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90
* * *
거인족 남매의 이름은 부아르와 뉘아르였다.
오빠인 부아르는 동생인 뉘아르보다 다소 사나운 성격이었다. 경계심도 훨씬 강했고, 주먹만 안 쥘 뿐이지 항상 날이 서 있었다.
뉘아르는 비교적 온순했지만 그렇다고 경계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원의 요청에 대한 답은 ‘거절’이었다.
“언제까지 따라올 건데?”
저벅, 저벅-.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둘의 뒤로, 유원이 따라붙었다.
벌써 몇 시간째였다.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무리로 돌아가겠지.”
“그 전에 널 떼 놓을 거다.”
“안 싸운다며?”
유원의 말에 부아르는 이를 갈았다.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아니, 못 싸우는 건가.”
“싸울 수 있다.”
“오빠.”
옆에 있던 뉘아르가 부아르를 말렸다.
성질을 못 이기고 정말 부아르가 주먹이라도 뻗을까 걱정된 것이다.
잠시 유원을 노려보며 씩씩대던 부아르는 고개를 휙 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웅크리고 있군.’
거인족은 타고난 힘과는 달리, 많은 적을 두고 있었다.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이 탑을 대표하는 두 거대 길드를 적으로 삼은 거인족은 늘 행동거지를 조심했다.
만약 그들이 자칫 말썽이라도 일으키면, ‘거인족을 역시 위험하다!’라며 언제든 올림포스가 그들을 소탕할 명분을 주게 되는 것이다.
‘어리지만 그래도 속은 깊네.’
덩치에 비해 어린 두 남매였다.
감정 조절에 미숙한 나이. 하지만 부아르는 이빨을 으르렁거릴 뿐이고, 뉘아르는 유원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뭘 어떻게 하면 부탁을 들어줄 거냐?”
“어르신은 아무나 안 만나신다. 돌아가라.”
“내가 아무나는 아닐 텐데.”
“인간은 다 똑같다. 난 그렇게 배웠다.”
뿌리 깊은 인간에 대한 불신.
그것은 모든 거인족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인간에 의해 고통 받았다.
“그러니까 다치기 전에 얼른 꺼져. 네 말대로 마음만 먹으면 너 같은 놈, 떼거리로 덤벼도 다 작살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부아르는 인간을 경계하고 경멸하는 거인족의 한 명.
결국 말로 설득해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는 조금 더, 강하게 나가는 수밖에.
“너만 이기면 되는 거냐?”
“네가? 나를? 비실비실하게 생겨서는 그럴 힘이나 있나?”
“궁금하면 시험해 봐라.”
스으으-.
유원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둘의 시선이 얽히다, 곧 부아르가 손을 뻗었다.
뉘아르는 두 사람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둘은 지금,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턱-
꽈아악-.
유원과 부아르가 손을 맞잡았다.
손의 크기는 몇 배나 났지만, 막상 유원과 손을 맞잡은 부아르는 눈을 번뜩였다.
‘이것 봐라?’
손아귀 힘이 제법이다.
거인족인 자신의 손을 잡고도 힘에서 밀리지 않다니.
이제 막 손을 잡은 것뿐이지만, 자신만만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름은 꽤 들어 보긴 했지만…… 스탯이 대체 몇이나 되는 거야, 이거?’
부아르 역시 플레이어였고, 유원의 이름은 꽤 들어 봤던 바.
괜한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막 20층에 올라온 플레이어에게 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럼 시작…….”
“오빠, 잠깐만!”
뉘아르가 두 사람 사이로 급히 끼어들었다.
방해를 받았다고 생각한 부아르는 눈살을 찌푸리며 뉘아르를 돌아보았다.
“싸우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그냥 팔씨름 좀 하는 거야.”
“나도 봐서 알아. 근데 좀 급해.”
“뭔데?”
“우르파 어르신 연락이야.”
