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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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의 세계는 넓었다.
하지만 그 넓이가 무색할 만큼 좁았다.
세계는 넓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넓지 않았다. 세계의 9할 이상이 바다로 뒤덮여, 어인(魚人)이 아니고서는 살 수 있는 세계가 바로 20층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아 있는 1할의 땅이 버려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1할뿐이라도 땅은 충분히 넓었고, 먹을 게 많은 세계는 발전해 나갔다.
해상왕국 포르투기아.
그곳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다.
“‘바다의 돌’을 찾는 자, 바다의 신이 될 것이다…….”
포르투기아의 12섬 중 하나, 넵투.
섬 중에서 가장 작은 그 섬에는, 매일같이 전투가 끊이질 않았다.
“매력적인 전설이지. 손에 넣을 수만 있으면 신이 될 수 있다니.”
열 명이 조금 넘는 수의 플레이어들이 두 거구의 남녀를 위협했다. 키가 2미터를 훌쩍 넘는 남녀는 몸을 덜덜 떨며 벽을 향해 뒷걸음질을 쳤다.
“사, 살려 줘. 제발…….”
“우, 우리가 뭐 잘못했어요? 왜 이러는 건데요?”
“프핫! 사, 살려 줘-. 우, 우리가 뭐 잘못했…… 키킥.”
“덩치가 아깝다, 덩치가.”
“거인족들은 다 이러나? 겁쟁이들.”
“슬슬 덩치가 커지니 숨기기 어렵지? 응?”
“이 새끼들, 우리 나이로 따지면 아직 열 살도 안 됐을걸?”
“진짜? 그런데 이렇게 커?”
“아마 최소 4미터까지는 클 거다. 징그러운 새끼들. 우엑.”
“그러게 아스가르드에서 손 내밀 때 잘 좀 하지. 개기긴 왜 개겨 가지고…….”
거인족과 아스가르드는 본래 우호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악마족과 손을 잡는 거인족이 생겨나면서부터 아스가르드는 잡고 있던 거인족의 손을 놓아 버렸다.
그 뒤로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거인족을 향해 온갖 비아냥과 욕설들이 쏟아진다. 두 거인족 플레이어들은 몸을 떨며 점점 더 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말했지? 아까 그 전설.”
“무, 무슨 전설이요?”
“바다의 돌 말이야.”
무리에서 가장 앞장서 있는 붉은색 머리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어디 있어?”
두 거인족 남녀는 플레이어들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확인했다.
붉은색 털을 가진 늑대 문양.
저층과 중층에서 악명을 떨치는 적랑(赤狼) 길드였다.
“다 들었어. 바다의 돌을 거인족이 숨겨 놓았다고.”
“그 헛소문을 진짜 믿는 거냐?”
거인족 남자의 물음에 적랑 길드의 남자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다 믿지는 않지. 그래도 가능성은 제일 높지 않겠어?”
“그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고나 있나?”
“올림포스 아니야? 그만큼 확실한 출처도 없지.”
“올림포스와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지 않을 텐데?”
“알아. 아니까 이러지.”
남자는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어차피 거인족 따위를 죽여 봤자 올림포스는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
20층은 올림포스의 관할에 있는 세계였다.
관리국은 올림포스의 랭커와 플레이어들이 반절이 넘었고, 만약 거인족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터지더라도 덮어 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애초에 거인족의 씨를 말리고 싶어 하는 올림포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죽기 싫으면 말 해. 바다의 돌, 어디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거 없다니까 그래요?”
“올림포스에서 우리들을 잡기 위해 퍼뜨린 헛소문이라고!”
두 거인족의 발악에도 변하는 건 없었다.
원하지 않던 대답이었는지 남자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귀를 후볐다.
“아, 그래?”
고개를 돌린 남자가 다른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길드원들이었다.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뭐, 나중에도 똑같은 말을 하는지 보자고.”
스칵-.
차앙, 창-.
무기를 꺼내 들고, 스킬을 준비하는 플레이어들.
두 거인족 남녀는 그런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여 이를 갈았다.
어차피 이제부터 무슨 말을 하든, 저들은 듣지 않을 게 뻔했다.
“죽이지는 말고, 팔다리 하나씩만 잘라. 그러다 보면 아는 걸 말할…….”
“요즘같이 평화로운 세상에 웬 악의 무리들이야?”
흐름을 끊는 목소리에 적랑 길드의 간부, 호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자 골목길 안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악의 무리들?”
“저 새끼 뭐야?”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적랑 길드는 20층부터 50층 사이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더구나 길드장은 꽤 높은 랭킹을 지닌 랭커로, 저층 구간에서는 적랑 길드하면 꽤 알아줬다.
“야, 야! 괜히 정의의 사도 놀이하지 말고 저리 꺼져! 피 보기 싫으면!”
“그냥 보내려고?”
“괜히 거인족도 아닌 놈 죽이면 시끄러워져. 아스가르드에서 요즘 눈에 불 켜고 있더만.”
“그 새끼들은 하여간 착한 척은.”
“그러니까 말이야.”
상대가 한 명뿐임을 알고 신경 끄려는 찰나,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놀이가 아니라, 진짜다.”
스윽-.
그렇게, 그들 사이로 유원이 걸어왔다.
“그리고 이쪽에는 나도 볼일이 있는데?”
“뭐야?”
“이 새끼도 바다의 돌에 관심이 있는 건가?”
“야, 다들 조심해.”
유유히 자신들 사이를 걸어 들어온 유원을 보며, 적랑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혼자서 이렇게 자신들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느 길드 놈이냐?”
