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70
* * *
11층의 시험이 시작되고 12시간.
정확히 절반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유원은 숲 곳곳을 이 잡듯이 뒤졌다. 중간에 한 번씩 마주치는 괴물들에게는 깃발이 있었고, B팀의 플레이어들을 마주치면 깃발을 빼앗았다.
유원의 행보는 막을 수 없는 탱크나 마찬가지였다.
몇 명이 있든, 유원을 막지 못했다.
“나, 난 넘길게!”
“나도! 자, 여기. 여기 두고 갈게.”
“살려만 주세요, 살려만…….”
유원을 마주친 B팀의 플레이어들은 화들짝 놀라며 깃발을 넘겼다.
깃발을 넘기겠다는데 굳이 싸울 이유는 없었다. 유원은 그들이 넘기고 간 깃발을 회수했다.
[깃발(2개)을 획득하였습니다.] [20공적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깃발을 획득하였습니다.] [10공적치를…….]이번에 얻은 깃발은 모두 7개.
유원은 상대 팀의 플레이어에게 빼앗은 깃발을 품 안에 넣었다.
‘이걸로 총 100개.’
유원은 공적치를 확인했다.
당연하게도 정확히 1,000포인트였다.
‘여기서 이걸 킹에게 전달하면 또다시 1,000포인트.’
아직까지 유원은 할리만을 믿지 못했다.
유원에게 있어서 할리만은 아직까지 짐덩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자칫 그가 실수로 목숨을 잃거나 깃발을 상대 팀 플레이어에게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시험의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깃발을 넘기는 건 가장 마지막에.
24시간이 다 되는 때.
유원은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유원은 방금 전 마주친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떠올렸다.
‘내 얼굴을 알고 있었나?’
자신의 이름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시험에는 기록이 존재했고, 그 기록을 갱신한 이상 이름이 알려지는 건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굴까지 알려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미 유원을 알고 깃발을 먼저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 뜻은 하나였다.
“이미 정보를 교환했나.”
“예? 정보를요?”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킹과 내가 붙어 있다는 소식을 팀원들에게 전달한 거겠지. 아마 팀원들끼리는 키트 번호를 교환했을 테니까.”
“그래서 유원 씨가 저와 함께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피한 거다. 그리고…….”
방금 전.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지던 B팀의 플레이어들이 보여 준 행동들.
그들의 행동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아마, 만나면 도망치기로 약속을 한 거겠지.”
“깃발을 내놓고요?”
“그래.”
“하지만 그래서는 시험에서 이길 수 없잖아요?”
제아무리 팀 간의 숫자와 전력 차이가 크다고 해도 마주칠 때마다 힘들게 모은 깃발을 빼앗겨서야 승부가 될 리 없었다.
게다가 유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쫓아가기만 하는 할리만조차 힘이 들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런 걸 저쪽에서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의문이 들 때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서겠지.”
시험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12시간.
절반가량 시간이 흘러간 만큼, 어느 정도 시험에 윤곽이 잡히고 있었다.
“너랑 나를 잡아서.”
“잡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려던 할리만이 흠칫 놀랐다.
눈이 붉게 변했다.
유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온다.”
바스락-.
슈아아아악-!
날아온 화살 하나.
유원이 손을 뻗어 화살을 잡아챘다.
콱-!
“허억!”
털썩-.
깜짝 놀란 할리만이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화살이 노린 건 유원이 아닌 할리만이었다.
아마도 킹을 먼저 제거하려던 모양.
유원은 고개를 돌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막혔다.
-킹을 먼저 노리면 어떡해?
-이런 게 김유원에게 통할 리가 없잖아?
-킹이 있어야 저 녀석이 싸울 때 불리하지. 킹을 지키면서 싸워야 되잖아.
-그건 네 생각이고. 킹을 잡기만 하면 김유원이 살아 있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러네. 어차피 킹이 없으면 제아무리 김유원이더라도 어쩔 수 없을 테니…….
몇 명의 무리들.
아니, 몇 명이 아니었다.
유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가 꽤 있긴 했지만 제법 많은 수의 플레이어들이 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천라지망(天羅蜘網)인가.’
천라지망.
하늘의 그물을 엮어 만든 그물이라는 뜻으로, 무림계에서 오래전부터 쓰이던 포위망이었다.
이 주위에는 이미 B팀의 플레이어들이 다수 깔려 있었다. 숫자가 꽤 많아 보였는데, 족히 50은 넘어 보였다.
게다가 어중간한 실력자는 없었다. 방금 전에 날아온 화살만 하더라도 꽤 빠르고 정확한 속도였다.
50여 명의 플레이어들.
그중에는 유원이 놓아 준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냥 다 죽일 걸 그랬네.”
할리만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유원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가로이 이런 소리나 늘어놓다니.
참으로 천하 태평하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음이 갔다.
꿀꺽-.
할리만은 최대한 침착하려 애쓰고는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스카악-.
유원은 칼을 뽑아 휘둘렀다.
할리만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어느새 그를 중심으로 둥근 원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넌 이 밖으로 나가지 마라. 나가는 순간부터 죽었다고 생각하고.”
“예? 여기서요?”
할리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숲이라는 지형 안이었지만 이곳은 꽤 사방이 탁 트여져 있었다. B팀의 플레이어가 이 타이밍에 화살을 날린 것도 아마 이런 지형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숲으로 더 깊이 숨어드는 건 고사하고 이 한복판에 서 있으라니.
“지, 지금 저보고 죽으라는 말입니까?”
“누가 죽으래? 여기 서 있으라고. 어디 나가지 말고.”
“그래도……!”
