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35
* * *
때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낮이었다.
플레이어 김철수.
그는 매번 오해를 받고 살았다.
“김유원이다!”
“진짜?”
고작 8층에서 김유원이 등장했다고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사람 잘못 봤어, 병신들아!’
당연하게도 철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데 정신이 없었다.
김철수.
그는 누구보다도 김유원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숱한 오해를 받고 있었다.
검은 머리에 차가운 인상, 훤칠한 이목구비.
도플갱어 괴물이라도 되는 양, 그는 김유원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하아-.”
깊게 한숨을 쉬며 그는 키트를 꺼내 보았다.
[보유 포인트 : 102]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잔고.
서둘러 다음 층으로 가지 않으면 이젠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고 있었다.
‘다음 시험은 잘되려나.’
매번 김유원으로 오해받고,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는 것도 지쳤다.
철수는 서둘러 자신도 어엿한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언젠가는 랭커가 되어서.
김유원이 아닌, 랭커 김철수로 불리는 날이 올 수 있도록 말이다.
‘포인트를 벌어야 돼.’
포인트.
탑의 화폐 역할을 하는 그것을, 플레이어로서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그는, 마땅히 벌 방법이 없었다.
플레이어로서 포인트를 벌 방법은 두 가지다.
위로 올라가며 보상을 얻거나, 혹은 길드의 눈에 들어 지원을 받거나.
만약 그렇지 못하면 길바닥에 나앉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꽈악-.
숙소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온 철수는 키트를 쥔 손에 힘을 주며, 그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다음 시험만큼은 기필코…….”
“꺄아악-!”
그때 들려온 익숙한 비명 소리.
한두 번 들어 본 게 아닌 소리였다.
골목 더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철수의 눈이 커졌다.
‘지원이?’
바로 그의 동생, 김지원의 비명소리였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급히 내달린 철수의 눈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의 동생이 보였다.
김지원.
함께 탑에 들어오고, 함께 탑을 오르는 철수의 동생이었다.
“철수, 그놈 어디 갔냐니까?”
“쌍년이, 대답은 안 하고 비명만 냅다-.”
“야!”
철수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니들 뭐 하는 거야!”
버럭 소리를 지르자, 지원을 둘러싸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철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얼굴을 마주하자 몸을 움찔 떠는 몇몇.
“어, 철수 왔다.”
“아, 씨. 저놈 상판대기는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안 된다니까.”
아는 얼굴들이었다.
몇 달 전부터 철수에게 포인트를 빌려 주던 플레이어들.
“야, 이자 갚을 날이 벌써 사홀이나 지났어.”
“이자가 원금을 넘었네? 어째, 갚을 방법은 있고?”
“소리만 지르면 다세요, 고객님?”
“남은 포인트 있지? 됐고, 그거부터 일단 내놔. 더는 못 기다리니까.”
시험비가 없는 플레이어들에게 돈을 빌려 주고, 값비싼 이자를 받아먹는 대부업체.
딱 한 번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거기에 손을 댄 게 잘못이었다.
생각보다 놈들은 집요했고, 5층에서 빌린 포인트를 가지고 8층까지 따라왔던 것이다.
‘원금을 갚으려 해도 못 갚게 막으니, 나보고 어쩌라고?’
빠득-.
저놈들 손에서 벗어날 방법은 두 가지였다.
자신을 지켜 줄 길드를 찾거나, 혹은 스스로를 지킬 만한 힘을 가진 수준 높은 플레이어가 되거나.
랭커가 되기만 한다면 저런 양아치들에게 더는 당할 필요가 없었다.
‘젠장. 이것까지 줘 버리면 그땐 진짜로…….’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차.
“야, 김유원! 빨리 왔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찰랑-.
화아아-.
스스로 빛이라도 나는 듯, 화사한 금발.
분위기를 압도하는 눈부신 외모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랭킹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물이었다.
‘하, 하르간?’
김유원에 가려져 있을 뿐, 그 역시 엄청난 속도로 랭커가 된 플레이어였다.
그 재능과 야망 덕분에 훗날 올림포스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게 떠오르는 존재이기도 했다.
본래라면 이런 밑바닥 층에서는 볼 수 없는, 위대한 존재였는데…….
턱-.
“재들은 뭐야? 아는 애들이냐?”
그런 그가, 철수의 어깨에 팔을 걸쳐왔다.
“지, 지…… 진짠가?”
“병신아. 보면 몰라? 하, 하르간 이잖아.”
“둘이 튜토리얼 동기라더니…….”
슬그머니 눈치를 보는 양아치들을 보며 철수는 표정을 바꿨다.
무슨 상황인진 모르겠지만 지금이 바로 기회였다.
“방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는 뭐였지?”
“히익!”
“그, 그게…….”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철수의 눈을 마주한 양아치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김철수라고 생각했을 때까지만 해도 조금 쫄리는 정도였다면, 진짜 김유원이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릴 것만 같았다.
“돈을 빌렸나?”
“네?”
철수의 물음에 지원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네…… 그런데 원금을 다 갚은 지가 오래인데, 아직도…….”
“사실이냐?”
덜, 덜덜-.
눈빛 한 번, 말 한 마디에 기세등등하던 놈들의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지원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 그것이…….”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 통할 리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간에 알려진 김유원의 스킬, ‘화안금정’은 상대의 진실과 거짓을 파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지금 이곳에 있는 게 진짜 김유원이라면.
거짓을 말하는 순간, 그 순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바, 바로 불태우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
“여기, 여기 있습니다!”
화르륵-.
눈앞에서 빠르게 불태워지는 계약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감추며 철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꺼져라.”
