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시죠.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까요.
“……그렇게 하죠. 어디로 가면 됩니까?”
-신성호텔로 오세요.
만나서 얘기하자는 정우의 의견에 한동준 사장은 곧장 신성호텔로 향했다.
물론 신성호텔로 향하며 한동준 사장이 두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비서에게 대한그룹 지분 현황에 대해 파악하라고 지시한 그는 곧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룹지분 일부가 이정우 대표 손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뭐? 얼마나 넘어갔는데?”
“그게… 이번 대한전자 지분 인수를 위해 매각했던 그룹지분 대부분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
“……이런 하이에나 같은 새끼가……!”
당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렇게 공격이 들어올 줄이야.
“아니, 네뷸라 케미컬에서 대한그룹을 공격할 이유가 있나?”
“그건 저도 잘…….”
“하…… 알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상황은 터진 후다.
놈의 목적이 뭔지는 얘기를 나눠 보면 알겠지.
전투를 앞두고 한동준 사장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먹었다.
* * *
한남동 대한그룹 한씨일가 저택.
그곳에 잔뜩 취한 한성준 사장이, 아니 이젠 그저 한성준 이사일 뿐인 그가 나타났다.
“아부지! 아부지이이이!!! 못난 큰아들 왔씁니다… 쓰읍… 하… 아부지! 얘기 좀 해요… 제발… 제발요…….”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채 거나하게 취한 그의 모습에 경호원들이 제지했다.
“취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시고 내일 다시 오십시오.”
“내가 아버지 만나겠다는데, 왜 막는 거야? 이거 안 놔?”
“죄송합니다. 몸에 손 좀 대겠습니다. 밖으로 모셔.”
“놔! 놓으라고!”
하지만 건장한 경호원들의 힘을 못 이기고, 결국 양팔에 팔짱을 끼인 채 질질 끌려 나가던 그때였다.
“……들여보내.”
집무실에 있던 한광표 회장이 나와 제지했다.
그제야 구속에서 풀려난 한성준 사장이 경호원들을 밀치며 아버지를 따라 집무실로 향했다.
방 안의 한광표 회장은 여유롭게 보드카를 따르고 있었다.
“한 잔 주랴?”
“……됐습니다. 전 이미 있어요.”
“……주정뱅이 다 됐구나. 쯧쯧…… 못난 놈.”
“…….”
“그래, 무슨 하소연을 하려고 왔냐. 얘기나 해 봐라.”
한광표 회장이 집무실 의자에 앉아 묻자, 가만히 서 있던 한성준이 입을 열었다.
“……이미 소식 들으셨겠지만, 제가 졌어요. 동생한테…… 대한전자 뺏겼습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여기까지 왔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제가 어떤 심정으로 대한전자에 매진했는지 제 인생을 바쳤는지 아시잖아요!”
한성준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시선이 한광표 회장을 향했다.
하지만 한 회장의 두 눈은 동요라곤 없었다.
“난 뺏은 적 없어. 하소연하려면 네 동생한테 하지 왜 날 찾아와?”
“정말 아버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정말이세요?”
“……난 처음부터 후계자로 너를 점찍어 뒀었다. 장자계승. 큰아들이 그룹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건 변함이 없었어. 그런데 제 밥그릇 못 챙긴 건 네 잘못이야. 능력이 없어서 동생한테 뺏겨놓고 왜 이제 와서 난리야.”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제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심정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요!”
울분을 터트리는 큰아들을 보며 한 회장이 혀를 찼다.
“쯧, 아직도 그 처자 때문에 그러냐. 그깟 여자애 하나 때문에? 못난 놈 같으니라고. 그래서 니가 안 되는 거야!”
“그깟 여자애라뇨! 지현영…… 현영이는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습니다! 딱 한 번 아버지한테 애원했잖아요! 제발, 현영이만 제게 달라고요. 그러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요. 그런데 사람을 점수를 매겨 가면서 집안이 안 좋다고 저 강제로 유학 보내시고, 아들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고 이제 와서 뭐요? 그깟 여자애 하나 때문에? 그게 아버지가 하실 말씀이세요!”
