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7
* * *
시험 날이 밝았다.
장소는 어두운 숲 엘리라움.
오래전, 관리자에 의해 오직 시험만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시험 감독관 히프노스는 다시 한번 시험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의 이름을 훑어보았다.
A팀에 이어서 B팀.
눈에 익은 이름들이 꽤 보였다.
“한동안 욕 좀 먹겠군.”
아무리 봐도 팀 간의 실력 차이가 너무 난다. 당장 남궁훈만 하더라도 차기 하이랭커 재목으로 알려진 슈퍼 루키 중 하나였다.
남궁세가의 천재.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상위 랭커이기도 한 남궁진운이 훗날 자신을 뛰어넘을 것이라 평가한 플레이어.
“그래도 역시 최고 기대주는 이 녀석이지.”
이번 시험은 보는 눈이 많았다.
B팀에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도 있지만, A팀에 참가한 한 플레이어 때문이었다.
“김유원.”
A팀의 명단 중, 유독 돋보이는 이름이다.
김유원의 이름 세 글자만 유독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다른 B팀의 플레이어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이름.
김유원.
그는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물론, 랭커들 사이에서까지 꽤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앞길이 창창한 녀석이 어쩌다 찍혀 가지고. 쯧.”
히프노스는 빳빳한 앞머리를 뒤로 슥 밀어 넘겼다.
이 탑의 위.
위대한 올림포스의 명령은 하나였다.
플레이어 김유원의 척살.
시험이라는 틀 안에서라면 김유원을 건드리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나 히프노스가 시험 감독관으로 있는 11층은 올림포스의 손바닥 위라고 할 수 있었다.
히프노스는 새하얀 황소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아래로는 나무가 빼곡히 자리 잡은 거대한 숲이 보였다.
저곳이 바로 이번 시험의 무대인 엘리라움이다.
“슬슬 준비가 끝나겠군.”
히프노스는 늘어져라 한숨 쉬며, 황소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이번 시험만 잘 끝내면 며칠 휴가는 물론, 올림포스에서 특별한 보상까지 톡톡히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에 히프노스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갔다.
그때였다.
띠링-.
히프노스의 플레이어 키트가 울렸다.
메시지였다.
“시험 전에 누가 문자를…….”
기분 좋은 졸음을 방해받았다는 생각도 잠시.
히프노스는 문자에 찍힌 이름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헤라]올림포스를 상징하는 여덟 명의 하이랭커 중 하나.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아내.
그녀의 메시지였다.
* * *
A팀과 B팀이 모였다.
양 팀의 숫자는 극명했다. 히프노스는 시간에 맞춰 참석한 팀원들의 숫자를 세었다.
“A팀 51명, B팀 200명이라…….”
무려 4배에 달하는 숫자 차이.
게다가 플레이어들의 질적인 수준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숫자 차이보다 훨씬 극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상보다 참석자가 적냐면, 그건 아니었다.
“생각보다 많이 참여했군.”
오히려 예상보다 많았다.
히프노스는 A팀 전원이 시험을 기권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이번 시험의 팀 격차는 컸다.
51명이면 히프노스의 예상의 몇 배나 되는 숫자였다.
‘설마 진짜 참여할 줄이야.’
그리고 이 정도의 숫자가 모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설마하니 이게 함정인 걸 모르는 건가?’
바로 김유원의 존재였다.
올림포스의 고위 순혈인 하르간을 제치고 튜토리얼을 통과한 플레이어.
각 층의 랭킹을 갱신하고, 천마신교의 시험까지 통과한 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감이 과하지 않나 싶었다.
‘설마하니 이 정도 격차를 혼자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한 손은 열 손을 당해 낼 수 없다.
다른 세계였다면 모를까, 탑에서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한 손은 열 손을 당해 낼 수 있다. 압도적인 힘은 숫자의 힘을 넘어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랭커들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지금은 한 손이 아니라 백 개가 넘는 손을 감당해야 한다.
