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우리가 선택해야 할 건 명확합니다
솔리드스타 금수조치라니.
정우가 당황해할 때 김 비서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확인하고 저희도 당황스러워서… 일단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바로 보고드린 겁니다.”
“흠… 금수조치가 미국에만 취해진 건가요?”
“일단은 그런 것 같습니다.”
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보고서를 다시 꼼꼼히 확인했다.
다행히 금수조치는 미국 내에서만 적용되는 조치로, 국내와는 연관이 없었다.
즉, 한국은 금수조치 된 게 아닌 걸로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해야 했다.
“김 비서님, 지금 산업통상부에 문의해주세요. 국내에도 솔리드스타 금수조치가 취해진 게 있는지를요.”
“예.”
“그리고 미국 상무부에도 연락해주세요. 아니다, 그건 제가 탁 본부장님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지사 대표 스카웃 건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른 일 제쳐두고 금수조치 부분부터 최우선으로 알아봐 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가 황급히 대표실을 나섰고, 남겨진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취해진 금수조치. 도대체 미국은 무슨 생각인 걸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탁세훈 본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표님, 솔리드스타 금수품목 지정과 관련하여 미국 정부에 확인했습니다.
“오, 빠르네요. 거기서 뭐래요? 왜 갑자기 금수품목으로 지정했답니까?”
-미국에 상무부에 메일로 문의를 넣고 답변을 기다렸더니, 공문으로 답장이 왔는데…… 군 기술유출 우려 및 군 경쟁력 약화 우려로 솔리드스타에 대해서 중국에 대해 금수조치가 내려졌다고 하네요.
“군 기술유출요?”
-예. 아무래도 얼마 전에 진행된 록히드마틴과 계약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 같습니다.
탁세훈 본부장의 분석에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록히드마틴은 명분일 뿐이에요.”
-……명분이요?
정우는 얼마 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특히 그가 했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솔리드스타를 수출한다……? 흠… 뭐, 솔리드스타 건은 우리 쪽이 조치하면 될 거고…… 알겠어요.」
알아서 하겠다고 하던, 살짝 의문이 생기게 했던 트럼프의 의미심장한 그 한마디.
이제야 그 문장의 의미를 깨달았다.
“……애초에 미국은 솔리드스타를 중국에 넘겨줄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록히드마틴과의 계약과 군 기술유출 문제…… 그건 미국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구요.”
-아…….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솔리드스타를 공급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솔리드스타를 금수품목으로 지정하는 초강수를 내린 것이다.
-잠깐만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지원금 주기로 한 것도 지금 내려진 금수조치를 무마하기 위함이었던 걸로 보이네요?
“아마도 위로금 명목이겠죠. 미국에서도 미국 나름대로 대중 무역전쟁 압박 카드로 네뷸라를 활용하기 위해서 금수조치를 내린 것 같은데…… 으흠.”
-그래도 미국에만 금수품목으로 지정된 거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뭐가요?”
-금수조치 말입니다. 어차피 미국에서만 내려진 조치고, 한국과는 상관이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러니 금수조치는 됐으나 미국 내 생산품이 아니면 수출 가능하니까 그냥 이대로 한국에 솔리드스타 공장을 지어서 중국에 수출하면 될 것 같은데요?
“아니요.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생각 같아요. 미국의 금수조치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미국정부는 솔리드스타가 중국에 넘어가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중국에 넘긴다? 미국과 척을 지는 행동입니다.”
정우의 주장에 탁 본부장도 수긍했다.
-흠…… 그 의견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 딜레마에 빠진 거나 마찬가진데요? 중국에 솔리드스타를 공급하면 미국과 척을 지고, 공급을 안 하면 중국과 척을 진다라……. 거참, 골치 아프게 생겼네.
정우가 인정하는 유능한 인재, 탁세훈 본부장도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은 답이 보이지 않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복잡한 형국이다.
자칫하면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딜레마긴 딜레만데 답이 나온 딜레마죠.”
-예? 답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건 명확합니다. 바로 미국이에요.”
-네? 그럼 중국과 척을 지자는 겁니까?
“예.”
정우가 담담히 대답했다.
사실 그가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곧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작되면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세컨더리 보이콧이요?