“결과적으로 너도 결혼 잘했잖냐. 아니야?”
“……제 사랑도 잃어버리고 선택한 대한그룹인데, 동생들한테 안 뺏기려면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지금 와이프도 JK그룹이라고 아버지가 억지로 엮으신 거잖아요!”
“그래서 시위한답시고 며늘아기랑 별거하고 애도 안 낳고?”
“…….”
“참, 어리다 어려. 니가 하는 행동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하는 짓이 세 살배기랑 똑같아 어떻게.”
“그렇게 못 미더우시면 저를 왜 선택했어요, 대체 왜!”
“그땐 몰랐으니까. 니가 이렇게 형편없는 놈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동준이한테 몰아 줬을 거야. 그리고 내가 원망스러워? 내가 그렇게 했다고? 변명일 뿐이다. 유학 가서 언제든 귀국도 가능했고, 니가 진짜 그 아이를 사랑했다면 그 애가 혼자 힘들 때 얼마든 도와줄 방법이 있었어. 넌 결국 내가 주는 돈 받아먹으면서 사는 이 아늑한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
한광표 회장의 정곡에 한성준은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게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아세요?”
“뭐가.”
“현영이가 혼자 힘들었을 거라는 걸요.”
“…….”
“설마 계속 현영이 감시했어요?”
“…….”
“맞나 보네요. 그럼 현영이 임신했던 것도 알았겠네요? 제 아이라는 것도 알았겠네요?”
“…….”
대답하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한성준은 말문이 막힌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어떻게 사람이…….”
“넌 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다.”
“예.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어떻게 제게 딸이 생겼다는 것도 숨기시고, 그렇게 하실 수 있어요! 어떻게…… 어떻게!”
“넌 너무 약해. 여리고 물러. 그래서 바꿔 주고 싶었다. 너에게 냉철하고 차가운 머리만 주어진다면 최고의 경영자가 되리라 생각했거든. 한때는, 아니 지금도 너의 포용력은 성군의 자질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만…… 그게 전부일 뿐이다. 넌 경영자에 어울리지 않아. 그리고 그 여린 구석 때문에 네 동생한테 진 거다.”
“……그걸 말이라고……!”
“나 얼마 안 남았다.”
“……예?”
갑작스러운 한광표 회장의 고백에 분노로 씩씩거리던 한성준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안 남았다니 그게 무슨……?”
“……폐암이란다.”
“……폐암이요? 농담이시죠?”
“농담이면 말도 안 꺼냈겠지.”
“…….”
“아마 담배 때문이겠지. 외부의 적만 경계하다가 내부의 적에 당하는구나. 하하하…….”
“…….”
폐암이라니.
아버지의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시한부 선고에 한성준이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할 때, 한광표 회장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 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듣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네가 계열분리 시도하는 걸 묵인했던 거야. 그러면 동준이가 반발할 거고, 어떤 식으로든 너희 둘 중에 누가 진정한 대한그룹의 후계자인지 결정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만족하십니까? 결과적으로 저는 대한전자를 뺏겼습니다! 현영이를 잃어버린 대가로 받은 대한전자…… 제 인생의 전부였던 대한전자를 뺏겼다구요!”
“……성준이 네가 날 원망하는 마음 충분히 알아.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는 안 하겠다. 원망할 거라면 충분히 해. 하지만…… 이제 네 동생 동준이가 대한그룹의 후계자다.”
한광표 회장의 무심한 시선이 한성준을 향했다.
“동준이를 옆에서 보좌해 줘라.”
“……정말 끝까지…… 끝까지 제가 원하는 말을 안 해 주시네요.”
“네가 원하는 게 사과냐? 사과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미안하다.”
“그런 영혼 없는 사과를 제가 원하는 것 같아요? 웃기지 마세요! 폐암? 차라리 잘됐습니다. 네, 아버지. 마지막까지 최대한 고통스럽게 가세요. 그리고 최대한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래야 제가 대한그룹을 어떻게 찢어발기는지 똑똑히 보실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손에 쥔 쥐꼬리만 한 지분들로 뭘 할 수 있겠다고…….”
