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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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USDT-Long(Cross 2.8x)] [Quantity: 5,000,000ETH] [Entry Price: 10.17] [Mark Price: 15.35] [Liq. Price: 2.03] [Value: 27,345,396.01USD(+5424.32%)]──────────
하루만에 50%나 급등한 이더리움. 그 과정에서 10.5달러에 걸어둔 트리거 주문이 모두 체결되면서 정우의 이더리움 계약 수량은 무려 5백만 개로 늘어났고 투입자금 50만 달러 대비 레버리지는 100배에 도달했다. 물론 이는 투입자금에 비해서였고 벌어들인 수익 때문에 증거금대비 레버리지는 2.8배 수준으로 확 줄어든 상태였다.
평균 10.17달러에 구매한 5백만 개의 이더리움은 달러로 따지면 약 5천만 달러 수준. 그런데 하루만에 50%나 급등하면서 정우는 하룻밤 사이에 2,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다. 한화로 따지면 250억 원 가량이었고 투입자본금 50만 달러 대비 수익률은 무려 5,400%에 달했다.
그야말로 조작이 아닐지 의심되는 미친 숫자였다.
‘지금 익절해도 건물주는 따놓은 당상이네.’
순간 이익실현의 유혹이 들 정도의 거금이다.
하지만 정우는 그 유혹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직 2월 중순이고, 이더리움은 겨우 15불에 도달했을 뿐이다.
‘1,400불까지 절대 안 팔지.’
미래를 아는데 그 전에 팔면 개병신호구다.
그렇게 스스로 세뇌를 걸면서 매도의 유혹을 참던 그때.
“… 일찍 왔네.”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안예슬이 와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오늘 이혼을 마무리하기 위해 가정법원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
안예슬은 이혼하러 온 마당에 한껏 꾸미고 온 모습이다. 법원 앞에서 그녀를 보니 무언가 데자뷔를 느꼈다. 왠지 한 달 전에도 이런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거든.”
“…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흥.”
“피차 같은 마음이니 잘됐네. 들어가자.”
두 사람은 법원에 출석을 마치고 협의이혼의사확인서등본을 교부받았다.
종이 쪼가리 하나가 이혼을 확인해준다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이제 진짜 님이었던 안예슬은 남이 된 것이다.
“이혼 신고도 마무리 하자.”
“내가 왜. 귀찮으니까 나중에 해.”
“신고하고 재산분할포기각서 쓰기로 했잖아. 싫으면 협의 없던 걸로 하고 위자료 청구 들어간다?”
“… 아이씨.”
안예슬을 이끌고 내친김에 구청까지 가서 이혼 신고까지 마치고 재산분할권 포기 각서도 작성하였다. 이혼 이전에 재산분할권을 포기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이혼 효력이 발생한 이후에는 절대적이다. 어차피 전와이프가 자신의 재산형성에 기여한 바가 없어서 재산분할을 청구해도 의미가 없지만, 혹시나 모르니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건 것이다.
그렇게 각서 작성까지 마치고 나니 모든 합의는 마무리되었다.
드디어 서로에게 절대로 간섭할 수 없는 완벽한 남남이 된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에 마지막 선의를 베풀었다.
“회사 갈 거지? 태워다줄게.”
“… 남이사 가든 말든. 그리고 앞으로 회사에서 아는 척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솔직히 불편하지 않아? 생각이 있으면 이제 회사 좀 옮기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잘 다니던 회사를 이직을 해. 그리고 난 아는 척 한 적 없다? 오히려 네가 문제지.”
“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지랄이야!”
“회사에 소문 내서 나 도박하고 다니는 미친놈으로 만든 거 너잖아.”
“누가 그래? 내가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거 봤어? 증거 있냐고!”
“그걸 꼭 증거가 있어야만 아냐. 하, 됐다. 어차피 끝난 마당에 더 얘기해서 뭐하냐. 알아서 잘 가라.”
괜히 선의를 베풀려다가 똥만 밟았다.
