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80
뿌듯함이 가득한 헤파이스토스의 소개에 유원은 방의 한가운데 걸려 있는 검은색의 장갑을 바라보았다.
장갑의 모양은 단출했다.
평범한 검은색 장갑. 철제 장갑보다는 매끈한 면장갑 같은 모습이었다.
‘이게 퀴네에?’
소개를 받고 유원은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퀴네에의 이름을 지은 게 헤파이스토스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아이템인데도 같은 이름이 나올 줄이야.
‘신기하네.’
유원은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모양의 퀴네에를 향해 다가갔다.
장갑 모양의 퀴네에는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검은 마나는 역시나 퀴네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청한 대로 장갑 형태로 만들었다. 보석은 바깥쪽에 박아서 만들었는데, 겉으로 볼 때는 안 보일 거다.”
유원은 퀴네에의 모양을 살폈다.
확실히 육안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장갑이었다. 그리고 그건 유원이 기억하는 퀴네에의 특징과 비슷했다.
하데스가 사용하던 퀴네에 역시 아무런 무늬나 특색 없는 검은색의 투구일 뿐이었으니까.
“써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라고 만든 건데, 당연히.”
헤파이스토스는 꽤 즐거워 보였다.
아무래도 어서 빨리 자신이 만든 아이템을 소개하고 싶은 모양.
이때만큼 그가 즐거워 보일 때도 없었다.
바스락-.
촉감은 신기했다.
매끈한 면처럼 보였는데, 손끝에 느껴지는 건 면과 금속의 중간에 가까웠다.
유원도 처음 느껴 보는 촉감.
게다가 신기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꽤 묵직하네요.”
손바닥 위에 올라온 퀴네에의 무게는 겉으로 보는 것처럼 가볍지 않았다.
아마 철제 장갑이라 해도 이만큼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엄청 얇지?”
“예. 정말 아만타디움으로 만든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네가 가져온 거, 다 썼다.”
헤파이스토스의 말에 유원은 신기한 눈으로 퀴네에를 바라보았다.
1mm는 될까 싶을 만큼 얇은 두께.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 당연히 자신이 가져온 아만타디움을 다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전부 다 써서 만든 거라니. 과연, 보기와는 다른 묵직함이 이해가 갔다.
‘부피를 줄인 건가?’
무게 역시 유원이 가져온 아만타디움에 비하면 꽤 가벼웠다. 묵직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보이는 것에 비해서였다.
새삼 헤파이스토스의 실력에 감탄하며 유원은 퀴네에를 손에 착용했다.
그러자.
화아악-!
유원의 시야가 순식간에 변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둡던 헤파이스토스의 창고 안이 완전히 까만 어둠으로 변했다.
마치 얼마 전, 히프노스가 사용했던 스킬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어둡나.’
갑작스럽게 변한 풍경에도 유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퀴네에를 벗지도 않았다.
이건, 퀴네에의 시험이다.
쩌- 억-.
눈앞에 공간이 벌어지며 거대한 노란색 눈동자가 나타났다.
유원의 키보다 더 큰 눈. 그것은 몇 번 눈을 깜박이며 유원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그건 이쪽에서 묻고 싶은 말이었다.
갈라지고 떨리는 목소리. 눈밖에 없는 녀석이 잘도 말한다 싶었다.
“김유원.”
[다른 시간, 에서, 이상.]거대한 눈이 나타났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던 유원이 놀랐다.
뚝뚝 끊어지는 탓에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말이 속에 걸렸다.
다른 시간.
‘뭐하는 녀석이지?’
흑신석을 이용해 만든 퀴네에를 비롯한 올림포스의 3신기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것은 아우터의 침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다만, 크로노스를 통해 언뜻 정보를 들은 게 다였다.
“너는 누구지?”
[나는, 눈, 입, 아니, 말을…….]“너는 눈이고, 입이 아니라서 말을 못한다?”
대답은 없었다.
답답한 녀석이었다.
‘제대로 된 대화는 힘들겠어.’