“그야 모르죠. 하지만 아버지,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못해요! 당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전까지는!”
분노 어린 고성과 함께 한성준 사장이 집무실을 박차고 떠났다.
남겨진 한광표 회장은 한동안 망부석처럼 굳어 있다가 글라스 잔에 담긴 보드카를 한 모금 들이켰다.
쿨럭- 쿨럭-
술이 독한 듯, 가래 낀 기침 소리가 한동안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 * *
신성호텔 비즈니스룸.
한동준 사장은 입구에 대기 중인 단단해 보이는 경호원을 지나쳐 비즈니스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이정우 대표의 모습이 보였다.
한동준 사장을 발견한 정우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오!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한 사장님.”
“……그룹지분을 전부 매입하셨더군요. 도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역시 이미 다 알고 오셨네요. 정보도 참 빠르셔라.”
“본론만 얘기하세요.”
차가운 한동준 사장의 반응에 정우가 피식 웃었다.
“급하시네요. 뭐, 한 사장님 입장에선 불쾌할 만하니, 바로 얘기하겠습니다.”
이어진 정우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룹지분의 대가로 대한전자 저한테 넘기십쇼.”
“뭐라구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까?”
“왜 말이 안 됩니까. 제가 이 지분 들고 대한그룹 대주주들 규합하면 경영권 빼앗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지지 않겠다는 듯 으르렁거렸지만, 확실히 정우가 이번에 확보한 지분은 한동준 사장에게 위협이 되기 충분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가 충분히 방어 가능한 수준.
그러나 대주주들의 마음을 돌린다면 상황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그리고 정우는 그 사실을 잘 아는 듯 보였다.
“한성준 사장님이 이번에 대한전자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되셨더군요.”
“…….”
“그쪽도 꽤나 불만이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만약 한성준 사장님과 규합한다면…… 꽤 골치 아프실 텐데요.”
“……그래도 대한전자는 절대 안 됩니다. 다른 요구 조건을 말씀해 보세요.”
드디어 한발 양보하는 듯한 한동준 사장의 말에 정우의 눈이 빛났다.
“저도 대한전자는 너무 과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정우가 은근한 어조로 조건을 제시했다.
“대한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만 넘기는 건 어떻습니까?”
“……스마트폰 사업부요?”
예상치 못한 조건에 한동준 사장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런 그에게 정우가 설명을 이어 갔다.
“예. 한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대한전자에서 실적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스마트폰 사업부 아닙니까? 세계시장은커녕 국내시장에서도 맨날 진성전자에 밀리기 일쑤고, 제대로 성과를 낸 게 없잖아요. 최근에는 판매량이랑 매출 더 빠졌다던데.”
“……그건 그런데, 저야말로 묻고 싶군요. 왜 굳이 비전도 없는 스마트폰 사업부를 넘겨받으려는 거죠?”
“저야 예전부터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게 소원이었으니까요. 아무래도 맨땅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존 기술력을 흡수해서 시작하면 훨씬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흐음…… 정말로 그게 전부입니까?”
“예. 제 패는 전부 깠습니다. 아, 하나 더 있긴 한데 그건 뭐…….”
말끝을 흐리는 정우를 보며 한동준 사장은 찝찝해졌다.
“안 깐 패는 뭡니까?”
“들으면 후회하실 텐데요.”
“안 듣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듣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 패가 뭔지 까 보시죠.”
“흠, 좋습니다.”
한동준 사장의 요구에 정우가 품에서 어떤 기계장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녹음기로 보였다.
정우가 버튼을 누르자 녹음기에서 어떤 대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 무슨 거래요.”
“저 바보 아닙니다. 에너맥스1000, 솔리드스타 바꿔치기 한 정황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원하는 게 뭡니까.”
“10억 준비해 주십쇼.”
“10억?”
“예. 그것만 약속해 주시면 입 싹 닫겠습니다.”
“……참나. 지금 당신 크게 실수하는 거야.”
“아뇨. 전 제가 뭘 해야 할지 드디어 분명해진 느낌입니다.”