안예슬을 두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먼지가 쌓인 그랜저를 타고 주차장을 나섰는데 구청에서 얼마 안 떨어진 사거리 카페 앞에 안예슬이 서 있었다.
택시라도 기다리는 건가.
왠지 무시하고 가려니 살짝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뭐 한번 태워주는 게 뭐 대수라고.
슬쩍 안예슬의 앞으로 가 차를 세우고는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고집부리지 말고 타. 태워다 줄게.”
“필요 없거든? 그딴 똥차 가지고 유세는.”
“뭐?”
“됐으니까 귀찮게 하지 말라고! 무슨 내가 남자가 지밖에 없는 줄 알아! 어, 왔다. 찬용 씨~”
안예슬이 호의를 개무시하던 그때, 그들의 앞쪽으로 차 한 대가 오더니 정우의 차 앞에 정차했다.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꽤 가격이 나가는 외국 브랜드의 중형세단이었는데 그 차에서 훤칠한 얼굴의 남자가 내렸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정우가 기억을 더듬을 때 남자가 안예슬에게 다가갔다.
“예슬 씨 기다렸죠? 미안해요 늦어서.”
“얼마 안 기다렸어요. 가요 찬용 씨.”
자연스럽게 안예슬의 허리에 두르는 팔을 보아하니 정우와 이혼 수속을 밟는 그 잠깐 사이에 두 사람은 깊은 관계로 발전한 모양이다.
“근데 저 사람 누구예요? 누구길래 무슨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나누고 있던 거예요?”
“… 아무것도 아니에요. 빨리 가요.”
“찝쩍거리는 놈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가요가요.”
“잠깐만요. 내가 주의 좀 주고 올 테니까.”
“그런 거 아니라니까… 찬용 씨, 찬용 씨!”
서둘러 남자를 데리고 차에 타려는 안예슬이었지만 남자는 정우가 수상하다는 듯한 기어코 정우가 있는 차 조수석으로 걸어왔다.
창문을 내리라는 손짓에 정우가 쓴웃음과 함께 창문을 내렸다.
“누구세요? 누구신데 왜 우리 예슬 씨한테 찝쩍거립니까?”
“… 헌팅남?”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한 그제야 정우는 저 남자가 누군지 알아챘다.
지난번에 강남 카페에서 안예슬에게 번호를 따갔던 그 헌팅남이 분명했다.
그때 만나서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건가?
“… 끼리끼리 잘 만났네.”
“뭐요?”
귀도 참 밝다. 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남자가 성난 얼굴로 운전석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방어적으로 운전석 쪽 창문을 슬쩍 올렸다.
“아저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 뭐? 끼리끼리?”
“남의 여자한테 찝쩍거리는 꼬라지를 보니 그쪽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서.”
“뭐?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야, 내려! 차 문 열라고!”
헌팅남은 열이 뻗쳤는지 차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연히 정우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대신 그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워워, 진정하세요. 제가 말이 좀 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쪽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데 제가 욱했네요.”
“어물쩡 말 돌릴 생각인가 본데 그딴 수작 안 통….”
“근데 저기요. 오늘 예슬이가 여기에는 왜 온 줄 알고 계세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던걸까. 찬용이란 남자는 당황한 듯 화를 내던 걸 멈칫했다.
“… 여기라뇨?”
“딱 보니 모르셨나 보네. 저기 구청 보이죠? 예슬이 쟤 오늘 저랑 저기 가서 이혼 신고했는데.”
“… 뭐라구요? 이혼?”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벙찐 헌팅남. 그때 뒤늦게 안예슬이 뛰어왔다.
“찬용 씨 저 사람 이상한 사람이니까 상종하지 말고 빨리 가요.”
“… 예슬 씨 잠깐만요. 아저씨, 방금 뭐라고 했어요? 뭐? 이혼?”
“듣지 말라니까요! 쟤 스토커예요! 정신병자라구요!”
“그건 내가 판단할 테니까 빠져 있으라고!”