“소속을 밝혀. 그리고 어디 식군지 몰라도 이러는 건 아니지.”
“이쪽에도 룰이라는 게…….”
“잠깐.”
호랑은 다른 길드원들을 말리며, 두 명의 거인족들을 향해 다가가는 유원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
분명 언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
“야, 잠깐만 저거…….”
“혹시 너도 그 녀석 생각하냐?”
길드원들 몇 명이 목소리를 낮춰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호랑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김유원.”
호랑은 유원을 노려보았다.
목소리는 낮게 깔리고, 눈빛은 매섭게 번뜩였다.
“맞나?”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대전 이후, 유원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호랑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럼 이제 대화로 해결되려나?”
“20층에선 꽤 알아주는 실력이겠지만 겨우 그 정도로? 네놈이 아무리 대단해도, 우리 또한 20층 정도는 진작 졸업했다고.”
적랑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20층 위쪽 층계의 플레이어들.
게다가 간부인 호랑은 20층보다 훨씬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였다. 아무리 유원이 무림대전의 우승자라 해도 20층의 플레이어일 뿐이다.
“천마신교를 믿는 거냐?”
“아니.”
유원은 두 거인족과 적랑 길드의 사이에 서서 몸을 돌렸다.
“아무것도.”
유원의 눈을 마주친 호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상대는 고작해야 한 명.
게다가 이제 막 2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런 지표를 무시할 만큼, 요즘 ‘김유원’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분명 믿는 구석이 있을 거다.’
유원 정도의 실력이라면 언제든 거대 길드와 손을 잡을 수 있다.
‘무림대전에서 보여 준 실력 정도로 우리가 깨질 리는 없다. 하지만 근처에 다른 동료가 있다면? 저 녀석을 천마신교의 사람이 호위하고 있다면?’
유원이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당장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당장 이 정도 인원으로 부딪치는 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거인족을 놓치는 건 아쉽긴 하지만…….’
겨우 열두 명 가지고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스윽-.
호랑은 검 자루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돌아간다.”
“형님!”
“상대는 한 명입니다!”
호랑은 고개를 저었다.
“돌아간다. 번복은 없어.”
호랑은 한 번 결정된 걸 번복하지 않았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호랑의 명령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운이 좋구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천마신교만 아니었다면 네놈은 지금쯤 여기서 찢어 발겨졌을 텐데 말이다.”
유원은 자신을 노려보며 살기를 드러낸 호랑을 바라보았다.
노랗게 변한 눈동자.
꽤 사나운 눈빛이었다.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 같았다.
‘보통내기는 아니군.’
호랑의 몸에 흐르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이상했다.
‘저런 녀석이 왜 알려지지 않았지?’
웬만한 랭커들은 거의 알고 있는 유원이었다.
더구나 호랑은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길드에서 꽤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고, 랭커가 될 만한 실력도 가지고 있었다.
“저…….”
유원은 뒤에서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한 것 같은데, 거인족의 목소리는 역시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구해 줘서 고맙…….”
“안 구해 줬으면.”
유원은 거인족 여성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그냥 당할 생각이었나?”
“네?”
“거인족 두 명이면 저런 녀석들에게 겁먹을 필요도 없을 텐데?”
거인족은 강하다.
그들은 태생부터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태어난다. 악마족, 용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게 바로 거인족이었다.
“왜 싸우지 않는 거지?”
유원의 물음에 거인족 여성은 대답을 하지 못해 우물거렸다.
그러자.
“거인족을 잘 아나 보지?”
옆에 있던 거인족 남자가 물었다.
그는 방금 전과는 달리 유원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원이 거인족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아는 게 많아 보여서인 듯했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어느 쪽 녀석이냐? 올림포스? 아니면 아스가르드?”
“오빠, 아무리 그래도 우릴 도와준 사람인데.”
“그래 봤자 인간이야. 아무 대가 없이 우릴 도와줬을 것 같아?”
“그래도 그렇…….”
“맞아.”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자신보다 머리가 세 개쯤은 더 큰 거인족 남자의 눈을 바로 보았다.
“아무 이유 없이 도와준 건 아니지.”
“역시 너도 바다의 돌을 노리나?”
거인족 남자의 물음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다의 돌.
그것은 20층에 방문한 모든 플레이어들의 꿈같은 아이템이었다.
손에 넣는 자를 신으로 만들어 준다는 아이템으로, 실존하는지 그 여부를 알 수 없음에도 수많은 플레이어와 랭커들이 그것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건 유원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하나.
‘바다의 돌은 실존한다.’
유원은 보물찾기라도 하듯 찾는 그들과는 달리,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얻을 방법까지도.
“젠장. 왜 믿질 않는 거야, 왜! 우린 모른다고!”
분에 겨운 거인족의 외침이 골목을 뒤흔들었다. 거구의 덩치와 함께 그의 몸을 뒤덮은 근육들이 무섭게 꿈틀거렸다.
“똑똑히 들어. 우린 정말 몰라. 바다의 돌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면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나도 안다.”
“뭐?”
“너흰 모르겠지. 가지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고.”
거인족 남자는 미간을 좁히고는 물었다.
“그럼 우리에겐 무슨 볼일이지?”
“너희가 알고 있는 다른 거인족에게 볼일이 있다.”
“다른 거인족?”
“우르파.”
언급된 이름에 두 거인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원의 눈앞에 있는 거인족들은 이제 몇십 살밖에 되지 않은, 인간으로 치면 초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
이런 꼬맹이들에게 볼일은 없었다.
“너희 어르신을 만나게 해 줬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