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사람입니다
한광표 회장은 주인공의 진가를 잘 알고 있다.
솔리드스타, 이클립스를 개발한 사나이.
어린 나이임에도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념 그룹총수회담에서 말을 섞어 본 그는 확실히 대단했다.
겉보기엔 가볍고,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그 속내는 어마어마한 야망과 추진력으로 똘똘 뭉친 신비한 청년. 그 모습은 마치 한 회장이 그토록 원하던 큰아들 한성준의 유함과 인망, 둘째 아들 한동준의 추진력이 더한 완벽한 인재상에 가까웠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지서현 끌어들여서 회유해 보려 했겠는가.
하지만 무의식중에 어리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에 ‘놈’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 말실수에 유종범 회장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화를 냈다.
“……한 회장, 이 대표한테 놈이라니. 자네 미쳤어?”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이 대표를 무시해서 그런 소릴 했겠어?”
“아니라면 다행인데, 행여나 무의식으로라도 이 대표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 대표는 이제 우리가 하대해도 좋을 그런 존재가 아니야. 우리 급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자네도 잘 알잖아?”
“……알지. 거참,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네.”
“그러니 말조심하라고. 요새 자꾸 틈이 보여? 내가 알던 그 깐깐한 한 회장이 아닌 것 같아.”
오랜 친우의 핀잔을 들으며 한광표 회장은 씁쓸해졌다.
자신도 늙어 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점점 물러나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자연스레 취임식 현장으로 시선이 갔다.
부회장으로 취임 중인 자신의 둘째 아들, 한동준.
‘……나 없이도 쟤가 잘 해낼 수 있으려나.’
솔직히 저기 서 있는 동준이보다도 이 대표가 대단하다는 걸 은연중에 직감하고 있었다.
아무런 뒷배도 없이 혼자의 힘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이정우 대표.
대한그룹이라는 배경을 무기로 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악전고투한 한동준 사장.
솔직히 드러난 성과만 비교해도 이정우 대표가 압도적이다.
고작 30살 갓 넘은 애송이 대표인 줄 알았던 이정우 대표의 실상은 이미 너무나도 커 버린 거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살짝 불안하다.
지금이야 대한그룹이 훨씬 덩치가 크지만, 미래 가치를 따져 보자면 네뷸라가 압도적이니.
마치 별을 품은 은하처럼, 점차 덩치를 불려 가는 네뷸라의 위상을 보고 있자면 향후 몇 년 이내에 따라잡히지 않을까.
‘……몇 년도 아닐 수도.’
당장 올해도 불안하다.
한광표 회장의 두 눈에 피곤이 가득했다.
* * *
부회장 취임을 마치고 한동준 사장, 아니 한동준 부회장은 이제 명실공히 대한그룹의 후계자가 되었다.
“……축하해, 형.”
“고맙다.”
동생인 한민준 대한E&M 전무가 그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미 한참 전에 대한화학 사태로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그는 이제 거의 해탈한 듯한 얼굴로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형이 후계자가 되는구나.”
“그럼, 나 말고 누가 있겠냐?”
“하긴 큰형은 나이만 많았지, 둘째 형에 비하면 애매하긴 했지. 아무튼, 축하하고…… 나 버리지 않을 거지?”
슬며시 떠보는 한민준 전무의 말에 한동준 부회장이 피식 웃었다.
“참나, 내가 전무 자리도 빼앗을까 봐 겁나?”
“왜 아니겠어. 이제 형이 대한그룹 내에서는 신이나 마찬가지잖아.”
“아직 아버지 계신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니 전무 자리까지 뺏겠냐.”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물론 니가 뻘짓만 안 하면 말이지.”
한동준 부회장의 스산한 눈빛이 한민준을 스쳤다.
한민준 전무는 뜨끔했다.
“뭐, 뭐가…….”
“너 요새 엔터 전무 달더니 이상한 소문이 들리더라고. 자꾸 소속 연예인들 불러서 술 퍼마신다는데…… 아니지?”
“에이, 형. 내가 무슨 어린 애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어?”