“…….”
“전 틀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10억 준비해 주세요. 만약 준비하지 않는다면…… 에너맥스1000의 실체에 대해 전 세계가 알게 될 겁니다.”」
두 남자의 대화. 그중 한 사람의 목소리는 한동준 사장도 잘 아는 것이었다.
바로 박민수 전 부회장의 목소리였으니까.
즉, 저 에너맥스1000에 대한 대화는 박민수 부회장과 박학기 팀장이 나눈 대화일 터.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서며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한동주 사장은 이내 냉철하게 판단을 마쳤다.
“그래서요? 어차피 저 녹취는 제가 언급된 것도 아니고, 저랑은 상관없는 것 같은데.”
“맞아요. 한 사장님에 대해 언급은 되지 않았죠. 하지만, 이걸 박민수 부회장에게 보여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
“불명예 퇴직하긴 했지만, 겨우 발을 뺐다고 생각한 박민수 부회장일 텐데, 말년에 에너맥스1000 조작 관련으로 감옥 가게 된다면 생각이 좀 바뀌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 한 사장님도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다고 증언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박 부회장은 그런 멍청이가 아닙니다.”
“그럴 수도요.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모르는 법입니다. 하물며 말만 대한화학 대표지, 최근에 실질적으로 대한화학 경영을 한 사장님이 하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데 에너맥스1000 조작에 박민수 부회장이 연관되었다는 증거가 터진다면…… 한 사장님도 여파를 피해 가긴 어려울 겁니다.”
정우의 말이 맞긴 하다. 아마도 에너맥스1000 조작 관련 사태라는 자극적인 타이틀로 평생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될 터.
돈도 중요하지만, 명예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벌가에서 그것도 그 정점에 이른 차기 대한그룹 후계자인 한동준 사장은 얼굴이 굳었다.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꼬리를 밟힐 줄이야.
‘……완벽하게 당했어.’
정우가 파놓은 올가미에 완전히 걸려들었다.
결국, 그는 선택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럼, 스마트폰 사업부만 넘기면 그 녹취 기록은 없애는 겁니까?”
“한 가지 더, 박학기 팀장에 대한 조사도 멈춰 주시면요.”
“아까와 조건이 다릅니다만?”
“조금 전에는 제 패를 모두 보지 않으셨잖습니까. 패를 하나 더 봤으니 그만큼 더 거셔야죠.”
“……크흠.”
능글맞은 미소로 바라보는 정우를 보며 한동준 사장은 열이 머리끝까지 뻗쳤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정우 대표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의 말이 맞으니까. 대한전자를 통째로 뺏기는 것보다는 애물단지인 스마트폰 사업부를 넘기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게다가 사실 애초에 한동준 사장도 대한전자의 실적 개선을 위해 스마트폰 사업부를 축소하거나 철수하는 것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다.
즉, 스마트폰 사업부를 넘기는 건 정해진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일 뿐이며 그 과정에서 그룹지분을 다시 확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좋습니다. 스마트폰 사업부, 넘기죠. 박학기 팀장에 대한 수사도 축소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하하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우는 한동준 사장의 적대감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끝내 한동준 사장은 악수하지 않았다. 대신 죽일 것처럼 그를 노려보다가 비즈니스룸을 훌쩍 떠나버렸다.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멋쩍은 듯 손을 회수한 정우가 중얼거렸다.
“……이번 선택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겁니다.”
애물단지 스마트폰 사업부가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정우는 한동준 사장에게 똑똑히 보여 줄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스마트폰 사업부를 탈바꿈시킬 완벽한 재료가 갖춰져 있다.
바로, ‘그래핀’이라는 유니크 재료가 그것이다.
* * *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분할매각 및 인수하는 계약을 마친 뒤, 모든 그룹지분과 녹취를 한동준 사장에게 넘겼다.
그러자 대한그룹에서 어떻게 손을 쓴 건지 몰라도, 조사 며칠 만에 박학기 팀장은 혐의없음 처분을 받고 무사히 풀려났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박 팀장은 한달음에 정우를 찾아와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정우야. 정말 고마워……!”