바로, 세컨더리 보이콧 때문이었다.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란 제재하려는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과 은행, 정부 등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너 쟤랑 놀지 마’라고 제재국가를 국제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것이 세컨더리 보이콧인 셈이다.
그런데 멀지 않은 2020년 중순에 미국은 중국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를 취한다. 즉, 원래는 미국 내에만 적용되던 미중무역 제재가 중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사기업과 은행, 정부까지도 확장되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미중무역전쟁은 코로나가 터진 이후에도 분쟁이 더 심해지지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굳이 미국이랑 척을 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그렇게 쉽게 진행할까요?
“상대는 미국, 그것도 트럼프입니다. 그의 평소 직설적이고 저돌적인 성격을 생각하면 세컨더리 보이콧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그렇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앞으로 미중무역전쟁은 더욱 심화될 거예요. 그리고 그 미중무역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미국입니다. 굳이 미국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표님. 아쉽지 않으세요? 중국 수출로 인해 막대한 이득이 창출될 예정인데, 포기하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직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굳이 겁먹고 중국시장을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미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중국도 한 방이 있지 않습니까? 추후 시간이 지나면 미중무역전쟁이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표님. 굳이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게 어떠신가요?
“줄타기라면, 중립을 지키자는 겁니까?”
-예. 굳이 확답을 주지 않고 시간을 끄는 거죠.
탁세훈 본부장의 의견도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정우로서는, 미국이 정답이라는 걸 아는 그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언이었다.
“아뇨.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솔리드스타를 중국에 수출하는 건 없던 거로 하죠.”
-음…… 중국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분명 그러겠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향후 다가올 국제 정세를 거스르지 않으려면 이게 최선입니다.”
탁세훈의 우려에도 정우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를 설득하고는 싶지만, 자신이 회귀해서 미래를 알기에 세컨더리 보이콧이 반드시 나올 거라는 걸 설명하기엔 애매했다.
다행히 탁 본부장은 이내 수긍했다.
-하긴 대표님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셨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의견대로 하시죠.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당분간 힘들어지겠는데요? 사방이 암초투성이라 이거 배에 상처 안 생기게 하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도움 좀 많이 주세요.”
-그건 물론이죠. 1등 조타수의 위엄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뭐라구요? 하하하.”
탁세훈의 농담과 함께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네뷸라라는 배를 운전하는 선장으로서,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조금만 실수해도 바로 암초에 걸리고 말 테니까.
‘……이거 이미 고래 싸움 낀 새우 신센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껴서 곤란하게 되었다.
자칫하다간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터.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우려는 곧 현실화되었다.
* * *
“대표님, 주한중국대사관에서 미팅을 요청해 왔습니다.”
“주한중국대사관이요?”
“예. 중국대사가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김 비서의 보고에 정우는 드디어 올 게 왔음을 깨달았다.
“스케줄 잡아 주세요. 만나 봐야겠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대가 언제죠?”
“오늘 저녁 가능합니다.”
“주한중국대사관에 확인해서 그때로 잡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날 저녁, 정우는 주한중국대사와 만남을 가졌다.
“이정우 대표, 반갑습니다. 주한중국대사 하오팅옌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정웁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하고는 자리에 착석했다.
하오팅옌 중국대사는 머리가 벗겨진 노년의 인물이었는데, 전에 만난 공산당 간부와 달리 예의를 상당히 갖추었기에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첫인상만 그랬을 뿐, 그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정우 대표를 만나자고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솔리드스타 때문입니까?”
“이미 짐작하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상무부 통해서 기가상하이에 솔리드스타를 공급해 주기로 약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리드스타 공장 확보와 관련된 소식이 없더군요. 현재 사업을 진행 중인 것인지 확인차 만나 뵙자고 한 것입니다.”
하오팅옌 중국대사의 말에 정우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연기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사업이란 게 여러 가지 고려할 게 많지 않습니까? 아직 공장 부지를 선정하지 못해서 좀 늦어지고 있는데,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장 부지 선정이 늦어진다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사업을 확장해 온 네뷸라의 이정우 대표의 지난 행보를 생각하자면 의문이 드는군요.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이번 미국에서 내려진 솔리드스타 금수조치 때문에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하오팅옌의 날카로운 눈빛이 정우를 꿰뚫었다.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솔리드스타 금수조치가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희가 중국 측에 솔리드스타 수출하기로 한 약속을 철회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고민이 길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흠…… 이해합니다. 하지만 생각 잘하셔야 할 겁니다.”
