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53)
기존 니켈망간코발트 삼원계배터리를 상당히 개량시킨 NMC800은 대한화학의 야심작이었다. 그런데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니.
“이건 말도 안돼!”
김명훈은 흥분해서 소리쳤다.
심지어 1등을 차지한 건 얕잡아보았던 네뷸라 케미컬의 배터리였다. 그것도 99점이라는 압도적인 점수로, 2위인 대한화학의 NMC800에 비해 12점이나 높았다.
김명훈은 결과에 승복할 수가 없어서 곧장 테스트 과정을 감독한 자카리아 소장을 찾아갔다.
막 소장실 문 앞에 도착했던 그때, 사무실에서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나왔다.
바로 이정우와 그의 직원 탁세훈이었다. 김명훈을 발견한 정우가 아는 척을 했다.
“어? 소장님 뵈러 왔나 보네요?”
“예, 뭐….”
“저희도 방금 미팅 끝났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들을 지나쳐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한마디가 들려왔다.
“아참, 이번 1차 테스트 저희가 1등 한 거 보셨나요?”
도발적인 질문에 고개를 돌리자 탁세훈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옆에 있던 정우가 당황한 듯 말렸다.
“아니 본부장님, 여기서 그런 얘길 왜 해요?”
“못할 것도 없죠. 안 그래요? 영훈 씨? 아, 명훈 씨였나. 이름이 헷갈리네.”
“… 아, 예.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NMC800 2.등. 하셨던데 대한화학도 축하드려요.”
“… 크흠.”
김명훈은 불쾌했다. 아니, 자업자득이다.
솔직히 네뷸라를 무시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 할 말 다 하셨으면 가보겠습니다. 바빠서.”
“예. 수고하십쇼. 가시죠, 본부장님.”
능글맞은 얼굴의 탁세훈을 이끌고 정우가 돌아섰다.
뒤에서 탁세훈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대표님 왜 말리셨어요. 더 골려줘야 하는데.”
“에이,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놀려서 뭐해요.”
“저희 여기 왔을 때 은근히 무시하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그런 거 하나하나 어떻게 다 신경 씁니까. 우리는 남 신경 쓸 필요 없이 우리만 잘하면 됩니다.”
“그렇긴 하죠. 우리 대표님 은근히 마인드가 멋지시다니까? 하하하.”
복도가 울리게끔 시끌시끌하게 웃고 떠들며 걸어가는 두 사람.
사장과 직원 관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막역해 보이는 그 뒷모습을 김명훈이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자카리아 소장실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하실 말씀이라도?”
“소장님, 이의 신청하러 왔습니다.”
“이의요?”
“예. 1위가 무려 99점이던데 테스트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서요.”
그 말에 자카리아 소장이 안색을 굳혔다.
“지금 저희 오크리지 연구소의 테스트 방식과 심사 과정을 무시하는 겁니까?”
싸늘한 소장의 반응에 김명훈이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닙니다. 제 언행이 불쾌하게 들리셨다면 사과드리지요. 그저 저희는 궁금할 뿐입니다. 어떻게 1위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왔는지를요. 세부항목 결과값과 점수만 보여주시면 납득하겠습니다.”
“흠….”
노려보던 자카리아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투명성을 위해 공개하려던 거니 보여드리죠.”
그가 서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더니 김명훈에게 내밀었다.
거기엔 테스트 결과 세부사항이 적혀 있었다.
─────────
[Nebula.Chem. – SolidStar>1. Reserve Capacity – 5/5
2. Energy Density – 5/5
3. Temperature Sensitivity – 5/5
……
18. C-Rate – 5/5
19. Price – 4/5
20. Innovation – 5/5
─────────
가격 항목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5점 만점을 받은 결과지.
그 밑에 붙어 있는 세부항목에 각각의 항목에서 나타낸 수치가 적혀 있었는데 그 수치가 전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기존 배터리들에 비해 최소 10% 이상 높은 수치였고, 충전용량은 거의 180% 이상 높았다. 에너지밀도 역시 40% 이상 높은 압도적인 수치였다.
김명훈은 이런 수치가 LFP배터리나 삼원계 배터리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치임을 알았다.
“설마, 네뷸라의 솔리드스타는 전고체배터리입니까?”
