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300억 짜린데?
뜻밖의 제안에 한성준의 눈이 커졌다.
“사장직을 제안하는 겁니까?”
-예.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사장을 맡아 주십쇼.
“아니, 갑자기 왜 저를……? 저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닙니다.”
회의 어린 부정적인 반응에 정우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서현 씨 때문인가요.
“……알고 있었습니까.”
-서현 씨한테 한 사장님과의 관계, 얘기 들었습니다. 비밀이었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죠. 그저 못난 제 잘못이자 업보일 뿐이니…… 하하…… 그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사실 전 이 대표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대표로 영입하겠다는 겁니까?”
한성준이 자조와 함께 고백했다.
사실 그는 이정우 대표를 이용할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다.
지서현이 정우와 긴밀한 관계인 걸 염두에 두고, 추후 그를 사위로 삼아서 혈연관계를 통해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정우 대표가 가진 네뷸라의 솔리드스타와 막대한 자금력.
그 힘이라면 한광표 회장의 신임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대한전자 사업도 크게 비약시킬 수 있어서 대한그룹 후계다툼을 굉장히 유리하게 풀어 갈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괜히 그가 끼어들면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길까 봐 직접적으로 개입하진 않았는데, 갑자기 그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외톨이가 된 자신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준 정우 때문에 괜히 마음이 약해진 그가 먼저 이실직고한 것이다.
그런 한성준의 고백에 정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다.
-서현 씨를 통해 저에게 접근한다는 계획 말씀이십니까? 서현 씨에게 이미 얘기 들었어요.
“……역시 이미 눈치채고 있었군요.”
-하하하, 원래 여자들이 촉이 빠르지 않습니까. 뭐, 그 부분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신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으로 개입하신 것도 아니고, 저에게 피해가 왔다거나 한 건 아니니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뭐, 한 사장님이 겉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계산적인 분이란 건 알게 되어 의외였지만요.
“그럼, 그걸 알고도 저를 사장 자리에 영입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예. 한 사장님을 미워하고 용서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서현 씨입니다. 저는 한 사장님에게 크게 감정 없고, 그저 비즈니스적으로 연락을 드린 것뿐입니다.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지난 15년간 대한전자 사장을 맡아 온 당신이 적임자이리라 생각했거든요.
정우의 말에 한성준은 문득 울컥했다.
지난 세월 인생을 갈아 넣었던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 이는 아버지도, 형제도 아니라 다름 아닌 제삼자인 이정우 대표라니.
자신보다 어리지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그의 말에 그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대답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쇼.”
-당연하죠. 충분히 고민해 보세요. 다만,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사장을 맡게 되시면 한 사장님께도 이득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이득이라면……?”
-돈은 당연히 따를 거고, 지금은 밀렸지만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다시 대한그룹 후계구도에 도전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서현 씨…… 따님과의 관계도 개선에 여지가 생기지 않겠어요?
“……아!”
-저와 함께 일하신다면 서현 씨와 자주 보게 될 거예요. 계열사는 달라도 같은 네뷸라 직원이잖아요. 무엇보다 서현 씨 저랑 자주 다니는 거 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오해도 자주 보고 대화를 해야만 풀리는 법입니다. 아무튼 전 제안드렸고, 심사숙고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뭐, 저라면 무조건 수락할 것 같지만요.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한성준은 생각에 잠겼다.
대한그룹 후계구도에서 떨어져 나갔고, 아내와는 별거 중이며, 딸은 자신을 아버지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실패한 인생이구만.”
인생의 저점이 있다면 지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패배자가 자신이다.
하지만…… 저점이 있다면 고점도 있는 법.
“……멈출 수야 없지.”
그리고 무엇이라도 해 봐야 할 것 같던 이때 이정우 대표에게 걸려 온 전화.
사실 이건 운명이 아닐까?
“……운명을 믿어 본 적은 없지만…….”
그의 본능이, 직감이 외치고 있다.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결국,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 들어 방금 통화했던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한성준이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사장으로 합류하자, 정우는 곧장 전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직원들을 전부 강당으로 호출했다.
