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3
* * *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이 된 기분이었다.
유원은 보랏빛으로 이글거리는 불길 안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안쪽으로 들어가자, 성화는 유원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화르륵-.
뜨겁지 않다.
아니, 뜨겁지 않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불은 공포를 먹고 자란다.’
성화는 그저 뜨겁게 타기만 하는 불이 아니었다.
‘불’이라는 형태를 취하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자를 갉아먹고 불태워 버리는 힘. 그것이야말로 성화가 진짜로 위험한 이유였다.
‘불을 무서워하면 안 된다.’
치지지-.
뜨거웠다.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열기는 더 커져 갔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화력은 더 거세진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다.
[‘화안’이 ‘성화’에 저항합니다.] [‘불주술의 옷’이 ‘성화’에 저항합니다.]다행히 불이라면 저항력이 꽤 강했다. 탑을 오르며 죽을 위기를 겪은 것도 여러 번 있어,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 않았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쩌억-.
이글거리던 불길이 모여 하나의 형상을 이룬다.
시시각각 모양을 바꿔가는 형상들.
그것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흉측하고 해괴한 모습들로 이루어져, 유원의 눈을 어지럽혔다.
[‘?의 알’이 눈을 뜹니다.] [‘?의 알’이 이빨을 드러냅니다.]알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진다.
유원은 인벤토리가 있는 허리춤을 꽉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어.”
오로치의 시체야 아무래도 좋지만 성화는 다르다.
이건 유원이 극복해야 할 시험이었다. 특히, 상대가 탑 바깥의 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네가 다 먹어 버리면 내 몫이 없단 말이지.”
알은 오로치의 시체를 먹어치웠다.
녀석은 분명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지난번처럼 알이 성화를 먹어치우면 유원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천무진의 말대로라면 이건 성화를 얻기 위한 과정이다.
예언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시스템은 충분히 믿을 만하다.
두근-.
점차 커져 가는 성화.
그리고 그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유원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기분이었다.
아우터는 이지(理智)를 벗어난 존재들이다. 탑을 비롯한 세상 밖에서 온 저들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보다 더 큰 공포를 만들어 낸다.
지금이 그랬다.
성화는 두려움을 먹고 자랐다. 녀석은 유원의 몸을 휘감으며 공포를 먹고 자라 괴물이 됐다.
“네가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휘어 감는 보라색 불의 괴물.
유원은 녀석의 눈을 마주 노려봤다.
“‘아우터’라면 질리도록 봤다.”
정신적인 공포라면 이미 구역질이 나올 만큼 겪어 보았다.
아우터와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싸우는 건커녕, 앞에 서 있기도 힘들다.
그리고 유원은 그런 아우터와의 전쟁에서 싸워 살아남았다.
저벅-.
앞으로 걸어간다.
유원은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아우터와의 전쟁. 녀석들과의 싸움.
무너져 내리는 세상과 그 세상을 먹어치우는 괴물들.
“난 네가 무섭지 않다.”
과거로 돌아오며 약해지긴 했어도 유원의 정신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난…….”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다.
“너희에게 이기기 위해 돌아왔다.”
* * *
화르르르르-.
삽시간에 어느 순간 불길이 고요해졌다.
오랜 시간 성화를 지켜봐 온 천무진도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애초에 성화를 손에 넣겠다고 도전했던 자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포기한 건가?’
천마동을 가득 채울 것처럼 번지던 성화가 조금씩 죽고 있었다. 그러자 저 멀리, 불길 속으로 들어갔던 유원의 그림자가 보였다.
“살아 있군.”
유원은 서 있었다.
보이는 건 뒷모습이었다. 천무진은 삽시간에 거대해졌던 성화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푸스스스-.
성화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화아아악-.
유원을 중심으로 휘감긴 보랏빛의 불길.
천무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설마……?”
그토록 바라던 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당연하게 있어 와서 그런지, 정말 이 순간이 올까 싶었다.
천무진은 유원을 바라보았다.
보랏빛의 불길은 유원의 몸에서 이글거렸다.
뒤이어 성화는 유원의 주위를 도깨비불처럼 떠돌았다. 유원은 고개를 돌려 세 개의 덩어리로 변한 성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화가 유원의 주위를 맴돈다.
쉽사리 믿기지 않은 천무진은 서둘러 유원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됐나?”
천무진은 유원의 눈을 바라보았다.
유원의 눈은 천무진을 보고 있지 않았다. 성화를 바라보고 있는 유원의 눈동자 초점은 어딘가 흐릿해 보였다.
그렇게 잠시 후.
스르륵-.
유원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 * *
감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시야 속, 유원은 무중력 속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르륵-.
까만 배경 위로 보랏빛의 불길이 떠올랐다.
성화(聖火)였다.
도깨비불처럼 둥둥 떠오른 성화는 느리게 시야를 맴돌았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싸우려던 게 아니었나.’
성화는 자신을 따르고 있었다.
포악한 괴물처럼 보이던 모습도 그때뿐이었다.
그것은 시험이었다.
‘눈앞에 있는 힘을 두려워하면, 그것을 다룰 자격도 되지 않을 테니.’
그리고 유원은 성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된 거였다.
[100,0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힘이 1 상승하였습니다.] [민첩이 2 상승하였습니다.] [체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감각이 1 상승하였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하였습니다.] […….] [‘천마신교’의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 [거화(巨火)의 상위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스킬이 소멸합니다.] [‘성화(聖火)’를 획득하였습니다.] [‘칭호 : 천마신교 소교주’를 획득하였습니다.] [11층의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다음 층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울리는 메시지를 통해 유원은 시험이 끝났음을 확신했다.
