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30)
개발팀원들은 정우의 말을 그저 나중에 다시 약속을 잡아서 보게 되는 걸로 이해했다.
하지만 정우가 말한 ‘곧’의 의미는 바로 당장이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정우는 곧장 회사 앞 원룸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얼마 전 탁세훈 팀장의 도움을 받아 청담동 테일러샵에서 맞춘 비싼 맞춤정장이다. 천만원을 넘는 비싼 정장이었는데, 비싼 값을 하는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거울에 비친 배경이 별로라는 거다.
‘이 집도 슬슬 바꿔야겠네.’
코인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절약 목적으로 계약한 월세방. 이후 예상했던 것보다 단기간에 큰돈을 벌긴 했지만 투자다 뭐다 정신이 없어서 집이니 차니 살 생각을 전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퇴사도 한 마당이고 1조원도 넘게 벌어들인 마당에 절약에 유난을 떨 필요는 없을 터.
오늘 일이 끝나면 집도 좀 알아봐야겠다 여기며, 곧장 미용실에 가서 오랜만에 메이크업도 받았다. 결혼 때 이후로 처음이다.
완벽히 세팅이 끝나자 그가 보기에도 마음에 들었다.
“이제 가볼까.”
그가 이렇게 꾸민 이유.
바로 오늘, 그가 퇴사한 날에 성태규 대표와 미팅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원 면담이 아닌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대표로서 그래핀 납품 제안을 하기 위하여 성 대표와 만나는 자리였다. 이를 위해 정성 들여 무장을 한 셈.
비즈니스라는 전쟁에서 슈트라는 전투복이 갖추어졌으니 이제 남은 건 그래핀이라는 무기를 들고 상대를 유린할 차례.
정우는 성큼성큼 이제는 퇴사한 회사, 성운이노베이션으로 진격했다.
회사 입구에 도착하자 이미 와서 기다리던 탁세훈 팀장이 그를 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오, 멋지신데요?”
정우는 살짝 멋쩍었다.
“괜찮나요?”
“그럼요. 완전 드라마에 나오는 실장님 느낌 그 자체입니다.”
“실장이면 실패 아닌가요? 저 나름 대표인데요.”
“대표는 너무 올드한 이미지잖아요. 실장님 느낌이면 최고입니다.”
“그런가요. 하하하.”
“자, 가시죠.”
두 사람은 로비를 지나 대표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 이정우?”
정우는 안예슬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 * *
몇 분 전, 정우가 성 대표와의 미팅을 준비하던 시각.
개발팀에서 단체로 오마카세에 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회사에 퍼지고 있었다.
오늘도 농땡이를 피우는 CS팀에서도 그걸 주제로 대화가 오갔다.
“개발팀 이번에 마장동 브레드본인가? 단체로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 갔다는 얘기 들었어?”
“오마카세요? 팀장님, 오마카세가 뭐예요?”
“나도 잘 모르는데 고급식당 뭐 그런 건 가봐. 근데 엄청 비싼 데라던데. 1인당 30만원이라든가.”
“헤에-?! 대박! 어떻게 갔대요? 뭐 회비 모아서 간 건가요?”
“그게 개발팀 이정우 선임 있지? 그 사람이 쐈대.”
“네?!”
CS팀원들이 경악했다. 듣고 있던 안예슬 역시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개발팀이 몇 명인데, 인당 30만원이면 몇백만 원 나왔겠는데요? 그걸 혼자 다 냈다구요?”
“그러게 말이야. 얘기 들어보니까 퇴사 때문에 송별회 겸 갔다는데, 그때 코인 대박 났다는 게 거짓이 아닌가 보더라고.”
“와… 대체 얼마나 대박났길래 하루에 수백만 원을 써요. 대박이다.”
“그러게. 예슬 씨는 뭐 짚이는 거 없어?”
팀장이 은근히 안예슬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도 아는 바는 없었다. 그저 전남편이었던 정우가 코인으로 돈을 좀 벌었다는 것만 알았을 뿐이다.
그래서 재산분할청구권 소송을 진행하면서 10억원 정도로 청구하려 했던 것. 그런데 그 정도만 해도 소송비용이 무려 350만원이나 나왔기에 청구비용을 낮춰야 하나 고민하느라 아직 본격적인 소송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정우가 하룻밤에 수백만원을 그냥 썼다고?
‘… 설마?’
안예슬의 머릿속에 얼마 전 전남편이 자랑하듯 보내온 사진이 떠올랐다.
무려 300억원이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적혀 있던 계좌 인증 사진.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안예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팀장님, 저 반차 좀 쓸게요!”
“어? 예슬 씨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짐을 챙겨 들고는 후다닥 CS팀을 나섰다.
300억이 진짜라면, 그 절반, 아니 그 반의 반만 해도 수십억이다.
그걸 가져올 수만 있다면 이 구질구질한 회사는 당장 때려쳐도 문제가 없을 터.