-오늘 16시에 대강당에서 대표님 말씀이 있으니 전 직원 빠짐없이 참석 바랍니다.
당연히 대표의 호출에 모든 직원이 웅성거리며 대강당으로 모였다.
“이게 뭔 일이래.”
“나름 대한전자 대기업 다니다가 네뷸라 소속되니까 기분이 묘하네.”
“그래도 네뷸라 정도면 이제 대기업 아닌가?”
“공시가 뜬 게 없어서 대기업은 아닌 것 같은데.”
갑작스레 대기업인 대한전자에서 네뷸라 소속으로 변경이 된 직원들은 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때 정우가 성태규 전무와 함께 등장했다.
대강당 단상 위에 오른 그는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이정우입니다. 갑작스레 소속이 변경되어서 많이들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
-하하, 떨떠름한 얼굴들이네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저라도 대기업에서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로 소속이 변경되어서 다른 곳으로 출근하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거든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정우가 모두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래서 여러분께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단상 앞에 모여 있는 서류가 보이실 겁니다. 예, 이게 바로 ‘보직 변경 신청서’입니다.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소속에서 다른 대한전자 보직으로 전출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해당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해 주시면 계속 대한전자 소속으로 남으실 수 있습니다.
“……!”
-하하,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들이시네요. 하지만 진짜입니다. 대기업 다니다가 아직 대기업 타이틀도 못단 네뷸라 소속이 되려니 불만이 많으신 거 압니다. 그래서 제가 대한전자 한동준 사장님과 협상해 두었습니다. 그러니 대한전자에 남고 싶은 분은 보직 변경 신청서를 통해 남으시면 됩니다. 자자, 잔류 희망하시는 분들은 보직 변경 신청서 한 장씩 들고 가세요.
정우의 말에 직원들은 처음에는 못 믿겠다는 듯 서로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복지 같은 거 따지면 그래도 대기업이 낫긴 하지.”
“대한전자만 한 회사가 없긴 해.”
“그래도 앞으로 비전 생각하면 네뷸라가 낫지 않나?”
“대한전자는 솔직히 너무 고였어. 슬슬 변화가 필요한 타이밍인데, 네뷸라에서 일해 보는 건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대한전자에 남으련다. 김 대리, 같이 갈래?”
“……저는 그다지. 과장님은 잔류 원하시면 가십쇼.”
“후회할 것 같은데. 알겠어.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고.”
그러다 이내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나서자 그를 따라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민과 눈치싸움 속에서 보직 변경 신청서를 들고 대강당을 떠난 직원 수가 무려 4분의 1가량은 될 정도로 많았다.
25%가 넘는 직원들이 증발한 것이다.
하지만 그걸 보면서도 정우의 얼굴은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았네요. 저는 절반은 떨어져 나갈 줄 알았는데…… 뭐, 좋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정예라고 생각하고, 저는 여러분의 오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항상 국내 2인자 소리를 듣던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 아니 애플의 아이폰 때문에 이제는 3위로 밀려 버린 스마트폰 사업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1위로 도약시키겠습니다.
“…….”
정우의 연설에 반응은 뜨끈 미적지근했다.
그럼에도 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을 이어 나갔다.
-하하, 못 미덥죠? 하지만 앞으로 우리의 사업 방향성에 대해 제 얘기를 들으면 다를 겁니다.
-최초의 플렉서블 스마트폰.
-앞으로 우리 스마트폰은 업계 최초 플렉서블 스마트폰을 개발하게 될 겁니다.
플렉서블 스마트폰?
이미 여러 차례 개발 시도 및 중단이 된 프로젝트가 아니던가.
정우의 입에서 플렉서블 스마트폰 사업 얘기가 나오자 한 직원이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모바일디스플레이개발팀장 조석훈입니다.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자체가 생산단가도 잘 안 나오고, 생각보다 기존 액정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며 내구성 등 문제점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 없이 다짜고짜 플렉서블 스마트폰 사업을 하신다는 건…… 솔직히 무모하게 느껴집니다.”
-우려하시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건 곧 알게 되실 테니까요.
