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92
* * *
20층의 관리국은 조용했다.
20층은 특별한 사건사고도 없고, 평화로운 세계였다. 관리국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출근해서 민원을 처리하고, 식사를 하고, 남는 시간 동안 체스나 장기 따위로 시간을 버리는 게 전부였다.
“랭커가 되면 재밌는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끼릭-.
관리국에 새로 부임한 랭커, 하울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중얼거렸다.
“박봉에 따분한 일은 여전하구먼.”
“박봉은 아니지. 그리고 정규직인 게 어디냐.”
딱-
맞은편의 동료가 체스말을 움직였다.
그나마 이거라도 없으면 그나마도 안 가는 시간이 더 안 갈 것 같았다. 의자를 뒤로 젖혔던 하울은 체스판 위를 훑어보았다.
“흠…… 어디 보자…….”
그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잠시.
“난…….”
쾅쾅-!
막 체스판을 움직이려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뭐야?”
“실례하겠습니다.”
끼릭-.
방문을 두드린 손님은 다짜고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색 머리에 성질 더러워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
하울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호랑?”
20층의 관리국에 부임하고 난 뒤, 유난히 많이 보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둘 중 하나였다.
심각한 범죄자거나, 아니면 뒷배가 든든한 스폰서가 있어서 관리국을 제 집처럼 드나들거나.
그리고 눈앞에 있는 호랑은 둘 다의 경우였다.
“뭐야? 여긴 또 왜? 너 무슨 사고 쳤냐?”
“아닙니다.”
“근데 여긴 왜 와? 요즘 분위기 뒤숭숭해서 다들 조심하고 있는데.”
하울의 물음에 호랑은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소파를 향해 다가와 앉았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대뜸 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호랑이 대답했다.
“두 마리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토끼? 그게 누군데?”
“거인족이랑 김유원입니다.”
“뭐?”
하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지 않아도 거인족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관리국이었는데, 거기에 김유원까지 끼어 있었다.
“거인족은 두 마리니 토끼가 세 마리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위험한 녀석들이 만났습니다.”
이어, 호랑은 소름 끼치는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올림포스가 말이지요.”
아직까지 호랑은 올림포스 길드 소속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적랑 길드라는, 중간 층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길드의 간부.
게다가 올림포스 길드 내의 꽤 큰 거물이 그의 뒤를 후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래서 말인데, 지원을 조금 받아야겠습니다.”
관리국에 할 만한 요청은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을 잡겠다고 지원을 부탁하다니.
하지만 정작 하울과 다른 관리국의 랭커의 반응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고작 20층에 올라온 녀석인데?”
“아니지. 김유원을 층수로 판단하면 안 돼. 이번에 무림대전에서 싸우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더만.”
“그런가?”
“마지막에 방심한 것 같긴 해도 하르간이 주먹 한 방에 쓰러졌으니까.”
“하긴, 그건 좀 대단했지.”
“그리고 거인족 둘이 붙었으면 어렵긴 하지. 천마신교가 뒤에 있을지도 모르고…….”
짧게 이어진 전투력 토론.
그들은 김유원과 천마신교라는 변수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흠…….”
“확실히 잡기만 하면…….”
“1계급 승진 정도는 하겠지?”
입가에 맺힌 웃음.
그렇게 관리국의 작은 방 안에서, 은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아담은 하나의 작은 도시나 다름없었다.
하늘 위까지 뻗어 있는 기둥과 가지는 거인들의 거주지였다.
절대 부러지고 부서지지 않는 나무.
올림포스의 삼신급 하이랭커나 제천대성의 여의봉이면 모를까, 현재 유원의 능력으로 아담에 손상을 끼칠 순 없었다.
그 말은 즉.
‘열심히 날뛰어도 된다는 거지.’
저벅-.
유원은 아담의 가지 위에 올라갔다.
바닥은 단단하고, 공간은 넓었다.
이만하면 날뛰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다.
화르르륵-.