“맞습니다.”
소장의 대답에 김명훈이 황당해했다.
“아니 주로 리튬이온배터리를 출품하는 배터리지원사업 심사에 전고체배터리를 출품하는 게 말이 됩니까?”
“왜 안 됩니까? ‘배터리’ 지원사업인데.”
“소장님도 그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전고체배터리는 실용화가 불가능합니다.”
“그건 2차, 3차 테스트에서 판별해야 할 문제지, 성능 테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끄응….”
김명훈은 할 말을 잃었다. 사업성 있는 배터리를 뽑는 자리에 전고체배터리를 가져오다니.
연구 자체가 어려운 전고체배터리를 네뷸라라는 작은 회사에서 개발한 건 대단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3차 테스트에서 배터리 생산성과 사업성을 검토하죠?”
“그렇습니다.”
“그럼 저희 대한화학에도 아직 희망이 있군요.”
김명훈이 말하는 뉘앙스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전고체배터리의 상용화가 어려우니 제대로 된 생산설비가 없을 터.
솔리드스타가 3차 테스트에서 물을 먹을 거라고 기대하는 게 분명했다.
그 속내가 보였지만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발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예. 불쑥 찾아왔는데 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훈이 퇴장하고.
소장이 혀를 끌끌 찼다.
“쯧쯧, 대한화학이라고 했나. 지금 남의 제품 꼬투리 잡을 때가 아닌데.”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한 분야의 소장을 맡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명예와 자부심이 대단했고, 지식과 안목 역시 뛰어나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
당연하게도 그는 솔리드스타의 진가를 알아본 상태였기에, 대한화학이 3차 테스트에 목을 메는 것도 십분 이해했다. 배터리 자체만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장이 생각에 잠긴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확실히 솔리드스타가 압도적이긴 한데….”
네뷸라의 솔리드스타를 테스트했을 때 그는 굉장히 놀랐다.
일반적인 리튬이온배터리가 아닌 전고체배터리를 배터리지원사업 심사에 가져올 줄 몰랐으니까.
괜히 전고체배터리가 아직 상용화가 불가능한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소장 역시 네뷸라가 출품한 솔리드스타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솔리드스타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어설픈 결과물이 아닌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은 오버테크놀러지가 집약된 배터리였다.
만약 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 슈퍼차저도 많이 필요 없겠어.”
현재 모델3의 완충시 주행거리는 250~300km 안팎이기에 테슬라의 전기차충전소인 슈퍼차저는 300km 거리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만약 네뷸라의 솔리드스타를 배터리로 단 전기차가 나온다면?
기존 배터리에 비해 2.8배 가까이 높은 충전용량을 지닌 이 배터리가 시장에 풀리면 슈퍼차저가 그리 촘촘하게 설치될 이유가 없어질 터.
자카리아 소장 역시 테슬라를 타고 다니기에 이러한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솔리드스타가 배터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많은 지원금을 가져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는데 때마침 대한화학쪽에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버린 것이다.
“… 그래도 생산성은 애매하단 말이지.”
네뷸라측이 가져온 사업계획서를 읽어보았다. 한국 본사에서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고는 있지만 아직 준비단계일 뿐이고, 심지어 미국 공장으로 AESC를 염두에 두고만 있을 뿐 인수된 상태도 아니다.
즉, 솔리드스타의 생산성은 아직 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이대로 가면 3차 생산성 심사는 불을 보듯 뻔할 터.
이들을 지원할 방법이 없을까.
공장이나 생산라인을 제대로 만들 수 있게끔 도우려면 그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 되겠군.”
어차피 배터리지원사업 심사에 대한 1차 테스트를 보고해야만 했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Rick Perry]바로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에게.
소장은 이 혁신적인 배터리라면 상부에서도 알아줄 거라 믿었다.
* * *
배터리 심사 1차 테스트가 끝나고 2차로 충방전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말 그대로 충방전을 여러 번 사이클을 반복하는 테스트였는데, 단순 노가다였지만 그만큼 시간 소요가 많이 걸리는 작업이라 꼼짝없이 오크리지 연구소에 붙들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여긴 제가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대표님은 실리콘밸리나 다녀오시죠.”
“실리콘밸리요?”
