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41)
성태규가 합류의사를 전해왔다.
정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땡잡은 셈이었다. 경영은 몰라도 전고체배터리 생산을 위한 MG음극재 기술에 있어서는 그가 업계 1인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CTO님.”
“너무 과분한 자리라 제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성태규는 네뷸라 케미컬의 CTO(Chief Technical Officer: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아 전고체배터리 생산을 진두지휘하게 되었다.
이로써 전고체배터리 생산이 비현실적이라고 여기던 직원들의 우려도 조금은 불식되었다. 아무래도 진짜 전문가가 프로젝트를 이끄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했으니까.
덕분에 전고체배터리 생산라인을 만드는 작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그리고 정우는 성태규 CTO에게 유현석을 맡겼다.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천재입니다. CTO님도 이 친구의 진가를 알아볼 거라 생각해요.”
“제가 한번 맡아보겠습니다.”
그동안 멘토 없이 혼자서 연구하던 유현석은 그제야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성태규는 자폐아인 유현석을 만나보고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차이를 두고 대하지 않았다. 그저 일반 연구원 다루듯이 연구를 지시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혼자 하는 연구에 익숙했던 유현석이었기에 처음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곧잘 연구에 끼어든다고 하니 조금씩 적응해가는 듯 보였다.
배터리사업 진행에 순풍이 불기 시작하자 정우에게도 여유가 찾아왔다.
그는 곧장 다른 곳에 눈을 돌렸다.
오랜만에 네뷸라 코퍼레이션 사무실을 찾은 정우는 회의를 소집했다.
“서현 씨, 코인거래소 만드는 건 어떻게 생각해?”
“거래소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코인거래소 얘기를 꺼냈지만 지서현은 담담해 보였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거래량에 비례하여 수수료를 얻는 구조라서 코인 수익과는 별개로 꾸준히 수익을 벌 수 있으니까요.”
“서현 씨 말 듣고 보니 비즈니스 모델이 꽤 괜찮은데요? 그런데 기존에 빗쌈인가요? 국내 코인시장을 꽉 쥐고 있는 거래소가 있는데 성공할지 의문이네요.”
탁세훈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미래를 아는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빗쌈이 현재 국내 1위 거래소이긴 해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요. 불편한 점도 많구요. UI나 코인 입출금시스템이 그런데 특히 수수료 시스템이 심각하죠.”
“수수료 시스템이요?”
“예. 빗쌈에서는 수수료 쿠폰이라는 게 있어서 그걸 사면 수수료를 할인해주는데, 이걸 매번 사야해서 트레이더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합니다. 예를 들어 원래 수수료가 0.5%인데 2만원짜리 쿠폰을 사면 1,000만원까지는 거래할 때 수수료를 0.2%까지 할인해주는 형태죠.”
“아, 이해했습니다. 비싼 쿠폰을 결제하면 더 많은 거래량을 할인된 수수료로 매매할 수 있겠네요. 거래소 입장에서는 매매를 많이 안 하게 되는 트레이더도 충동구매를 유도해서 쿠폰을 팔아먹을 수 있으니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인데요?”
“예. 몇백만원짜리 수수료 쿠폰도 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거래할 때마다 그걸 사는 게 불편하잖아요? 몇 번 거래를 안 하는 트레이더들은 손해이구요. 거래소 입장에서야 수입이 되겠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불만들이 쌓여서 이탈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그리고 거래소라는 것도 계속 경쟁하니까 더 좋은 거래소가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그렇다는 건 대표님은 이런 기존의 비합리적인 수수료 시스템 같은 걸 개선하고 보완해서 더 좋은 거래소를 만드시겠다는 거군요. 괜찮은데요?”
“그래요? 다 들어본 소감이 어때요? 성공할 것 같나요?”
정우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예.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현 씨는요?”
“저도 찬성입니다. 해외거래소는 이용하는 게 불편해서요.”
“음? 해외거래소? 서현 씨도 코인 거래해?”
“아… 가끔 합니다. 자주는 아니구요.”
