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그냥 저한테 파시죠?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밴드갭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어 그래핀 반도체를 구현한다니.
특히 구조적으로 완벽하다고 평가되는 벌집 모양의 그래핀 구조에 일부러 구멍을 뚫는 건 그야말로 천재적이라 할 만했다. 사실 그래핀 구조를 망치는 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인공 밴드갭 개념을 듣고 놀란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연구원들을 보며 클레버리 교수가 덧붙였다.
“다만, 모두 알다시피 그래핀 구조에 구멍이 뚫린 이상 벌집 모양 격자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에 더 이상 그래핀이라 부르기 어렵고, 그래핀과 구조가 흡사한 2차원 탄소 동소체인 그래파인이라고 봐야겠죠.”
“그래서 ‘폴그래파인’이라 명명한 거고, 결국 순수 그래핀으로 반도체를 구현하기 어렵다는 말씀이시군요, 교수님.”
“정확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버리 교수에게 직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럼 교수님, 폴그래파인은 어떻게 양산을 할 수 있나요?”
“양산이라…… 제가 구멍을 뚫는다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래핀을 구성하는 탄소결합구조에서 탄소 연결을 하나 끊는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겠군요. 확실히 기존 벌집모양 구조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내는 기술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와 우리 연구팀은 폴그래파인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데, 결과로 말하자면 그래핀에 구멍을 내는 것보다 원자 단위부터 탄소재료를 새롭게 합성할 때 규칙적으로 구멍을 생성하는 방식이 적합하였습니다.”
“탄소재료라면 일반적인 탄소재료는 전부 가능한 겁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클레버리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폴그래파인 형성에 가장 적합한 재료는 산화그래핀Graphene Oxide입니다. 알다시피 산화그래핀은 탄소결합구조에 산소원자가 결합된 형태인데,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결합구조에서 산소원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균일한 구멍, 즉 밴드갭을 형성할 수 있죠.”
그의 설명에 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그 얘기는 일부러 그래핀 불량품을 만들어 내는 건가요?”
“맞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양이 똑같은 불량품을 만드는 거죠.”
“와…… 일부러 그래핀 불량품을 만든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이네요.”
“대박이다…….”
역시 MIT공대 교수라며 감탄하는 직원들.
그에 반해 클레버리 교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폴그래파인 기술은 반쪽짜리입니다.”
“……예? 반쪽짜리라뇨?”
“산화그래핀이 조금씩 양산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말이 양산이지 아직 제대로 구현이 어려워 그 단가가 너무 비싸죠. 그런데 산화그래핀을 재료로 폴그래파인을 뽑아 내어 그래핀 반도체를 만든다…… 반도체 단가가 황금값을 뛰어넘을 텐데, 제대로 보급이나 되겠습니까?”
양산에 대한 교수의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에는 은연중에 ‘너희 지금 뻘짓하고 있다’라는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기도 했다.
‘……상용화가 불가능한 기술 가지고 지금 뭐 하자는 건지.’
네뷸라의 이정우 대표가 1억 달러나 기부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기술을 교육 중이지만, 클레버리 교수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기술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는 정우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교수의 생각과 달리 연수를 받는 직원들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AP개발팀장 오준규는 피식거리기까지 했다.
“교수님, 그건 별로 신경 쓸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저희 대표님은 요술램프를 가지고 계시거든요.”
“요술램프?”
“네. 그래핀을 무한 생성하는 신기한 요술램프죠.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개발팀장의 말을 들은 클레버리 교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쪽을 쳐다봤다.
거기엔 졸린 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우가 앞쪽에 앉아 있었다.
저런 허술한 인간이 요술램프를 가졌다고?
“코리안들은…… 아니, 네뷸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구만.”
클레버리 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감히 자신의 강의를 들으며 졸고 있는 대표도 그렇고, 헛소리하는 직원도 그렇고, 네뷸라에는 정상이 없는 것 같다고.
* * *
어디서 가져온 건지, 네뷸라 직원들은 그래핀과 산화그래핀을 한 상자씩 가져왔다.
현시세로 따지면 몇억 원은 훌쩍 넘을 고가의 재료들을 아무렇지 않게 실험용으로 가져오는 걸 보며 클레버리 교수는 벙쪄 버렸다.
