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28)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회사와 포항을 오가는 정신 없는 일정 속에서 드디어 공장의 모든 설비라인 설치가 마무리되었다.
“이게 저희 공장이란 말인가요? 와….”
공춘수 공장장이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게, 정우가 만든 공장은 모든 공정이 자동화 및 무인화로 스마트화되어 있는 스마트공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쪼그만 공장 하나 완성하는 데 비용이 무려 200억 가까이 들었지만, 정우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 생각하고 아낌없이 투자했던 것.
덕분에 깨끗하고 윤이 나는 최신 설비들로 이루어진 공장은 기존의 케케묵었던 해공그래파인 공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웅장했다.
진짜 공장다운 느낌이랄까.
“삐까뻔쩍하네요.”
오늘 공장 라인설치가 완료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탁세훈 팀장 역시 바쁜 업무를 제쳐두고 포항까지 달려와 주었다.
그리고 유현석 모자 역시 함께였다.
“대표님, 조촐하지만 저희 5명이나 모였으니 준공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공춘수 공장장이 물었다.
“준공식은 나중에 제대로 하죠. 그보다 가동 한번 해볼까요? 아, 유독가스가 나올 수 있으니 방독면과 방호복은 필수 착용입니다.”
방호복을 꼼꼼히 착용한 그들이 공장으로 입장했다.
설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그래핀 샘플을 몇 번 테스트 공정 삼아 만들어보긴 했다.
하지만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고 나서는 처음.
떨리는 마음으로 공장을 가동했다.
태블릿으로 버튼 몇 개만 누르자 흑연 원자재가 설비 입구로 투입되며 본격적인 공정이 진행되었다.
치지직-
스파크 튀는 소리가 났지만 공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흑연과 같은 탄소가 포함된 원자재를 전기자극을 통해 그래핀으로 만드는 것이 플래시그래핀 공정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전력과 열기가 가해지며 0.1초도 안 되는 사이에 투입된 흑연이 그래핀으로 만들어져서 추출되었다.
기존 화학 증기 증착법이나 화학적 박리법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생산속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생산된 그래핀은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이어지는 SCR그래핀 공정을 통해 보완되었다.
특수촉매를 이용하여 포함된 불순물을 제거한 그래핀이 완성되어 나왔다.
그렇게 나온 그래핀 완제품을 엄청난 비용을 들여 특수 제작한 나노단위의 관찰이 가능한 초미세현미경이 분석하더니 관련 데이터가 서버에 업로드되었다.
서버에 올라간 그 결과물은 공장을 가동한 태블릿이나 다른 연동된 기기로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정우는 방금 만들어진 그래핀 결과물의 나노 단위 분석사진을 확인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정우가 보는 태블릿에 달라붙어 결과물을 보았다.
“그래핀!”
결과물 이미지를 본 유현석이 신나서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진짜 완벽한 정육각형이네요.”
공춘수 공장장이 감탄했고.
“이게 그래핀이라는 거군요…. 신기하게 생겼네요.”
고숙자가 신기해했으며.
“… 그래핀을 진짜 만들었다고?”
탁세훈 팀장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들의 반응에 정우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예상은 했지만 성공하니 좀 얼떨떨하네요.”
“이건 혁신입니다! 세상에 대격변을 가져올 거라구요!”
공춘수가 신나서 떠들었다.
사진을 보고 멍하니 있던 탁세훈 팀장이 입을 열었다.
“… 정우 씨, 혹시 그때 했던 제안 유효해요?”
“뭐가요?”
“저 스카웃하고 싶다던 제안이요.”
그 말에 정우가 씨익 웃었다.
“물론입니다.”
* * *
공장을 방문할 때까지 탁세훈 팀장은 정우가 무엇을 만들려는 것인지 잘 몰랐다.
아니, 그래핀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겼다.
그저 그가 포항까지 내려온 건 100억원이나 있는 부자이자, 앞으로 공장을 운영할 미래의 대표인 이정우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인맥 다지기랄까.
