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76
쩡-!
칼날이 깨지며 파편이 얼굴에 튀었다.
히프노스는 눈을 질근 감았다가 떴다. 관리자는 어느새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와 있었다.
“설명해 봐라.”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식은땀이 흘렀다. 시선을 슬쩍 돌리자, 유원은 아예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시험의 참가자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관리자가 누구의 편일지는 명확했다.
“관리자님, 그게…….”
말문을 열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말끝을 흐리던 히프노스는 몸을 돌려 관리자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털썩-.
“죄송합니다, 관리자님!”
히프노스는 관리자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아마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관리자는 상황을 다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히프노스는 패널티의 한계까지 힘을 사용했다. 이 정도로 힘을 사용했으면 관리자가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예상 밖에 싸움이 길어진 탓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죄송한 건 아는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올림포스의 지시인가?”
관리자의 말에 히프노스가 잠시 멈칫했다.
그 반응에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나 보군. 어떤 놈의 지시지? 아레스? 헤라? 아니면 제우스?”
“제 독단적인!”
히프노스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행동입니다.”
“독단 행동?”
관리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보도 믿지 않을 말이었다.
“혼자 뒤집어쓰겠다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해도, 올림포스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순 없지.”
관리자의 말에 히프노스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충격에 빠진 얼굴.
그만큼 올림포스에 대한 히프노스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애초에 시험 참자가를 직접 노렸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올림포스에까지 폐를 끼칠 생각은 없었다.
“지금부터 시험 감독관 자리를 박탈한다. 또한, 올림포스에 주어진 11층의 모든 권한을 박탈하도록 하지.”
“관리자님!”
“어디서 언성을 높이느냐!”
콰직-!
고개를 치켜 든 히프노스의 몸이 아래로 짓눌렸다. 무릎을 펴고 일어나던 히프노스는 완전히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크으으…….”
“감독관 자리뿐만 아니다. 시험 감독관이 되어 시험 참가자를 건드린 죄는 용서받을 수 없으니. 네놈은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수천 년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시험 감독관은 중요한 자리다.
각 층의 시험을 관리하고, 부정한 방법을 색출해 내는 자리.
그런 만큼 시험 감독관은 탑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가졌다.
“나중에 보도록 하자, 히프노스.”
꽈득, 쩌저저적-.
히프노스의 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히프노스는 부릅뜬 눈으로 유원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관리자의 시선도 유원에게로 옮겨졌다.
“또 너로군.”
관리자는 유원을 알고 있었다.
하긴.
보통이라면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존재가 바로 관리자였다.
하지만 유원은 벌써 튜토리얼과 1층에 걸쳐 11층까지, 세 번째 관리자와 대면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때마다 보통 사건이 아니었으니.
“이름이 김유원이었나?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닌 모양이야.”
“덕분에 피곤할 일이 많습니다.”
유원은 그렇게 말하며 히프노스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관리자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야.”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는 분명 두려운 상대였다.
그는 최상위권 하이랭커들과 맞먹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탑의 각 층을 지배하는 지배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여러 길드로 흩어져 있는 랭커들과는 달리 관리자들의 힘은 하나로 모여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이 탑의 지배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서워 할 필요는 없다.’
관리자는 올림포스와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대의를 벗어난 목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법칙을 벗어난 일만 하지 않는다면 관리자는 그리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어쨌든 이번 시험은 이상한 구석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시험 감독관은 관리자의 대행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보고 책임을 져라?”
“누군가는 그래야 하니까요.”
관리자는 유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유원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관리자는 자신에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번 일의 피해자는 유원이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관리자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이번 일은 시험 참가자인 유원이 감수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시험 감독관의 비리로 시험의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사실은.
“좋다. 시험이 다 끝나고 나면, 확실한 보상을 약속하지.”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지요?”
“난 관리자다. 저딴 놈하고 같은 취급을 해선 곤란하지.”
확실히 관리자의 약속이라면 믿을 만했다.
관리자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나 마찬가지.
결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좋습니다. 그럼…….”
원했던 확답을 받아 낸 유원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몇 명의 플레이어들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훈.’
남궁세가의 후계이자, 차기 하이랭커가 될 재목으로 꼽히는 플레이어.
남궁세가라는 거대한 배경을 가진 그는 웬만한 랭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보는 눈들이 많았군.”
관리자는 몰랐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파도가 일겠어. 파도가. 크하핫!”
관리자는 뒷짐을 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눈앞으로 공간이 벌어졌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관리자를 바라보던 남궁훈과 그의 일행들이 움찔했다.
‘파도라…….’
유원과 남궁훈의 눈이 마주쳤다.
‘글쎄. 어떨지.’
* * *
정체를 알 수 없던, 킹의 뒤를 따라왔던 남궁훈은 설마 하고 있었다.
시험 감독관인 랭커가 시험 참가자인 플레이어의 뒤를 노리다니.
그건 이 탑의 법과 규칙을 어기는, 말 그대로 최악의 범죄 행위였다.
“정말이었군.”
사정을 물어 대답을 들은 남궁훈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올림포스가…….”
“이거 사건이 너무 큰데?”
“그냥 시험 감독관의 일탈 아닐까?”
“미쳤다고 시험 감독관이 참가자를 건드리는 일탈을 해? 백퍼 위쪽이랑 관련 있지.”
“아, 미치겠네…….”
“그냥 조용히 입 다물어야 하나?”
“훈이 성격에 그러겠냐?”
마지막 말은 지극히 남궁훈을 의식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었다.
