을 택하려는 것이다.
-꿈은 언제까지나 꿈으로만 남아야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위대한 꿈이라 해도 현실이 되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꿈일 뿐이지.
그 말에, 관리자는 멀리까지 온 발걸음을 후회했다.
‘설득은 안 통하겠군.’
위대한 꿈을 꾸는 자에게는 지금 플레이어들이 무엇을 준비하든, 혼돈의 이름이 다시 등장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하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여기까지 이어져온 긴 기다림의 끝을 보는 것이었다.
-그들이 집결하고 있다고 했지? 모두 오라고 해라.
구구구-.
세계의 모든 꿈들이 집결한다.
그의 뜻은 꺾이지 않고, 일전을 대비하기 위해 더욱 굳세졌다.
-내가 그들에게 꿈을 꾸게 할 테니.
* * *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를 중심으로 여러 거대 길드가 모였다.
이랑진군도, 디아블로도, 실질적으로 데바를 이끌게 된 야마도.
무림맹의 수장인 남궁진천과 천마신교의 천마도, 모두 올림포스 에 집결했다.
“많이도 모였군.”
“어. 그때 주역들 대부분이 말이야.”
“오, 대장군! 천계는 어땠지?”
“우린 잘 넘어갔네. 마왕은?”
“지들이 뭐 어쩔 거야? 그보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나랑 한 판…….”
디아블로와 이랑진군. 묵묵히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야마.
그밖에도 여러 길드의 랭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아우터와의 마지막 싸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얼마 전 아난타가 난동을 부렸을 때 이후인가.”
“그땐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가 손을 잡았지.”
“탑이 조용할 날이 없네, 진짜.”
이번 소집은 제우스의 주관하에 이루어졌다.
1년 전쯤.
그가 관리자들과의 싸움을 예견하며 다른 길드장급의 랭커들을 불러 모았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싸워 보자고, 어디.”
그들은 자신들의 길드를 공격받았다.
무슨 연유인지 관리자에게 넘어간 길드의 가족들.
거대 길드는 어떻게든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중견급 이하의 길드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곳도 많았다.
그리고 그중.
야마와 함께 동행한 바루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님은 안 계시나 본데?”
형님.
데바의 하이랭커인 그가 형님으로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친근한 호칭과는 달리, 알게 된 지는 고작 일 년.
그마저도 그리 오랜 시간 본 것 도 아니었지만, 바루나는 진심으 로 그를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비록 혼자뿐일 관계일지라도 말이다.
“올 거다. 분명.”
“없는데?”
“어딘가에는 있을 거다. 그가 정말, 네가 말한 그런 사람이라면.”
비슈누가 죽고 난 후.
바루나는 야마에게만 조용히 유원에 관한 소식을 전달했다.
세계의 모두가 잊어버린 김유원이,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관리자들 역시 그를 잊고 있다면.’
호들갑을 떠는 바루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이 싸움에서 그는, 승리를 위한 핵심 플레이어다.’
신전에서 제공한 원탁의 의자에 앉아, 야마는 상석에 앉아 있는 제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자는 그걸 알고 있는 건가?’
바루나를 통해 들은 유원은 자신의 존재를 그리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김유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명일 뿐.
더군다나 그날 이후 그는 활동을 멈춘 상태였다.
획, 휙-.
그리고 그 무리 안에서 또 다른 한 명.
야마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는 자가 있었다.
“그 괴물은 여기 없는 건가?”
“괴물?”
“누구 말이오?”
디아블로의 중얼거림에 야마와 이랑진군이 관심을 보였다.
디아블로의 입에서 괴물이라며 언급이 되는 사람이라니.
“이름은 나도 몰라. 저 아저씨랑 아는 사이 같긴 하던데.”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천마를 가리켰다.
이목이 천마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말할 생각이 없는 듯,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바루나와 이랑진군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혹시-.”
“혹시-.”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김유훈이다.”
저벅-.
회의장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며, 살벌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 녀석이 사용하는 이름이.”
“흡…….”
“아수라?”
“저 녀석이 왜 여기에?”
금방이라도 누군가를 향해 칼을 휘두를 것처럼 온몸에 살기를 두른 남자.
아수라는 빈자리를 찾아 냉큼 앉았다.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고 홀로 활동하는 그였다.
때문에 여러 길드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모인 랭커들은 아수라의 등장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가 여기까지 온 것인지.
하지만 모든 이들이 아수라의 등장을 꺼려하는 건 아니었다.
“재밌는 녀석이 또 하나 나타났군.”
그와 비슷한 동류.
디아블로는 아수라의 등장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며 씩 웃었다.
“너, 혹시 그 녀석 아냐?”
“안다.”
아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불쾌한 기억이긴 하지만 말이지.”
“불쾌해?”
“그 녀석에게 도전했다. 결과는 졌고.”
대장군 자리를 걸고 천계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아수라는 처음, 그를 만났다.
흥미가 생겨 그에게 도전했고, 몇 번이나 패배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도 아수라는 상대의 진심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진심이 된 상대를 쓰러뜨려야 비로소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상대의 진심에 생애 처음 굴복하고 말았다.
“보아하니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인데.”
스윽-.
아수라와 디아블로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보는 순간, 둘은 같은 일을 겪었음을 확신했다.
디아블로 역시 유원에게 패해 굴욕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보아하니 많이들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리고 그런 아수라와 디아블로 의 눈치에.
이랑진군은 좌중을 슥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김유훈에 대해 말이지.”
그 이름이 다시 언급되자, 디아블로와 아수라를 비롯한 여러 랭 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훈.
처음에는 그가 손오공이나 헤라클레스 같은 최상위 하이랭커가 이름을 바꿔 활동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만한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으니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난 1년.
여러 거대 길드들은 그를 겪고 나서 생각을 달리했다.
“어디서 본 기억이 있다.”
“정확히 어디였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너희들도?”
“나도 그렇소. 처음 봤을 때부 터 쭉, 그랬지.”
자신들은 그를 알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쭉.
단지, 아무도 기억해 내지 못했 을 뿐이었다.
“난 기억났다.”
아수라는 좌중을 둘러보며 선언하듯 입을 열었다.
“아마 여기서도 몇 명.”
그중.
바루나가 자신의 눈을 피하고, 천마가 눈을 감는 게 보였다.
“기억해 낸 녀석이 있겠지.”
자신이 판도라를 납치했다고 생각한 유원에게 하루 종일 흠씬 두들겨 맞았던 그날.
금이 간 자존심을 넘어, 아수라는 오랜 시간 잊고 있던 한 명이 떠올라 충격에 잠겼다.
대체 왜.
자신은 물론이고, 이 탑의 모두가 김유원을 잊어버린 것인지.
“안 그래도 소개하려고 했는데 미리 판을 깔아 주시는군.”
붕대로 몸을 감은 제우스는 모두의 관심이 유원에게 쏠린 걸 보고는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는 조금 나중에 하려 했는데. 지금이 적기인 모양이야.”
저벅-.
회의장 안으로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그 역시, 지금이 나설 타이밍이라는 걸 아는 듯이.
“소개하지.”
“김유원이라고 한다.”
백 명이 넘는 거대 길드의 길드장과 간부들.
그들의 앞에 서서, 유원은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너희가 김유훈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