하지만 막상 공장이 가동되어 나온 그래핀 결과물을 본 탁세훈 팀장은 어안이 벙벙했다.
‘미쳤어.’
이정우 선임, 아니 이정우 저 남자는 미쳤다.
저 미친 작자는 그 허무맹랑해 보이던 그래핀 양산기술을 성공시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과학자도 아닌 일개 개발자가 말이다.
화학과 전혀 친해 보이지 않던 개발팀 직원이 어떻게 그래핀 양산기술을 고안하고 구현에 성공했으며, 공장을 설립할 수 있었을까.
도저히 그 과정과 이정우란 남자의 삶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
“… 천재.”
이정우는 미친놈, 아니 천재가 분명했다.
게다가 이 양산기술은 기존과 차원이 달랐다.
플래시그래핀 공정인지 뭔지 독특한 생산기법으로 만들어지는데 생산속도가 기존 방식에 비해 몇십, 몇백 배는 빨랐다. 아니 배율로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거의 순식간에 생산해냈다.
이 작은 공장에서 생산해내는 그래핀의 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게다가 품질이 떨어지느냐? 그것도 아니다.
정우가 신나서 자신이 만든 그래핀에 대해 설명했다.
“플래시그래핀 공정에서 전력을 조절하여 입자의 크기는 10μm내에서 초정밀로 제어 가능합니다.”
“단층 및 소수층Mono&Few layer은 95% 이상이구요.”
“용해성이 우수하여 높은 가용성을 지닌 산화그래핀Graphene Oxide으로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산화그래핀은 절연체로도 활용할 수 있죠.”
“물론 다양한 산화그래핀 복합체에 대응하여 rGO(Reduced Graphene Oxide) 형태로도 제공가능하구요. 친수성 작용기(-OH, -COOH)나 소수성 아민기(-NH2)를 더한 고기능성 산화그래핀으로도 제공 가능합니다.”
품질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사업체에 원자재로 납품하기 위한 여러 솔루션 역시 대비되어 있었다.
‘… 이건 무조건 된다!’
최첨단 미래소재인 그래핀이다.
비현실적인 그저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재를 상용화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데 시장에 먹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특히 배터리 관련 기업에서 일하는 탁세훈은 그래핀이 얼마나 우수한 소재인지 알았다.
앞으로 실리콘을 대신할 소재가 그래핀이라 할 정도로, 열전도와 전도성이 극히 우수하여 모든 반도체에서 실리콘을 밀어낼 소재가 그래핀이다.
게다가 실리콘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서 옷과 같은 섬유나, 건물, 차량 외관, 무기 등등 어디든지 활용 가능한 만능 소재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기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이런 미친 소재를 만드는 기술을 지닌 기업이 있다고?
바보가 아닌 이상 앞으로 떡상할 저 기업과 함께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빠른 판단을 내린 탁세훈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우 씨. 아니… 대표님.”
“으잉? 아직 연봉협상도 안 했고 근로계약서도 안 썼는데요?”
정우가 살짝 당황했다.
탁 팀장이 사악하게 웃었다.
“2배 주신다고 하신 거 잊지 않았습니다.”
“… 끙. 좋아요. 2배 약속해드리죠.”
“하하, 감사합니다. 대신 영업 잘 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대한화학 쪽에 인맥이 있는데 그쪽에 납품을….”
탁세훈이 신나서 얘기하는데 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영업할 업체는 이미 선정했습니다.”
“선정했다구요? 어디를요?”
“저희가 잘 아는 곳입니다.”
잘 아는 곳이라고?
감이 오질 않아 탁세훈이 고개를 갸웃할 때 정우가 품에서 사원증을 꺼냈다.
[성운이노베이션 소프트웨어개발팀 이정우 선임>이라 적힌 사원증.“우리는 성운이노베이션에 영업할 겁니다.”