“……이걸 진짜 그래핀 반도체 연구에 다 사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왜요? 필요하시면 좀 나눠 드릴까요?”
“……정말입니까?”
“하하, 그럼 정말이고 말고요. 제가 사무실에 얘기해 둘 테니 나중에 좀 챙겨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미스터 리.”
역시 연구파답게 그래핀을 나눠 준다고 하자 클레버리 교수의 딱딱한 얼굴도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그 영향은 이어진 연구에서 드러났다.
“……구리 강판 위에 산화그래핀을 얇게 깔아 두고, 전류를 흘려보내서 산화환원반응을 이용해 산소 원자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겁니다.”
클레버리 교수는 열성적으로 직원들을 이끌어 그래핀 반도체 제조 실험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직원들은 직접 폴그래파인을 제조해 보며 기술을 전수받았고, 제조된 폴그래파인을 이용하여 직접 반도체 제작에 나섰다.
세계제일의 MIT공대답게 반도체 제조 및 연구설비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실험에 애로사항은 없었다.
기존 반도체에서 웨이퍼를 구성하는 실리콘 부분을 폴그래파인으로 대체하고, 그 웨이퍼 위에 새겨지는 회로는 그래핀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언뜻 보기만 해도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 같지만, 이미 그래핀 반도체를 구현해 본 경험이 있는 그래핀 반도체의 권위자 클레버리 교수의 지도가 있었기에 작업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미스터 리, 포토공정에서 폴그래파인 웨이퍼에 그리는 회로는 뭐로 하실 겁니까? 우리가 가진 CPU 설계도가 있긴 한데 그걸로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제조공정에 앞서 유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은 클레버리 교수가 묻자 마찬가지로 방호복을 입은 정우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저희 쪽도 가지고 있어서요. 오 팀장님, 대한전자 때 만들어 둔 AP칩 설계도 있죠?”
“예. 뉴웨이브 1세대 말씀이시죠?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로 회로 작업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웨이퍼 위에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가져온 AP칩인 뉴웨이브 1세대의 회로패턴을 각인했다.
반도체 웨이퍼에 새겨지는 수백, 수천 개의 반도체 칩 회로도들. 각각의 회로가 영향을 주지 않게끔, 하나의 회로가 축적되면 그 위에 얇은 절연막으로 덮는 박막 공정을 반복하여 회로를 쌓아 올렸다. 말이 쉽지 무려 6가지 공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완성되는 정교한 회로 작업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다행히 작업은 오류 없이 진행이 되었고, 기존 알루미늄 배선 대신 그래핀으로 금속 배선 공정까지 마무리하자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그래핀 반도체가 완성되었다.
고작 한 장의 웨이퍼지만, 그 위에 담겨 있는 그래핀 반도체 칩은 수천 개.
결과물을 보며 모두가 숨을 죽일 때 클레버리 교수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 EDS(Electrical Die Sorting: 전기 테스트 공정)만 남았군요.”
“EDS공정이 불량품을 선별하는 거죠?”
“잘 알고 있네요, 미스터 리. 말 그대로 불량칩을 미리 선별해서 이후 진행되는 패키징 공정에서 효율을 향상하는 겁니다.”
“떨리네요.”
“떨리면 하지 말까요?”
“아뇨.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확인해 보죠.”
정우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클레버리 교수가 프로브카드(Probe Card: EDS공정용 테스트 장치)를 조작해 웨이퍼에 접촉시켰다.
그러자 프로브카드에 달린 수많은 미세 핀Pin들이 웨이퍼와 접촉해 전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전기 자극에서 되돌아오는 신호를 통해 불량품을 선별하여 반도체 수율을 확인하는 것이다.
1단계 ET & WBI(Electrical Test & Wafer Burn In) 테스트부터 시작하여 온도별 불량품을 선별하는 Hot/Cold 테스트를 거치고, 수선 가능한 칩들을 수선하고 이를 재검증하는 Repair/Final 테스트를 마지막으로 불량칩셋Fail chip들에 식별 가능한 데이터를 부여하였다. 이를 통해 나중에 불량품을 걸러 낼 수 있도록 판별데이터를 웨이퍼맵으로 생성하는 디지털 잉킹Inking 작업까지 마무리하자 모든 EDS 공정이 마무리되었다.