뉘아르의 말에 부아르는 맞잡고 있던 유원의 손을 놓았다.
찾고 있던 이름에 유원도 관심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연락드렸어?”
“응. 그래도 소식은 전해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뭐라셔?”
“그게…….”
뉘아르는 고개를 돌려 유원을 향해 말했다.
“어르신께서도 당신을 찾으세요.”
* * *
유원은 부아르와 뉘아르의 뒤를 따라갔다.
가는 내내, 부아르는 무언가 불만스러운 반응이었다.
“어르신께서는 대체 왜 저런 녀석을?”
“그래도 꽤 유명한 사람이잖아.”
“그래 봤자 인간이야. 랭커도 아니고.”
부아르는 유원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어르신을 알고 있는 건 이상하잖아?”
우르파는 거인족에서도 손꼽히는 어른이었다. 지금은 꽤 나이가 들고 병 들었지만, 그는 기간토마키아보다 훨씬 이전부터 살아온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직접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더욱이 그가 어디에 터를 잡고 있는지 알려진 것도 없었다.
“어르신께서 생각이 있겠지.”
“끙…….”
그래도 일단 유원을 부른 건 우르파 본인이었다.
부아르와 뉘아르는 유원을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10층의 세계에 유일하게 있는 숲.
이른바 ‘거인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휘이익-!
부아르는 숲에 도착하자 손가락을 입에 넣고 세게 휘파람을 불렀다.
그러자 잠시 후, 땅이 쿵쿵거리며 한 무리의 짐승들이 나타났다.
컹, 컹컹-!
컹-!
다섯 마리의 늑대들.
평범한 늑대는 아니었다. 녀석들을 다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한참이나 들어야 했다.
‘빅 울프.’
높이만 해도 2미터를 훌쩍 넘고, 길이는 1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늑대들.
이 녀석들의 존재가 바로, 이 숲이 거인의 숲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거인의 숲에 서식하는 짐승들은 원래의 짐승들보다 몇 배, 심하게는 수십 배는 더 거대했다.
“부탁한다.”
크르르, 컹-!
부아르의 손짓에 늑대들은 온순하게 몸을 숙였다.
부아르와 뉘아르는 늑대의 등에 올라탔다. 반면, 유원을 보는 늑대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그르르르-.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
부아르는 이빨을 드러낸 늑대들을 보며 말했다.
“먹을 거 아니야. 다들 멈…….”
“엎드려라.”
늑대들을 바라보던 유원이 손짓했다.
그러자 잠시 후, 눈을 마주치고 있던 늑대들이 몸을 숙였다.
끼잉, 낑-.
빅 울프들이 꼬리를 내렸다. 날카롭게 드러냈던 이빨과 발톱까지 안으로 숨겼다.
싸울 의사는커녕, 유원을 두려워하는 모양새였다.
‘뭐야?’
부아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붉게 변한 유원의 눈. 방금 전과는 달라진 색깔에서 부아르는 유원이 어떤 특별한 스킬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직접 싸워서 압도한 것도 아니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빅 울프들이 전의를 상실하다니.
‘환각계 스킬인가? 아니면 드루이드(Druid)의 테이밍 스킬?’
그것이 어떤 스킬이든 빅 울프들이 유원에게 복종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20층에서 거인의 숲은 금지로 통했다.
20층의 플레이어들이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사냥터. 20층뿐만 아니라 그것은 훨씬 더 상위 층계의 플레이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인족인 부아르 역시 빅 울프를 조련하는데 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뭘 어떻게 한 거냐?”
부아르의 물음에 유원은 한 손으로 빅 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녀석들은 똑똑하군.”
그러고선 고개를 돌려, 부아르를 바라본다.
“누구랑은 다르게.”
“뭐야?”
“어서 출발하자고. 탈 것도 구했으니.”
유원은 가볍게 뛰어 빅 울프의 등 위에 올라탔다. 잠시 울컥했던 부아르는 늑대의 등을 쓰다듬었다.