하오팅옌 중국대사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려 올라갔다.
“미국은 이역만리 먼 곳에 떨어져 있고,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은 한국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요.”
“협박입니까?”
“협박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현명하게 판단하라는 겁니다. 진정한 대국大國이 어디인지를 말이지요.”
대국大國이라는 말에 정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 말에는 한국은 소국이라는 의미가 은연중 내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 어이없는 감정을 티 내지 않았다. 여기서 화내면 하수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한 채 담담히 대답했다.
“양측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보죠.”
“길을 모색하다니…… 아니, 뭐가 어렵다고 그럽니까? 그냥 공장 짓고 공급하면 되는 문제 아닙니까.”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자세한 건 회의해 보고 결과 나오는 대로 연락 드리죠.”
“흠…… 자꾸 안타까운 선택을 하려는 것 같은데,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부디 선택 잘하시길 바랍니다. 만에 하나 미련한 선택을 한다면…… 여기까지 말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멘트는 협박 같은데요?”
“협박이라뇨. 당연한 걸 말했을 뿐입니다. 조언이니 잘 받아들이시길.”
하오팅옌 대사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떴다.
남겨진 정우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지랄하네 진짜.”
이미 여기 오기 전부터 중국과 가까이할 생각은 없었다. 기술유출 우려도 그렇고, 향후 정세는 미국에 유리하게 흘러가니까.
하지만 중국대사를 만나고 보니 더더욱 확신이 든다.
중국과는 함께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어차피 시간은 우리 편이다.’
미중무역전쟁이 고조될수록 중국은 힘들어질 테고, 그러면 일개 기업인 네뷸라를 신경 쓰기 어려워질 터.
어서 CHIP4 결성과 세컨더리 보이콧이 시작되길 바라는 한편, 마냥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협박을 한다는 건…… 중국이 우리를 압박하려는 건가.’
대한민국은 엄연한 타국이니 중국에서 취할 수 있는 카드는 딱 하나다.
바로, 한국 정부를 움직이는 것.
그렇다면 한국 정부를 움직여서 네뷸라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세무조사.”
드라마나 소설에서 흔히들 나오곤 하는 기업 괴롭히기의 대명사인 세무조사.
아마도 그의 판단이 맞다면 곧 세무조사가 시작될 터.
“……미리 대비해야겠어.”
과연 그의 생각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으니,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정우는 다가올 위협에 대비하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 * *
겉으로는 중립적인 스탠스를 취한 채 중국 측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중국 측도 바보는 아닌 걸까.
네뷸라가 중국 노선을 버린 것을 깨달은 건지 1주 정도 지났을 무렵, 그들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그 첫 신호탄은 정우의 예상대로 ‘세무조사’였다.
“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자자, 모두 하시던 업무 중지하시고, 키보드와 마우스에서 손 떼 주십시오. 자료를 은폐하거나 파기 시도할 시 증거인멸로 간주, 「조세범처벌절차법」 제7조 및 동법 시행령 제6조에 의거하여 처벌받으실 수 있으니 최대한 협조 바랍니다.”
네뷸라 케미컬을 비롯한 네뷸라 파이버, 네뷸라 일렉트로닉스 및 네뷸라 코퍼레이션 전사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치더니 닥치는 대로 서류와 하드디스크, 서버를 털어 갔다.
당일에 사전공지를 하자마자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로 인해 전사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정우는 즉시 대응팀을 꾸려 국세청에 항의했다.
“세무조사 하기 전에 15일 전에 사전 공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일에 세무조사 통보하고 바로 세무조사를 시작하는 게 어딨습니까?”
“네뷸라에서 탈세를 하고 있다는 긴급 첩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탈세제보조사의 경우 세무조사에 대한 사전고지 없이도 즉시 세무조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누굽니까? 허위로 탈세제보한 인물이?”
“제보자의 신원은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상당히 당황스럽군요. 허위사실제보로 저희 네뷸라 코퍼레이션이 최소 영업 기간 2일 정도 운영이 중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만약 탈세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이 보상을 누가 할 겁니까?”