곧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결과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Yield: 56.7%]수율Yield 값은 무려 56.7%.
절반을 간신히 넘는 수율에 멋모르는 사람이 보자면 ‘애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탑급으로 분류되는 진성전자 반도체 수율이 35%대인 걸 감안하면 거의 미친 수준이었다.
“……이게 우리가 만든 반도체 수율이라고?”
“장난 아닌데요?”
“수율이 50%가 넘을 수도 있는 거구나……! 대박!”
직원들이 감탄했고, 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수님, 이 정도면 대성공 아닙니까?”
“원래 이 정도는 나옵니다. 저희도 그래핀 반도체 개발 성공했을 때 45% 정도 수율이 나왔으니까요.”
클레버리 교수 역시 50%를 넘은 수율에 살짝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나 그 역시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수율이 10%나 더 높아졌다고?’
변수로 작용할 부분이라면 역시 2가지뿐이다.
교수가 그 부분을 떠올리고 있을 때 정우가 재차 물었다.
“어? 교수님이 만드셨을 때보다 저희 쪽 수율이 10%나 더 높은데요?”
“아마 설계 회로나 그래핀 품질 차이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제 생각에는 회로보다는 그래핀 차이가 클 것 같네요. 네뷸라에서 가져온 그래핀이 비싼 건가 봅니다?”
“……글쎄요.”
넌지시 떠보는 클레버리 교수의 질문에 정우는 미소로 답했다.
아마 플래시 그래핀 공정으로 그야말로 헐값에 그래핀을 대량생산 중이라는 것을 알면 까무러치겠지.
대답을 피하는 정우를 보며 클레버리 교수 역시 캐묻지는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렸다.
“수율은 나쁘지 않게 나왔고, 남은 건 성능 테스트군요.”
“성능 테스트라면……?”
“지금 만들어 낸 각각의 칩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따져 보는 겁니다. 보통 칩셋의 경우 클럭으로 좌지우지되죠.”
“아- 클럭이요?”
“아십니까?”
“당연히 개발자 출신인데, 클럭은 기본이죠. CPU 속도 아닙니까.”
“맞아요. 잘 알고 있군요.”
“AP칩도 따지고 보면 CPU의 일종이니 클럭으로 따지면 될 거고…… 오 팀장님. 현존하는 AP칩들 상위 모델 평균 클럭이 어느 정도 되죠?”
정우의 물음에 오준규 AP개발팀장이 대답했다.
“지금 퀄컴의 카이로 시리즈가 클럭이 2.8기가헤르츠GHz 정도 나옵니다.”
“2.8GHz라…… 확실히 AP칩이 모바일용이라 그런지 PC용인 CPU와 비교하면 낮긴 하네요. 그럼 교수님, 이것만 넘으면 성공인 겁니까?”
“그래핀이 들어간 반도체인데 겨우 2.8GHz 정도만 나오면 실패죠.”
“아, 맞네요.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참고하라고 말하자면 제가 연구진이랑 만든 그래핀 CPU 칩셋이 4.9GHz 정도이니 클럭이 어느 정도 나올지는 감이 올 겁니다.”
“4.9GHz 생각보다 낮네요? 그래핀 전도성이 실리콘보다 100배는 뛰어나서 몇 배는 효율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요.”
“자꾸 잘못된 정보를 얘기하는데, 실리콘보다 100배가 뛰어나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래핀 품질 차이 때문에 100배나 뛰어난 그래핀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최적화 문제도 있고, 아무래도 우리가 반도체 회로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그래요?”
클레버리 교수는 그래핀의 전도성에 대해 낮춰서 평가하는 듯했다.
하지만 정우가 생산 중인 그래핀의 품질은 정말로 구리보다 200배, 실리콘보다 100배에 가까울 정도로 전도성이 뛰어난 상황.
그러나 굳이 그걸 지적하진 않았다.
“……결과는 두고 보면 알겠죠. 좋습니다, 클럭 테스트 한번 해 보죠.”
이어진 테스트.
클레버리 교수의 지도하에 연구팀이 만들어진 그래핀 반도체 칩셋 중 일부를 떼어 내어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게 하는 칩셋 테스트 장비에 집어넣었다.