화륵, 확-.
유원의 머리 위로 주먹만 한 크기의 성화가 수백 개씩 떠올랐다.
화아악-!
성화가 무섭게 타올랐다.
이미 성화는 유원의 의지를 벗어난 상태.
이제 곧, 저것들은 아래를 향해 무작위로 떨어져 내릴 것이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은 유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화안’이 길을 읽습니다.]화안의 여러 능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면 역시 ‘길’을 읽는 능력일 것이다.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회피’였다.
저 불꽃이 어디로 떨어질지.
그 길을 읽어 내고, 원래보다 몇 박자 더 빠르게 어디로 움직일지 방향을 정해 놓을 수 있었다.
‘어지럽군.’
화안을 사용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원은 화안을 사용할 때 조금씩이나마 과부하를 느꼈다.
특히 지금처럼, 피하기 어려운 길을 읽어 낼 때면 더더욱 그랬다.
삐이이이이-.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이 정도만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불꽃을 모두 읽어 낼 수는 없었다.
[‘감각지대’가 활성화됩니다.] [반경 50m 범위 내 모든 사물과 생명체의 정보를 확보합니다.] [‘감각’이 50% 상승합니다.]감각지대.
유원이 새로 얻은 스킬 중, 가장 익숙한 스킬이었다.
감각지대는 화안과 비슷하지만 성능적인 면에서는 훨씬 뛰어났다.
더 뛰어난 스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더 익숙한 스킬이기 때문이었다.
유원은 눈을 감았다.
화르륵-.
의지를 벗어난 불길이 매섭게 타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것들이 어떤 방향으로 떨어질지, 얼마나 매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지, 모든 게 피부로 가까이 다가왔다.
이것이 바로 감각지대의 힘이었다.
이 속에서 유원의 감각은 몇 배나 더 활성화된다.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화안을 통해 보는 시야에 감각지대의 힘이 덧씌워졌다.
화악-!
붉게 변한 유원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 유원의 감상은 딱 하나였다.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이 이렇게 선명할 수 있구나.
하늘에 떠 있는 불꽃이 어디로 움직일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든 게 선명하게 보였다.
유원은 발을 움직였다.
슈악-.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한 불꽃들.
한 차례 비처럼 성화가 쏟아져 내렸다. 시간 간격도 두지 않고, 불과 3, 4초 만에 한꺼번에 쏟아졌다.
펑, 퍼퍼퍼퍼펑-!
화르르륵-!
떨어진 불길이 위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아담의 가지 한쪽이 보랏빛의 불길로 이글거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작은 공간이 벌어졌다.
타닥, 타다닥-.
지름이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공간.
유일하게 불꽃의 영향이 거의 닿지 않는 그 공간의 가운데에 유원이 서 있었다.
“후우-.”
눈에 보이는 건 전부 피해 냈다.
아니, 눈을 감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감각지대를 얻고 난 후, 꾸준히 스킬을 연습했는데 역시 숙련도가 오르는 속도가 달랐다.
‘예상했던 대로, 두 스킬의 조합이 좋다.’
두 스킬과 스킬의 조합은 두 배가 아닌, 제곱의 효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효과가 좋은 만큼 그에 따른 과부하도 커졌다는 것이다.
‘인지 능력을 뇌가 따라가지 못한다.’
시각을 비롯한 오감의 확장은 그만큼 큰 뇌의 부화를 가져왔다. 감각지대는 많이 사용해 봤지만 화안은 그렇지 않은 스킬이었다.
지금까지는 감각지대를 화안으로 대체했다지만, 이제는 두 가지 스킬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즉, 그만큼 뇌의 부화도 커지게 된 것.
‘연습이 필요하겠어.’
당분간은 아무래도 이걸로 바쁠 것 같았다.
“우와- 뭐야? 여기 있었네?”
과장된 억양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한 명 보였다.
“어? 인간이잖아?”
“여긴 왜 있지?”
