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61)
대한화학 대표실.
박민수 부회장이 집무 중인 그곳에 대한전자 사장, 한동준이 찾아왔다.
“부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어? 사장님. 네 오랜만입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한동준은 당연하다는 듯 소파 상석에 앉았고, 부회장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겉으로는 사장과 부회장이라는 직급 차이가 있지만 그건 형식적인 직책일 뿐, 눈앞의 한동준은 대한그룹의 주인인 대한일가의 사람이자 실세 중의 실세였으니까.
차기 후계자로 유력한 인물이었기에 부회장으로서도 소홀히 대할 수 없었다.
비서를 시켜 커피를 내오게 한 부회장은 옆에 앉아 그를 바라봤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다혈질인 동생과 달리 무표정한 포커페이스가 인상적인 한동준이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더니 무덤덤하게 얘기했다.
“회장님께 얘기 들으셨을 겁니다. 앞으로 제가 대한화학 배터리사업 주관할 건데,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 얘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전력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든든하군요. 그래서 말인데, 첫 번째 임무를 드릴까 합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내년까지 NMC배터리 생산량을 두 배 늘려주십시오.”
“생산량을요?”
갑작스러운 한동준의 지시에 박민수 부회장은 당황했다.
“지금 네뷸라의 솔리드스타의 등장으로 배터리 업계가 초토화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NMC배터리의 생산을 늘리는 건 자충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생산라인을 늘리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생산라인을 늘리라는 게 아닙니다. 더 이상 생산라인에 투자할 생각도 없구요. 그저 기존 생산라인을 활용해서 생산량만 늘려달라는 얘기죠.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박민수 부회장은 의아해했다.
“가능은 합니다만… 생산라인을 늘리지 않고 무리하게 생산량을 늘리면 불량률이 치솟을 겁니다. QA(Quality Assurance: 품질보증) 관리가 안 되는데 생산량을 늘리는 건… 글쎄요. 솔직히 무리수라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늘린 배터리 재고를 소모하는 것도 일입니다.”
“그건 박 부회장님이 판단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에게 계획이 있으니까요. 재고 역시 유일자동차와 얘기된 게 있으니 그쪽을 통해 처분할 겁니다. 그저 부회장님은 제가 말씀하신 대로 NMC배터리 생산량을 대폭 늘려주십시오.”
“회장님도 이 사실 아십니까?”
“회장님께 이미 컨펌 받은 사항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한광표 회장이 확인했다는 말에 박 부회장도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자기는 월급을 받는 입장이니까.
다만 궁금은 하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NMC배터리 생산을 늘리려는 걸까. 그것도 이제 미래가 없는 시한부 목숨인 배터리를 말이다.
“그런데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그저 대한화학 배터리사업부의 실적을 크게 늘리기 위한 일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실적을 늘린다…. 이해했습니다.”
그 한마디에 박민수 부회장도 한동준 사장이 무슨 계획을 꾀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배터리사업부의 실적 뻥튀기를 통해 성난 주주들의 민심을 달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 무언가 있긴 한데.’
대한그룹에서 살아남은 오랜 경험이 본능적으로 경고했다.
왠지 지금 하려는 이 계획이 굉장히 위험할 거라고.
그래서 그는 살짝 한 발 뺏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배터리 생산량을 갑작스럽게 늘리는 건 불량률 관리가 어렵습니다. 품질 이슈가 불거질 수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그건 괜찮으니 부회장님은 제가 얘기한 대로 진행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믿고 가겠습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한동준 사장이 일이 있다는 듯 떠나고.
남은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 애매하다, 애매해.”
어중이떠중이에 가까웠던 한민준 부사장이 결국 완전히 좌천되어 대한 E&M이라는 계열사 전무로 쫓겨난 마당에, 실세 중에 실세로 온 한동준 사장이 와서 살짝 기대했다.
그런데 무언가 다를 거라 여겼던 자신의 판단이 틀렸던 걸까.
박민수 부회장은 독선적인 그의 일처리가 왠지 못마땅했다.
“근데 별 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난 모르겠다.
박민수 부회장은 곧장 배터리사업부에 연락을 넣었다. 생산량을 늘리라고.
그는 맡긴 일은 굉장히 잘 처리하는 성격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대한화학 부사장에서 쫓겨난 한민준은 대한E&M 전무로 좌천된 상태였다.