이제 이 복잡한 연산을 처리하면서 클럭 결괏값이 나올 터.
그 테스트 결과는 놀라웠다.
[5.98GHz]거의 6GHz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수치의 클럭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클럭 결과에 모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가 지금 뭘 만들어 낸 거죠?”
“세상에…… 단일코어 6GHz가 가능한 거였어?”
“근데 저거 듀얼코어잖아?”
“……어? 맞네요? 모바일용 AP칩셋인 뉴웨이브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들었으니까…… 저거 듀얼코어잖아요?”
“그럼, 저거 칩셋 하나의 클럭 성능이 거의 12GHz라는 거야?”
“……미쳤네.”
CPU도 아니고 모바일용 AP칩이 무려 12GHz에 달하는 연산능력을 보유했다니.
하지만 놀라운 건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거다.
클레버리 교수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실리콘반도체용으로 설계된 AP칩 아키텍처를 가지고 이 정도 성능을 뽑아낼 수 있다고?’
그 말인즉슨, 그래핀 소재의 효율을 더 살리는 쪽으로 설계도를 최적화시키면 더한 성능을 뽑아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저 그래핀 반도체에 사용된 뉴웨이브 1세대 모델 설계도는 이미 몇 년은 지난 오래된 설계도였고, 현재 모바일AP칩셋은 듀얼코어가 아니라 쿼드코어가 대세가 된 상황.
만약 쿼드코어용으로 그래핀 AP칩셋을 만들어 낸다면?
‘……아니야. 그래도 그래핀 물량이 없는데 반도체 양산은 무슨…….’
순간 자신이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결과에 클레버리 교수가 놀란 가슴을 겨우겨우 쓸어내리고 있던 그때였다.
옆에서 결과물을 지켜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정우가 다급히 클레버리 교수를 찾았다.
“교수님! 교수님!”
“갑자기 왜 그럽니까, 미스터 리.”
“죄송한데, 아무래도 조건을 바꿔야겠습니다.”
“무슨 조건 말하는 겁니까?”
“폴그래파인 기술 특허 로열티 말이죠…… 그 특허권 그냥 저한테 파시죠?”
정우의 제안에 클레버리 교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폴그래파인 특허를 팔다니, 이제 와서 로열티 비용이 아까워서 그러는 겁니까?”
“솔직히 그 부분도 그렇고, 욕심이 생겼거든요. 폴그래파인 기술을 온전히 제 소유로 하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요.”
“욕심이라…….”
“무엇보다 연간 지급하는 로열티 비용을 2,000만 달러 고정비에 플러스 알파로 반도체 매출 1%로 계약했잖아요? 어차피 계속 이용할 것 같은데, 그냥 특허권 제가 인수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비용은 제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얼마를 생각하는 겁니까?”
“로열티 비용은 특허권 존속기간 20년에 연장도 고려해서 25년 치로 계산하죠. 그러면 로열티 고정비만 5억 달러에, 매출 퍼센트 로열티도 추가로 5억 달러 정도로 산정하고…… 특허권 자체 비용은 따로 10억 달러 정도로 책정해서 음…… 깔끔하게 20억 달러 어떻습니까?
“……20억 달러요?”
클레버리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 어떻습니까? 이 정도 조건이면 교수님 입장에서는 로열티를 매년 챙기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당장 목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따로 투자를 해서 굴리실 수 있구요.”
“그… 그것이…….”
무려 억 소리가 나는 단위에 클레버리 교수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얼마나 충격적인지 입술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어버버할 뿐이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온 힘을 다해 외치고 있었다.
무조건 네뷸라 대표에게 20억 달러에 팔아야 한다고 말이다.
* * *
아무리 경제에 어두운 클레버리 교수라고는 하지만, 20억 달러라는 거액은 그를 움직이기 충분했다.
충분한 물량의 그래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빛을 보기 어려운 기술이라는 것과, 단기간에 목돈을 당길 수 있다는 점이 클레버리 교수가 결심을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덕분에 정우는 20억 달러, 한화로 약 2.5조 원에 폴그래파인 기술 특허 확보하였고, 그들의 빅딜 소식은 이내 미국에 전역에 알려졌다.
