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6)
정우의 말에 안예슬의 눈이 커졌다.
저도 모르게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걸 어, 어떻게… 아,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리야. 본부장님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연기할 필요 없어.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도 알 거 없고.”
“… 진짜 아니야.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듣기 싫고, 쪽팔리기 싫으면 조용히 이혼하자.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
그 말과 함께 남편은 일어났다.
“내일 오전에 법원에서 보자. 만약 나오지 않는다면… 전쟁을 선포하는 걸로 이해하겠어.”
“…….”
안예슬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우는 그렇게 카페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 도대체 어떻게….”
꼬리가 길면 잡힌다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토록 눈치 없던 둔감하던 남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매사에 조심했으니까.
그런데도 걸리다니.
‘… 이럴 때가 아니야.’
안예슬이 다급히 한곳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연남 성재민 본부장님에게로.
-… 어제도 봤으면서 오늘은 또 왜 전화했어.
“본부장님… 저 이혼하게 생겼어요.”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 오빠가 우리 관계 알았나봐요.”
-진짜로? 농담하는 거 아니지?
“저도 꿈이었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협의이혼으로 갈라서자는데… 본부장님, 저 어떻게 해야 하죠? 저 진짜 어떡해요….”
-…….
처량한 안예슬의 목소리에 잠시 수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 본부장님?”
-그건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닌 것 같네.
“…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니 일에 나까지 말려들게 하지 말라는 뜻이야.
“그게 무슨…!”
-구질구질하게 전화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린 전에도, 앞으로도 모르는 사이로 하자고.
“… 본부장님, 본부장님!”
안예슬의 외침에도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져 버렸다.
재차 전화를 걸었지만 차단이라도 된 것인지 성재민과 연락이 닿는 일은 없었다.
카페에 홀로 남겨진 안예슬은 멍한 기분이었다.
하루아침에 이혼녀가 될 처지에 놓였고 설상가상 내연남까지 자신을 버렸다. 그야말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 천하의 안예슬이 이런 모멸을 겪게 되었을까.
“… 나쁜 놈들.”
최악의 하루라 여기며 힘없이 카페를 나서려던 그때였다.
우우우우웅-
진동과 함께 스마트폰 메신저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찬용]: 안녕하세요! [찬용]: 아까 카페에서 번호 받은 사람입니다 ㅎㅎ [찬용]: 친구분 잘 만나고 계시나요? [찬용]: (궁금해하는 이모티콘)바로 아까의 헌팅남이었다.
그 메시지를 본 안예슬의 입고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를 오가기 시작했다.
[예슬]: 아니요 파토났어용 ㅜㅜ [찬용]: 정말요? 에구… 어쩌다가 ㅜㅜ [찬용]: 기분 정말 별로겠네요 [찬용]: (위로하는 이모티콘) [찬용]: 혹시 괜찮으시면 드라이브하실래요? [찬용]: 제가 기분전환시켜 드릴게요!급하다.
대놓고 자신을 꼬시고 싶어 안달하며 급발진하는 모습이 부담스러울 정도.
하지만 지금은 이런 헌팅남의 대시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뭔가 잊을 만한 창구가 필요했으니까.
[예슬]: 드라이브 말구 술이 고픈뎅 [예슬]: (소주 한잔 하는 이모티콘) [찬용]: 술이요? [찬용]: 저야 좋죠! 무조건 사드릴게요! 지금 어디세요? [예슬]: 아까 그 카페예요 [찬용]: 바로 갈게요! 10분만 기다려주세요! [예슬]: 네 ㅎㅎ 기다릴게요대화가 끝나고 헌팅남을 기다리며 화장을 고쳤다.
샵에서 만진 머리는 오늘따라 유독 잘 나왔다. 오늘 그냥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울 정도로. 여자친구로서, 아내로서 내 남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 자랑스러워 할 만한 외모는 빛이 났다.
‘이 분에 겨운 복을 차버린 건 니들이야.’
그래. 어차피 세상의 반은 남자. 남자는 또 찾으면 된다.
눈이 발목에 달린 그놈들이 후회하게끔, 아주 멋진 남자를 만나서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어느새 안예슬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이혼이 주는 불안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때 그녀 앞에 차 한 대가 멈춰서더니 조수석 창문이 내려갔다.
“예슬 씨 여기에요!”
“어머, 진짜 빨리 왔네요.”
“하하, 예슬 씨가 부르는데 빨리 와야죠. 타세요.”
그녀는 헌팅남의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갈까요.”