탁세훈 팀장은 성운이노베이션에 왜 영업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정우의 설명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시니 소문을 아실 겁니다. 성운이노베이션에서 MG음극재 기술을 개발 중이라는 것을요.”
“압니다. 성 대표의 염원 아닙니까. 전고체 배터리요.”
“맞아요. 그 MG 음극재의 핵심이 바로 마이크로그래핀입니다.”
“… 아!”
마이크로그래핀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탁세훈은 정우가 하는 얘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단점이 많아 아직 상용화가 어려운 전고체배터리. 그리고 그 단점을 해결하려 만들어진 MG음극재 기술.
하지만 그 MG음극재의 유일하게 부족한 점이었던 그래핀을 충족시켜준다면?
“성 대표의 염원이었던 MG음극재 기술을 완성시킬 수 있겠군요.”
“예. 더불어 전고체배터리 양산도 꿈이 아니게 될 겁니다. 탁 팀장님이시라면 꿈이 현실화되는 기회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달콤한 유혹을요?”
“… 절대 못하겠네요. 이해했습니다.”
정우의 말대로다. 연구자 성향이 짙은 성태규 대표는 자신의 염원이었던 MG음극재기술의 완성과 전고체배터리 양산을 위해 그래핀 납품을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래핀 양산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오히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제발 그래핀 좀 납품해달라고 애원할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가격입니다만. 양산이 된다고 해서 가격이 비싸 버리면 메리트가 없을 겁니다.”
“90%.”
정우가 웃었다.
“기존에 비해 90% 절감된 가격으로 제공할 겁니다.”
“90%요? 너무 싼 거 아닙니까?”
“아니요.”
탁 팀장의 의문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세계 그래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싼 값입니다.”
“… 그래핀 시장 독점이요?”
“예. 같은 가격으로 팔아도 품질이 좋으니 경쟁력이 있겠지만 아예 시장을 독점해버리는 것보단 못하거든요. 시장을 독점한 뒤에 제값을 받아도 늦지 않습니다.”
“하지만 90% 절감이 아니라 기존 가격으로 제공해도 시장독점은 가능할 텐데요? 지금 생산된 그래핀의 품질이 월등히 좋잖아요. 무엇보다 90%나 싼값으로 제공하면 이윤이 남을까요? 전 좀 아니라고 보는데요.”
탁 팀장이 우려를 표했고 그의 말은 일견 합당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게 소비자들의 심리니까.
그런데 90%나 절감해서 판다? 이건 그야말로 호구 중의 상호구도 안 할 바보짓이자 퍼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보 대표가 드디어 미쳐버리기라도 한 걸까 싶을 정도다.
그런 그의 우려에 정우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탁 팀장님의 우려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기존 그래핀 가격으로 제공해도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그래핀 시장을 독점하는 건 일도 아니겠죠. 하지만 탁 팀장님, 흑연 1톤의 가격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5,000불 정도 아닙니까?”
“역시 아시네요. 예, 맞습니다. 흑연 1톤에 보통 4,000불에서 6,000불 사이를 왔다갔다 합니다. 인조흑연은 그 2배 정도 나가구요. 그러면 흑연 1g의 가격은 0.004달러, 한화로 약 4원에서 5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기존 화학합성 공정으로 만들어지는 비산화 그래핀은 얼마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그래핀은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네요. 얼마인가요?”
“1g당 10만 원 수준입니다.”
“1g이요? 1kg가 아니구요?”
탁 팀장은 놀랐다. 그래핀이 비싼 줄 알았지만 1g에 10만원이라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 먼지 만한 양이 10만원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예. 비싸죠? 일반인들이 10g 정도의 손톱만큼의 그래핀을 구하려면 1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 필요합니다. 절대 상용화가 불가능한 단가죠. 일반인이 그래핀 섬유로 만든 옷을 산다? 한 벌에 몇천만 원, 아니 몇억 원은 줘야 살 수 있을 거고, 그래핀 반도체가 들어간 CPU나 그래픽카드는 하나당 수천만원을 호가하겠죠. 그걸 부품으로 만든 컴퓨터는 수억 원이 될 거구요.”