“가자.”
컹, 컹-!
빅 울프가 뜀박질을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유원이 탄 빅 울프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때마침 유원과 부아르의 눈이 마주쳤다. 빠르게 달리는 빅 울프의 등 위에서 두 사람은 서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부아르의 속에서 무언가 화끈 타올랐다.
‘싸워 보고 싶다.’
거인족으로 태어나,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시비를 걸린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기나긴 시간 동안 그들을 싸움 상대로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작은 강아지가 귀엽게 짖는 것과 다름없었다. 짖어 주면 들어 주고, 물려주기도 하고.
그렇게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참아 넘겼다.
그런데 유독, 유원에게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호승심.
“오빠.”
동생인 뉘아르 역시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차렸을까?
“안 돼.”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부아르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나도 알아.”
이동 시간을 들끓는 속을 진정시키는 데에 모두 사용했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는, 거대한 나무가 하나 있었다.
“여기다.”
쿵-.
부아르는 빅 울프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뉘아르 역시 뒤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 위 구름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담.’
“어때? 대단하지?”
부아르는 나무를 보며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쓰러지지 않고, 불타지 않는 나무다. 어르신들은 세계수의 한 가지라고도 하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유원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아담은 랭커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으니까.
최초의 거인이 탄생했다는 나무로서, 아담은 거인족의 보물과도 같았다.
‘절대 불타지 않는다라…….’
유원은 똑똑히 기억했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에서 불타 없어진 나무, 아담.
아니, 거인의 숲을.
“근데 뭐해? 안 내려오고.”
부아르의 재촉.
잠시 진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유원은 부아르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그렇게 부아르의 뒤를 따라가자, 뿌리로 이어진 나무의 밑 부분으로 거대한 통로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턴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쿵-.
넓은 통로에서 들려온 발소리.
“잘못하다간 밟혀 죽을지도 모르니까.”
부아르의 말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간토마키아 이후 인간에 대한 거인족의 인식은 바닥을 찍었다.
그들은 거인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가급적 싸움을 피하고 말썽을 부리면 안 된다고 배우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모든 거인족들이 부아르나 뉘아르처럼 얌전한 건 아니었다.
“따라와.”
쿵, 쿵-.
나무 아래는 빛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박힌 빛나는 보석들은 전등처럼 내부를 환하게 밝혔다.
이곳이 바로 거인족들의 집이었다.
“뭐야, 저거?”
“인간?”
“부아르 뉘아르랑 같이 있는데?”
“손님이야?”
“설마, 인간이?”
지나치는 거인족들이 유원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들 대부분 랭커급에 달하는 힘을 지닌 존재들. 그들이 전부 유원을 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무시해요.”
뉘아르는 유원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어르신의 손님이니까. 겁먹을 거 없어요.”
확실히 이런 상황이면 겁을 먹는 게 당연할 것이다.
거인족이 거주하는 소굴 한가운데 들어왔으니. 게다가 인간을 환영하는 거인이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 부아르.”
부아르, 뉘아르 남매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거인이 다가왔다.
어깨가 넓고, 눈매가 꽤 날카로운 거인이었다.
“뭐야, 언제 돌아왔냐?”
“방금 전에.”
부아르는 대답과 함께 유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마 자신의 덩치로 유원의 모습을 숨기려는 모양이었다.
다가온 거인은 웃는 낯으로 물었다.
“승탑은 잘하고 있고? 많이 올랐다던데.”
“이제 49층까지 올랐다.”
“꽤 빠른데? 그럼 여긴 쉬러 온 거야?”
“그래. 어르신들에게 인사도 좀 드릴 겸.”
“그래?”
지금까지의 대화는 아무래도 형식적인 인사였던 듯.
거인은 고개를 빼 들어, 부아르의 뒤에 있는 유원을 노려보았다.
“근데…… 저 개미는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