“술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 생각해둔 술집 없어요? 분위기 있는 곳이 좋은데.”
“아, 그랬지. 그럼 제가 잘 아는 데로 모실게요.”
“기대할게요. 오늘… 제대로 취하고 싶으니까.”
안예슬의 야릇한 눈빛에 헌팅남의 목울대가 꿀꺽 움직이더니 급하게 엑셀을 밟았다.
그들이 탄 차는 이윽고 카페를 떠나 빠르게 멀어졌다.
* * *
어제 저녁까지 아내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정우는 안예슬이 전쟁을 선택한 줄 알았다. 출근길에 온 문자를 보기 전까지는.
[할게. 이혼.] [오전에 법원 앞에서 봐.]“… 연락 좀 빨리 하지.”
꽉 막힌 차량들 사이에 있던 정우는 쓰게 웃었다. 미리 알았으면 반차를 쓰고 여유롭게 출발했을 테니까.
‘그래도 멍청하지는 않네.’
재산분할 문제도 있고 해서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이혼을 하고 싶었다. 괜히 이혼을 질질 끌다가 코인으로 대박나게 될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는 불륜의 증거를 잡기가 쉽지가 않다는 점도 있었다. 이전 삶에서는 운이 좋게도 불륜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기에 따로 증거가 필요 없었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은 아무런 물증도 없었으니까.
‘흥신소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해결해준다는 흥신소를 통한다면 불륜현장 잡아내는 건 일도 아닐 터.
다만 내키지가 않았다.
이미 진흙탕에 있는 돼지를 잡자고 자신도 더러워지는 기분이랄까.
이미 한 번 이혼을 해봐서 이혼에 대해 꽤나 잘 알았기에 여러모로 따져봤지만 결국 협의이혼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안예슬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
이로써 이혼소송으로 가서 간통죄 명목으로 위자료를 왕창 뜯어내 안예슬을 무참히 짓밟아준다는 선택지는 폐기되었다.
출근하던 정우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반차를 썼고, 직장 상사는 흔쾌히 처리해주었다.
그 길로 차를 돌려 법원으로 향했다.
법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안예슬이 오는 게 보였다.
피곤한 듯한 얼굴에 어제와 같은 옷차림.
외박한 건가 싶지만 어차피 남이 될 사이에 궁금하지도 않다.
안예슬에게 정우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켜진 폰 화면에는 녹음앱이 실행된 상태였다.
“참나 이젠 녹음까지 해?”
“마지막으로 확인하자. 내가 간통 소송이랑 위자료 청구 안 하는 대신 이혼협의기간이 종료되고 이혼절차가 마무리 되면 재산분할 청구는 완전히 포기하는 조건, 동의하지?”
현시점에서 재산분할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재산분할권은 이혼 후 2년 이내에 청구가 가능하기에 모든 이혼절차가 마무리되고 정식으로 이혼 효력이 발생했을 때 재산분할권을 포기해야 의미가 있었다.
협의이혼으로 재산분할을 하더라도 안예슬이 나중에 재산분할권을 들먹일 수 있었기에 정우는 이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자신한테 불리한 조건이지만 정우가 빈털터리라 여겼는지, 아니면 위자료를 뜯기거나 바람피웠다는 소문이 돌 것이 걱정되었는지 안예슬은 순순히 동의했다.
“… 각서도 써준다고 했잖아. 뭘 더 바래?”
“확인만 한 거야. 괜히 나중에 딴소리 나올까 봐.”
녹음을 종료하며 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그를 보며 안예슬이 표독스럽게 물었다.
“나랑 이혼하는 거 진짜 후회 안 하겠어?”
“전혀. 왜? 넌 후회할 거 같아?”
“… 나 아니면 너같이 징글징글한 놈이 여자나 만날 수 있겠니? 당신이나 후회하지 마.”
싸늘한 눈빛과 함께 안예슬이 먼저 법원으로 들어갔다.
잘 만날 것 같은데.
대답을 삼킨 채 그녀 뒤를 뒤따랐다.
생각보다 이혼 신고는 간단했다.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신청하고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자 이혼에 대한 안내사항을 전달받았고 그게 전부였다.
“양육해야 할 자녀가 있으시면 3개월간의 이혼 숙려기간이 있으신데요, 자녀가 없으시니 1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에 이혼의사 확인을 받으실 수 있으세요. 그때 다시 가정법원으로 방문해주세요.”
“예. 수고하세요.”
마치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라도 하는 것 같은 간편함에 이혼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이건 현실. 그들은 이제 한 달만 있으면 완전한 남이 되는 것이다.