지서현이 얼버무렸다.
하긴 정우가 이더리움으로 꼬드겨서 1억이 넘는 큰 수익을 본 그녀다. 코인 매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정우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매매하는 걸 숨기지 않아도 돼. 내가 코인충인데 뭘. 저는 두 사람 코인 매매하는 거 반대 안 합니다? 하하하.”
“그럼 사무실에서 단타쳐도 됩니까?”
“업무 할 거 다 하셨으면 해도 상관 없어요. 진짜예요.”
“그건 그냥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일이 너무 많아서요.”
“일 더 달라는 엄살로 들립니다만?”
“살려주세요 대표님.”
엄살을 부리는 탁 본부장.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농담따먹기도 하고 앞으로 코인거래소를 어떻게 개발해나갈지 청사진을 그려 나갔다.
나만의 거래소를 만든다는 것.
그 희망을 논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게 즐거워서 일하는 맛이 났다.
* * *
슬슬 정우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자동으로 회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배터리사업은 성태규 최고기술책임자와 탁세훈 본부장의 진두지휘에 따라 착착 진행이 되어갔으니까.
이미 기술은 개발된 상태라 MG음극재기술을 적용한 전고체배터리를 만드는 샘플런 작업이 곧 코앞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네뷸라코퍼레이션에서는 지서현을 필두로 개발자 인력을 뽑기로 결정했따. 아무래도 거래소라는 게 혼자 개발하기엔 그 스크립트 양이 너무나 방대하고,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야 했기에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액연봉을 약속하며 빗쌈을 비롯한 거래소에서 일해본 경력자들을 스카웃해오기로 했는데, 그 전에 정우가 지서현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서현 씨가 개발팀장 맡아볼래?”
“예? 저를 말씀이십니까?”
“왜? 싫어?”
“… 예.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일한 지 겨우 3년도 안 되었고, 제 스스로 객관적으로 봤을 때 경험이 많이 부족해서 임기응변 능력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다루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저를 개발팀장으로 뽑는 건 재고해주십시오.”
지서현이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정우는 생각이 달랐다.
“대신 실력이 있잖아. 내가 봤을 땐 서현 씨 정도 실력이면 개발팀 맡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서현 씨도 알잖아? 사실 내가 사수라고 선배 노릇을 하긴 했지만 사실 서현 씨가 나보다 개발실력은 훨씬 나은 거.”
실제로 그렇다.
개발실력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을 짜고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건 일종의 그림그리기와 비슷해서 얼마나 아름답고 간결하고 오류 없이 코딩을 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좌지우지된다.
똑같은 결과물이라도 누구는 수만 줄짜리 스크립트로 구현한다면, 천재는 겨우 수백 줄도 안 되는 간결한 스크립트로 완성하는 차이.
따라서 극소수의 천재가 뒤늦게 개발 공부를 시작해서 단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선배들을 앞질러 버리는 경우가 흔했다.
즉, 압도적인 개발 실력은 사실 재능의 영역이었던 것.
그리고 개발자였던 정우는 진심으로 지서현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녀의 실력은 자신에 비해 한참 위였으면 위였지, 적어도 낮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실리콘밸리, 아니 실리콘밸리까지 가지 않아도 국내 개발자들만 봐도 3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팀장급에 올라선 괴물들이 얼마나 많냐고. 난 그 괴물들에 비해 서현 씨가 꿀린다고 생각 안 하는데? 오히려 코인을 해본 경험이랑 직접 코인까지 발행도 해보고 API도 만들어본 그 경험치는 무시할 게 못 된다고 생각해. 그만큼 코인에 대한 이해도가 깊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서현 씨를 개발팀장으로 임명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
“… 그게 무엇입니까?”
“신뢰. 서현 씨랑 나 사이에는 신뢰가 있다고 보거든.”
지서현을 알고 지낸 게 거의 2년이다. 회귀 후 반년 넘게 지낸 세월까지 하면 3년이 훌쩍 넘어가는 시간.
갓 입사한 햇병아리부터 손수 키운 친구였기에 그만큼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 잘 알았고 믿음이 갔다.