“잘 좀 하자. 안 그래도 요새 그룹 이미지 안 좋은데, 괜히 꼬투리 잡혀서 이미지 또 나락 가면…… 그땐 나 너 더 이상 못 봐줘.”
“……절대 형한테 피해 안 가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축하하고, 언제 조만간 술 한잔하자 형.”
“그러든가.”
어색하게 웃으며 떠나가는 한민준의 뒤통수를 한동준 부회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노려볼 때였다.
한동준이 나간 직후, 부회장실로 그의 전략기획본부장이 들어섰다.
“부회장님, 말씀하신 ‘네뷸라 동향 보고서’ 가져왔습니다.”
“확인해 보죠.”
본부장이 보는 앞에서 한동준은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네뷸라의 최근 사업 진행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놓은 보고서였는데, 네뷸라 케미컬뿐만 아니라 신규 사업인 네뷸라 파이버, 네뷸라 라이프,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동향에 대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다만, 확실히 외부에서 조사한 자료인 만큼 매출과 투자 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없이 대략적인 추정치만 적혀 있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한동준은 앞의 내용을 빠르게 훑으며 물었다.
“뭐, 다들 아는 내용인 것 같고…… 특이사항 있어요?”
“네뷸라 케미컬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최근 기가테네시 공장의 생산량이 받쳐 주면서 테슬라 모델S-SP 출고량이 급증했는데, 이로 인해 시장 반응이 뜨겁습니다.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본부장의 보고에 한동준 부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이 잘나가는 건 언제나 들어도 배가 아픈 일이니까.
“확실히 기술이 뒷받침되니 잘나가네요. 근데 네뷸라 케미컬의 현재 개발 목표는 솔리드스타의 완전한 그래핀 배터리화라고 여기 써 있는데…… 이건 얼마나 진행됐답니까?”
“그건 워낙 기밀 유지랑 보안이 삼엄해서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솔리드스타RC만 해도 네뷸라 케미컬에서 그래핀 배터리라는 목표를 거의 절반 이상 이루었다는 게 업계 평가입니다.”
“흠…… 본부장님, 그럼 우리 대한화학과 기술격차는 어느 정도입니까?”
“20년…… 아니, 30년 그 이상입니다.”
“으음…….”
한동준 부회장이 침음했다.
네뷸라 케미컬과 대한화학의 격차가 그 정도라고?
솔직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다행히 이어진 보고에서 그는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솔리드스타로 벌어들인 돈을 다른 산업에 쏟아붓고 있는데, 그게 좀 애매합니다. 최근 인수한 정명섬유, 지금은 네뷸라 파이버가 된 섬유산업에서는 그래핀 섬유 개발 착수했고, 무엇보다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에서는 그래핀 반도체를 만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사 봤습니다. 그래핀 반도체라…… 그나마 요놈들이 이번엔 드디어 삽질하고 있더군요.”
“예. 아무래도 그래핀 반도체가 워낙 허황된 이야기라…… 굉장한 손해를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부장의 맞장구를 들으며 한동준 부회장이 웃었다.
사실 그가 네뷸라, 특히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동향에 대해 신경 쓴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솔리드스타를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될까 봐 궁금해서였다.
전무후무한 전고체배터리, 아니 전 세계 어디를 뒤져 봐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배터리를 탑재한 스마트폰이라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테니까.
정우와의 거래로 스마트폰 사업부를 정리하긴 했지만, 경쟁자가 잘되는 건 꼴 보기 싫었기에 제일 먼저 확인한 건데, 의외로 네뷸라는 애먼 데 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상대가 열심히 땅 파면 좋죠. 알겠습니다. 그럼 이 기회에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되겠네요.”
“스마트홈 말씀이십니까?”
“예.”
한동준 부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겠지만, 제가 과감하게 스마트폰 사업을 정리한 이유는 딱 하나,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애물단지인 스마트폰 사업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 1위 가전제품 시장 자리를 지키고, 상류층을 위한 스마트홈 시스템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한디스플레이와 함께 대한전자를 명실상부 최고의 가전제품 명품 브랜드로 인식시키는 일에 최우선으로 집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는 이게 끝입니까?”
“네. 끝입니다.”