무심하게 툭, 내뱉은 한 마디.
“히이익!”
“죄, 죄송합니다!”
“가, 가, 가자!”
지원을 둘러싸고 있던 대부업자들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김유원을 향해 험한 말을 내뱉었으니 혹시라도 사단이 날까 두려웠던 것이다.
“뭐야, 재들.”
물론, 상황을 모르는 하르간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하르간은 이내 관심 없다는 듯, 철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툭툭-.
“우리도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렇게.
그렇게 얼떨결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 * *
그렇게 하르간이 지나간 자리.
그로부터 오 분 정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한 유원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먼저 와 있겠다더니만.”
잠시 어디 갔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유원은 하르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벌써 식사를 시작한 것도 모르는 채.
* * *
“넌 참 사람 많은 곳 싫어하더라.”
식당 하나를 통째로 빌린 하르간.
그가 포크로 고기 하나를 집어 먹으며 물었다.
“왜? 몇 년 잊혀 있더니 그게 편했냐?”
“그…….”
뭐라 대답해야 할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그래? 하긴. 편할 수도 있겠다. 나도 요즘은…….”
하르간의 말이 한 귀로 흘러 나갔다.
그는 지금,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다 스쳐 갔다.
‘이래도 되는 거야?’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연기를 하긴 했다.
덕분에 사채를 담보로 자신들을 괴롭히던 양아치들에게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순조롭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
하르간과 마주 앉아 고기를 썰고 있는 이 자리는 마치,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김유원을 사칭했다는 걸 들키면? 중범죄 아닌가? 최상위 하이 랭커, 그것도 김유원을 사칭한 거면 아마 그 죗값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면서도 그는 태연히 고기를 썰어 입에 넣는 걸 멈추지 않았다.
들키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들키면, 분명 그 즉시 하르간의 전격에 통구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꿀꺽-.
마른침과 함께 부드러운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결심이 섰다.
‘연기하자. 끝까지.’
우웅-.
그때, 하르간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철수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누구냐?”
“아, 있어. 친구. 잠깐만.”
하르간은 식사를 멈추고 키트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한동안 키트에 집중하던 하르간이 본론을 꺼냈다.
“청첩장 준다며? 그거부터 얼른 꺼내 봐.”
쿵-.
철수의 머릿속에 천둥소리가 울렸다.
그러고 보니, 김유원과 판도라의 혼인식이 얼마 후라고 했다.
아무래도 오늘 약속은 그것 때문인 모양이었다.
“깜박했다.”
“깜박해?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유원이?
그런 반응이었다.
확실히,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성의 없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보다 하르간은 쉽게 넘어갔다.
“아, 조금 있다가 여기로 오르페우스 아저씨가 올 거야. 혼인식에 노래가 빠질 수는 없잖아.”
오르페우스는 뛰어난 연주를 하기로 알려진 올림포스의 랭커였다.
아무래도 이 자리는 청첩장 외에도 혼인식을 위한 여러 논의를 위한 자리인 모양이었다.
큰일이다.
일이 점점 커진다.
철수의 머릿속에 비상이 울렸다.
* * *
“헉, 헉’”
“쌍, 대체…… 헉. 이게 뭔, 일이야?”
“그, 거기서…… 후아-. 진짜 김유원이 왜 나와?”
김유원과 하르간을 피해 도망친 사내들이 멀리 떨어진 골목에 들어와 숨을 몰아쉬었다.
어찌나 급히 내달렸는지, 한 명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시발…… 하이랭커면 남의 일 막 방해하고 그래도 되는 거야?”
“야, 조용히 해. 걔들 귀가 좀 좋냐?”
“헙-.”
“아, 씨. 그 호구 새끼 좀 더 빨아 먹었어야 되는 건데.”
김철수.
벌써 몇 번이나 시험에서 탈락한, 덜떨어진 플레이어.
장기적으로 포인트를 뽑아 먹기에는 딱인 녀석이었다.
“하르간과 같이 있는 새끼는 진짜 김유원이라 치고, 그럼 철수 고놈은 어디 있는 건데?”
“계약서는 찢어졌는데?”
“알게 뭐야? 그걸 그 새끼가 알겠냐?”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김철수는 계약서가 사라진 걸 알 방법이 없다.
그걸 아는 건 진짜 김유원과 하르간뿐이다.
지잉-.
키트가 울리고, 소식이 전해져 왔다.
“야, 철수 찾았다.”
사내들의 동료가 전해 온 소식.
“진짜?”
“어. 지금 우리 아까까지 있던 골목에 혼자 있대.”
“하필 그 근처에? 하, 씨.”
거기서 혼자 뭘 하는진 모르겠지만 하르간과 함께 있는 게 아닌 걸 보면 분명 녀석이 김철수였다.
“지금 바로 갈까?”
“…….”
“…….”
한 사내의 물음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 주변에 아직 김유원과 하르간이 있다간, 이번엔 정말 사단이 날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다릴까?”
“그, 그러자.”
“맞아. 어차피 그놈은 우리 손바닥 안이잖아?”
“딱 십 분만 있다가 출발하자고.”
결국 그들은 김유원을 피해 움직이는 쪽을 택했다.
물론.
그만큼 속에서는 아무 잘못 없는 철수에 대한 원망이 커져 갔다.
“철수, 이 새끼…….”
빠득-.
이빨이 부서져라 이를 갈며.
한 사내가 골목 한쪽에서 혼자 서 있다는 철수를 향해 중얼거렸다.
“두고 보자, 너.”
자신들이 이를 갈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그들은 그렇게 감히 이빨을 드러내선 안 될 존재를 향해 분노를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