대한E&M은 투자/배급사로써 주로 영화 쪽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실질적인 수익성은 크지 않아서 한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권력의 핵심과는 멀달까.
“… 그래도 아버지가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셨네.”
요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한그룹의 말석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게 중요했다.
무엇보다 연예계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점만 해도 한민준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연예계 성상납 비리 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반대로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연예계 사업이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한 로비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의미도 되었으니까.
“… 이렇게 된 이상 연예계 사업을 먹는다.”
엔터 사업을 먹고 연예계 쪽 큰 손이 되어 정재계 유력 인사들과 인맥을 터서 큰물로 가는 거다.
한민준은 야심찬 계획을 세우며 김민찬 대한E&M 대표를 불렀다.
“네, 전무님. 부르셨습니까.”
대표가 전무에게 인사하는 이상한 상황. 하지만 상대가 대한일가 사람이기에 당연했다.
한민준이 김민찬 대표에게 물었다.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러는데 특이사항 있어요? 보고할 거 있으면 읊어봐요.”
“음… 가장 최근 특이사항이라고 한다면 엄준욱 감독의 신작 [모기>의 투자 계약이 코앞이라서 결재가 필요합니다.”
“모기? 그게 뭔데요?”
한민준은 처음 들어보는 영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엄준욱 감독이 1년 전부터 준비 중인 영화인데, 상류층에게 빌붙어 사는 하류층의 삶을 묘사한 영화입니다.”
“… 스토리만 들어도 재미없을 것 같은데. 투자 금액이 얼만데요?”
“일단 기본 투자금액은 100억원입니다.”
“100억?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요새 보통 영화 한편에 그 정도 들어갑니다. 오히려 엄준욱 감독 영화치고 굉장히 적은 투자금액입니다.”
“그래요?”
“예. 그리고 아시다시피 엄준욱 감독은 그 이름값만으로 이미 흥행보증수표라서요. 계약하면 수익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얼마를 버느냐가 관건인데, 전작 [돼지인간>은 넷플릭스에 뺏겼기 때문에 이번엔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현재 엄준욱 감독은 넷플릭스를 통해 투자를 받아서 자신의 신작을 촬영했는데, 이로 인해 대한E&M 김민찬 대표는 굉장히 분노했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인 엄준욱 감독을 빼앗겼으니까.
하지만 열을 토하는 김민찬 대표의 주장에도 한민준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엄준욱인가 뭔가 걔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 예?”
“아니 이해가 안 되어서요. 난 그 사람 영화 재미 없던데? 뭐였드라. [화성의 악마>였나. 지루해서 한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네.”
“아… 네.”
“아무튼 알겠어요. 엄준욱 감독 데려오죠.”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엄 감독이 워낙 프라이드가 대단한 분이셔서….”
“뭐 대단한 양반이라고 그리 쩔쩔 맵니까. 프라이드고 뭐고 돈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100억으로 안 되면 200억 준다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김민찬 대표는 양아치 같은 한 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예산이 대폭 늘어나서 속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그 환희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근데 미팅은 언제래요? 계약서를 그냥 쓸 수는 없을 거 아니야.”
“지금 엄 감독이 [돼지인간> 때문에 넷플릭스 관계자들이랑 미팅한다고 미국에 있다고 하더라구요. 조만간 귀국한다고 하니 근시일내에 미팅일자 잡아보겠습니다.”
“미팅할 때 얘기해요. 나도 나갈 테니까. 그래도 유명한 양반이니 얼굴 도장은 찍어야지.”
“… 그냥 제가 혼자 상대해도 됩니다. 번거롭게 와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아, 괜찮아. 원래 이런 쪽 일은 임원이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내 눈치 보지 말고 미팅 잡히면 얘기해요.”
“…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김민찬 대표가 전무실을 나서고.
푹 한숨을 내쉬었다.
“…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하필 양아치 한 전무가 우리 회사로 좌천되다니.
앞으로 대표 생활의 가시밭길이 예상되었다.
* * *
“여러분, 두 달 넘게 미국에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본국으로 돌아갑시다.”
정우는 지서현, 탁세훈과 함께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거절했다.