“전략 잘 수립해 주시고, 이번 동향 보고는 매주 진행해 주세요. 수고했어요.”
“예!”
돌아서는 본부장. 그러다 문득 뭐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아참, 미처 보고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부회장님.”
“뭔데요?”
“네뷸라 동향을 파악하다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요. 보고서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재 네뷸라는 다방면에서 사업을 확장 중인데…… 그 사업 방향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뭔데요?”
“바로 그래핀입니다.”
“……그래핀?”
한동준 부회장은 미간을 좁히며 본부장이 제출한 보고서를 다시 천천히 읽어 보았다.
-네뷸라 케미컬: 솔리드스타의 그래핀 배터리화
-네뷸라 파이버: 그래핀 섬유 개발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그래핀 반도체 개발
본부장의 말 대로 코인거래소 사업인 네뷸라 라이프를 제외한 3가지 모두 ‘그래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동준 부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혹시 네뷸라가 그래핀 양산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까?”
“그게……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저도 의문이 들어서 관련 특허를 보유했는지 특허청을 통해 확인해 보았는데, 따로 나온 내용이 없다고 합니다.”
“특허청에서 특허 신청이 계류 중일 가능성은요?”
“만약 그런 경우라면 네뷸라가 작년에 발족되었으니, 그때 특허 신청을 했다고 치면 올해 말 정도는 되어야 결과가 나올 겁니다.”
“음…… 고로 지금은 알 수 없다?”
“최대한 알아보고 있지만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대답에 한동준 부회장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은 은퇴한 대한화학 박민수 부회장 역시 일전에 그에게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네뷸라가 그래핀 양산기술을 가졌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무언가 불안하다.
“……네뷸라가 그래핀 기술 없이 출혈경쟁 중일 가능성은요?”
“충분히 있습니다. 계속 그래핀 관련 기술들을 개발하는 거로 보아 업계에서는 네뷸라가 시장 소비자들을 속인 채 무리한 첨단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현재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그래도 애매하단 말이죠. 솔직히 네뷸라가 그래핀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너무 막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본부장은 진짜 그래핀 기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지금으로써는 파악하기가……. 죄송합니다.”
본부장이 쩔쩔매며 대답하자 한동준 부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할 것까진 아니죠. 뭐, 알겠습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네뷸라가 그래핀 기술을 보유했다는 가정하에 전략과 대책을 세워 주세요.”
“……네뷸라가 그래핀 기술을 보유했다면 그땐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본부장의 소심한 대답에 한동준 부회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후- 그래서 전략을 짜 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라고 월급 드리는 거구요.”
“……앗!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됐구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대비책 잘 세워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이 나가고.
생각에 잠긴 한동준 부회장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최악을 대비하라고 지시하긴 했지만, 정말로 네뷸라가 그래핀 양산기술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네뷸라가 그래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끔찍하겠어.”
대한그룹으로서는 절대 상상하고 싶지 않은 악몽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 * *
대한그룹에서 네뷸라를 견제하기 위해 이런저런 전략을 수립하려 고군분투하는 사이.
정우는 한국에 있던 네뷸라 케미컬 설비 및 공정팀을 직접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갑작스러운 미국 출장에 들뜬 마음 반, 의아함 반인 네뷸라 케미컬 직원들을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및 MIT 클레버리 교수 연구팀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네뷸라 케미컬에서 오신 자동화설비 전문가들입니다. 반도체 설비 제작 경험은 없지만, 그래도 자동화설비에 있어서는 탑급이라고 봐도 되니 클레버리 교수님은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흠…… 반갑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반도체 공정에 대해 알려 드릴 클레버리 교수라고 합니다.”
“오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설비팀을 맡고 있는 김지호라고 합니다.”
“교수님 저는 공정팀장 박재일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각 직원은 금세 서로 친해져 기술 지식과 정보에 대해 공유하기 시작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어 반도체 공정을 어떻게 자동화하고 대형화할지 의논하는 직원들을 보며 정우는 슬며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기다리던 강철준 팀장이 그의 옆에 따라붙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진짜 고생은 직원들이 하는 거죠.”