이혼 신고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길은 침묵이 가득했다.
이혼을 앞둔 아내와 걷는 이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 벌써 점심시간이네. 끝난 건 끝난 거지만 밥이라도 먹을래?”
“… 됐어. 이제 남인데 신경 꺼.”
“어차피 회사 가야 되잖아. 점심 먹고 내 차 타고 들어가. 내가 태워다 줄….”
“싫다고!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이제 아는 척 하지마! 돈도 없는 그지 새끼가 밥은 무슨…!”
짜증과 함께 안예슬은 성큼성큼 걸어 멀어져갔다.
마지막이라 괜히 호의를 베풀려다 욕만 먹은 정우는 쓰게 웃었다.
“… 나 이제 돈 많은데.”
어제 500불짜리였던 코인이 2억 원이 되었다고 하면 믿지 못하겠지.
코인이 생각난 김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코인 시세를 확인했다.
이더리움의 시세는 어제부터 제자리걸음을 하던지라 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윽고 시세를 확인한 정우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더리움의 시장가격이 무려 9달러를 넘어선 상태였으니까.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8.20달러였으니 무려 1.5달러나 오른 것이다!
심지어 상승세는 끝이 아니었다.
그가 법원을 나서며 한걸음,
[Mark Price: 10.00] [Mark Price: 10.07]……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Mark Price: 10.25] [Mark Price: 10.39]……
[Mark Price: 10.73]……
저항선을 뚫은 이더리움이 최고점을 갱신하며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혼 후 새출발의 신호가 산뜻했다.
* * *
마치 그동안의 횡보가 기 모으기였다는 듯 저항을 뚫은 비트코인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급변하는 코인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상승률을 보이는 코인은 단언컨대 정우가 선택한 이더리움이었다.
──────────
[ETHUSDT-Long(Cross 2.1x)] [Quantity: 370,860.9ETH] [Entry Price: 7.55] [Mark Price: 11.02] [Liq. Price: 7.49] [Value: 1,312,333USD(+4593%)]──────────
이더리움의 가격은 8달러를 넘어 마침내 11달러라는 두 자리 숫자에 접어들었다.
대략 40% 정도의 상승이었는데 정우는 100배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수익률이 무려 4,600%에 육박했다.
불과 3일만에 벌어진 경이로운 수익.
이제 그의 잔고는 무려 130만 달러에 도달한 상태였다. 겨우 28,000달러로 130만 달러, 한화로 약 15억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 이 정도일 줄이야.’
100배 레버리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100만 달러라는 이득을 얻더라도 한두 달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과소평가했어.’
코인 시장의 광기를.
무엇보다 100배 레버리지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사실 이대로 목표가인 1,400달러까지 홀딩한다 치면 단순 계산해도 18,000%의 100배, 즉 1,800,000%의 경이로운 수익을 얻게 된다.
180만 퍼센트, 18,000배의 비현실적인 수익률.
이론상 끝까지 홀딩해서 1,400불에 모두 매도할 수 있다고 치면 정우의 재산은 약 5억 달러에 도달한다.
원달러 환율을 1,000원으로 계산해도 한화로 약 5,000억 원에 달하는 미친 금액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더리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아직 코인의 광기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2017년도 후반기에 접어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광풍이 몰아칠 테니까.
‘그때가 오면 이더리움보다 훨씬 더 높은 폭으로 급상승할 알코인들이 많아지겠지.’
현재 이더리움의 수익을 알트코인들에 분산투자하면 훨씬 더 경이로운 수익률을 얻을 수 있을 터.
심지어 정우는 겨우 3천만 원만 투자했을 뿐이다.
전세금을 빼고 받게 될 2억 원을 선물에 더 투자한다면? 신용대출을 땡겨서 더 투자한다면?
오늘 13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게 먼지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 퇴사해야 되나.”
현재 법원에서 회사로 가는 길. 운전하는 차 안에서 회의감이 들었다.
아등바등 일해서 월 400 받으면 뭐하나. 투자 제대로 하면 일년 연봉, 아니 3대가 먹고 살아도 남을 돈을 벌 수 있는데.
“… 짜식, 고작 3일만에 도박꾼 다 됐네.”
문득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모든 도박꾼들이 처음엔 그렇게 생각한다. 도박으로 몇백, 몇천만 원씩 벌어들이면 어느 순간 그 행운의 수입이 자신의 능력으로 느껴진다고. 자신은 하루만에 몇천만 원을 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서 정직하게 일해서 버는 일은 한심해 보여서 퇴사하고, 대신 도박에 올인하며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온갖 사치를 행하며 돈을 펑펑 써대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는 게 도박꾼의 말로다.