“너무 비싸네요. 그럼 생각하시는 게 기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고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일반인도 그래핀을 접할 수 있게끔요?”
탁세훈이 예리하게 지적하자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그래핀은 현재 소수의 연구단체 정도에서만 활용되는 수준입니다. 극소수만 구매하고 판매하니 수요와 공급이 적어서 그래핀 시장 규모 자체가 작죠. 그런데 이 시장 자체를 키워버린다면 어떨까요?”
“시장 자체를 키운다…!”
탁 팀장은 그제야 정우의 말을 이해했다.
그래핀은 현재 상용화가 불가능한 단계였다. 시장은 조성되어 있지만 연구 같은 극소수 분야에서만 활용될 뿐, 일상에서 그래핀을 접하는 건 불가능한 단계다.
그런데 정우는 단가를 확 낮춰서 일반인도 그래핀을 쉽게 접할 수 있게끔 시장 자체를 확장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래핀으로 만들어진 옷, 그래핀으로 만들어진 엔진, 그래핀으로 만들어진 반도체, 그래핀으로 만들어진 스마트폰, 그래핀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이 모든 게 현실화되고 구현되려면 1g에 10만원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최소 1만원 수준까지는 내려와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기존 그래핀보다 훨씬 더 좋은 품질을 지녔지만 가격은 90% 절감한,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여서 제공할 것입니다. 1g당 1만원에 말이죠.”
“1만원… 그래도 흑연 1g에 비하면 2,000배 이상 비싸군요.”
“예. 돈을 계속 2,000배로 복사하는 겁니다.”
흑연을 사서 그래핀으로 만들어 돈을 2,000배로 복사한다?
미친 발상이다.
하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그래핀을 사기 위해 몰려들 수밖에 없다.
1g에 10만원 하던 걸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유일한 공급처이니까.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실 99% 절감한 가격인 1000원에 팔아도 200배 이상 남는 장사지만 이건 장기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고, 초기에는 90% 절감만 해도 모든 기업들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배…. 미쳤네요.”
“그리고 저희쪽 그래핀 생산 공정에는 흑연만 원자재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탄소가 함유된 재료면 어떤 재료든 상관이 없어서요. 흑연보다 싼 석탄도 원자재로 사용 가능합니다.”
“예? 그게 무슨….”
“석탄이 요새 1톤에 400불 정도 한다지요?”
1톤에 400불이면 1g이면 0.4원 정도.
석탄으로 그래핀을 생산하면 20,000배 이상의 마진율도 가능할지도 몰랐다.
물론 생산 수율이 다르고 사용되는 전기량 등 생산에 필요한 비용도 들겠지만, 그 비용을 최대 절반으로 잡는다 쳐도 10,000배다.
“… 미쳤네요.”
“우리는 돈을 복사할 겁니다.”
* * *
정우가 세운 그래핀 생산 공장은 그야말로 혁신의 연속이었다.
기존 화학증기 증착식 그래핀 생산 공정이 1시간에 30g 정도 생산하는 효율에 그쳤다면, 정우의 플래시그래핀 공정으로는 1시간에 그래핀 10kg을 생산 가능했다. 24시간으로 돌리면 240kg 분량이었고, 한달 내내 돌리면 웬만한 기업체 하나는 우습게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탄소함유원자재와 전력만 있으면 무궁무진하게 그래핀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그래핀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전력이 많이 드느냐? 그것도 아니다. 적은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플래시그래핀 공정을 커버 가능했기에 제조비용이 그리 크지 않았다.
생산량과 제조비용까지 들은 이후 탁세훈 팀장은 정우의 사업에 대해 확신을 가졌다.
‘이건 절대 망할 수 없다.’
물론 정우가 주장한 기존 그래핀 가격에 비해 90% 절감된 비용으로 제공하는 건 반대했다.
“세계 그래핀 시장을 독점하려는 의도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90%는 과하다고 봅니다.”