“꺄악!”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찬용이 안예슬의 팔을 뿌리쳤다. 그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정우를 향했다.
“자세히 얘기해봐요. 이혼이라니 설마 예슬 씨가 유부녀였다는 겁니까?”
“이런… 진짜 모르셨나보네요. 저희 한 달 동안 이혼숙려기간이었는데.”
“…….”
“그때 강남 카페에서 번호 따셨죠? 그 자리에 예슬이 쟤가 왜 나온 줄 알아요? 저랑 어떻게 이혼할지 얘기하는 자리였어요.”
“… 증거 있어? 당신이 예슬 씨 남편이었다는 증거 있냐고!”
“증거야 많죠.”
정우는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첩 앱을 켰다. 거기엔 그가 미처 지우지 못한 신혼부부의 애틋한 일상이 담긴 사진들이 가득했다.
“… 말도 안 돼…. 예슬 씨가 그럴 리가 없어!”
“이제 보니 찐사랑꾼이시네. 뭐 이걸 보고도 못 믿으신다면 제가 어쩔 수 없는 거죠. 만약 그래도 사랑하겠다면 진심으로 그쪽 응원하겠습니다.”
“…….”
“어이쿠,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바빠서 먼저 갑니다. 그럼 수고하셔요.”
정우는 혼이 나간 듯한 헌팅남을 두고 차를 출발시켰다.
사이드미러로 뒤에 서 있든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허탈하게 서 있는 헌팅남과 악귀처럼 일그러진 안예슬의 얼굴이.
“이! 정! 우! 이 씨발 새끼야아아아아아!!!!!”
처절한 그녀의 절규가 음악처럼 감미롭다.
여유롭게 도로를 질주하며 정우는 한 손을 놀려 스마트폰 사진첩 앱에 남아 있는 안예슬과의 모든 추억들을 삭제했다.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헌팅남 씨.’
나중에 오히려 나를 고마워하게 될 테니.
만약 이렇게 도와줬는데도 계속 만난다면…?
그때는 자신이 알 바가 아니다.
그저 차세대 퐁퐁남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할 뿐.
* * *
선물 매매도 성공하고 이혼도 마무리하고 나니 여유가 찾아왔다. 마음의 짐 하나를 덜어낸 이 홀가분함이란.
일할 때 절로 콧노래가 나왔고 그 불편하던 양규철과 어쩌다 마주쳐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한동안 미소를 짓고 다녔더니 지서현은 궁금한 듯했다.
“… 선배님 무슨 좋은 일 있으신가 봅니다.”
“후후, 그런 일이 있어.”
“코인 잘 되신 겁니까?”
“그것도 그렇고… 아, 내 정신 좀 봐. 서현 씨 코인 지갑 주소 좀 보내줄래? 빌린 거 갚을게.”
“예? 벌써요?”
“어. 대박 났거든.”
지서현에게 빌린 비트코인 100개, 원화로 약 1억 원 가치의 자산은 지난 몇 주간 50배의 수익을 얻어 50억 원으로 불어났다. 지금 당장 이더리움 1억 원어치를 출금해도 전혀 타격이 가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이었다.
“대박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근데 빌려가신 건 급하게 안 돌려주셔도 됩니다.”
착하디 착한, 아니 순진하기 그지없는 지서현의 손사레에 또 다시 흔들린다. 그냥 이대로 1년 내내 비트코인을 빌릴까 하고.
하지만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그녀만 모를 뿐 앞으로 떡상하게 될 코인시장의 이익을, 원래 비트코인을 들고 있었다면 누렸을 지서현의 황금빛 미래를 빼앗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물론 그렇게 따지면 아버지가 빌려주신 돈도 정우가 임의로 운용 중이긴 했지만, 가족은 예외다. 어차피 정우가 잘 되면 부모님도 호강시켜드릴 테니. 원금에 이자를 아주 두둑이 얹어서 갚을 생각이니까.