신뢰가 가고 정직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개발팀장으로 임명할 요건은 충분했다. 정우에게 필요한 건 개발팀의 손과 발, 눈이 되어줄 존재였으니까.
“…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알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역시! 앞으로 잘 부탁할게, 지 팀장.”
“… 네, 대표님.”
붉게 상기된 지서현의 얼굴을 보아하니 상당히 기쁜 듯했다.
두 눈빛에서 느껴지는 묘한 열기.
이거 너무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는 거 아닌가 몰라.
* * *
거래소 개발을 위한 개발자들을 뽑기 위해 면접을 열심히 진행했다.
정우는 실력 위주로 뽑되 인성의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지원자들은 제외했다.
인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떨어트리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열의가 있고 인성이 받쳐준 직원은 뽑았다.
‘회사 분위기는 직원들 개개인의 성격에서 좌지우지돼.’
한 마리 미꾸라지가 물을 흐려놓는다는 걸 사회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
양규철 선임이 그 단적인 예다. 개발 실력을 키우는 스스로에 대한 향상심은 거의 없고 술자리를 오가며 인맥 다지기에만 힘쓰던 박쥐 같은 직원.
그런 직원들 때문에 사내정치가 생겨나게 되고 업무환경이 엉망이 되는 법이니까.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그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주로 인성 위주로 체크하며 사람을 뽑았다.
“어우… 사람 상대하는 게 역시 제일 힘들어. 뭔 면접이 이렇게 힘들다냐.”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지, 탁 본부장님이랑 서현 씨가 고생이 많았지. 본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 근데 오늘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와이프라도 보시는 거예요?”
“아뇨. 저 아직 싱글인데 왜 유부남 만드십니까.”
“앗 죄송합니다. 오늘 멋지게 빼입고 오셨길래 데이트라도 하나 싶었거든요.”
“… 소개팅 갑니다, 소개팅.”
“소개팅이요? 본부장님이 소개팅이라니 그림이 안 그려지는데요?”
“저라고 여자 못 만나라는 법 있습니까. 제가 이래 봬도 왕년에 꽤 잘 나갔습니다.”
“본부장님 지금 연세가…?”
“씁! 연세라니요! 저 아직 창창합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소개팅 잘 하고 오세요. 건승 기원합니다.”
“올해는 진짜 가야죠. 아무튼 먼저 가보겠습니다.”
탁 본부장이 소개팅을 이유로 먼저 갔다.
“서현 씨, 우리도 퇴근하죠? 내가 태워다 줄게요.”
“아닙니다. 대표님은 이 근처에 묶으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시간대는 차가 많이 막힙니다. 저는 따로 가겠습니다.”
고생한 지서현이 피곤할까 봐 호의를 베풀려 했는데 거절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직도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구 성운이노베이션 사옥 근처에서 강남 테헤란로까지 출퇴근 중이었던 건가?
정우는 그제야 사무실 위치를 너무 멀게 잡은 것 같아 미안해졌다. 출퇴근하는 직원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이거 안 되겠는데.
“잠깐 서현 씨.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예? 어디를 말씀이십니까?”
“데이트 좀 하자고.”
“… 예?!”
* * *
지서현을 데리고 간 곳은 호텔이었다.
다짜고짜 로비에 들어서자 그녀가 당황했다.
“저… 대표님?”
맨날 선배님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지서현에게 대표님이라 불리니 어색하다.
“왜?”
“그게… 여기는 왜 온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체크인 하러 왔지.”
“체크인이요? 호텔은 좀… 너무 빠른 게 아닐까요….”
얼굴을 붉히는 지서현.
이 여자가 뭔 소리야.
“… 잠깐 서현 씨.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한 거 아니거든?”
“네? 그럼…?”
“기다려봐. 안녕하세요. 장기숙박 구하러 왔는데요. 남는 객실 있나요?”
“안녕하세요. 1703호 고객님 맞으시죠?”
로비에 있던 미모의 호텔리어가 웃으며 그를 맞았다.