“……그건 추후 세무조사가 끝나고 판단해야 할 문제로 보이네요.”
“좋습니다. 김은총 씨라고 하셨죠? 김은총 담당자님이 비협조적으로 나왔다는 점 똑똑히 기억해 두겠습니다.”
“…….”
세무조사 대응팀을 통해 국세청에 압박을 가하여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 측의 공격은 시작일 뿐이었다.
“……대표님, 국회에서 네뷸라 청문회를 연답니다.”
“예? 청문회요?”
“……예. 이번 세무조사 관련하여 청문회를 진행한다는데, 미리 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거참.”
세무조사에 이어 청문회라니.
이거 인터뷰를 하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하게 공중파에 얼굴을 팔리게 생겼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기에 정우는 담담했다.
“알겠어요. 가죠 뭐.”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죄를 지어야 걱정이 되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고, 저는 떳떳합니다.”
“……저도 믿습니다. 그런데 영 불안하네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김 비서가 직접적으로 불안하다고 얘기하다니.
그만큼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의미였다.
이 혼란을 빨리 수습해야 할 터.
정우가 물었다.
“걱정 마세요. 그보다 김 비서님, 따로 연락 온 거 없죠?”
“어디에서 말씀이십니까?”
“미국이요.”
“미국이라면…… 네. 따로 연락 온 건 없습니다.”
“흠…… 알겠어요. 청문회는 언제라고요?”
“이틀 뒤입니다.”
“이틀 뒤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다니.
“……트럼프 이 양반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 * *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인해 네뷸라의 업무가 거의 마비 상태에 놓였고, 이 소식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네뷸라 이정우 대표, 수조원대 탈세 의혹> [네뷸라 코인거래소의 존재 이유는 탈세를 위함이다?> [국세청, 라이프코인 개발자들 상대로 16시간 동안 밤샘 조사 진행해>언론에서는 마치 네뷸라가 탈세기업인 것처럼 기정사실화하여 보도했다.
뉴스에 대한 반응은 반으로 엇갈렸다.
─────────
-ㅋㅋㅋㅋㅋㅋ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정우 가나요~
-아니 얼마나 해처먹었길래 수백억도 아니고 수조원대야?
└그러게 ㄷㄷ
-기레기 새끼들 또 하나 건수 잡았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거 보소 ㅋㅋㅋㅋㅋ ㅈㄴ 역겹누
-솔까 네뷸라면 올해까지는 면세해줘야 함 ㅇㅈ?
└ㄹㅇ 국위선양 클라스 생각하면 면세해주고 키워줘도 모자랄 판에 탈세의혹으로 세무조사 ㅋㅋㅋㅋㅋㅋ 우리나라 정부 클라스 오지고 지리고 레릿고~
-탈세한 건 맞는 듯
└아니라는 말도 있던데?
└└아니어도 이미 늦었음 ㅋㅋㅋㅋ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기업 읍다~
-근데 세무조사 ㅈㄴ 뜬금없지 않음?
└그거 나 국세청에 아는 사람 있는데 지금 위에서 압박 내려와서 표적수사 들어갔다는 얘기 있더라
└└ㄹㅇ?
└└└나 아는 사람 국세청장인데 아니래
└└└└나 아는 사람 대통령인데 맞대
└└└└└나 아는 사람 니 엄마인데 커뮤니티 그만하고 밥 먹으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네뷸라의 탈세의혹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부류와, 정부에서 잘나가는 기업을 잘못 수사하고 있다는 부류, 이 두 가지였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분위기가 좀 묘했다.
보통 탈세의혹이 터지면 기업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네뷸라의 경우에는 옹호하는 여론이 더 컸던 것이다.
오죽하면 길거리에서는 소규모로 시위까지 열릴 지경이었다.
-무능력한 구병완 정부는 네뷸라 표적수사 중단하라! 중단하라!
-국위선양 혁신기업 네뷸라에 세무조사 웬 말이냐!
-의미 없는 표적 수사, 국세청장 조사하라! 조사하라!
소위 말하는 국뽕 유튜버들을 주축으로 네뷸라의 팬들 수백 명의 시민이 광화문에 모여서 정부와 국세청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국세청의 행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국세청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강도 높은 시위를 이어 나갔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드디어 청문회 날이 밝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정우는 국회 청문회장에 자리했다.