다만 가족이 아닌 지서현에게 빌린 비트코인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회귀하기 전 전생에서는 퇴사하면서 연락이 끊겨 잘 모르지만, 아마도 투자에 별 관심이 없던 지서현이라면 자신의 코인을 계속 들고 있었을 터. 그렇다면 꼭지점은 아니더라도 어깨나 허리에 팔아서 큰 이득을 취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미래를 빼앗는 게 옳은가.
‘뭐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냥 무시해도 되긴 하지만.’
세상에 몇 안 되는 자신의 편을 상대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긴 싫었다.
뭐, 지금 2700만 불, 한화 약 250억 원으로 불어난 자산에서 1억 원을 덜어낸다고 큰 티가 나지 않기도 했고, 어차피 그녀 돈이니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
여러모로 꽤나 고심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채권자가 돈을 마다하면 쓰나. 그동안 빌려줘서 신경 쓰였을 텐데 괜히 예의 차리지 말고 받아.”
“전혀 신경 안 썼습니다. 그보다는 선배님 사정이 아직 안 좋지 않습니까.”
“대박 났다니까 그러네. 무엇보다 내가 미안하고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까 얼른 코인 입금 주소나 알려줘. 지금 바로 입금해줄게.”
“그래도….”
“아, 빨리! 현기증 날 것 같다고!”
“… 알겠습니다.”
비트코인은 1월 말에 780불까지 떨어졌다가 2월에 접어들어 950불까지 상승하였는데, 이더리움의 급등과 맞물려 1,200불까지 덩달아 올랐다가 1,100불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정우는 비트의 상승률과 이자를 감안하여 가지고 있는 포지션에서 이더리움 7,000개를 팔아 비트코인 110개를 지서현에게 보냈다.
국내거래소에서 자산 확인을 하던 지서현의 눈이 커졌다.
[비트코인(BTC)] [보유수량: 110개] [평가금액: 123,918,133KRW]“어? 선배님 코인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 10개 더 들어왔어요.”
“그건 빌려준 대가로 준 이자니까 부담 갖지 마.”
“그래도 제가 빌려드린 건 겨우 한 달도 안 되었는데 이자치고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쓰읍! 안 줘도 된다니까. 혹시 그거 돌려보내기만 해봐? 나 앞으로 서현 씨랑 말 안 한다?”
“… 알겠습니다. 감사히 잘 쓸게요.”
“나도 고마워. 이번에 서현 씨 덕분에 엄청 큰 도움이 되었었거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게 지금 말하기 좀 그래서 그렇지 조금 정도가 아니야. 대박 중에 초대박이니까.”
“어느정도인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지서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서현 씨가 준 비트코인으로 레버리지를 써서 50억으로 불렸다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50억 원짜리 도움을 받아놓고 겨우 이자 좀 얹어준 걸로는 이 은혜를 다 갚을 순 없겠지.
“말하긴 좀 그렇고… 아무튼 비트코인 있지? 웬만하면 이더리움으로 환전해서 들고 있어 봐.”
“이더리움이요?”
“응. 이더리움으로 갖고 있으면 엄청 좋을 일 생길 거거든.”
“… 알겠습니다. 이더리움으로 환전해야겠네요.”
“좋은 생각이야. 될 수 있으면 팔지도 말고 끝까지 홀딩. 오케이?”
“예. 절대 팔지 않겠습니다.”
“… 아니 그렇다고 절대 팔지 말라는 건 아니고, 돈 급하게 쓸 일 있으면 알아서 팔아서 쓰기도 해야지. 너무 내 말만 너무 믿지 말고 돈 썩히고 그러지는 말라고.”
“예, 알겠습니다.”
지서현의 평소 캐릭터를 보아할 때 절대 팔지 않을 눈치다.
‘내 말만 잘 들으면 큰 복이 될 거다.’
아마도 말을 잘 듣는 부사수라면 행운을 거머쥘 터.
받은 은혜는 10배, 아니 100배로 갚는 정우였다.
“아무튼 이걸로 돈 갚았다? 차용증은 알아서 폐기해줘.”