‘정신 차리자. 회귀로 얻은 한순간의 행운에 지나지 않아.’
정우는 마음을 다 잡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분석하려 애썼다.
아무리 회귀해서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도 지금 퇴사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언젠가는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버는 400만 원은 단순한 400만 원이 아니다. 미래에 몇십억, 몇백억, 몇천억 원이 될 잠재력이 있는 400만 원이다.
한푼이 아쉬워서 신용대출까지 받으려는 판국에 월급은 매우 소중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도 될 것 같긴 하지만.’
아직 이혼 얘기도 안 드렸는데, 이혼한 걸 알고 돈까지 빌린 걸 알게 되면 불안해하실 게 뻔했다.
‘일단은 내 선에서.’
코인의 황금기가 끝날 때까지, 모든 코인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직장을 다니며 버티자.
어느정도 머릿속이 정리되었다.
조급해지던 마음이 진정되며 주변의 풍경들이 들어왔다. 점심시간 한적한 고속도로가 주는 평화.
신선함이 폐부를 채웠다.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래에는 유행이 지나버린 케이팝을 들으며 달린다.
감회가 새롭다. 사실 이쪽 길로 출근을 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이맘때 그가 다니던 중소기업 성운이노베이션은 망하기 때문이다.
리튬이온전지 자동화설비 전문이었던 성운 이노베이션은 대기업에 설비를 납품하고 관리해주는 업체였다. 간단히 말해 공장에 기계 설비를 납품하는 기업이었는데, 대표가 되지도 않는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열을 올리다 부도가 나면서 대기업인 대한화학에 인수합병되며 흡수되었었다.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연구 성과가 별로 없던 정우는 위에서 내려온 압박에 이직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옛 회사를 방문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회귀라는 기이한 이유로 다시 방문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뒤늦은 출근을 했다. 외부 주차장에 주차를 마치고 출입구에서 사원증을 찍고 들어가니 엘리베이터 앞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 있다.
같은 소프트웨어개발팀에 있는 강성열 책임과 지서현 연구원이다.
막 점심을 먹고 들어가려던 참이었던 걸까. 어색하게 엘리베이터에 서 있던 지서현이 정우를 발견하고는 로봇처럼 딱딱한 얼굴로 가볍게 목례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서현 씨 오랜만.”
오랜만에 보는 후배의 인사에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여, 이 선임. 1년만이네. 일은 잘 보고 왔어?”
“덕분에 잘 보고 왔습니다. 근데 강 책임님, 저희가 못 본 지 1년밖에 안 됐나요?”
“음? 1년밖에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 아 제가 잠시 착각했습니다.”
뒤늦게 뿔테 안경이 인상적인 강성열 책임이 농담을 건넨 것을 깨달았다. 강 책임은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바뀌어 1년이 지났다는 것을 빗대어 농담을 한 건데, 실제로 몇 년만에 그를 본 정우는 농담을 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는 정우를 보며 자신의 농담이 먹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강성열 책임은 시무룩한 얼굴이다.
“내 드립이 너무 어려웠나 봐.”
“그건 아니구요. 제가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정신이 없네요.”
“그으으래? 이거이거 이 선임 너무 잡혀 사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CS팀에 예슬 씨도 출근 안 한 눈치더만.”
강성열이 짓궂게 웃었다.
사실 정우가 안예슬과 사내커플이었다가 결혼한 건 비밀도 아니니 할 수 있는 놀리기다.
아마도 이혼하기 직전이라는 걸 알면 놀라 자빠지겠지.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오늘 안 그래도 법원 가서 이혼 신고하고 오는 길인데요 뭘.”
“으이그 이혼은 무슨~ 얼굴에 다 쓰여 있구만~ 아주 부러워 죽겠어~ 나도 한때는 이 선임처럼 깨가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진짜 좋을 때야~”
솔직히 얘기했지만 신혼 초라 그런가, 대놓고 이혼 얘기를 꺼냈음에도 강성열 책임은 믿지 못하는 눈치다.
“하, 하하….”
“책임님, 조용히 좀 해주십시오. 엘리베이터에선 정숙하셔야 합니다.”
“어? 어… 내 실수. 흠흠.”
지서현의 지적에 강성열이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침묵했다.
상사를 셧업시키는 부하직원이라니. 정우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우, 저 또라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