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26
* * *
크툴루의 확신에 유원은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온갖 꿈들이 달아올랐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괴물의 형태들이 모두 보였다.
상상.
그것이야말로 꿈이 가진 본질이었다.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꿈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지.
위대한 꿈을 꾸는 자.
그것이 바로 크툴루가 가진 이름이자, 그의 본질과도 같았다.
-강하면 강할수록. 두려워하고 상상하는 것도 함께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의 설명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들의 첫 악몽은 대개 한없이 하찮고 귀엽게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고, 두려움이 사라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악몽의 형태는 꿈꾸는 자의 몸과 마음이 커질수록 함께 커져 간다.
바로 지금.
-공포의 형태는 대체로 비슷하지.
스르르-.
보랏빛의 꿈 속.
형태를 이룬 존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너라고 해서 다를까?
초록색의 외눈박이에 문어처럼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괴물이 몸을 꿈틀거린다.
그 옆에선 수백 개의 눈동자를 가진 구체가 눈을 깜박이고, 하늘 위로는 거대한 뱀이 헛바닥을 날름거리며 세 개의 머리와 꼬리를 휘젓는다.
온갖 종류의 괴이한 형태의 괴물들이 유원을 노렸다.
그들을 보며.
유원은 하나하나 속으로 이름을 불렀다.
‘이그. 주크 샤브. 크아이가…….
다 아는 모습과 이름들.
심지어 그 숫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족히 수십에 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
“관리자들이군.”
모두, 이 세계에서 관리자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어진 꿈은 현실과 다름없지.
익숙한 모습의 관리자들이 보였다.
바로 이곳까지 오는 길에 마주친 녀석들.
산의 제왕과 같아 보였던 거대한 멧돼지.
수십 개의 다리를 가진, 녹색 외눈의 괴물…….
모두, 이 녀석의 꿈이 만들어 낸 악몽이었다.
-지금 이곳이 그렇다. 어떠냐? 네가 아무리 그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들, 과연 감당이 될까?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유원은 작게 좁혀진 눈으로 주위에 나타난 관리자들의 형상을 둘러보았다.
꿈이 현실이 되었다.
녀석은 악몽에서 보았던 것들을 끄집어냈고, 그 악몽은 한 명의 관리자를 만들어 냈다.
악몽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없다.
이길 수 있다면 그건 애초에 악몽이 아닌 게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위대한 꿈’이란, 그 어떤 이름보다도 완벽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건 없었다.
주위에 나타난 수십 명의 관리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왜……?
이럴 리가 없다는 반응.
민망하리만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당황한 건 되레 크툴루였다.
-뭘 한 거냐?
“아무것도.”
이 위대한 꿈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을 때.
유원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악몽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지.”
크툴루.
꿈 그 자체인 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게 꿈이라는 걸 깨닫는 것.”
꿈은 그걸 깨닫기 전까지는 모두 현실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그것은 그저 안개처럼 손에 쥐어지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지금 유원에게 크툴루가 그랬다.
물론.
-말도 안 된다!
단순히 안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꿈인 걸 안다 해도.
악몽의 공포를 이겨 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려움이 없는 자는 없어. 죽음을 각오한 광적인 용기에도 그걸 뛰어넘는 또 다른 공포는 있기 마련인 것인데!
“너 같은 걸 두려워하기엔 내가 널 너무 잘 알거든.”
발악에 가까운 그의 외침에 유원은 비웃듯 말을 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악몽을 꾸었 지.”
파르르-.
순간.
벌어진 크툴루의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였다.
그는 ‘어린 시절’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무서운 꿈이었어. 어떻게 생겼더라. 문어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용이나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고…….”
워낙에 오래된 기억.
유원은 그 기억을 더듬다 고개를 저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그것이 자신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괴물인 걸 알게 됐지. 다들 그러잖아? 어릴 때는 누구나.”
유원은 자신이 지닌 기억을 가리켜 ‘그’라 말했다.
더는 아자토스에게 동화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터무니없는 상상이야. 그런데, 다른 게 뭔지 알아?”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는 너무 특별했어.”
웅, 우우, 우웅웅-.
크를루의 세계가 불규칙하게 흔들린다.
위대한 꿈이라 일컬어지던 공간은 유원의 입에서 언급된 이야기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꿈은 현실이 됐다. 악몽은 괴물이 됐고. 한번 그렇게 탄생한 악몽은 아이가 자라나 더는 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을 때도 사라지지 않았지.”
-설마…… 설마…….
‘설마’라는 생각은 전부터 했었다.
무정형의 혼돈.
아자토스가 가지고 있던 이름 중 하나.
그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부터, 만분의 일이나마 눈앞에 있는 유원이 아자토스일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자신이라는 꿈을 창조해 낸 위대한 아버지라는 걸.
-그럴 리가…….
“맞아. 그럴 리 없지. 난 네가 생각하는 그가 아니야.”
유원 또한 아자토스를 부정했다.
그의 진명은 사라졌다.
한 번 사라진 진명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나, 그는 특별했다.
불사조가 다시 부활하듯.
그는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은 그것을 위한 그릇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난 널 알아. 그것도 너무 잘.”
크툴루는 유원을 부정했다.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실제로 아자토스의 진명은 사라졌고, 유원이 가진 힘은 아자토스에 비하면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위대한 꿈을 상대하는 데 필요한 건 그가 지닌 힘이 아닌 ‘기억’이었다.