정우가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지만, ‘핵심’을 언급하지 않아서일까. 직원들은 공감하지 못한 듯 떨떠름한 얼굴들이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의문을 남긴 채 회의가 끝났다.
* * *
그날 있었던 연설 직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
-이정우 대표 플렉서블 스마트폰 만든단다 ㅋ
-미친 거 아님? ㅋㅋㅋㅋㅋ
-업계 디스플레이 1위인 대한디스플레이랑 협업하는 대한전자도 포기한 사업인데 그게 가능한가….
└진성전자도 포기하고 폴더블폰 개발 중이라던데
-플렉서블 액정은 이미 있을걸? 반도체가 문제지
-ㅇㅇ 휘어지는 반도체를 만드는 게 ㅈㄴ 어려움. 반도체 웨이퍼 자체가 워낙 두껍고 단단해서 생각보다 유연하지 않다더라
-그래도 가능은 하다던데?
-가능은 하지 ㅋ 근데 구부러지는 소재로 반도체 만들면 효율이 안 나옴. 고장 가능성도 높고
-ㅈㄴ 솔리드스타로 돈 벌어서 이상한 곳에 때려박네 ㅋ 역시 이정우 전문경영인도 아닌 일개 개발자 출신 아니랄까봐 슬슬 병크 타는 듯 ㅋ
─────────
플렉서블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선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이런 온라인 반응과 달리, 따로 정우에게 불려 간 직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정우가 성태규 CTO, 그리고 한성준 사장과 함께 팀장급 인사들을 모두를 모아 놓고 얘기했다.
“여러분, 지금 얘기할 건 일급 기밀입니다.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마세요. 회사 잘리기 싫으면요.”
“예.”
“먼저 플렉서블 스마트폰에 대해서 모두가 우려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여기 계신 성태규 전무님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그 이유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성태규 전무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현재 네뷸라 케미컬에서 최고기술경영자를 맡고 있는 성태규라고 합니다.”
“……와, 저분이 솔리드스타 개발하신 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와-!!!”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팀장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의 환호에 성태규 전무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MG음극재 기술만 개발했을 뿐 실질적으로 솔리드스타를 성공시킨 분은 제가 아니라 이정우 대표입니다.”
“……이정우 대표님이요?”
“그럼, 정말 소문대로 이정우 대표님이 진짜 개발자…?”
“하하, 저 천재 아니에요. 성 전무님이 개발하신 거 맞습니다. 전 판만 깔아 드리고 지원만 했을 뿐이에요.”
정우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당사자들을 통해 진실을 듣게 된 팀장들의 얼굴은 이미 일변한 뒤였다.
저 친근해 보이는 대표가 진짜 솔리드스타를 개발한 일등공신이라는 것에서 이미 자신들의 새 대표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보며 성태규 전무가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하하, 우리 대표님이 겸손하십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시고, 아까 얘기하던 걸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플렉서블 스마트폰…… 충분히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저희에겐 그래핀이 있거든요.”
“……그래핀이요?”
갑자기 튀어나온 그래핀이라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정우가 나섰다.
“성태규 전무님 말씀대로입니다. 앞으로 그래핀은 무한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래핀을 이용해서 새로운 그래핀 반도체를 만들어 주세요. 유연하고 기존 반도체보다 월등히 빠른 반도체 말이죠. 그 반도체 위에 OLED 발광물질을 발라 플렉서블 폰을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아예 그래핀 소재를 이용한 플렉서블 액정을 만들어도 괜찮겠네요. 그래핀 자체가 워낙 투명하니. 어때요, 여러분?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AP칩 및 모바일 반도체 사업부를 맡고 있는 김정혁 팀장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핀 소재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은 할 것 같습니다만…… 사업성은 미지수 아니겠습니까? 그래핀이 워낙 비싸서…….”
“그건 대표인 제가 알아서 할 문제이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시고 개발에 힘써 주세요. 앞으로 제가 그래핀은 책임지고 무한공급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래핀이 한두 푼이 아닌데…….”
“하하하, 정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보여드리는 게 낫겠네요. 강 팀장님? 강 팀장님! 가지고 들어와 주세요!”