게다가 보통의 손보다 훨씬 강력한 손들도 섞여 있는 상황이다.
‘시험인 만큼,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시험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다음 층으로 넘어갈 자격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인 만큼 힘의 강약도 중요하지만 싸움과는 달리 시험에는 ‘룰’이 존재한다.
십중팔구, 아니 어쩌면 십 중 전부라 해도 될 것이다.
시험에 참여한 A팀의 플레이어들은 아마 이 ‘룰’에 기대를 한 것이리라.
“크흠.”
잠시 시험 참가자들을 살피던 히프노스는 기침으로 목을 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11층의 시험 감독관 히프노스라고 합니다.”
히프노스의 시선이 유원에게, 이어서 B팀의 남궁훈, 로엘, 스피로스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이 시험을 주시하고 있는 여러 랭커들은 모두 저들의 후원자들, 혹은 저 플레이어들을 탐내는 길드의 랭커들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떨리는 시험.
“A팀의 참가자가 많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변동 사항은 없습니다. 지금 이 팀원 그대로 시험을 진행합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있던 A팀의 플레이어들이 탄식을 흘렸다. 만약 팀을 다시 재구성 한다면 확률이 훨씬 올라갔을 텐데 말이다.
“거두절미하고 시험 내용을 알려 드리고 시험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험의 주제는 바로 이것.”
히프노스는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손을 들어 붉은색으로 펄럭이는 깃발을 보였다.
“깃발 빼앗기입니다.”
시험의 주제가 알려지자 좌중이 잠시 동안 술렁거렸다.
깃발 빼앗기.
수백 명이 함께 치르는 시험이 처음인 그들로서는 생소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한 몇몇은 주제를 듣자마자 곧장 시험의 내용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유원은 이미 익히 아는 종류의 시험이었다.
‘귀찮게 됐군.’
하필이면 깃발 빼앗기라니.
이래서는 혼자 시험을 치를 수도 없었다.
히프노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선 깃발은 마법 공학 기술을 이용해 이런 기능이 존재합니다.”
히프노스가 또 다른 깃발을 꺼내 손에 쥔 깃발을 향해 가까이 가져가자, 깃발 하나가 아지랑이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남아 있는 깃발에는 [2]라는 숫자가 생겼다.
“이 숫자는 깃발의 개수를 의미합니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이걸 기억 못할 리는 없을 거고. 문제는 이 깃발이 어디에 있느냐겠지요.”
히프노스는 뒤쪽에 있는 거대한 숲을 바라보았다.
“깃발은 숲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길 한복판에, 낭떠러지 아래에, 나무 위에, 그리고 괴물의 몸에. 이거 뿌리느라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히프노스의 적나라한 설명에, 몇몇 플레이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 넓은 숲을 돌며 깃발을 뿌리려면 정말 개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숲에 퍼져 있는 깃발을 모으면 됩니다. 최종적으로 깃발을 많이 모은 팀이 승리. 간단하지요?”
듣기로는 정말 간단했다.
하지만 이건 그리 간단하기만 한 시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 시험이 ‘깃발 모으기’이지, ‘깃발 빼앗기’가 아니잖아요? 우리가 뭐 숨바꼭질하자는 것도 아니고.”
히프노스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여러분은 상대방 팀이 모은 깃발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방법은 상관없습니다. 훔치든, 협박하든, 죽이든, 어쨌거나 빼앗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험의 본질이다.
단 한 개의 깃발을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상대 팀의 깃발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시험은 결국 승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시험에는 [킹]이 존재합니다.”
유원의 미간이 구겨졌다.
이게 바로 이 시험이 복잡한 이유였다.
“뭐, 진짜 체스처럼 킹이 죽으면 시험에서 탈락하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하지만 킹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킹이 가진 깃발의 개수는 2배로 계산되거든요.”
그 말에 눈이 반짝인 건 A팀의 플레이어들이었다.
2배.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A팀의 플레이어들은 킹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이 유원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이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유원은 바로 알아차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유원이 킹이 되어 깃발을 모은다면.