‘청구금액을 높여야 해!’
황금빛 미래를 상상하며 그녀가 허겁지겁 변호사 사무소로 향할 때였다.
“어?”
회사 로비에서 두 남자가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그중 한 남자에게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정장이 잘 어울리는 사내.
그는 바로 전남편 이정우였으니까.
“… 이정우?”
옷이 날개라더니 맨날 입던 후줄근한 정장 대신 고급슈트를 차려입은 전남편의 얼굴에선 그야말로 빛이 났다.
안예슬이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
하지만 이정우는 안예슬을 보았음에도 무심히 지나쳤다.
마치 전혀 모르는 남인 것처럼.
안예슬은 그런 이정우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왠지 무언가 놓친 듯한, 이 허한 가슴과 패배감은 지우지 못한 채.
* * *
대표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탁세훈 팀장이 은근히 물었다.
“방금 그 사람이 전와이프였나요?”
“아셨어요?”
“아뇨. 근데 아까 그 여자가 ‘… 이정우?’ 하는데 느낌이 빡 오더라구요. 무슨 느낌인지 아시죠?”
“… 알 것 같네요.”
“버렸던 남자가 갑자기 엄청 훤칠해져서 다시 나타나다니… 이야- 이거 완전 드라마 아닙니까? 그 여자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을걸요?”
“에이 설마요.”
“제 촉을 믿으십쇼. 100%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우도 통쾌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을 보고 벙쪄버린 안예슬의 그 얼굴이란.
평생 소장하고 두고두고 보고 싶을 정도로 짜릿했다.
이 맛에 복수를 하나 싶을 정도.
그때였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여 문이 열리더니 거기서 아는 얼굴들이 나왔다.
바로 개발팀원들이었다.
“… 돈까스 요새 맨날 먹어서 질려. 오늘은 요 앞에 백반집이나… 어? 정우 씨?”
“안녕하세요, 강 책임님.”
“뭐야. 퇴근하고 집 간 거 아니었어요? 왜 또 왔어요? 뭐 두고 간 건가? 아니… 그보다 그 옷은 또 뭐고. 엄청 훤칠해졌는데? 사람이 완전 달라졌네.”
“하하, 중요한 미팅이 좀 있어서 좀 갖춰 입었습니다.”
“미팅? 무슨 미팅이길래… 어? 옆에는 영업팀장님 아니세요…?”
강성열 책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다른 개발팀원들도 당황한 얼굴이다.
그때 옆에 있던 탁 팀장이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전 성운이노베이션 영업팀장, 현 네뷸라 코퍼레이션 전략기획팀장 탁세훈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네뷸라 코퍼레이션 이정우 대표님이십니다.”
“… 뭐, 뭐라구요? 네뷸라 코퍼레이션?”
“대표… 요?”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에게 정우가 쑥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하, 어쩌다 보니 회사를 차리게 되었네요. 자세한 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미팅이 있어서 이만….”
엘리베이터에 슬쩍 눈짓을 주자, 그제야 엘리베이터 입구를 막고 있던 개발팀원들이 우르르 비켜주었다.
선두에 있던 강성열 책임이 사과했다.
“아아, 내 정신 좀 봐.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었네. 미안해요 정우 씨. 아니지 참. 이제 이 대표님이라 불러야 하나?”
“괜찮습니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강 책임님.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어? 어… 일 잘 보고 와!”
그렇게 재회한 개발팀원들을 뒤로 하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탁세훈 팀장이 신난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와-! 오늘 아침에 퇴사한 직원이 회사 대표로 왔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드라마입니다. 아니, 소설도 이 정도는 아닐 거예요.”
“하하하, 좀 막장이긴 하네요.”
“게다가 그 젊은 대표가 그래핀을 개발했다? 이거 좀 작가가 너무한 세계관 아닙니까?”
“그런가요?”
사실 회귀까지 한 걸 알면 탁세훈이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정우는 그저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신나서 얘기하던 탁세훈은 엘리베이터가 대표실이 있는 고층에 도착하자 표정이 싹 변했다.
대표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가 진지하게 미팅 전 숙지사항을 재확인했다.
“대표님, 협상은 뭐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기세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예. 그렇기에 한번 기세가 밀리면 끝이니 철저히 준비하고 가야 합니다. 상대가 호구 같으면 확 물어뜯는 게 이 비즈니스의 세계니까요. 특히 이 기세, 아우라라는 것은 첫인상에서 결정됩니다. 때문에 기세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 이 슈트도 맞춘 거죠.”
사실 정우가 입은 이 맞춤정장은 탁세훈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맞추게 된 것이었다.
슈트가 곧 아우라라고 하던가.
결과적으로 정우 역시 이 고급정장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옷 한 벌 바꿔 입었을 뿐인데 정말로 스스로 대표가 된 느낌이 들었으니까.