이미 봐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올림포스는 결코 저질러선 안 될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만약 이 사건이 공개된다면 올림포스는 꽤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야 이거?”
“그럼 상대가 랭커였다는 거잖아?”
“그것도 한 층의 시험 감독관을 할 정도의…….”
남궁훈의 팀원들이 슬그머니 유원을 보았다.
랭커와의 싸움.
그건 저층 구간의 플레이어들에게 꿈과 같은 일이다. 그들이 탑을 오르는 최종적인 목적이 바로 랭커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특히, 순혈 출신의 플레이어.
남궁훈과 같은 플레이어에게 그것은 더 큰 의미로 와 닿았다.
‘제천대성의 다음인가.’
랭커가 플레이어에게 깨진 사례는 처음이 아니었다.
제천대성 손오공.
최상위권 하이랭커이기도 한 그는, 오래전 플레이어일 때 랭커를 깨뜨린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그 일이 알려지며 손오공의 이름값은 최고를 찍었다.
‘게다가 이 층의 시험 감독관은 올림포스 측의 랭커.’
아마 이번 일이 알려지면 제천대성 때의 일보다 훨씬 큰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다.
‘어떻게 한다…….’
어쨌거나 자신들은 이 사건의 목격자들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이 사실을 바깥에 알리거나.
굳이 후자를 선택할 이유는 없었다. 제아무리 남궁세가라는 배경을 등에 업은 남궁훈이라 해도 올림포스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자칫 올림포스와 남궁세가의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10층의 세계, 무림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굳이 우리들이 아니어도 올림포스는 제제를 당할 거지만.’
올림포스 측 시험 감독관의 행동은 올림포스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11층에서 올림포스의 입지는 완전히 사라질 테고, 다른 층의 관리자들 역시 올림포스를 경계하게 될 터.
지금 이 시간부로 올림포스에 비상이 떨어지게 될 건 자명한 일이었다.
“너는…….”
한참을 고민하던 남궁훈은 유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유원은 이미 올림포스와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대체 어떤 이유로 올림포스가 그를 노리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번 일로 올림포스가 유원을 적대시할 건 분명한 일.
그리고 일개 개인이 올림포스와 대적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싸울 거다.”
유원의 대답은 남궁훈의 상식 밖이었다.
“제우스를 아래로 끌어내릴 때까지.”
제우스.
탑의 지배자 중 한 명이자, 위대한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의 이름이 언급되자 남궁훈은 순간 심장이 옭죄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거인의 이름을, 유원은 너무나도 쉽게 불렀다.
“어쩌다 올림포스와 척을 지게 됐지? 올림포스와 어떤 악연이라도 있었나?”
“원치 않는 무기를 만들던 대장장이를 도와줬다.”
헤파이스토스의 이야기였다.
“그랬더니 날 죽이겠다고 나서더군.”
“대장장이라…….”
남궁훈은 남궁세가의 직계.
그는 탑의 수많은 일들을 보고 들어왔다.
짧은 이야기였지만 남궁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남궁훈은 몸을 돌렸다.
“어?”
“야, 훈아! 어디 가?”
팀원들이 그의 뒤를 쫓았다.
남궁훈은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며 대답했다.
“이제 곧 무림대전이다.”
그는 메시지를 입력했다.
받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
“남궁세가로 돌아간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길드 무림의 지배자.
남궁진운이었다.
* * *
이후부터 11층의 시험은 관리자의 감시하에 진행되었다.
걸릴 건 없었다.
B팀의 플레이어들 중 대다수는 시험을 포기한 상태.
유원은 B팀의 플레이어들로부터 깃발을 빼앗고, 숲 곳곳에 흩어져 있는 깃발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4시간이라는 시간은 막바지에 달했다.
“저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유원의 얼굴을 본 할리만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의 주위에는 피가 흘려져 있었다. 피는 할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를 죽여 시험에서 승리하려던 B팀의 플레이어들.
그들이 피를 흘리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안 죽었잖아.”
쉬운 대답이었다.
일분일초가 지옥 같았던 할리만은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험을 포기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포기 안 하고 잘 버텼다.”
유원의 말에 할리만은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의 깃발.
지금까지 유원이 모은 깃발들이었다.
[618]깃발에 적힌 숫자.
5~10개만 모아도 많이 모은 것을, 혼자서 600개가 넘는 깃발을 모아온 것이다.
“하, 하하…….”
여러 가지 생각에 할리만은 웃음을 흘렸다.
이제 곧 시험이 끝나는 순간.
이만한 숫자의 깃발을 받을 수 있다면, 굉장한 공적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보상 또한 클 테고.
하지만 지금, 할리만의 웃음은 그런 종류의 기쁨과는 달랐다.
‘해냈다.’
유원에게 받은 칭찬.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 냈다는 기쁨.
‘해냈어.’
깃발을 향해 손을 뻗는 할리만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
해냈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킹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물론 그 역할의 9할 이상은 유원의 덕분이긴 했지만…….
바로 자신이.
유원과 함께 11층의 시험을 이겨 낸, A팀의 킹이었다.
[깃발(618개)을 획득하였습니다.] [6180공적치를 획득하였습니다.]깃발이 넘어감과 동시에 유원과 할리만의 머릿속에 똑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A팀 : 623개] [B팀 : 2개] [승자는 A팀입니다.] [지금부터 공적치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12층의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다음 층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11층의 랭킹이 갱신되었습니다.] [1위 : 22360공적치]11층의 시험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에게 떠오른 메시지.
결판이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