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34
* * *
랭커 프라우드는 1층으로 내려왔다.
굳이 먼 아래층까지 내려온 이유는 하나였다.
꼭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어서였다.
쿵쿵쿵-.
“판도라! 판도라!”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그는 판도라의 이름을 소리쳤다.
“이리 나와 보십시오, 판도라!”
이곳은 판도라의 집이었다.
츠쿠요미, 아프로디테와 함께 탑의 3대 미녀가 산다는 장소.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그는 판도라가 살고 있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이라고? 말도 안 된다.’
이제 곧 그녀가 결혼한단다.
줄곧 그녀 한 명만을 바라보며 탑을 올랐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는가.
그렇게 억울함에 대문을 두드리던 때였다.
끼이이-.
천천히 문이 열렸다.
“오오, 판도…… 라……?
프라우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락부락한 근육,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이 큰 키.
분명 판도라의 집이라고 들었는데, 왜 저런 남정네가 나온단 말인가?
그런데 어째, 생긴 모습이 낯이 익었다.
“유감이오. 판도라가 아니라 내가 나와서.”
영웅 헤라클레스.
달리 ‘거인 학살자’라는 무서운 이름으로도 알려진 그였다.
“둘은 지금 외출 중이오. 그녀에게 무슨 용건이오?”
쿵, 쿵-.
프라우드는 가까이 다가온 헤라클레스를 올려다보았다.
자신보다 머리가 두 개쯤은 더 큰 거구.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느껴지는 위압감도 장난이 아니었다.
‘겁먹지 마라. 나도 이제 어엿한 랭커야.’
꿀꺽-.
프라우드는 고개를 들어 헤라클레스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당당히 말했다.
“김유원에게 도전하러 왔소.”
“김유원에게?”
“그래. 난 그보다 훨씬 먼저 탑을 오르기 시작했고, 판도라에 대한 마음도 훨씬 크오.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할 자격은 나한테도 있소.”
각오를 다진 비장한 말투.
하지만 그런 프라우드의 말에 헤라클레스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이런 미친 작자가 아직도…….”
탑이 김유원을 잊어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날파리가 꼬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탑 3대 미녀 중 한 명인 판도라.
그녀는 행방이 묘연한 츠쿠요미나 올림포스라는 거대 세력에 둘러싸인 아르테미스와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존재였다.
더군다나 옆자리까지 비어 있어, 뭇 남성들이 그녀에게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이놈은 유원의 존재를 알면서도 찾아왔다는 거랄까.
“지금 나 보고 미친 작자라고-.”
프라우드는 헤라클레스의 말에 잠시 욱하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는 목소리를 죽였다.
“하…… 셨…….”
“기분 나빴다면 실례했소. 그리고 또 실례해야겠군.”
“뭐, 뭘 말이오?”
“돌아가시오. 이건 조언이오.”
헤라클레스는 진심으로 프라우드를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그 녀석이 오면, 당신 죽을지도 모르니까.”
진심이었다.
당장 하이랭커인 바루나만 해도 그랬다.
그 녀석, 대체 얼마나 처맞았으면 유원의 이름까지 기억해 낸 걸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프라우드는 하이랭커는커녕, 이제 막 랭커나 되었을까 싶은 햇병아리였다.
그런데.
“그와의 싸움은 이미 각오했소.”
“……응?”
프라우드의 당당한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싸움?
지금, 싸움이라고 했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니 잘못 들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진짜, 이런 황당한 경우라니.
‘이런 얼치기는 또 처음 보는군.’
반응을 보니 대충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눈에 보였다.
랭커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거대 길드와 마주칠 일은 없었고, 랭커가 하늘의 끝이라 생각한 자.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다.
정작 헤라클레스의 눈에 그는 유원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날아갈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이야기 좀 하겠소?”
* * *
모르는 손님을 집안으로 들일 순 없어, 헤라클레스는 프라우드를 정원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간단히 차를 내온 헤라클레스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삶을 포기하지 마시오.”
“무슨 말이오?”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살다 보면 반드시 살아갈 이유가 있을 거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죽으러 왔다 이 말인 거요?”
“바로 그 말이오.”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임자가 있는 여인을 찾아와 행패를 부려서 뭐 하겠소? 사실, 마음 같아선 내가 먼저 그대를 쫓아내고 싶…….”
말을 잇던 헤라클레스의 시선이 뒤쪽으로 향했다.
낭패라는 얼굴로,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늦었군.”
저벅-.
어느새 외출했다 돌아온 유원과 판도라.
그중,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던 유원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프라우드에게 다가와 물었다.
“또냐?”
“그대가 김유원이오?”
“그런데?”
“정식으로 도전하겠소.”
드륵-.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프라우드는 유원의 옆에 있는 판도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걸고, 나와 결투를-.”
어라?
갑자기 눈앞이 팽 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얘가 물건이냐? 걸고 자시고 하게?”
눈앞에서 유원의 얼굴이 옆으로 꺾인다 싶더니, 그대로 세상이 뒤집혔다.
* * *
언제 쓰러졌지?
깜깜한 시야에 프라우드의 의식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죽은 거 아니야?”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어? 누가?
“너무 세게 쳤나.”