“뭘요. 저도 박 팀장님이 전달해 주신 녹취 파일 덕분에 이득 좀 봤으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그래도…….”
“무엇보다 녹취를 하신 건 박 팀장님이잖아요? 정말 잘하셨어요. 박 팀장님은 자신을 스스로 구하신 겁니다.”
그렇다.
얼마 전 정우가 내부고발자 제안을 했을 때 딴 주머니를 찼던 박학기 팀장. 그는 대한화학의 박민수 부회장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으려 했었다.
일개 직원이 회사를 움직이는 수뇌부를 상대로 딜을 걸다니.
단순히 욕심과 객기일 수도 있겠지만, 녹취에서 나온 말처럼 박학기 팀장은 바보가 아니었다.
담판을 위해 박민수 부회장을 찾아가면서 보험 삼아 녹음기를 챙겨 갔던 것.
그리고 그의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나쁜 예감은 항상 빗나가는 법이 없었고, 이후 일은 박 팀장의 생각과 달리 잘 안 풀렸다.
한동준 사장 측이 손을 써서 에너맥스1000 조작 사건의 배후가 박학기 팀장인 것처럼 조작했던 것.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혼자 모든 누명을 쓴 채 감옥을 갈 지경이 되자, 그는 보험으로 챙겨 두었던 녹취 파일을 냉큼 가지고 정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 결정적인 제보 덕분에 정우는 그토록 원하던 스마트폰 사업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대한그룹과 대한전자의 지분 구조에 대해 일전부터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가 한동준 사장의 지분 구조가 변경되었을 때 재빨리 그룹지분을 인터셉트한 것은 정우와 미리 주식거래 API를 만들어 둔 지서현의 공이 컸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정우야.”
“하하, 뭘요. 그나저나 팀장님 이제 앞으로 뭐 하실 건가요?”
“나? 대한화학도 잘렸고, 일자리 구해 봐야지. 하하하.”
아무렇지 않은 듯 껄껄 웃는 박학기 팀장이지만, 정우는 알았다.
한번 낙인이 찍혔으니, 이제 이 동종업계에서 제대로 일 구하기란 어려울 터.
결국, 이대로 가다간 박학기 팀장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모른 체할 수는 없지.’
박학기 팀장이 완전히 좋은 사람이란 건 아니다.
하지만 정우는 알았다. 그가 주도적으로 에너맥스1000 사태를 조작했다기보다는, 희생양으로 점찍힌 채 어쩔 수 없이 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무엇보다 같이 일해 봤기에 잘 알았다. 박학기 팀장이 고집과 꼰대 기질이 있긴 하지만, 그리 나쁜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냥 그는 하루하루 살기 바쁜 소시민일 뿐이고, 그런 그의 녹취 제보로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입을 싹 닦고 모른 척할 순 없었다.
정우가 그에게 제안했다.
“팀장님 우리 회사로 다시 오세요.”
“뭐? 정말로?”
“네. 자리 하나 만들어 줄게요.”
솔깃한 제안이다.
하지만 잠시 고민에 빠진 듯 생각에 잠겼던 박학기 팀장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고맙지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예? 왜요?”
“사실 좀 그렇잖아. 강 책임도 이미 팀장 달고, 서현 씨도 개발팀장 달았다며. 내가 거기 가서 그 밑에서 일할 순 없지. 자존심이 있는데. 그리고 강 책임이나 서현 씨도 나 마주하기 껄끄러울 거고.”
“아, 그냥 직원 자리를 주리라 생각했나 보네요. 근데 틀렸어요.”
“……그럼……?”
“팀장 자리 드릴 건데요?”
“뭐? 팀장 자리라고? 그럼 강 책임이나 서현 씨는 어쩌고?”
박학기 팀장의 우려에 정우가 웃었다.
“하하, 이미 있는 개발팀 말고요, 새로운 개발팀 팀장 자리 맡아 주세요.”
“새로운 개발팀이라면……?”