정말로 자신은, 이 불을 손에 넣었다.
스륵-.
눈을 덮고 있던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며 천장이 보였다.
유원은 어느새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날이 밝았는지 문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가장 먼저 유원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화상은…… 없는 건가?’
손으로 몸을 더듬어 봤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꿈처럼 느껴지던 성화가 떠올랐다.
그리고 시험을 통과했다는 메시지도.
다음으로 확인해 볼 건 새로 얻은 보상이었다.
[성화(聖火)]# 랭크 : S+
# 숙련도 : 0.00%
# ?에서 온 불이다. 적으로 인식한 상대의 감정에 비례해 마나의 소모 없이 더 큰 화력을 발휘한다.
# 원하는 대상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
# 상처 악화.
# 꺼지지 않음.
스킬의 설명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감정을 먹고 커지는 불. 언뜻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 아폴론이나 수르야 같은 하이랭커나 수르트 같은 불을 다스리는 거인족이 아니고서야 불은 당연하게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성화는 바로 이 두려움을 먹고 더 커지는 불이었다. 당장 스킬의 등급만 해도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원하는 대상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건 다수간의 전투에서 큰 이점이다. 상처 악화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이 정도면 불 계열의 스킬 중에서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거기에 더해.
‘게다가 이건, 스킬을 얻은 것 이상의 수확이다.’
무엇보다 성화가 스킬로 구성되었다는 건 유원에게 큰 의미를 가졌다.
성화는 탑 밖에서 온 힘이었다. 유원은 오랜 전쟁을 통해 아우터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힘은 무한하다.
때문에 아우터의 힘을 탐낸 랭커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유원이 해낸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쳐.’
만족할 만한 보상.
시간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천마신교 소교주?”
유원은 메시지 중에 하나를 떠올렸다.
천마신교 소교주라니.
‘칭호’라면 그 사람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자 직위를 의미했다. 헤라클레스의 ‘거인 학살자’나 손오공의 ‘제천대성’ 역시 그런 칭호의 한 종류였다.
보통은 랭커들도 하나 이상 가지기 힘든 게 칭호였는데, 그게 10층의 보상으로 나온 것이다.
[천마신교 소교주]# 구분 : 칭호
# 랭크 : B
# 천마신교와 계약된 교인에게 절대적인 지배력과 명령권을 지닌다.
# 이 칭호는 ‘천마’ 칭호를 지닌 자가 회수할 수 있다.
B랭크 등급의 칭호.
칭호는 일반적으로 스킬보다 구하기가 훨씬 어렵고, 당연하게도 높은 등급의 칭호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B랭크 정도면 유원이 아는 칭호들만은 못해도 꽤 상위 등급의 칭호였다.
물론 칭호 자체의 힘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권위’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천마신교를……?’
천마신교는 길드 ‘무림’에 대적해 온 단체였다. 비록 오랜 시간 바깥과 단절되어 약해졌다지만 그들이 지닌 힘은 결코 얕볼 수 없다.
그런 천마신교를 통치할 수 있는 칭호라면, 그 값어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시비는 유원을 교주전으로 안내했다.
“왔느냐?”
천무진은 어제와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유원은 짐을 다 챙겨 온 상태였다.
“이제 거기 있을 필요 없지 않습니까? 지킬 것도 없는데.”
“습관이란 게 그리 빨리 고쳐지는 건 아니더구나. 여기 말고 다른 데 가려니 마음이 영 불편해서, 원.”
더 이상 천무진이 지켜야 할 성화는 없다. 그건 앞으로 유원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칭호를 받았습니다.”
“소교주 말이냐?”
“네.”
“받아 두어라. 성화에 천마령까지, 자격은 충분할 테니.”
“전 랭커가 되어도 천마신교로 오지 않을 겁니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그것은 널 옭매기 위한 게 아니니까. 정당하게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보상이니, 마음껏 누리면 된다.”
큰맘 먹고 한 말인데 생각보다 돌아온 대답은 싱거웠다.
혹시나 천무진이 자신을 다음 천마신교 교주 자리로 점찍은 거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됐다.
책임은 질 필요가 없으니, 천무진의 말대로 마음껏 그 자리를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바로 떠날 테냐?”
“무림대전이 시작될 때나 한 번 들리겠습니다.”
“무림대전에 참가할 생각인가?”
“그때 제가 25층 아래에 있다면 생각해 볼 참입니다.”
무림대전은 10층부터 25층까지 거주 자격을 획득한 플레이어들이 참여해 경합하는 대회였다. 대회는 3년에 한 번 열렸는데, 무림대회는 저층 구간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이벤트였다.
“그렇군. 곧 무림대전인가…….”
잠시 옛 일을 떠올리듯 중얼거린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중은 않도록 하지. 그런 걸 바라는 성격은 아닌 듯하니.”
“제대로 보셨습니다.”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짐이랄 것도 없었다. 식량을 비롯한 필요한 것들은 다 인벤토리에 들어 있었다.
유원은 천무진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무림대전이라…….”
성화가 주인을 찾고,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길고 단단하던 족쇄는 사라졌다.
한평생 성화를 지키는 일에만 매달려 오던 천무진은 처음으로 ‘무엇을 할까’라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성화가 나타나기보다 더 오래전, 천마신교가 바랐던 게 떠올랐다.
“이제 무림으로 돌아가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