“머리 안 터진 게 다행이다. 무슨 애를 이렇게 해 놔?”
“그러는 너는, 이런 놈한테 뭐 한다고 차까지 먹이고 있어?”
“잘 타일러서 보내려 했…… 아, 깼다.”
서서히 시야가 돌아왔다.
프라우드는 정원 바닥에 누워 피를 흘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끄으…….”
몸을 일으키던 중, 프라우드는 격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슬쩍 만져 보니, 머리에서 피가 났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흔적이었다.
‘맞았어? 내가?’
보지도 못했다.
꿀꺽-.
‘탑은 내가 먼저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유원이 랭커가 된 건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탑을 오르기 시작한 건 200년도 더 된 일.
경험이라면 자신이 더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리 좀 비켜 줘라. 이놈이랑 얘기 좀 하게.”
“죽이진 마라.”
“바루나처럼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유원의 말에 헤라클레스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정원에 유원과 둘이 남게 된 프라우드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다시 도전하겠다.”
“……?”
“정정당당히 붙어 보고 싶다. 내 모든 걸 걸고.”
말아 쥔 주먹을 앞으로 내미는 프라우드를 보며 유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는데, 이 정도 되니 어이가 없었다.
“랭킹은 확인해 봤냐?”
“그런 숫자 놀음 따윈 모른다.”
어쩐지.
유원은 그제야 프라우드의 이런 무모한 행동을 이해했다.
별종이긴 하지만 종종 있긴 했다.
랭킹에 관심이 없는 플레이어.
아마 녀석은 자신의 이름만 들어 봤지, 랭킹이 몇 위인지 확인해 볼 생각은 안 한 모양이었다.
원래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다.
“한 번 확인해 봐라.”
“어차피 이기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프라우드의 대답에 유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격차를 모를 만큼, 난 바보가 아니야.”
이길 거라는 생각도 없이 도전한다?
바루나처럼 단순히 판도라의 외모만 보고 들이대는 놈들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그래, 그럼…….”
그렇다고 해서 좋게 넘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유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프라우드는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척-.
주먹에 마력을 끌어모은 직후, 그가 맹렬한 기세와 함께 유원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난 직후.
빠각-.
“……?”
자신의 이마에서 들린 소리에, 곧 다시 정신을 잃었다.
* * *
잠시 기절했던 프라우드는 이마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에 패배의 이유를 깨달았다.
딱밤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당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꾸욱-.
프라우드가 입술을 꽉 깨물며 몸을 일으켰다.
유원은 ‘이래도 계속 할 거냐?’는 얼굴로 프라우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졌군.”
그의 인정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서 계속하면 그땐 좀 더 손을 과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곧 혼인식이 있다고 들었다.”
비장한 말투로 프라우드가 입을 열었다.
“왜 그녀를 택한 거지?”
“왜?”
“그래. 왜.”
동생 시집 보내는 오빠도 아니고, 질문이 이게 뭔지.
그래도 처음 받아보는 질문이었다.
유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라…….”
“결혼할 거야.”
처음 판도라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은 없었다.
어깨에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있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자체가 무뎌져 있었으니까.
결혼?
당연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난 잊혔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다들 아는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세상은 김유원이라는 이름을 잊었고, 또 기억해 냈다.
“그런데 한 명은 날 기억해 줬지.”
판도라는 자신을 기다렸다.
언젠가 돌아을 거라 생각하며.
기약도 없이, 모두가 잊어버린 사람을.
“계속 내 이름을 말하더라고. 언제부터 그랬던 건진 모르겠는데.”
“김유원, 김유원, 김유원, 유원…….”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똑같은 이름을 되뇌던 판도라.
생각해 보면 그녀는 그때도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픽-.
생각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아마 그때였던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자신을 쫓아다니던 그녀에게, 함께 마음이 동했던 것이.
“난 그녀에게 구원받았어. 그때 받은 게 커서, 갚을 방법이 마음밖에 없다.”
모두가 자신을 잊었을 때, 유일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좋아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름답지만, 자신을 향한 마음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대답이 됐나?”
이게 바로 유원이 판도라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유원의 말을 듣던 프라우드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왜, 그대를 좋아하는 거지?”
또다시 들어온 왜다.
생각해 보면 한 번쯤 받아 볼 법한 질문인데, 왜 아직도 못 들어 본 걸까.
아무래도 함께 어울리는 녀석들이 바보 원숭이와 머리가 근육으로 가득 찬 녀석들인 탓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왜지?’
낯간지럽다는 이유로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서투르다는 핑계로 많은 걸 놓 치고 있었다.
지금껏 왜 서로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풋 풋하다는 말로 넘어갈 일은 아닌 듯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유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꼭 물어봐야겠네. 고맙다.”
“……?”
유원의 반응에 이번엔 프라우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넌, 내 예상보다 괜찮은 남자인 것 같군.”
척-.
몸을 돌리며, 그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였다.
“판도라를 잘 부탁한다. 김유원.”
저벅, 저벅-.
그대로 몸을 돌려 프라우드는 유원의 집을 나섰다.
그렇게 멀어지는 프라우드를 보며.
2층에서 유원과 프라우드를 구경하고 있던 헤라클레스가 김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재 뭔데?”
“몰라.”
당연하게도, 판도라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