“그래도 대표님이 아니면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이 되겠습니까. 대표님은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강 팀장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들을 보고 있는데 어찌 놀랍지 않으랴.
하지만 그의 감탄에 정우는 손사래를 쳤다.
“에이- 전혀 아니에요. 그냥 저는 진짜 일반인일 뿐입니다. 솔직히 반도체라는 것도 수박 겉핥기로만 알지, 자세한 공정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거든요.”
“……정말입니까? 그때 클레버리 교수와 말씀을 잘 나누시던데.”
“그거야 클레버리 교수가 저를 배려해 쉽게 내용을 풀어줘서 그렇지, 전문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어림도 없어요.”
“아…….”
“그런데 신기하지 않아요? 이렇게 반도체에 문외한인 제가 반도체를, 그것도 그래핀 반도체를 만든다는 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따로 노하우라도 있는 겁니까?”
강철준 팀장의 의문에 정우가 씨익 웃었다.
“궁금하죠? 알려 드릴까요? 제 노하우.”
“알려 주십시오.”
“뭐…… 간단해요. 사람. 사람이 제 노하우입니다.”
“……사람이요?”
“예. 사실 저 개인만 보면 그냥 돈만 많은 일반인 그 자체잖아요? 재능도 그다지 많지 않고요. 그래서 전 제 부족한 점을 다른 사람들로 메꾸는 편이에요.”
“……아! 용병술 같은 겁니까?”
“하하, 비슷할 겁니다. 그래핀을 모르면 그래핀 전문가를 데려오고, 경영을 모르면 경영 전문가를 데려오고, 반도체를 모르면 반도체 전문가를 데려오고…… 무슨 뜻인지 알겠죠?”
“이해했습니다.”
“아, 따지고 보면 강 팀장님의 경호팀을 고용한 것도 제 노하우의 결과입니다. 제가 힘도 약하고 경호도 잘 모르니까 강철준 팀장님과 팀원들을 고용한 거거든요.”
정우가 알려 준 노하우에 강철준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노하우는 별것 아니었다.
“근데 듣고 보니 그것도 대표님의 재능 같습니다만.”
“예? 재능이요?”
“적재적소에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용병술과 리더십. 그건 이쪽 세계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덕목 중 하나거든요.”
말하던 강철준이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경호 중인 로버트가 보였다.
“사실 로버트 저놈이 저보다 무력은 훨씬 셀 겁니다.”
“로버트 씨가요? 딸 로나도 있어서 가정적인 남자일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쟤가 결혼해서 그렇지,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미친놈이었거든요. 일대일로는 웬만한 요원은 다 찜 쪄먹는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워후…… 대단하네요. 그런데 그건 왜요?”
“그런데 로버트가 아니라 제가 우리 팀의 리더인 게 의아하지 않습니까?”
“……아!”
강철준의 말에 정우가 손뼉을 딱 쳤다.
“무력뿐만 아니라 리더십이나 용병술이 강 팀장님이 더 뛰어났다?”
“예.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우리 팀원 중에서 그나마 육각형 스탯을 보유한 게 접니다. 제일 무난하다는 것.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다른 팀원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팀원들 역시 잘 따른다는 것. 그런 얄팍한 리더십이 그나마 팀원들보다 나았기 때문에 제가 팀장을 맡은 거죠.”
“하하, 겸손하시네요. 제가 들었는데 팀장님 예전에 별명이 클루드라고 하시던데요? 그 불사신이라던가. 그런 코드네임 붙었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명예이자, 팀장님이 강하다는 증거라던데.”
“……누가 그럽니까? 또 떠벌이 피터 자식입니까?”
“……하하.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미팅이 몇 시라고 했죠?”
어색하게 웃으며 정우가 화제를 돌리자 강철준이 기계처럼 대답했다.
“록히드 마틴과의 미팅은 18시입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어이구……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바로 가죠.”
이윽고 두 사람을 태운 벤틀리가 MIT 공대를 빠져나갔고, 그 뒤를 경호팀 차량이 뒤따랐다.
* * *
북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를 떠난 정우는 미국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해 뉴욕으로 향했다.