정우의 호출에 강철준 팀장이 경호팀과 함께 박스 하나씩을 들고 들어왔다.
착착 바닥에 쌓이는 상자들.
정우가 그 제일 위에 놓인 상자 하나를 들어 개봉했다.
거기엔 투명한 가루 같은 물질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눈치 빠른 김정혁 팀장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
“설마가 맞을 겁니다. 여기 있는 전부가 앞으로 여러분이 사용할 그래핀입니다. 부족하면 얘기하세요. 아, 참고로 외부 반출은 안 됩니다?”
정우가 씨익 웃었다.
그제야 팀장들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새로운 대표가 ‘솔리드스타’와 ‘이클립스’라는 희대의 걸작이자 혁신을 가져온 괴물이라는 것을.
그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들 인생에 다시 찾아올지 미지수인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났다는 것을 말이다.
* * *
그래핀의 등장에 개발팀 전부가 흥분했기에 다시 한번 비밀 엄수를 약속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처음 그래핀에 대한 걸 들은 한성준 사장 역시 충격을 받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핀 양산에 성공하였다니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직 특허 등록이 마무리된 게 아니라서 모르셨을 수도 있겠네요. 작년에 신청했으니 심사가 올해 말쯤 마무리되려나.”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그래핀 양산이라니… 솔리드스타보다 더한 혁신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걸 세상에 알리지 않으셨는지…….”
“제가 욕심이 많아서요.”
“예?”
“전 그래핀 기술과 그래핀 제품들을 시장에서 독점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아직 네뷸라가 그걸 감당할 깜냥이나 덩치는 안 되고…… 그래서 그래핀 기술 공개는 보류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희가 모든 걸 감당 가능할 때, 이미 시장이 저희가 생산한 그래핀 제품들로 길들어져 있을 때, 그때 알릴 생각이에요.”
정우의 말에 한성준은 감탄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이정우 대표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보고 사업을 진행 중인 걸까.
‘이런 남자를 혈연이다 뭐다 엮으려 했으니…….’
이정우 대표 입장에서 자신의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정우가 웃었다.
“그러니 한 사장님, 그래핀 반도체 개발에 힘써 주세요. 반도체는 진성전자가 항상 1등이었지만, 대한전자, 아니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그래핀 반도체가 그걸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단번에 될지…….”
“일단 기존 AP칩이나 모바일 반도체의 실리콘 소재를 전부 그래핀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구리보다 전도성이 200배 뛰어나고 실리콘보다 전도성이 훨씬 높은 그래핀 소재로 변경만 해도 반도체 성능이 월등해질 겁니다.”
말이 쉽지 반도체라는 게 워낙 민감해서 정우의 말대로 쉽게 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한성준 사장은 어느덧 정우의 미친 듯한 추진력에 감화되고 있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아니, 무조건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두 사람이 씨익 웃었다.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에서 새로운 혁신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나른한 오후.
신성호텔 풀장에 위치한 선베드에 두 사람이 선글라스를 쓴 채 누워 있었다.
바로 김봉수와 김동현이었다.
“……야야, 티 나지 않게 1시, 1시.”
“……장난 아닌데?”
“존나 예쁘지? 가서 말 걸어 볼까?”
“X발, 그 말만 몇 번째냐. 니가 나섰다가 오늘 다 깨진 거 알지? 걍 조용히 선탠이나 즐기다 가자.”
“하, 새끼 나 못 믿네. 오늘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예, 다음 모쏠~”
“뒤질래?”
“야, 못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좋아야지, 쯧쯧…… 으악! 알았어, 알았어. 살려 줘!”
자신을 놀리는 김동현과 한바탕한 김봉수가 지친다는 듯 선베드에 몸을 푹 뉘었다.
“그나저나 경도 요새 뭐하냐?”
“……하, 아파 죽겠네. 팔에 멍들 것 같잖아!”
“엄살 말고 경도 뭐하냐고.”
“경도? 걔 요새 연애하고 결혼 준비한답시고 바쁘잖아. 그리고 코인 사업한다고 그것도 바쁘고.”
“쓰벌- 우리만 백수냐?”