“다만 옷만 입었다고 사람의 품격이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정우 씨, 아니 대표님께서는 스스로 대표님이라 자각하시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참, 그리고 성 대표 반응이 긍정적이면 가격 협상은 제가 하는 거 잊지 않으셨죠?”
“예. 탁 팀장님만 믿습니다.”
“제가 밀당 좀 하니까 잠자코 지켜보십쇼.”
이윽고 도착한 두 사람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대표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 어?”
업체 미팅이란 말에 두 사람을 반기던 성태규 대표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왠지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얼굴.
근시였던 그는 가까이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당황했다.
“이정우… 선임? 그리고 옆에는… 영업팀장 아닌가?”
“예. 반갑습니다, 대표님. 오늘 오전까지는 성운이노베이션의 선임개발자였던, 지금은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대표인 이정우입니다.”
“반갑습니다.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전략기획 및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탁세훈입니다.”
“어… 예.”
두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도 성태규 대표는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퇴사하고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아, 여기 탁 팀장님은 제가 스카웃했습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음… 아냐. 뭐 조건이 좋으면 옮기기도 하는 게 비즈니스의 세계지. 아, 말을 놔도 되겠는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려니 영 어색해서.”
“괜찮습니다. 어른이신….”
정우가 수긍하려는 그때 탁세훈이 나섰다.
“죄송합니다만 비즈니스 자리입니다. 예의를 갖추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대표끼리 만나는 자리인데 존대는 당연한 거지요. 알겠습니다.”
탁세훈의 제지에 성 대표가 수긍했다.
그제야 정우는 탁 팀장이 그에게 신신당부했던 기세싸움을 상기했다.
비즈니스는 한번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라고 얼마나 강조했던가.
그런데 성태규 대표의 사람 좋은 얼굴을 보자마자 스르르 긴장감이 풀리고 말았던 것.
‘긴장해야겠다.’
탁 팀장의 어시스트에 다행히 트러블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자리로 안내한 성 대표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서 궁금한 게 있군요. 그래핀 관련해서 제안할 게 있다고 하였는데… 이정우 대표는 개발자 출신 아닙니까?”
성 대표가 의문을 가질만 하다.
그래핀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명목으로 네뷸라 코퍼레이션에서 대표 미팅을 요청했는데, 정작 나온 건 개발팀 출신의 갓 퇴사한 햇병아리처럼 보이는 인물이 나왔으니까.
물론 입고 있는 옷이 워낙 고급스러워서인지 겉으로 풍겨지는 품격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느낌이긴 했지만, 자기 회사의 부하직원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에 의문을 품는 건 당연했다.
그 의문을 정우 대신 옆에 있던 탁 팀장이 받았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 대표님께서는 배터리 관련 사업에서 개발자로 종사하시면서 줄곧 신소재 분야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그래핀 양산 기술을 개발하게 되어 회사를 설립하게 되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래핀을 양산할 수 있게 된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공정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양산한 그래핀의 품질에 대해서는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공정은 보안이 필요한 문제지요. 좋습니다. 어느정도 품질의 그래핀을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제가 답해드리죠.”
정우가 나섰다.
“기존 그래핀에 비해 전도성 260배, 산소함유율 1% 미만인 고품질 그래핀을 한달에 4톤 정도 공급 가능합니다.”
현재 정우의 공장을 24시간 동안 30일 내내 풀로 가동할 경우 7톤 가량 생산 가능했지만, 어느정도 여유를 두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성태규 대표는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그런 고품질 그래핀을 그렇게 대량으로 공급 가능하단 말입니까? 혹시 산화그래핀이랑 헷갈리신 건 아니신지요?”
“아닙니다. 전도성이 적고 싼 산화그래핀을 공급하려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저희가 공급하려는 건 비산화그래핀, 그래핀 그 자체입니다.”
“… 음, 믿기 어려운 이야기군요.”
성태규 대표가 못미더워 했다. 그도 그럴 게 세계에서 제대로 된 그래핀 양산 기술이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그래핀 1g에 10만원일 정도로 공급이 태부족인데 한달에 4톤을 찍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세계 그래핀 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으니까.
심지어 품질 역시 기존 그래핀에 비해 260배나 뛰어나다고 하니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지경.
그가 못 믿는 것도 당연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정우는 가지고 온 것을 꺼냈다.
“여기 샘플입니다.”
그것은 검은 가루가 든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였는데, 겉에는 [GRAPHENE – the wonder material / Nebula.Corp>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래핀으로 보였는데 그 양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핀 1kg입니다.”
“1kg라고요?”
성태규 대표가 놀란 얼굴로 조심스럽게 해당 샘플을 받아들었다.
“이게 정말 그래핀 맞습니까?”
“소재연구팀에 가서 확인해보시면 알 겁니다. 이게 저희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생산력을 증명하기 위해 드리는 샘플이자 연구에 힘쓰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성태규 대표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
그래핀 1kg이면 현재 시세로 거의 1억원에 달하는 수준.
그런데 이걸 그냥 공짜로 준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