이 녀석이 흑신석에 봉인된 것인지, 흑신석의 힘을 이끌어 내는 주체인 건지, 아니면 흑신석 그 자체인 건지.
어느 쪽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퀴네에의 힘을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게 유원이 대화를 반쯤 포기하고 있던 때.
[알…….]눈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알?’
[누구, 알? 어디?]또다시 해석이 필요한 말.
하지만 어느 정도 뜻을 알아듣는 건 가능했다.
‘누구의 알이냐는 건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 거고?’
유원은 인벤토리 속의 알을 떠올렸다.
성화를 손에 넣을 때 이후로 줄곧 잠들어 있는 알. 녀석은 꽤 오랫동안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부르르르-.
인벤토리 속.
오랜만에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의 알’이 몸을 일으킵니다.] [‘?의 알’이 소리를 지릅니다.]몇 달 만에 처음으로 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츠츠, 츠츠츠츠-.
그에 반응해 노란색 눈을 통해 기운이 일어났다.
불길한 검은색의 마나. 그것은 유원이 다루던 흑신석의 마나보다 훨씬 짙은 농도를 이루고 있었다.
‘위험하다.’
유원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해 움직였다.
저만한 농도의 어둠 속성 마나라면 닿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식되어 바스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피해야…….’
쭈- 악-.
사방으로 산개한 마나.
이미 피할 곳은 없었다.
그것은 이미 유원을 향해 덮쳐오고 있었으니.
‘늦었다.’
화륵-.
유원은 있는 힘껏 성화를 일으켰다.
당장 퀴네에를 다룰 방법은 알지 못하는 상황.
피할 수 없다면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파지지, 파지직-!
사방으로 산개했던 어둠 속성의 마나는 유원을 공격하는 대신, 허리춤에 찬 인벤토리 속으로 들어갔다.
성화를 일으켜 저항하려던 유원은 잠시 멈칫했다. 눈을 통해 뿜어진 마나는 자신을 공격하려던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대체 뭣 때문에…….’
[‘?의 알’의 부화율이 상승합니다.] [부화율 : 14.12%] [부화율 : 15.23%] [부화율 : 17.97%] [부화율…….]연달아 떠오른 메시지.
유원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알의 부화율이 높아졌다. 알은 눈에서 뿜어진 마나를 먹어치울수록 점점 부화율을 높여가고 있었다.
녀석이 잠에서 깬 건, 아마도 배가 고프던 차에 먹음직한 기운이 나타나서인 모양이다.
[부화율 : 41.29%]최종적으로 올라간 부화율은 41퍼센트.
꽤 높은 수치였다. 일전에 오로치의 시체를 먹어치우고 오른 부화율조차도, 13퍼센트에 불과했는데…….
“넌 이게 뭔지 알고 있나?”
유원은 갑작스레 알의 부화율을 높여 준 눈에게 물었다.
유원이 지닌 이름 모를 알은 아우터에서 왔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이 녀석이라면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츠츠, 츠-.
눈동자의 색이 점차 흐려졌다.
주위를 둘러쌌던 어둠도 서서히 걷혀졌다. 유원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오싹한 기운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지켜, 봄…….]말끝이 흐려졌다.
어눌하던 말투가 조금은 선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어둠이 걷힘과 동시에 바깥의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묵직한 망치질 소리.
주위의 대기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동시에 유원의 머리 위로 망치가 떨어졌다.
부웅-.
“아저씨!”
유원은 그것이 누구의 망치인지 알아차리고는 서둘러 소리쳤다.
여차하면 칼이라도 뽑을 자세를 취하고서.
“어라?”
망치가 중간에 멈췄다.
곧이어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괜찮으냐? 어?”
바닥 곳곳에는 망치 자국이 나 있었다. 아무래도 유원이 잘못된 줄 알고 부지런히 망치를 휘두른 모양이었다.
유원은 바로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죽다 살아났다.
그대로 헤파이스토스의 망치에 얻어맞았다간 아마 적당한 부상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됐군.’
유원은 손에 끼워진 검은색 장갑을 바라보았다.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다.