“그럼 탁 팀장님은 어느정도 가격선이 적정하다고 보십니까?”
“50%면 충분합니다. 반값으로만 제공해도 전세계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 겁니다.”
“음, 그건 탁 팀장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일단 50%로 갈까요?”
“예. 더 자세한 건 정식으로 입사한 후에 의논하시죠. 저는 퇴사 좀 해야겠습니다. 딱 일주일만 시간 주세요.”
“일주일이요? 인수인계하면 보통 한달은 걸리지 않나요?”
“원래 이직 준비 중이라서 키우던 후임이 있었습니다. 인수인계 대부분 끝내놔서 일주일 안에 퇴사 가능해요.”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어디로 이직하려고 하신 거예요?”
“테슬라요.”
“… 테슬라요? 테슬라면 엄청 큰 회사잖아요?”
정우가 돌아오는 미래에는 지금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커지는 회사지만, 지금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시기에만 해도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먹고 있는 회사였으니까.
“그러니까 책임지셔야 합니다.”
탁세훈이 씨익 웃었다.
그 사악한 웃음을 보는 정우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거… 왠지 너무 거물을 데려오는 느낌인데?
* * *
탁세훈 팀장은 그 날짜부로 성운이노베이션에 사표를 제출했다.
능력 있는 인재가 퇴사한다고 하자 회사가 또 한바탕 뒤집어졌다.
사직서를 받아든 성재민 본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탁 팀장,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제 길을 가려고 합니다.”
“무슨 길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안이라도 온 겁니까? 연봉을 더 쳐준다고 하던가요?”
“아닙니다.”
“아니기는. 얼마 더 준다고 합니까? 말해봐요. 저희도 최대한 맞춰드리죠.”
밀당할 생각이 없었는데 사직서를 연봉협상을 위한 카드로 오해한 건지 성재민이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탁세훈 팀장의 마음은 떠난 후였다.
“죄송합니다. 인수인계는 김 차장에게 진행하겠습니다. 원래부터 팀장 후임으로 염두에 두고 키웠으니 팀장직으로 맡기시면 문제없을 겁니다. 아참, 사표는 이번 주 안으로 최대한 빨리 수리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탁 팀장, 탁 팀장!”
뒤에서 성재민 본부장이 불렀지만 탁세훈은 뒤돌아보지 않고 본부장실을 나왔다.
사직서를 낸 걸 알았는지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팀장님 어디로 가시길래 그러시는 겁니까? 저희도 데려가주십쇼.”
“안돼. 아직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서 리스크가 좀 있어.”
“대한입니까? 아니면 진성?”
“있어, 그런 데가.”
탁세훈이 꽉 잡고 있던 영업2팀은 탁 팀장이 간다고 하자 너도나도 따라오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비전이 밝은 네뷸라 코퍼레이션일지라도 아직 제대로 성과를 낸 건 없었기 때문에 탁세훈은 부하직원들에게 어디로 가는지 감추었다. 괜히 선동을 했다가 잘못되면 그들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중에 내가 자리 잡고 잘 되면, 그때 땡겨줄게.”
“기다리겠습니다.”
“아, 팀장님 이거 저희 배신하는 일이란 건 아시죠?”
“배신은 무슨. 나 잘되면 니들도 끌어준다니까. 그니까 잠자코 있어 봐. 아, 그리고 김 차장.”
“예?”
“앞으로 김 차장이 영업2팀 팀장이야. 잘 부탁해.”
“그게 무슨…!”
하루아침에 갑자기 팀장직을 달게 된 부하직원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탁세훈은 그런 김 차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믿고 키운 오른팔 김 차장이라면 분명히 잘할 거라 믿으며.
* * *
영업2팀장의 퇴사는 정우보다 빨랐다.
그리고 그 충격 역시 컸다.
개발팀 직원이 강성열 책임에게 떠들었다.
“책임님, 그 얘기 들으셨어요? 영업2팀장님 퇴사하셨대요.”