사실 여기는 정우가 장기숙박 중인 호텔이었는데 몇 번 왔다 갔다 안 했는데도 용케 정우의 얼굴을 기억한 모양이다.
“네. 롱텀 스테이 가능하시구요. 같은 층으로 알아봐 드릴까요?”
“음… 예. 그렇게 해주세요.”
“기간은 얼마나 해드릴까요? 1개월, 3개월, 6개월, 1년에 따라 할인 혜택이 다릅니다.”
“일단 반년만 끊어주세요.”
이후 간단히 결제를 마치고 카드키를 받아들었다.
그걸 지서현에게 내밀었다.
“자, 서현 씨. 앞으로 여기서 지내.”
“… 예?”
“멀리 다니지 말고 호텔에서 숙식하라고. 출퇴근 피곤하잖아.”
“아….”
그제야 지서현은 정우의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반응이 별로다.
기뻐할 줄 알았는데 왠지 시무룩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대표님, 너무 부담스럽고 죄송해서… 이걸 받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괜찮아. 내가 자화자찬하는 것 같지만 서현 씨도 알잖아. 내가 돈 얼마나 많이 벌었고 지금도 얼마나 벌어들이고 있는지.”
“그래도….”
“서현 씨가 만들어준 API랑 자동매매봇 때문에 벌어들이는 수익만 해도 내가 호텔 비용 내는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그리고 지난번에 서현 씨가 나 쓰러졌을 때 대한병원 VIP실도 끊어줬잖아. 그 은혜 좀 갚게 해줘.”
“…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진즉에 그럴 것이지. 아무튼 이제 이웃이 되었네.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이웃이요?”
“엉. 나도 같은 층이거든.”
정우가 자신의 방 카드키를 꺼내 들어 흔들었다.
그걸 보자 지서현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이웃이 된 기념으로 지서현과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파인다이닝에서 저녁을 즐겼다.
“… 이런 곳 처음 와 봅니다.”
“나도 처음이야. 장난 아닌데?”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디너 코스 가격만 26만원.
예전이었다면 부담이 되었을 테지만 왠지 싸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내친김에 와인까지 주문을 마쳤다.
왠지 격식을 갖춰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종업원이라 부르기에 미안할 정도로 슈트를 쫙 빼입은 프로페셔널 한 직원들이 격식 있는 동작으로 주문부터 서빙과 요리에 대한 설명까지 모든 걸 케어해줬다.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에 적응해서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레몬 마리네이드 지중해산 농어슬라이스, 오스테르 캐비아 아스파라거스와 랑구스틴, 베흐 블랑과 아키텐 캐비아 메추리알 베네딕틴, 미모사 스타일 킹크랩까지.
생전 처음 먹어보는 온갖 산해진미의 향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거 돈 열심히 벌어야겠는데.”
“예?”
처음 와봤다는 말과 달리 긴장 없이 능숙하게 칼질을 하는 지서현이 반문했다.
“그냥 이런 곳 자주 오려면 돈 열심히 벌어야 할 것 같아서. 왠지 인생의 절반은 손해 본 기분이랄까. 태어나서 이런 신기하고 오묘한 맛이 있는 건 처음 알았거든.”
“맛이 별로신가요?”
“별로라니. 너무너무 맛있어서 탈이야. 괜히 셰프가 아니구나. 진짜 요리가 뭔지 드디어 알게 된 기분이야. 그전까지 내가 먹은 것들은 그저 영양분을 채우기 위한 소화활동에 불과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저는 이런 곳보다는 분식이나 자장면 같은 게 더 맛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런 음식도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 여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오라고 하면 물릴지도? 아무튼 서현 씨가 이웃 되어서 너무 좋다.”
“… 예? 그게 무슨…?”
지서현의 눈이 흔들린다.
“사실 저녁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곤란했거든. 맨날 혼밥했는데 이제 서현 씨가 이웃 되었으니 저녁 친구는 생겨서 다행이야.”
“아….”