“앞으로 네뷸라 일렉트로닉스가 출범할 겁니다. 거기서 주로 만들 게 스마트폰 사업인데, 알다시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중대형배터리가 아니라 스마트폰용 소형배터리잖아요?”
“소형배터리라면……?”
“예. 소형배터리 제어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세요. 그 임무를 박 팀장님께 맡기겠습니다.”
그 제안에 박 팀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 정우야. 정말 너밖에 없다!”
“이거 인맥으로 뽑는 게 아니라 팀장님 믿고 뽑는 겁니다. 월급루팡 하실 생각이시면 지금 거절하세요. 저 일 못하면 그냥 안 둡니다?”
“나만 믿어라. 최선을 다할 테니까. 아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대표님!”
“하하하, 팀장님이 존댓말 하니까 어색한데요?”
“월급 주시는데, 대표님이시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 단단한 의지를 보며 정우가 웃었다.
“그 결심 잊지 마시고 따라오세요. 제가 부자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절대,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희망을 얻은 박 팀장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네뷸라에 박학기 팀장이 합류했다.
* * *
박학기 팀장이 풀려났음에도 에너맥스1000 조작 사태에 대해 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별로 없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말처럼, 새로운 이슈에 대중들은 무감각해져 갔다.
그리고 그 새로운 이슈는 다름 아닌 스마트폰 사업부 분할 매각 소식이었다.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분할 매각 전격 발표> [네뷸라,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품다> [애물단지 스마트폰 사업부 매각 소식에 대한전자 주가 급상승> [분석전문가들, 실적개선에 대한 기대감 반영으로 해석>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분할 매각 소식이 전격적으로 발표되자, 언론은 연일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놀라웠다.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대한전자의 주가는 그야말로 떡상한 것.
반대로 애물단지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한 네뷸라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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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덩어리 스마트폰 사업부를 왜 인수하지?
-이정우 감 떨어졌다 ㅋ
-근데 대한전자 스마트폰이 좀 구리긴 한데, 네뷸라 솔리드스타가 들어가면 다를 듯?
└ㅇㅈ 하루종일 사용해도 배터리 안 닳을 것 같긴 하네
└솔리드스타RC 들어가면 충전속도도 겁나 빠를 것 같은디
-솔직히 네뷸라가 손 대서 망한 게 있긴 하냐? ㅋㅋㅋㅋㅋ 난 이번에도 초대박 가능할 거라고 봄
-그래서 네뷸라 주식은 어디서 사요?
└시장 가면 팔아요
└ㅁㅊ ㅋㅋㅋㅋㅋ 상장 안 했음 ㅋㅋㅋㅋㅋ 절대 못 삼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네뷸라 상장기원 78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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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의 시선도 있었고, 반대로 또다시 새로운 혁신을 보여 주리란 기대감 어린 대중의 반응도 있었다.
반반으로 갈린 여론 속에서 드디어 정식으로 네뷸라 일렉트로닉스가 발족했다.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오늘 전격 출범> [네뷸라 이정우 대표, “스마트폰 시장의 변혁을 가져올 것”>그 기사들을 보면서 한성준은 감탄했다.
“……대단한 친구야, 정말로.”
관리를 안 한 듯 수염이 덥수룩해진 그는 이미 폐인처럼 보였다.
사실 아버지에게 큰소리치기는 했지만, 대한전자를 뺏기고 나서 그는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그가 가진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이정우 대표가 대한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를 넘겨받은 것을 보고는 답답하던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함께 어떤 희망이 생겼다.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찾아보면 무슨 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대한그룹의 빈틈을 파고들 어떤 수가.
‘그래, 움직이자. 일어나서 뭐라도 하자.’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몸을 일으키던 그때였다.
우우웅- 진동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울렸다.
바로 ‘이정우 대표’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그는 1초의 고민조차 없이 곧장 전화를 받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 대표, 오랜만입니다.”
-예? 호랑이라뇨?
“안 그래도 이 대표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발족 기사 보고 있었거든요. 축하드립니다, 이 대표.”
-하하하, 보셨군요. 그렇다면 얘기가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한성준 사장님,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맡아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