그리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킹을 잡을 수만 있다면, 시험에서 승리하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킹은 랜덤으로 정해집니다. 운빨좆망 시험. 다들 아시잖아요?”
유원은 하하 웃는 히프노스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쳐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랜덤? 운빨?
51분의 1의 확률이긴 하지만 아마 유원이 킹이 될 확률은 0일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우우웅-.
A팀과 B팀.
각기 다른 진형으로 나누어져 있던 두 팀의 아래로 푸른색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번쩍-!
* * *
파앗-.
마법진이 한 번 번쩍이자, 순식간에 눈앞에 펼쳐져 있던 풍경이 변했다.
유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소는 숲 안쪽 어딘가였다.
‘전부 옮겨졌군.’
A팀의 플레이어 전부가 한곳에 모였다.
아마 이 숲을 뒤지면 깃발이 흩어져 있을 것이다.
[11층의 시험을 시작합니다.] [숲에 흩어져 있는 깃발을 찾으십시오.] [24시간 후, 더 많은 깃발을 획득한 팀이 승리합니다.] [깃발은 빼앗을 수 있습니다.] [획득한 깃발의 숫자에 따라 공적치가 계산됩니다.] [‘킹’에게 깃발을 전달하면 2배의 공적치를 획득합니다.] [‘킹’이 깃발을 빼앗기면 획득한 공적치가 소멸합니다.] [공적치에 따라 보상이 결정됩니다.] [A팀 : 0개] [B팀 : 0개]설명은 이미 히프노스에게 자세히 들었다.
게다가 이건, 유원도 한 번 겪어 보았던 시험이었다.
깃발 빼앗기 시험은 킹을 어떻게 활용하고 상대 킹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우선은 킹이 누구인지 아는 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
“뭐, 뭐야 너? 몸이 왜 그래?”
유원은 소란이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나무가 우거져 어둑한 숲에 혼자 반짝거리는 녀석이 있었다.
할리만이었다.
“나…… 킹이라는데?”
설마하니 자신이 킹이 될 줄은 몰랐는지 할리만은 얼떨떨한 반응이었다.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저 반응부터 탈락이다.
“어, 어떡하지?”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상황.
게다가 시험의 핵심인 킹이라는 막중한 임무까지 맡게 된 할리만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여기까진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군.’
저벅-.
처음 무리를 이탈하기 시작한 건 유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원과 킹이 된 할리만은 A팀의 플레이어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할리만은 멀어지는 유원을 보며 물었다.
“어디 가는 겁니까?”
“깃발 찾아올 테니까 어디서 개죽음 당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키, 킹은 안 지키고요?”
“제발 살려 달라는 말을 그렇게 3인칭으로 하는 거 아니야. 당장은 부딪칠 일 없을 테니, 걱정 마라.”
그렇게 말한 유원은 킹이 된 할리만을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도 놀지 말고. 어떻게든 올라가려면 여기서 조금이라도 공적치를 얻어 보상을 챙겨야 할 테니까.”
유원의 말에 A팀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시작 지점인 지금은 양 측이 모두 깃발을 가지지 않은 상황.
당장은 충돌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숲에 퍼져 있는 깃발을 확보하는 게 먼저였다.
‘대충은 알아들은 모양이군.’
유원은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한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다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숲은 조용했다.
하지만 11층은 숲 전체가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던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길가나 절벽, 나무 위에도 깃발이 있을 거라 했지만…… 대부분은 아마 괴물이 지니고 있겠지.’
깃발을 획득하는 것부터가 시험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럼 일단…….’
유원의 눈이 붉게 변했다.
그러자 빽빽하게 우거진 숲이 뻥 뚫린 평원처럼 느껴졌다. 저 멀리, 나무들 사이를 지나쳐가고 있는 괴물이 보였다.
오우거.
숲의 왕이라 불리는 괴물.
그리고 녀석의 옷에 걸려 있는 깃발.
역시, 센 놈이 깃발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달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