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86
* * *
한바탕 몰아친 전격의 물결은 장내를 침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방금 전, 하르간이 뿜어낸 전격의 임펙트가 강하다는 뜻이다.
“뭐야?”
“하르간?”
“갑자기 왜 저래?”
으르렁거리는 하르간과 다른 플레이어들을 둘러보던 경기장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다시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하르간의 다음 행동이 궁금해도 당장 눈앞에 칼이 들어와 있는 상황.
계속 멀뚱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앙, 창-!
콰과과, 퍼엉-!
다시금 경기장 곳곳에서 칼창이 부딪치고, 스킬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진천은 펼쳤던 부채를 접었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심각해진 얼굴로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지금 행동은, 김유원을 도우려는 것이라 봐도 되겠소?”
제갈진천의 물음에 하르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본가에서는 그대와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만.”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인지, 모자란 놈이네.”
이번에 표정이 일그러진 사람은 제갈진천이었다.
무려 무림맹의 총군사, 제갈경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무림의 책사인 그는 지금껏 무림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자였다.
그런 제갈경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을 모자라다 하다니.
다른 무엇보다, 아버지를 욕하는 말을 참을 자식은 없었다.
“왜 그래? 꼽냐?”
“무슨 그런 저급한 말을…….”
“저급한 짓거릴 하니까. 수준 맞춰 주는 거다.”
하르간은 그렇게 말하더니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유원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던 플레이어들.
하르간은 그들을 향해 명백히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저런 거랑 어떻게 싸워?”
“괴물이야, 진짜…….”
하르간의 한 방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 플레이어들.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뒤집어쓴 듯 식었다. 이런 흐름은 좋지 않았다.
“부, 분명 올림포스와 김유원은 적대 관계라고 했잖아?”
그리고 이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쓸데없는 소리까지.
“그건 어떻게 알았지?”
하르간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유원도 마찬가지.
‘제갈세가에 올림포스 쪽 끄나풀이 있었나.’
이건 유원도 처음 알게 된 정보였다.
무림맹 내부에서 남궁세가와 제갈세가로 파벌이 나누어진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올림포스가 섞여 있었을 줄이야.
아무래도 이 판을 짠 건, 하르간이 유원의 반대편에 설 거라 생각해서인 모양이었다.
“……진짜 많이도 해 먹었군.”
하르간의 목소리에 쓴맛이 감돌았다.
제갈세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올림포스에게 하는 말이었지.
“쓸데없는 말 신경 쓰지 말고, 선택하기나 하시오. 지금 여기서 김유원의 편에 설지, 말지.”
제갈진천의 말에 유원은 하르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른 장소와는 달리, 이곳 무림대전은 공적인 장소였다.
수많은 관중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곳. 또한, 플레이어 키트를 통해서 무림대전은 어디서든 관람이 가능했다.
그런 만큼 하르간의 지금 행동은 필히 올림포스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
유원은 올림포스의 적으로 알려진 상태.
그를 돕는다는 건, 올림포스의 뜻에 반하는 일이었다.
“제갈세가 놈들은 옛날부터 혓바닥이 길었지.”
쾅-!
하르간의 두 주먹이 부딪쳤다.
“너야말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덤벼. 그 선택이란 건 이미 옛날 옛날에 했으니까.”
“……그렇군.”
망설임 없는 화끈한 대답에 제갈진천은 다시 부채를 펼쳤다.
“나는 지금부터 이자를 상대하겠다.”
부채를 펼쳐 든 제갈진천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서둘러 김유원을 제압하고 합류해.”
“괜찮겠어?”
“상대는 하르간인데…….”
“알고 있다. 하르간. 이름은 많이 들었지.”
일행의 걱정에 제갈진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방금 전의 일격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르간은 강하다.
지금껏 보아 온 어떤 플레이어들보다도.
최강의 플레이어라는 김유원도 대단하지만, 직접 만나 본 소감은 하르간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그리고 나는 제갈진천이다.”
제갈진천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일행은 안도했다.
그래.
그는 제갈진천이었다.
남궁훈과 함께, 무림을 이끌어 나갈 천재라 불리는 플레이어.
그의 자신감은 곧, 다른 일행들에게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번쩍-.
파지지-.
그 짧은 사이, 하르간이 제갈진천의 눈앞에 도달했다.
“네가 누구라고?”
“……!”
퍼엉-!
콰지지지직-!
주먹이 뻗어 오고, 제갈진천의 몸이 뒤로 십 미터가 넘게 날아간다. 제갈진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밀려나 몸을 부여잡았다.
“끄…… 아…….”
파직, 파지지-.
몸이 감전되고 까맣게 그을렸다.
눈 깜짝할 새였다.
제갈진천은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아니,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써야 했다.
‘뭐…… 이런…….’
흐릿해진 의식 속, 제갈진천은 뿌연 시야로 하르간을 바라보았다.
올림포스의 직계 순혈이 강할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특히 하르간은 올림포스의 왕인 제우스의 피를 이어받았다.
뛰어난 건 당연하다.
‘아무리 그래도!’
뿌득-.
자존심이 상해,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이 정도나 차이가 날 리가 없다.’
머리가 말했다.
이럴 리가 없다고.
그리고 다음으로 또다시 머리가 외쳤다.
이건, 절대 못 이긴다고.
“어디서 족보도 없는 게 말이야.”