“설마 서현 씨 나랑 같이 밥 먹는 거 싫어? 혼밥이 더 편한데 내가 괜히 같이 밥 먹자고 더 부담 주는 거 아닌가 몰라.”
“아, 아닙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저도 좋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자주 맛집 좀 돌아보자고.”
“… 네!”
지서현이 싱긋 미소 지었다.
* * *
이웃이 된 기념으로 저녁도 먹고 카페도 가고 지서현과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주로 코인 거래소 개발에 관한 일 얘기와 앞으로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과 같은 여자들이 주로 좋아할 만한 주제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얘기를 잘 들어주었다.
오히려 코인이나 개발 관련 얘기가 나오면 신나서 적극적으로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코인 선물 포지션은 언제 익절하실 생각이십니까?”
“말했잖아. 난 올해 말까지 절대 안 팔 거야. 익절하더라도 내년 초에 팔 생각이라 당분간은 무조건 홀딩이지. 근데 그건 왜?”
“포지션이 너무 커지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어서 여쭤봤습니다.”
“하긴 나도 조금은 걱정이 되긴 해. 내 장투 포지션이 너무 커지긴 했거든. 사실상 포화 상태라 포지션을 늘리기는 애매한 것 같아.”
이더리움 800만개. 현재 풀린 이더리움이 9,000만개 정도니 거의 10%에 가까운 물량을 보유 중이다. 하지만 선물 거래라 실제 이더리움 800만개를 보유한 게 아닌 공매수 상태였기에 실질적으로 이더리움 시총의 10%를 확보한 건 아니었다.
다만 공매수 상태였다 해도 이 물량이 선물거래소에 투하되면 시장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질 것은 명약관화.
따라서 정우 역시 더 이상 포지션을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 앞으로는 추가 매수 없이 홀딩만 할 계획이었다.
이런 판단에 지서현도 동의했다.
“제 생각에도 포지션 물량을 더 늘렸다가는 시장에 충격이 가해질 것 같습니다. 소화하기도 애매해 보이구요.”
“그렇지. 그래서 요새 주로 단타만 치잖아.”
“예. 알고 있습니다. 단타계정 수익률이 상당히 잘 나오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현 씨도 알아? 아, API 서버에 데이터 로그 남아서 알겠네. 맞아. 수익 너무 잘 나와서 남은 수익을 투자하려고 준비 중이었거든.”
천만 달러로 시작한 정우의 단타계정 WooJung3의 수익은 성운이노베이션을 인수할 때 무려 1억 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성운이노베이션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을 출금했는데, 그 뒤로 몇 주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원래 수준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거의 매일 삼백만 달러를 훌쩍 넘는 수익을 거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더리움의 시총이 커질수록 소환 가능한 물량이 커지면서 단타 수익도 커지고 있었다.
이 남는 잉여자금을 어떻게 굴려야 잘 굴렸다고 소문이 날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마 주로 해외주식에 투자할 것 같아.”
코인시장 거품이 꺼진 후에 주식 시장은 한동안 횡보하다가 코로나 사태 이후로 폭등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부동산 역시 폭등하는데, 정우는 매매하기 어려운 부동산보다는 주식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해외증권사 계정과 해외계좌도 미리 준비해둔 상태였다.
해외주식에 투자하겠다는 정우의 말에 지서현은 의아한 얼굴이다.
“주식이요?”
“엉. 서현 씨 주식 잘 몰라?”
“예. 주식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구만. 그럼 여유자금 있으면 조금이라도 투자해둬. 난 앞으로 주식시장도 커질 거라고 보거든.”
“… 알겠습니다. 무조건 투자하겠습니다.”
“무조건은 아니고. 내가 틀리면 어쩌려고.”
“저는 대표님 믿습니다.”
지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성공했기에 믿음이 두터워진 걸로 보였다.
“그래라. 나만 믿으면 손해는 안 볼 거야.”
“네. 그런데 대표님, 종목은 어디에 투자하실 계획이십니까?”
“… 테슬라.”
테슬라TSLA.
2021년까지 2,000% 떡상할 종목의 이름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