“처음에도 그랬지.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있으라니까 움직여서는 죽을 뻔하고.”
할리만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건 그랬다.
확실히 유원은 처음 자신에게 시작 포인트에 가만히 있으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할리만은 일행과 함께 깃발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죽을 뻔한 자신을 구해 준 건 유원이었다.
“또 그러면 이번엔 못 도와줘.”
“끄응…….”
할리만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둥근 원.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다. 지름은 4미터 정도.
몇 걸음만 움직이면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작은 범위였다.
“저, 정말 이 안에만 있으면 되는 거죠?”
“그래.”
“진짜 살 수 있는 거죠?”
“그래.”
“진짜, 진짜 살려 주…….”
“그렇다니까.”
반복되는 똑같은 말에 유원은 할리만의 말을 끊어 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리만은 깜짝 놀랐다. 가만히 있으라면서 대체 왜, 유원은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란 말인가.
“어디 가십니까!”
깜짝 놀란 할리만은 버려진 아이처럼 서둘러 유원을 향해 뛰어가려 했다.
그때, 유원이 고개를 돌렸다.
“원.”
할리만의 발이 우뚝 멈춰 섰다.
발 앞쪽에 그어진 선이 보였다.
“벗어나지 마라.”
저벅, 저벅-.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할리만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섰다.
맹수 우리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 * *
55명.
유원과 킹, 아니 정확히는 유원을 잡기 위해 동원된 플레이어의 숫자였다.
‘엄청나네, 진짜.’
B팀의 플레이어 바르는 이번 일에 함께하는 플레이어들을 떠올렸다.
‘남궁훈에 로엘, 살라모프, 스피로스, 카이첼, 아우롤…….’
이름만 들어 봤을 뿐인 플레이어들.
그중, 남궁훈과 로엘은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들에게는 그야말로 저 하늘의 별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파티를 이루다니.’
그리고 그 파티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물론 자신도 10층 아래쪽에서는 힘 좀 꽤 쓴다고 알려져 있었다.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렸고, 인지도도 있었다.
그러니 파티에 참여할 자격은 충분한 셈.
‘김유원을 잡았다는 커리어는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그걸 잘만 이용하면 더 큰 길드의 시선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번 시험을 여러 길드에서 주목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 정도는 어느 정도 탑의 생계를 파악한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55명의 플레이어와 김유원의 싸움.
아마 이 싸움을 기점으로, 저층 구간에서 주목받는 플레이어가 결정될 것이다.
“움직인다.”
그때, 정찰용 스킬로 유원과 킹을 살피던 일행이 입을 열었다.
행복한 상상을 하며 히죽 웃고 있던 바르는 다시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원의 움직임을 살피는 건 팀원의 몫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자신도 함께 움직여야 할 때였다.
“도망치고 있나?”
“아니. 숲 안쪽으로 더 들어오고 있다.”
“안쪽으로?”
“싸우겠다는 것 같은데…….”
눈이 하얗게 변한 일행은 유원의 움직임을 살피다 말끝을 흐렸다.
답답해진 바르는 짜증스레 물었다.
“같은데, 뭐?”
“킹은 두고, 혼자 움직인다.”
“혼자?”
분명 김유원과 킹은 함께 움직인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갑자기 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바르는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잠깐 비켜 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함께 있던 두 명의 플레이어들이 좌우로 갈라섰다.
척, 척-.
바르는 바닥에 눕혀 놓았던 창을 손에 쥐었다.
2미터는 훌쩍 넘는 기다란 창. 게다가 두껍고, 통짜 철로 되어 있는 무기였다.
바르는 무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곧장, 투창술 자세를 취했다.
“화살은 아무래도 약하지.”
꽈아악-.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팔이 근육으로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활이 되어 시위를 당기듯, 그는 허리를 뒤로 크게 기울였다.
하나, 둘.
“셋……!”
퍼엉-!
손끝에서 창이 날아갔다.
뛰어난 저격수는 총을 쏘기 전부터 적중을 예상하고, 투창사는 손끝에서 창이 날아간 순간 적중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르는 확신했다.
‘맞았다!’
자신의 손을 떠난 창은 정확하게 A팀 킹의 머리를 관통할 것이다. 창은 그의 예상대로 흔들림 없이 날아갔다.
바르는 씩 웃었다.
이 시험을 승리로 이끈 건 바로 자신.
투창사 바르가 될 것이…….
“어?”
바르는 점차 속도를 붙여 날아가던 창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창은 더 이상 날아가지 않고, 허공에 멈춰 떠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
투확-!
옆에서 들려온 섬뜩한 소리.
바르는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신과 함께 있던 팀원의 머리가 반쯤 사라져 있었다.
‘이건…….’
창에 머리가 꿰뚫리고 지나간 자국이었다.
‘설마?’
바르는 고개를 휙 돌렸다.
방금 전, 허공에 멈춰 있던 자신의 창이 사라져 있었다.
“바르! 이쪽에…… 컥!”
정찰을 맡은 팀원의 숨넘어가는 소리.
다시 한번 고개를 휙 돌리자, 팀원의 몸이 위로 붕 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있다.
“뭐냐, 너?”
“이쪽은 꽝이었군.”
스르르-.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사람의 모습이 생겨난다. 허공에 떠 있던 팀원은 목이 붙잡힌 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우드득-.
악력에 뼈가 부러졌다.
함께 있던 두 명의 일행이 당했다.
팀원의 목을 부러뜨린 상대는 몸을 돌려 바르에게 걸어왔다.
저벅-.
“말해 봐라.”
유원은 붉은색 눈을 번뜩이며 바르를 노려보았다.
“남궁훈은 어느 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