순식간에 제갈세가를 족보 없는 곳으로 만든 하르간은 주먹을 부딪치며 말했다.
“잔대가릴 굴려? 굴리기는.”
하르간은 제갈진천을 향해 다가가다 힐끔 유원을 보았다.
거창하게 부채를 피고 할 것도 없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저벅-.
“아까 하던 건 계속해야지?”
주위를 에워싼 무림계의 플레이어들을 향해 한 걸음.
유원은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귀찮은 파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기, 기권!”
“나, 나도! 기권!”
“나도!”
“난 포기 못…… 아아악!”
본선의 경기가 무르익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부상이 늘어나자 기권하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끝끝내 포기를 하지 않고 목숨을 잃는 선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제갈진천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졌소!”
후욱-.
제갈진천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뻗던 하르간의 손이 멈췄다.
그는 싸울 의사가 없는 상대를 공격할 성격이 못됐다.
주먹이 멈추자 겨우 안도한 제갈진천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졌소. 포기하지.”
“기권하겠다는 거냐?”
“그렇소.”
싸움은 길지 않았다.
그의 실력으로는 하르간의 주먹을 몇 번 받아 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마저도 아마 하르간이 제대로 마음을 먹고 날렸다면 막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게 고작 그 실력으로 뭘 하겠다고.”
“……그대가 갑자기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성공했을 거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
하르간은 창칼을 부딪치며 무림계의 플레이어들 사이를 휘젓고 있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네가 저기 끼면, 저놈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제갈진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긍정의 침묵이었다.
겉으로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글쎄…….”
하르간은 유원을 노려보았다.
한 명, 한 명.
일일이 검을 휘둘러 베어 넘기는 유원의 모습은 분명 의아했다.
‘실력이 퇴보한 건 아닌 것 같고. 힘을 아끼고 있는 건가?’
유원과는 꽤 오랜만의 재회였다.
튜토리얼이 끝나고, 1층이 지난 이후 하르간은 그새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당연히 그 성장은 유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들리는 소문에는 최강의 플레이어라고까지 했으니 족히 몇 배는 강해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거라면…….’
저벅-.
하르간은 유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끄집어내 주지.’
방해가 되던 무림계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대부분 정리가 된 상황.
게다가 본선이 시작되고 분위기도 꽤 무르익어, 이만하면 무대로는 충분하겠다 싶었다.
콰드득-.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하르간의 발밑의 바닥이 움푹 파인다.
칼을 휘두르던 유원의 몸이 돌아갔다. 하르간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발견한 유원은 검을 아래로 내려뜨리며 물었다.
“이제 시작할 거냐?”
“충분히 오래 기다렸다.”
희열에 찬 얼굴.
파지직-.
하르간의 주위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강렬한 전격이 휘감기기 시작한다.
“때를 알고 수확한 과실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법이지.”
그 말에서 유원은 하르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고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오래도 기다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참기를 포기한 하르간이 유원에게 다가왔다.
‘아직 많이 남긴 했지만…….’
어차피 결승전은 늦든 빠르든 상관없었다.
유원은 자세를 잡기 전에 입을 열었다.
“두 가지만 물어보자.”
“두 가지나?”
“오래 참은 모양인데, 조금만 더 참아.”
하르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냐?”
“우선 방금 전, 그 결정 후회 안 하냐?”
올림포스가 돕는 제갈세가를 적대하고, 반대로 그 적인 유원을 돕는 것.
그것이 바로 하르간이 방금 전에 취한 행동이었다.
말하자면 그건 올림포스에 대한 전면적인 대적이었다.
“난 바보가 아니다.”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내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정도는 나도 알아. 알고 행동한 거다.”
“그럼?”
“당연히. 후회할 리가 있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다.
“두 번째 질문은?”
이것만 끝내면 금방 시작이라는 듯, 하르간은 기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질문은…….”
우우웅, 웅-.
탁한 묵빛의 검에 아름다운 빛깔의 마나가 맺힌다.
“예전에 나한테 한 방에 얻어맞고 날아갔던 거, 벌써 까먹었나?”
당시의 일이 떠오른 하르간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래, 기억하지. 기억하고말고.”
잊어버릴 수가 없다.
랭커가 아닌 자에게 처음으로 패했던 날.
그 순간, 그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럼 이번엔 내가 묻자.”
하르간과 유원의 거리가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지금도 내가 그때랑 똑같아 보이냐?”
“아니.”
하르간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것도 잠시.
“더 작아 보인다.”
“……오냐.”
콰지지직-!
끓고 있던 하르간의 전격이 위로 솟아올랐다.
“시작해 보자.”
콱-.
주먹을 뻗을 자세.
거리는 이미 충분히 가까웠다. 권과 검, 둘 모두 서로의 사정거리 안이었다.
유원은 거리를 벌리거나 하르간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전격의 힘이 가득 담겨져 있는 하르간의 주먹을 정면에서 상대할 셈이었다.
웅, 웅웅웅-!
잦은 떨림을 내며 뿜어진 마력검.
준비가 끝났다 생각한 하르간은 마침내 주먹을 뻗었다.
콰아앙-!
하나의 검과 권이 부딪쳤다. 경기장 중앙에 굉음이 터진다.
쩌어어엉-!
그 순간.
쩍-.
아주 조용히, 유원의 검에 금이 생겨났다.
유원의 눈에 검에 생긴 금이 비춰졌다.
‘이것도 이제 한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