매끄럽고 부드럽다. 손에 착용하고 있지만 무게감만 아니면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다.
퀴네에.
올림포스의 3신 중 한 명, 하데스의 상징이었던 아이템.
‘지켜본다라…….’
사라지기 전, 퀴네에의 눈이 남긴 말.
‘그래도 마지막 말은 똑바로 했네.’
다른 말은 확실하게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그 말만은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꽈악-.
유원은 손을 꽉 쥐었다.
‘흑신석…….’
다른 이름으로는 퀴네에의 조각이라고도 불리던 아이템.
그 아이템에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은 몰랐다.
‘남은 조각은 두 개.’
그리고 유원이 기억하는 조각은 퀴네에의 조각까지 더해 모두 세 개.
‘그것도 모아 봐야 뭐든 알겠어.’
다음 목표는, 트라이던트의 조각이었다.
* * *
공방이 흔들렸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하르간은 벌떡 일어나 유원과 헤파이스토스가 떠난 방향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헤파이스토스와 유원은 이제 막 창고를 나오고 있었다.
유원의 손에 못 보던 장갑이 보였다.
아마도 새로 얻은 아이템인 모양.
“글쎄다.”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두루뭉술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예?”
“이 녀석한테나 물어봐라. 이놈은 알지 모르겠다만.”
그렇게 대답하고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헤파이스토스.
손에는 망치가 쥐어져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방금 전의 소란은 역시 그의 망치질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무슨 소리냐, 대체?”
“글쎄다.”
“너도 그 소리냐?”
“진짜 몰라서 하는 소리다.”
퀴네에의 조각이 무엇인지 모르기는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헤파이스토스는 단지 그것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져, 유원을 구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싸운 건 아니고?”
하지만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하르간은 갑작스레 헤파이스토스와 유원이 무기를 들고 싸운 거라 생각할 수밖에.
“아니다.”
“그럼 됐고.”
“생각은 다 정리됐나?”
“아직 좀 복잡해.”
하르간은 머리를 긁적였다.
헤파이스토스의 말을 불신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기간토마키아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을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아무래도 먼저, 형님과 누님을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그게 누군데? 네 형제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아폴론 형님과 아르테미스 누님.”
두 사람은 하르간과 같이 제우스가 혼외로 낳은 자식들.
아무래도 같은 처지에 있는 만큼, 다른 형제들보다 더 깊게 친해진 모양이었다.
“두 분은 뭔가 알고 계시겠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올림포스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하이랭커였다.
게다가 기간토마키아에 직접 참여했던 주역들이기도 했으니, 알고 있는 정보도 많을 터.
아무래도 하르간은 이번 일을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하려는 모양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무림대전부터 집중해야지. 상품도 상품이고, 어쨌든 이름을 좀 알려야 올림포스에서 내 영향력도 올라갈 테니까.”
“생각보다 그런 걸 많이 신경 쓰나 보네.”
“신경 쓸 수밖에. 난 아레스 형님과는 다르니까. 날 따르는 세력을 만들기 위해선 계속해서 내 가치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
하르간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유원은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걸 위해서 이번 무림대전만큼 확실한 무대도 없지. 듣기로는 이번 무림대전을 관람하는 랭커들이 다른 때보다 더 많다고 하더라고.”
무림대전은 항상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주목도는 매번 달랐다.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수준과 이름값에 따라, 구경을 하는 랭커들의 이름값과 숫자도 함께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무림대전은 역대 최고의 관심도를 가진 무대였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만큼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높기 때문.
물론 그중 절반 이상의 관심은 유원의 존재에 있었다.
몇 명, 하르간은 이번 무림대전을 방문한 랭커들의 이름과 길드를 죽 늘어놓았다.
“……그밖에도 떠돌이 랭커들 몇 명도 있다고 하고. 아 맞다, 그리고.”
이번 무림대전이 주목받고 있는 두 번째 이유.
“이번엔 천마신교 소교주도 나온다던데.”
그건 바로, 잠자던 호랑이가 굴을 나왔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