월스트리트가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고 소문난 뉴욕.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도시라고 봐도 무방한 그 도시의 도로를 따라 달리는 정우는 기분이 묘해졌다.
“……와, 도로에 온통 테슬라 차네요.”
“그러게요.”
“그것도 다 모델S-SP네…… 하나, 둘, 셋, 넷…… 와 대체 몇 대야?”
그 이유는 바로 도로에 눈에 띄게 테슬라의 모델S-SP 전기차가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나다니는 차 10대 중 2~3대는 모델S-SP일 정도로 도로는 온통 테슬라 차로 가득했다.
“최근에 탁 본부장님 통해서 기가테네시 공장 생산라인 가동이 상당히 많이 진척되었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사실 이 부분은 기가테네시 생산량 증가뿐만 아니라, 솔리드스타RC 개발 이후 확실히 배터리 생산성 자체가 좋아진 점도 있었다.
솔리드스타에서 솔리드스타RC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고체전해질 원자재 확보가 수월해진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비싼 전해액 중 일부가 그래핀으로 대체되었기에 생산단가가 줄어들고 생산성이 좋아진 것.
덕분에 솔리드스타 생산에 탄력이 붙었고, 이는 미국시장에서 솔리드스타를 거의 독점 중인 테슬라의 전기차 생산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감탄하는 정우를 보며 강 팀장이 운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 테슬라 차가 인기가 많다더군요. 그리고 여기가 핫플레이스인 뉴욕인 점도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뉴욕이네요.”
“아 참, 피터가 대표님께 테슬라 차 빨리 출고할 수 없냐고 물어보던데…… 대표님 혹시 가능할까요?”
강철준 팀장이 머뭇거리며 묻자 정우가 피식 웃었다.
저 딱딱한 전투기계가 조심스레 부탁하는 모습이 왠지 귀여웠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 정도야 무조건 가능하죠. 제가 테슬라 쪽에 문의 한번 넣어 볼게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할 게 있나요. 우리 경호팀도 가족인데, 이 정도 부탁은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다 온 것 같은데요?”
“예. 저기가 트럼프 타워입니다.”
트럼프 인터네셔널 호텔&타워.
그곳이 오늘 록히드마틴 대표와 미팅이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미팅 장소인 트럼프 타워를 보며 정우가 투덜거렸다.
“지난번에 F-35였나요? 트럼프가 록히드마틴한테 가격 낮추라고 압박 심하게 넣어서 사이가 안 좋은 줄 알았는데, 미팅 장소는 록히드마틴 본사인 베데스다주도 아니고 뉴욕의 트럼프 타워라…….”
“부자들의 마음을 저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 도착했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문 열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강철준 팀장의 경호 하에 정우는 트럼프 타워로 발을 내디뎠다.
‘군수업체 록히드마틴 CEO와의 미팅이라.’
록히드마틴 CEO가 솔리드스타와 이클립스 관련하여 미팅을 원한다고 들었다.
사실 이 부분은 정우가 거절하기 어려운 미팅이었다.
아무래도 최근에 그래핀 반도체와 관련하여 록히드마틴 측에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작교 역할을 해 준 덕분에 DARPA와 연결될 수 있었고, 그들 덕분에 결과적으로 클레버리 교수를 설득할 수 있었으니, 정우로서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록히드마틴 대표의 미팅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찾아온 뉴욕.
정우는 마침내 록히드마틴의 CEO 매릴린 휴슨과 마주하게 되었다.
군수업체 대표답게 남자다운 군인상의 대표가 나올 것 같았지만, 록히드마틴의 CEO는 60대의 여자였다.
휴슨 대표가 온화한 미소와 함께 정우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어서 와요, 미스터 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스 휴슨.”
미국식 인사로 얼떨결에 그녀와 가볍게 포옹한 정우는 직감했다.
호의적인 그녀의 태도에 오늘 미팅은 수월하게 잘 풀릴 것 같다고.
그리고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앞으로 5년간 저희 록히드마틴에 솔리드스타 100GWh 분량의 공급을 원합니다.”
“……예?”
……10GWh도 아니고, 100GWh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