“이제 알겠냐? 크툴루야.”
스가악-.
유원이 휘두른 칼끝이 위대한 꿈의 허상을 베어 낸다.
“넌 그에게 있어서 한낱, 어린 시절에 꾸었던 악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어린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 무서워했음을 깨닫게 된다.
아자토스 역시 그랬다.
“너희들 전부 말이야.”
스윽-.
유원의 시선이 다시 한번 주위의 관리자들을 훑었다.
그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같이 모두, 아자토스가 어린 시절 꿈에서 꾸었던 존재들이었다.
* * *
어린 시절.
아자토스는 자주 악몽을 꾸었다.
악몽에 등장하는 괴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문어부터 시작해 개구리나 유령, 멧돼지나 뱀이 되기도 했다.
아이의 상상력이라는 게 으레 그렇다.
온갖 종류의 동물과 형체가 불분명한 것들을 모두 무서워한다.
아자토스 역시 그랬다.
“아자토스-!”
그날도 그랬다.
마른 짚이 쌓여 있는 허름한 창고.
그곳에서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잠에 들어 있던 아자토스에게, 그 마을의 어른이 찾아왔다.
퍼억-!
날아오는 주먹질은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프지만 적응이 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해 뜨기 전까지 앞뜰 다 치우고, 재들이 싸 놓은 똥들 다 치우라고 했지?”
짝-!
이번엔 뺨을 맞았다.
아프기는 덜 아프다. 하지만 괜히 슬픈 기분이 들었다.
아자토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는 지시였다.
작은 체구의 꼬마 아이.
도저히 그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양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정까지 다 하고, 마을에 가서 밀과 장작 좀 사 와라. 늑장 부리면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가.”
“네, 죄송합니다.”
“에잉, 쯧.”
기분 나쁜 놈.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는 곧 몸을 돌려 돌아갔다.
아자토스의 앞으로는 작은 돈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과 바닥의 돈주머니를 번갈아 보며.
“……아파.”
쿡, 쿡-.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다.
주먹과 뺨을 맞은 얼굴이 아니라, 심장이 있는 가슴이 쑤셨다.
스윽-.
돈주머니를 품에 넣고, 아자토스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 순간.
툭-.
어느새 그는, 시장 한복판에 도착해 있었다.
“아!”
아자토스와 부딪친 남자는 아픈 듯 소리를 내며 아자토스를 내려다보았다.
겨우 자신의 허리 높이 정도 오는 작은 어린아이.
“애새끼가, 더럽게…….”
그는 짜증을 내며 혐오스러운 눈으로 아자토스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사람들이 아자토스로부터 하나둘 멀어졌다.
더럽고 재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던 중.
“괜찮니?”
포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부딪친 아자토스를 향해 물었다.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었던 거니?”
“장을 보러 왔어요.”
“장?”
“네. 주인님이 밀과 장작을 사 오라고…….”
“그렇구나.”
순간, 고민하던 여인이 아자토스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오렴. 내가 길을 알려 줄게.”
길이라면 아자토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자토스가 아는 길과는 정반대로 그를 이끌었다.
으슥한 골목. 그림자로 가득한 마을의 구석으로.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떨어졌을 때.
“뭐야, 애새끼잖아?”
“이런 거지새끼를 왜 데려왔어?”
그녀의 일행이 나타났다.
칼을 빼든 사내 둘.
두 개의 날붙이는 순식간에 으스스한 공포를 만들어 냈다.
“돈은 좀 있나 보더라고. 애야, 혹시 바보는 아니지?”
중년 여인의 물음에 아자토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의 표정에는 겁이 없었다.
그런 아자토스의 반응에 사내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 맛탱이가 가 있는데?”
“말을 못 알아듣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야. 내가 아까-.”
스윽-.
툭-.
그때였다.
아자토스가 품에 가지고 있던 돈주머니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건.
“이제 가도 돼요?”
“…….”
어이없다는 듯 아자토스를 보던 사내들은 돈주머니를 확인했다.
넉넉지는 않아도 아쉽지는 않은 금액.
고개를 끄덕인 사내들은 아자토스를 향해 손짓했다.
“꺼져, 꼬맹아.”
아자토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으슥한 골목길.
주인집에 거둬지기 전 많이 다녔던 거리였다.
짚이 쌓인 창고보다는 오히려 여기가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아자토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처음으로 아자토스의 얼굴에 알록달록한 색이 떠올랐다.
“니알라?”
자신과 같은 꾀죄죄한 몰골.
씻지 못해 거뭇한 얼굴과 잔뜩 떡진 머리.
아자토스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 니알라는 아자토스를 향해 달려오며 반갑게 인사했다.
“어떻게 온 거야? 크투가 어르신 댁에 들어간 거 아니었어?”
“들어갔어. 잠깐 나온 거야.”
“잠깐? 어떻게?”
“심부름.”
니알라는 아자토스와 오래전부터 골목길에서 함께 자라 온 친구였다.
아마도 이 세계에 딱 한 명.
서로를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 려 반가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바로 들어가야 돼?”
아쉬운 듯 니알라의 표정이 울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바로 돌아간다니 아쉬운 모양.
아자토스는 전보다 더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아.”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반색하며 웃는 니알라.
그녀는 어디서 맞고 빠졌는지 모를 이를 드러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같이 놀자,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