“진짜로? 난 그런 소문 전혀 못 들었는데? 다른 팀이라 그런가.”
“네. 어제부로 완전히 퇴사하셨다는데요.”
“와… 진짜로 우리 회사 망해가나 봐. 인재는 다 떠나네. 보안팀과 전산팀도 해산되고, 이제는 영업팀장도 떠나고. 회사 내 분위기가 참 흉흉하구만, 흉흉해.”
“그러게요. 저도 이직 자리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에이, 그래도 요새 우리 회사 실적은 최고잖아. 어? 가만. 그러고 보니 이 선임도 내일 퇴사하지 않아?”
얘기하던 강성열 책임이 정우를 쳐다보았다.
그렇다.
오늘은 그의 퇴사 하루 전날이었다.
정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예. 내일이 마지막이네요.”
“아, 정우 씨. 오늘이 거의 마지막이라니 너무 아쉽네.”
“하하, 나중에 따로 보면 되죠.”
“그래도 정우 씨랑 거의 4년 넘게 같이 있었는데 가슴이 허하다 허해. 아참, 그럼 오늘 송별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송별회요?”
그러고 보니 송별회는 생각도 못했다.
“보통 퇴사하면 퇴사하는 주간에 송별회 하잖아. 오늘이 마지막이니 팀장님께 말씀드려봐야겠다.”
마침 박학기 개발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굳은 얼굴의 그가 사무실 가운데 서더니 정우에게 손짓했다.
얼떨결에 일어나니 박 팀장이 모두에게 정우의 퇴사소식을 전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이정우 선임이 내일 자로 우리 회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
“이 선임님, 가지 마세요.”
양규철을 제외하면 대부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왔기에 다들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이 선임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업무에 적응도 하고 개발자로 좀 성장한 느낌이에요.”
“내가 뭘. 지용 씨가 잘한 거지.”
고지용 연구원이 감사 인사를 전했고.
“선배님 감사했습니다.”
“나도 고마웠어. 근데… 우는 거야?”
“… 안 울었습니다.”
지서현도 무뚝뚝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왠지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그래도 어차피 우리 회사로 입사하면 다시 볼 텐데, 갑자기 감성적인 모습을 보니 당혹스럽다.
“정우 씨 퇴사하고 따로 연락해. 따로 술 한잔 하자고.”
그리 자주 어울리진 않았지만 그를 좋게 봐주던 한 개발팀 직원도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강성열 책임이 끼어들었다.
“따로 연락은 무슨. 팀장님, 오늘 송별회 가시죠?”
“송별회? 아, 맞다. 바빠서 잊고 있었네.”
“뭐야, 설마 오늘 안 하시려던 건 아니죠?”
“안 하기는, 무조건 해야지. 이 선임, 오늘 끝나고 약속 없지?”
“예? 예.”
“그럼 다들 별일 없으면 끝나고 모이자고.”
“예!”
안 그래도 떠나기 전 고마운 마음을 담아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었는데 송별회라.
마침 잘 되었다 여겼다.
“그럼 1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에이, 떠나는 사람이 사기는 뭘 사. 부담되게. 법카 있으니까 안 사도 돼.”
“괜찮습니다. 그 정도 살 돈은 있어서요.”
“있어도 이럴 때는 아낄 줄 알아야 하는 법이야. 그냥 넣어둬.”
“… 알겠습니다.”
박학기 팀장의 만류에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첫 직장이자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는 마당에 베풀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터.
‘진짜 거하게 대접하고 싶은데.’
요새 공장 설립이다 뭐다 여기저기에 돈을 많이 쏟아부어서 살짝 궁하긴 하지만 천만 원 이내면 괜찮지 않을까.
돈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할 겸, 포지션도 궁금해서 스마트폰을 열었을 때였다.
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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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리플 간드아아아아~ [봉수]: 떡상 가즈아~~~ [KKD]: 시발 진짜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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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메시지가 우수수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