“예. 서현 씨 혼자 팔로알토에서 개발자들 면접 보고 영입하느라 외롭잖아요. 가서 도와주세요.”
“흠… 하긴 개발자들 뽑는데 대표가 안 보는 것도 좀 그렇죠. 알겠어요.”
지서현은 오크리지 국립연구소행에 따라오지 않았다. 진호경이 개발자들을 소개해준다고 해서 그들을 만나보고 영입할 인재를 추리겠다는 임무 때문이었다.
그런데 배터리지원사업 테스트도 그렇고, AESC 인수 건도 지지부진이라 지금 시간이 붕 떠버렸기에 정우는 다시 미국 서부로 날아갔다.
“여- 지 팀장!”
“오셨습니까.”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지서현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이래야 서현 씨답지.”
“예? 뭐가 말씀이십니까?”
“역시 로봇답다고. 하하하.”
“… 저 로봇 아닙니다. 그보다 대표님, 테슬라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테슬라에서?”
정우는 지서현이 보여준 메일을 확인했다.
거기엔 모델S 솔리드스타 장착과 안정화가 거의 마무리 되었으니 한번 보러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오호, 이건 보러 가야겠는데. 서현 씨도 같이 갈래?”
“저도요? 저는 좀… 할 일이 많아서요.”
“바람 쐴 겸 같이 가자. 솔리드스타가 장착된 전기차가 어느정도의 성능을 낼지 궁금하지 않아?”
“음… 좋습니다.”
정우는 일론 머스크와 약속을 잡고 지서현과 함께 테슬라가 잡아둔 테스트운행이 가능한 트랙을 방문했다.
거기엔 일론 머스크가 다수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모델S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정우를 발견하고는 크게 반색했다.
“오! 미스터 리. 왔어요?”
마치 오랜 친구를 본 것처럼 크게 환영해주는 일론 머스크의 리액션에 정우가 당황할 정도였다.
이 남자가 원래 자신을 이렇게 좋아했던가 싶을 정도여서 약간 얼떨떨하게 답했다.
“예. 방금 왔습니다. 배터리 장착 마무리되었다면서요? 저게 모델S인가요?”
“멋지죠?”
“외관이 유려한 게 끝내주네요.”
정우의 칭찬에 일론 머스크가 씩 웃었다.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미녀가 아닙니다. 내부는 더욱 쫄깃할 거예요.”
“내부가 쫄깃하다라… 궁금하네요.”
“백번 말해서 뭐합니까. 한번 보여드리는 게 낫겠죠. 자, 시운행 한번 보여드리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스크는 모델S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 직후 모델S에 달라붙어 있던 각종 측정장비가 제거된다.
동시에 모델S에 헤드라이트 불빛이 환하게 켜졌다.
‘… 설마 머스크 당신 지금 직접 운전하려는 거야…?’
아직 안전성이 검증도 되지 않은 차에…?
정우가 당황할 때 모델S가 미끄러지듯 움직여 트랙 위에 섰다.
내연기관 차와 달리 엔진소리 하나 없는 모델S.
겉보기엔 얌전한 범생이 같던 그 차가 내면에 잠들어 있던 흉폭함을 일깨우더니, 이내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 * *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산하 신소재연구소를 맡고 있는 토마스 자카리아 소장이 걸어온 전화였는데, 이번에 그가 감독을 맡은 배터리지원사업에 출품된 하나의 배터리에 대한 보고였다.
“… 알겠어요. 보고서 메일로 보내봐요.”
솔리드스타라. 얼마나 대단한 배터리이기에 반드시 지원사업으로 선정해야 한다고 이러는 걸까.
릭 페리는 이내 메일로 보고서를 받아 읽어보았다.
가격을 제외한 모든 항목 만점의 압도적인 결과. 세부 수치를 보니 성능이 최소 10%에서 많게는 180%까지 차이가 났다.
정치인이자 현 에너지부 장관이었던 그는 이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 미쳤군.”
네뷸라의 솔리드스타. 이 배터리는 그냥 대단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일대 변혁을 가져올 어마어마한 기술이었다.
어느정도냐면 릭 페리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 정도다.
“… 이거 지원사업이 문제가 아니었어.”
네뷸라.
그들을 미국으로 끌어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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