사방을 둘러싼 카메라들로부터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주변에 가득한 늙은 노괴들, 아니 국회의원들의 이글거리는 시선들까지.
절로 긴장하게 만드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정우는 심호흡과 함께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난 잘못한 게 없어.’
그저 평소대로,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대답한다.
청문회에 대비하여 김 비서가 예상 질의 문항지를 만들어 주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상 문항일 뿐.
자기 자신, 스스로를 믿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청문회에 임했고, 이내 강도 높은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이정우 대표, 가상화폐라는 걸로 수조 원대의 자금을 탈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로 가상화폐로 거래를 한 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럼, 탈세의혹도 사실이겠네요?”
“아니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가상화폐 거래를 했다면서요? 지금 어른들 앞에서 오리발을 내미는 겁니까? 좋은 말 할 때 이실직고 하세요!”
중년의 김병민 국회의원이 소리쳤다.
정우는 코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되물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김병민 국회의원께서는 현재 가상화폐 세법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주식과 비슷한 거 아닙니까?”
“말씀하신 부분에 답이 있네요. 예. 주식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주식과 비슷할 뿐 주식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가상화폐 및 암호화폐는 증권거래법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현재 가상화폐 매매로 인한 세금은 징수되지 않고 있죠. 애초에 가상화폐 거래로 탈세를 했다는 전제부터가 잘못되었습니다.”
“…….”
정우의 말에 질문을 던진 국회의원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가떨어진 김병민 국회의원 대신 옆에 있던 다른 국회의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다음 질문입니다. 네뷸라 케미컬의 작년 매출이…….”
“8조 원입니다.”
“예, 그 8조 원 중에서 세금을 거의 안 냈던데, 탈세 아닙니까?”
“매출은 8조 원이지만, 공장 확장과 재료 구매 비용 등으로 실질적인 수익은 적자입니다. 때문에 세금에서 상당히 혜택을 받았고, 이 부분은 작년 연말정산 때 세무팀을 통하여 성실히 납부하였습니다.”
“미국 에너지부DOE 지원사업으로 25억 달러를 받았던데, 이 부분에 대한 세금처리는 어떻게 한 겁니까?”
“말 그대로 한국이 아닌 미국이잖아요? 미국에 냈습니다.”
술술 대답하는 정우.
그렇게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 * *
청문회가 한창이던 그 시각.
구병완 대통령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온 전화였다.
구병완 본인 역시 대통령이지만, 미국 대통령은 클라스가 다르다. 구병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락에 반색하며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미스터 구, 오랜만입니다. 나 트럼프요.
“오, 프레지던트 트럼프. 오랜만입니다. 어쩐 일로 연락을 주신 겁니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네뷸라에 대한 세무조사, 멈춰 주십시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구병완 대통령 역시 네뷸라의 세무조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시작된 거였던가.’
당장만 해도 네뷸라 이정우 대표를 불러서 청문회 중이지 않던가.
그것까지는 구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저 중국 쪽의 입장을 생각해서 세무조사 정도만 움직이려던 것이 원안.
‘당 내외 친중 세력들이 움직였던 것 같은데.’
중국 쪽 자금을 받는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존재했고, 그 숫자도 꽤 많았다.
구 대통령은 본인조차도 몰랐던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내심 한숨까지 내쉬었다.
하지만 시치미 떼고 모르는 척 물었는데, 이게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었다.
-계속 모른 척할 거요?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요? 어느 쪽이든 마음에 안 드는데?
“……알긴 압니다. 하지만 프레지던트 트럼프, 당신도 알다시피 이번 행사는 중국 정부가 관여하고 있습니다. 나로서도 쉽게 움직이기 어렵단 의미입니다.”
-중국 놈들이라면 이제 신경 쓸 필요 없을 거요.
“예?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쓴단 말입니까?”
-곧 지들 앞가림하기도 바빠질 텐데, 한국을 신경 쓸 수나 있겠어요?
“자세히 좀 얘기해 주시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흠, 모를 수도 있지. 좋아요. 내가 말해 주지. 미스터 구, 혹시 세컨더리 보이콧이라고 들어 봤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