“난 빼 줘라. 나도 요새 공연 준비한다고 바쁘다고. 이따가도 연습하러 연습실 가야 해.”
“그 홍대에서 버스킹한다는 거? 에라이, 미친놈아. 니 나이가 몇인데 버스킹이냐.”
“뭐 어때.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생활인데. 맨날 놀고먹는 너에 비하면 낫지.”
김동현의 핀잔에 김봉수가 발끈했다.
“하, 사업 구상 중이라고!”
“맨날 사업 구상은 얼어 죽을.”
“진짠데…… 그나저나 우리 같이하기로 했던 멀티플레이타운 사업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코인에 돈 묶였는데, 빌딩이나 살 수 있겠냐. 그리고 부동산이 올라 봤자 부동산이지, 코인이 최고야.”
“……그건 그렇지만.”
두 사람, 아니 정우의 친구들은 전부 지금 코인을 매집 중이었다.
때문에 자금이 상당히 코인에 묶여 있었기에 빌딩 매입은 시간이 좀 걸릴 듯 보였다.
부동산 얘기가 나오자 김동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파트는 하나 살까 고민 중인데…….”
“아파트?”
“엉. 정우가 아파트는 하나씩 사 놓으랬잖아. 겁나 오를 거라고.”
“미친 새끼. 너 정우가 말하면 한강물에 다이빙도 하겠다?”
“당연 쌉가능이지.”
“크크크크큭, 미친 새끼. 정우랑 결혼해라 미친놈아.”
“지랄 마. 근데 넌 아파트 안 사냐?”
“그럴까? 하긴 나도 아파트나 하나 사야겄다. 람보르기니 끌고 호텔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겹다 지겨워.”
“인정. 스위트룸 예약하면 50씩 깨지는 거 돈 존나 아까움.”
“야, 넌 가진 돈이 얼만데 그걸 아까워 하냐.”
“그래도 아깝다. 나도 빨리 경제적 자유인지 뭔지 달성해야지. 그전에 아파트나 하나 사고…… 근데 어디 사지? 반포? 잠실?”
“글쎄. 정우가 잘 알듯.”
“물어보자.”
“오키, 내가 전화함.”
생각난 김에 물어보자는 심산으로 김봉수가 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쁜 듯 한동안 통화가 안 이어지다가 결국 끊겼다.
“정우 이 새끼 겁나 바쁜가 본데? 전화 또 안 받네.”
“톡이라도 남겨 놔.”
“어? 정우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한 건지 정우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자 김봉수가 냉큼 전화를 받았다.
-뭔데?
“야, 정우야. 아파트 알아보려는데, 어디가 좋냐?”
-바빠죽겠는데 뭔 시답잖은 소리야.
“아, 빨리. 친구 재산이 걸렸는데 이러기냐?”
-참나, 서울이면 어디든 상관없어. 다 오를 거다. 그러니 아무 데나 사.
“아 그래? 반포도 괜춘?”
-반포? 반포면 충분하지. 거기 최소 2배는 오를 거다.
“오키. 거기 사야겠다.”
조언에 김봉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정우가 중얼거렸다.
-진짜 반포 살라고? 흠, 나도 그쪽으로 집 알아봐야 하나.
“너도 집 사게?”
-어. 나도 언제까지 호텔에서만 살 수는 없잖냐. 요새 술이니 뭐니 선물도 계속 들어오는데 대표실에 쌓아 둘 수도 없고, 슬슬 내 집도 마련해 놔야지.
“그럼 넌 어디 사려고? 너도 반포 오게?”
-생각해 둔 게 몇 군데 있긴 한데…… 왜? 너도 사게?
“당연한 거 아니냐? 친구가 뭐냐. 나도 니 살 집이면 나도 사고 싶지. 위치는 어딘데?”
-흠…… 일단은 청담 쪽일 듯?
“청담? 이 새끼 나는 반포 알려주고 왜 니는 청담이냐.”
-니가 사기엔 돈이 쫌 애매해서.
“애매하기는! 내가 정우 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나름 300억 자산가라고!”
김봉수가 나름 자존심을 내세워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정우의 말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내가 살 집이 300억 짜린데?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