[폴 클레버리 MIT공대 교수, 억만장자 되다> [클레버리 교수, “학생들과 제자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겠다”> [네뷸라에서 사들인 ‘폴그래파인’ 기술은 무엇인가> [네뷸라 반도체 사업 본격화되나>일개 교수에서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 폴 클레버리 교수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고, 당연하게도 정우가 이번에 인수한 ‘폴그래파인’ 기술특허에 대한 분석도 올라왔다.
정우가 그래핀 반도체 사업을 하려는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다수였다.
-MIT 재료공학과 폴 클레버리 교수는 그래핀 반도체의 권위자로 한때 이름을 알렸죠. 그런데 클레버리 교수의 최대 성과인 폴그래파인 기술 특허를 매입했다? 이건 네뷸라에서 그래핀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투자를 진행 중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핀 반도체, 이름만 들어서는 굉장한 발명품인 것 같은데요. 이게 그렇게 위험합니까?
-위험하죠. 개발 가능성이 지금으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그래핀 반도체를 구현하고 양산하는 것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무엇보다 그래핀을 양산해야만 그 재료가 충당되는데, 아시다시피 그래핀 양산 기술이 현재 존재합니까? 없지요.
-결국, 네뷸라의 이번 선택이 애매하다는 말씀이시군요.
-단적인 예로, TSMC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반도체 분야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진성전자에서 3nm 반도체 공정 기술 확보를 위해 향후 5년간 투자하는 금액이 무려 1,200억 달러입니다.
-1,200억 달러…… 엄청 나네요!
-예. 그런데 진성전자보다 반도체 기술력이 떨어지는 대한전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한 네뷸라가 그래핀 반도체를 개발한다……? 저는 이번 결정으로 네뷸라는 막대한 타격을 입으리라 봅니다. 아마도 솔리드스타로 번 돈 대부분을 허비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전문가들이 나서서 신랄하게 네뷸라의 이번 행보를 꼬집고 비판했다.
그 정도로 그래핀 반도체는 너무 오래 걸리는, 물 먹는 하마마냥 돈만 잡아먹는 사업인 것이다.
언제 성공할지 미지수인 사업에 투자하는 정우를 보고 비웃거나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커져 갔고, 이 부분은 연수에 참여했던 네뷸라의 핵심직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표님, 이번에 20억 달러나 쓰셨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요새 사업 확장에 너무 무분별하게 돈을 쓴다고 여론이 좀 안 좋던데…….”
오랜만에 본 탁세훈 본부장도 걱정하는 눈치였다.
함께 초밥을 즐기며 정우가 웃었다.
“하하, 괜찮아요. 폴그래파인 기술뿐만 아니라 우회특허에 대비한 방어 특허들 수백 개를 전부 확보하는 비용으로 쓴 거라서요. 무엇보다 앞으로 저희가 그래핀 반도체 산업으로 벌어들일 전체 매출을 따지면 20억 달러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봅니다. 혹시 탁 본부장님은 작년 반도체 시장 매출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음…… 4천억 달러 정도 아니었나요?”
“역시 알고 계시네요. 맞아요. 그런데 우리가 만약 4천억 달러의 반도체 시장 매출에서 절반, 아니 4분의 1 정도만 점유가 가능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만 되어도 1천억 달러의 매출이 발생합니다. 이 매출의 1%만 해도 10억 달러인데, 매년 10억 달러를 로열티로 지불한다? 클레버리 교수에게 겨우 20억 달러를 주고 특허권을 사 온 건 오히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말 엄청난 이득을 취한 셈이에요.”
확실히 정우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탁세훈 본부장은 살짝 회의적이었다.
“그래도 그냥 로열티를 지불하는 게 낫지 않나요? 시간 지나면 더 좋은 기술이 개발될지도 모르는데. 무엇보다 이 모든 가정은 잘되었을 때를 산정한 거지, 잘되지 못했을 경우의 리스크 대비도 하셔야 한다고 봅니다.”
“아니요. 그래핀 반도체 시장까지 독점하려면 미리미리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제 촉이 말하고 있어요.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영원히 폴그래파인 기술이 그래핀 반도체 기술의 핵심 기술로 사용될 것 같다는 직감이요.”