“예. 근데요, 선배님.”
“음?”
“… 이따 퇴근하시고 뭐하십니까?”
지서현이 우물쭈물 수줍게 물어왔다.
“어? 친구들이랑 약속 있어서 보려고.”
오랜만에, 아니 회귀 후 처음으로 친구들과 볼 생각이었다. 이혼이 마무리되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고, 친구들 덕분에 코인이라는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으니 그 은혜를 갚기도 할 겸 겸사겸사 모이는 자리였다.
하지만 약속 얘기에 지서현의 얼굴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 바쁘시군요. 알겠습니다.”
“갑자기 그건 왜?”
“… 그냥 오늘 금요일이기도 하고 이자도 많이 받았는데 밥이라도 사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이욜- 지서현이 마이 컸네? 받으면 돌려줄 줄도 알고.”
“선배님께 배운 덕분입니다.”
“… 농담한 거야. 내가 가르치긴 무슨, 엄청 갈구기나 했지. 그러고 보니 서현 씨 처음에 나한테 반말하면서 짜증내던 거 기억나네. 진짜 지금 성장한 모습 보면 격세지감이란 말이 딱 떠오른다.”
“… 잊어버리십쇼.”
“솔직히 매크로 돌려놓고 게임하는 건 좀 너무하긴 했… 으악!”
열받은 지서현이 꼬집고 나서야 그제야 놀림을 멈춘 정우였다.
“아오 아파라… 야, 이거 사내 폭행이야. 너 고소한다?”
“… 죄송합니다.”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 할지 예상되지 않아?”
“… 농… 담?”
“정답. 아오 이 로봇 같으니라고. 어? 6시다.”
불금의 6시 칼퇴. 직장인들의 로망 아니던가.
평소라면 눈치를 봤을 테지만 두둑한 잔고가 용기를 불어넣었다.
눈치 볼 거 없이 정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다들 고생하….”
하지만 용기 있는 칼퇴 선언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박학기 팀장이 퇴근하려던 정우를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정우 씨 잠깐. 앉아봐.”
“예? 예….”
“모두 주목. 불금인 건 아는데 오늘 갑자기 회식이 잡혔다.”
“… 예? 회식이라뇨?”
소프트웨어개발팀원들이 모두 의아해했다. 다들 금시초문인 모양.
“나도 방금 들은 거야. 전사 회식이라던데 본부장님이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면 좋다고 하시더라고.”
“아…….”
여기저기서 한숨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게 전략기획본부장이면 성운이노베이션 성태규 대표의 아들로, 실세 중의 실세였으니까.
낙하산답게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서 30대임에도 벌써 본부장급 인사였다. 일간에서는 대표보다 성재민 본부장을 더 어려워하기도 했다. 성태규 대표는 연구자 성향이 강해서 연구에 몰두하느라 경영에 그리 참여하지 않는 반면, 아들인 성재민 본부장은 경영에 적극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성운이노베이션을 운영 중이랄까.
권력의 핵이나 마찬가지인 성재민 본부장이 여는 회식을 불참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무조건 필참해야만 하는 자리였다.
“정우 씨, 아까 퇴근하려던 것 같은데 급한 일이야?”
“예, 뭐… 친구들이랑 선약이 있어서요.”
“친구들은 다음에 보면 되잖아. 아니면 1차만 하다가 일찍 가도 되고.”
“… 음.”
“참석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자자, 업무 마무리하고 이동합시다. 회식 장소는 단톡에 올려놓을 테니 그쪽으로 모여주시면 되겠습니다.”
박학기 팀장이 강제로 참석여부를 정해 버렸지만 그때까지도 정우는 참석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다. 회귀 후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중요했고 자신은 이제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금도 넉넉하다.
‘하지만 궁금하기도 하단 말이지.’
안예슬의 내연남이자 직장 상사였던 성재민 본부장.
과거에도 몇 번 말을 섞어보지 못했던 그와 가까이서 직접 마주할 기회라….
“… 재밌겠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일지 궁금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