“테네시 공장 확장 건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설비 물자 확인하고 미팅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요. 그리고 솔리드스타 납품받을 수 없냐고 지금 문의가 폭주하는데… 어우, 죽겠습니다.”
확실히 탁세훈이 미국을 떠나기엔 그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막중했으니까.
“음… 알겠어요. 탁 본부장님의 역할이 크니 어쩔 수 없네요. 혹시 인력 부족하면 직원은 재량껏 뽑아서 쓰세요.”
“이미 그러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팔로알토에 사무실도 임대했는데 그거 기억 나시죠?”
“… 그랬나요? 하도 보고 받은 게 많아서 그런 사소한 건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사무실 임대료가 얼만데… 하긴 대표님 재산에 비하면 푼돈이긴 하죠?”
“네, 뭐. 하하하하. 아무튼 본부장님은 어쩔 수 없고. 그럼 서현 씨는?”
정우가 묻자 지서현도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저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호경이 소개로 IOHK 개발자들과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요. 지금 한국으로 갈 수 없습니다.”
“IOHK?”
IOHK라면 들어본 적이 있다.
IOHK(Input Output Hong Kong: 인풋아웃풋홍콩)의 약자로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만드는 홍콩 기업이다.
이 기업이 왜 유명하냐면 바로 이더리움의 최고경영자 출신이었던 찰스 호스킨슨이 창업했기 때문이다.
“IOHK면 에이다ADA 만든 찰스 호스킨슨 있는 곳 아니야?”
“맞습니다. 곧 샌프란시스코 블록체인 위크(San Francisco Blockchain Week)에서 주관하는 블록체인 컨퍼런스가 열려서 이번에 찰스 호스킨슨을 비롯한 카르다노 개발진들이 실리콘밸리에 방문하거든요. 호경이가 그 사람들 소개해준다고 해서 보기로 한 상태라… 저는 당장 귀국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어. 미팅 잘하고 오고, 괜찮은 사람 있으면 영입도 하고. 아, 전에 뽑은 사람들은 괜찮더라.”
이미 지서현은 블록체인 전문가 두 명을 영입했다. 진호경의 소개로 만난 이들 중 괜찮은 인물을 지서현이 선별한 건데, 워낙 깐깐한 성격답게 그녀가 고른 개발자들은 모난 곳 없이 괜찮아서 정우의 마음에도 들었다.
그들은 벌써 실리콘밸리에서 온라인상으로 정우의 코인거래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었는데, 보안상의 이유로 곧 한국 네뷸라 코퍼레이션 본사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래소를 만드는 게 개발자가 워낙 많이 필요한 일이라 한두 명으로는 어림도 없었고, 특히 특출난 실력을 지닌 전문가가 필요한 만큼 IOHK 관계자들을 만나려는 지서현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일 다 보면 한국으로 와. 티켓값은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아쉽다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는 지서현을 보며 탁세훈이 웃었다.
“서현 씨 대표님은 걱정하지 마. 내가 한눈 안 팔게끔 잘 감시할 테니까.”
“탁 본부장님은 미국에 계시는 거 아닌가요?”
“제 수족들이 한국에 있지 않습니까. 영업팀 애들한테 물어보면 대표님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 그건 좀 무서운데요?”
“그러니 헛짓하지 말고 잘 하십시오.”
“… 저 대표 맞죠?”
“대표는 맞죠. 저에게 월급을 주시지 않습니까. 하하하.”
“느낌이 영 대표가 아닌 것 같은데….”
탁세훈의 협박 아닌 협박에 자신이 정말 대표가 맞는지 정체성에 혼란이 찾아왔다.
… 그런데 서현 씨. 자기는 왜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 * *
결국 정우는 홀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티켓은 당연하게도 퍼스트 클래스로 끊었다.
‘가는 동안 단타나 쳐야겠다.’
시간 허비를 할 수 없어서 단타를 치기로 하고 노트북을 꺼내던 그때였다.
정우가 앉은 옆자리에 누군가 왔다.
“어?”
안경을 쓴 덥수룩한 파마머리에 덩치 좋은 사내의 얼굴이 낯익었다. 누굴까 하고 머리를 굴리던 정우의 입이 벌어졌다.
“어, 엄준욱?”
그는 바로 아카데미 4관왕 수상에 빛나는, 아니 빛나게 될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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