탁 본부장의 우려에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직감인 것처럼 얘기하긴 했지만, 그가 아는 미래에 그래핀 반도체가 상용화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의 생각대로 미래가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즉, 폴그래파인 기술은 앞으로도 영원히 그래핀 반도체의 핵심기술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매우매우 높은 것이다.
정우의 단호하고도 자신감 있는 모습에 탁세훈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따르는 이정우 대표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고, 항상 그가 옳았었기에 믿는 것이다.
“좋습니다. 대표님 말씀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래핀 반도체가 잘되지 않았을 경우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이미 그래핀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거든요.”
“……뭐라구요?!”
정우의 고백에 탁세훈 본부장이 소리쳤다.
부랴부랴 정우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시켰다.
“쉿! 누가 듣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만… 그나저나 반도체 생산에 성공했다는 건……?”
“예. 이제 최적화랑 반도체 생산을 어떻게 할지만 고민하면 되네요.”
“와…….”
도대체 자신의 대표는 어떻게 되어 먹은 인물인 걸까.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바로 그래핀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말에 탁세훈 본부장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그가 겨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럼 대표님, 반도체 양산을 하려면 파운드리 생산 업체(=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를 좀 알아봐야 할까요?”
“아니요. 기존 파운드리 업체로는 양산이 불가능해요. 아무래도 그래핀으로 만들어야 하다 보니까, 그쪽도 생산 설비가 없을 게 분명하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TSMC든 진성전자든, 실리콘 반도체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겠네요?”
“예. 그래서 결국 그래핀 반도체 생산 공장도 저희가 직접 만들어야 할 운명입니다. 하하하.”
“허……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고 이게 끝이 아니네요.”
탁세훈이 혀를 내둘렀지만, 정우는 웃어 보였다.
“하하, 그래도 뭐, 거의 절반의 성공에 가깝습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설비 기술에 대해서는 클레버리 교수가 기술 이전해 준다고 하셔서 그 기술 가져오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게임 셋이에요. 탁 본부장님도 아시죠? 우리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기원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요.”
그 말에 탁세훈 본부장이 손뼉을 딱 쳤다.
“……성운이노베이션!”
“예. 자동화설비제작 전문기업, 성운이노베이션이 우리의 모태 아니겠습니까.”
정우가 씨익 웃었다.
“반도체 공장, 직접 만들어 보죠.”
* * *
정우가 먼 미국 땅에서 그래핀 반도체 개발 및 양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한동준 부회장 취임식]대한그룹에서는 한동준 사장의 부회장 취임식이 한창이었다.
그렇다.
한동준 사장은 대한그룹에 5명밖에 없는 부회장 중 한 명으로 취임함으로써, 진정한 후계자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대한호텔에서 열린 이번 취임식은 이러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목적이 강한 만큼 정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한그룹에 잘 보이기 위해 전부 참석한 가운데, 유일자동차의 유종범 회장 역시 자리했다.
“……축하해, 한 회장. 드디어 후계자가 결정되었구만.”
유종범 회장이 옆자리에 앉은 한광표 회장에게 축하를 건넸다.
사실 대한화학NMC배터리 폭발사건으로 사이가 틀어졌었던 두 사람이다. 따라서 이번 자리가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자리였기에 어색할 만도 했는데, 두 회장은 크게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였다.
유 회장의 축하인사에 한 회장이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코웃음 쳤다.
“흥, 축하는 무슨. 아직 애송이일 뿐이야.”
“그래도 동준이 정도면 야무지지. 민준이가 되었어 봐, 어우-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지.”
“어디서 남의 아들을 흉봐? 민준이 고놈이 욕심이 많고 속은 좀 썩였어도 그리 나쁜 놈은 아니야.”
“퍽이나 그렇겠다. 그럼 민준이를 후계자로 찍던가.”
“크흠…… 흠흠.”
“거봐, 못할 거면서 말은…… 그나저나 이 대표는?”
“이 대표? 누구 말하는 거야.”
“아, 척하면 척이지 이 대표 하면 하나밖에 더 있어? 네뷸라 이정우 대표지.”
“아…… 그놈?”
한광표 회장의 그놈이란 말에 유종범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그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