“못 들었냐? 우르파 어르신께서 여기 머물게 하셨다잖아.”
“어르신이?”
“아무 그래도 인간을…….”
콴트를 비롯한 다섯 명의 거인들.
덩치는 다들 비슷했다. 부아르와 뉘아르와 비슷한 정도로, 아무래도 어린 거인족들 같았다.
“김유원이 그렇게 대단한가?”
“몰라. 나도 소문만 들었어.”
“그래봤자 아직 랭커는커녕, 이제 20층에 올라온 녀석인데.”
“그래도 이번 무림대전 보니까 대단하긴 하더라.”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던 거인들은 콴트의 뒤를 따라 유원에게 다가왔다.
쿵, 쿵-.
아무리 어리다 해도 거인족이었다.
게다가 숫자도 다섯. 그들이 모두 한꺼번에 가까이 다가오니 그림이 꽤 살벌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는 콴트가 있었다.
“또 보네.”
웃기는 했지만 별로 보기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지금은 부아르, 그 새끼도 없는데, 어째?”
살벌한 표정과 덩치.
대놓고 콴트는 유원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어제, 우르파를 만났기 때문일까?
콴트 정도의 덩치는 이제 귀엽게 보였다.
“야, 그래도 어르신께서…….”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부르신 걸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콴트의 목소리가 으르렁거렸다.
“인간은 다 적이야. 전부.”
유원은 픽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선생님 말을 안 듣는 어린애 같았다. 아마 우르파 정도면 교장선생님 정도는 될 것이다.
“웃어?”
“뭐야, 이건?”
“좀 자존심 상하는데?”
덩치만 컸지 어린애들은 어린애들이다 싶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상대가 조금 웃는 것만으로 도발되어 바로 싸우려 드는 걸 보면.
“아직 네가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콴트는 위협적으로 손을 뻗었다.
머리보다 훨씬 큰 손바닥에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유원은 그런 콴트의 손을 향해 마찬가지로 손을 뻗었다.
콱-.
두 사람의 손이 교차했다.
꽈악-.
‘이 녀석, 설마…….’
정면으로 손을 내밀어 맞잡는 유원을 보며 콴트는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인간 주제에 거인족에게 힘으로 도전하겠다 이건가?’
유원의 실력이야 익히 들었다.
그가 저층 구간 플레이어들 중 최강을 증명하는 무림대전의 우승자라는 것도, 역대 시험의 랭킹을 모두 갈아치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제쳐 두고서라도 힘에 있어서는 거인족이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날 때부터 정해진, 유전자의 힘이었다.
‘부러뜨려 주마.’
콴트는 그대로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꾸우욱-.
“큭…….”
오히려 통증이 느껴진 건, 콴트였다.
우득, 우드득-.
“끄읍!”
손가락뼈가 비틀리고, 뼈가 한 마디씩 부러지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
고통을 버티며 손아귀에 힘을 더 줘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
쿵-.
손아귀 뼈가 비틀리고 부러진 콴트가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든 팔을 빼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소, 손! 내 손!”
콴트는 비명을 지르며 다른 한 손으로 유원의 손을 치워내려 했다. 위풍당당한 등장과는 달리 볼품없고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뭐, 뭐야?”
“지금 콴트가 힘으로 진 거야?”
“인간한테?”
거인족은 힘에 있어서는 탑의 어떤 종족보다도 뛰어나다.
물론 스탯에 따라, 그리고 레벨에 따라 거인보다 강한 인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랭커들.
게다가 당장 콴트만 하더라도 유원보다 더 높은 층계를 오른 플레이어였다.
“다섯 명이 다는 아니지?”
아담은 거인족들의 주 거주지 중 하나.
아마 이 안에는 수천, 수만 명이 넘는 거인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친구들 다 불러 와라.”
마침 잘됐다는 생각에, 유원은 씩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원한다면 더 놀아 줄 테니.”
어차피 시험이 시작될 때까지 시간은 충분히 많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