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62)
엄준욱 감독.
일찍이 [화성의 악마>라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던 그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물고기>로 천만감독 반열에 올랐고, [모성>이라는 작품으로 그 각본과 연출이 한층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쇄빙선>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각인한 대단한 감독이었다.
‘하지만 진짜는 [모기>지.’
엄준욱 감독이 감독 및 각본을 맡은 [모기>는 2019년 개봉 후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국내 흥행 성적도 대단했지만, 색조의 대비와 사물의 배치, 숨 막히는 구도가 주는 압박감과 같은 미장센과 작품성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던 것.
이 작품으로 인해 엄준욱 감독은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4관왕을 휩쓰는 기염을 토한다.
정우도 회귀하기 전에 [모기>를 보고 얼마나 감탄했던가.
오랜 우상이자 원래 좋아했던 감독이 옆자리에 앉자 정우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놀라서 엄 감독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말았는데, 그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엄준욱 감독은 살짝 불쾌한 표정이었다.
“절 아세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팬이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그제야 딱딱한 표정을 푼 그가 좌석에 편히 앉았다.
캐쥬얼 정장 마이 단추를 슬쩍 푸는 그 모습이 얼마나 섹시한 지 정우도 반할 지경이다.
엄준욱 감독이 입을 떡 벌리고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정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하하,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현실감이 없어서요. 와… 정말 엄준욱 감독님 맞으시죠?”
“네, 맞아요. 근데 용케 알아보셨네요?”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님을 어떻게 모르겠어요.”
“아카데미상이요? 저 아직 구경도 못 해봤는데요.”
“곧 수상하게 되실 거니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님 맞죠.”
“하하하, 농담도 잘하셔라.”
정우는 진심으로 한 얘기지만 엄 감독은 농담으로 치부하며 웃었다.
그래도 덕분에 경계심은 한층 누그러졌다.
진짜 팬이었기 때문에 정우는 그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와… 진짜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 저 [화성의 악마>부터 해서 감독님 영화 다 봤어요. 이번에 개봉할 [모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기>요? 아, 하긴 주연 배우 섭외 기사가 올 초에 나갔었죠. 근데 그걸 기억하고 계시네. 아직 제작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저 감독님 찐팬 맞습니다. 하하하. [모기> 내용도 그거 아닙니까? 상류층의 삶에 빌붙어 모기처럼 피를 빨아먹는 하층민의 모습 맞죠?”
“… 오? 그걸 아세요? 그거 인터뷰로 진짜 짧게 나갔을 텐데.”
엄준욱 감독도 그제야 정우가 그냥 팬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님을 깨달은 듯했다.
“이야- 이것도 인연이네요. 미국에서 그것도 퍼스트 클래스 옆자리에 한국인이, 그것도 제 팬이 앉아 있다니 신기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인데요? 제 우상인 감독님이 옆에 계시다니… 아, 사진 하나 찍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사이 좋게 셀카도 찍은 두 사람은 이후 영화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우가 영화인은 아니었지만, 워낙 그의 작품을 잘 알기도 했고, 특히 [모기>의 경우는 아직 제작은 되지 않았지만 이미 봤던 영화였기에 대화가 잘 통했다.
“[모기>는 이번에 초대박 날 것 같더라구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이제 각본만 나왔는데요, 뭘.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르죠.”
“그래도 제목만 봐도 대작 스토리 냄새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게 보여요?”
엄준욱 감독이 재밌다는 듯 묻자 정우가 신나서 떠들었다.
“예. 자본주의 앞에서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이 고혈을 빨아먹는 모기처럼 살아가다가 어떻게 파국을 맞이하는가… 뭐 그런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그래서 상류층과 하류층의 모습이 점점 교차로 대비되면서 나올 테고, 전체적으로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도 담겨 있으니 잘될 겁니다.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의 질투심과 자괴감이 폭발하면서 클라이막스로다가… 딱! 임팩트 장난 아닐 겁니다.”
정우의 얘기에 엄준욱 감독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제가 딱 생각하던 이미지인데…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메시지랑 마지막 장면도 제가 구상해놓은 건데… 혹시 영화 관계자세요? 시나리오 보신 건가?”
그제야 정우는 자신이 말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읊었다는 걸 깨달았다.
엄 감독의 의심 어린 눈총을 받으며 정우가 서둘러 얼버무렸다.
“아, 아뇨아뇨. 영화 관계자라니요. 저 영화 쪽에는 아예 문외한입니다. 연줄도 없어요. 그냥 제목과 컨셉 듣고 떠오른 상상을 즉흥적으로 떠들어본 것뿐입니다.”
“흠… 그래요?”
정우가 열심히 변명했지만 엄 감독의 의심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뭐, 그렇다니 알겠습니다. 그럼 그 상상이라는 거 조금만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상상이요?”
“예. 아까 주인공의 질투심과 자괴감이 폭발한다고 했는데 어떤 걸 떠올리셨는지 궁금해서요.”
“음… 좋습니다. 우선 제가 떠올린 게 뭐냐면요.”
정우는 회귀하기 전에 보았던 [모기> 영화의 내용을 마치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 하층민 주인공이 있어요. 온갖 허드렛일,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처리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가난하였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부잣집에 빌붙어 모기처럼 살아가게 되죠.”
그가 이야기를 풀어놓자 엄준욱 감독의 표정이 점점 진지해졌다.
왜냐하면 정우가 풀어놓는 이야기가 자신이 구상한 각본과 완전히 똑같았으니까.
‘… 관계자 맞는 것 같은데.’
자신의 시나리오 각본은 최대한 기밀 유지가 되고 있지만, 배급사에 배부된 것도 있기 때문에 관계자라면 한번쯤 내용을 봤을 수도 있을 터.
그는 정우가 업계 관계자임을 확신하며 도대체 언제까지 연기를 할 요량인지 궁금해져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
하지만 이어진 정우의 말에서 점점 그의 얼굴엔 경악이 서렸다.
“부잣집 소파에서 고급 양주도 몰래 훔쳐 먹고, 맛있는 스테이크도 빼돌려서 해 먹고, 멋들어진 정장도 훔쳐 입어보고. 마치 자신이 상류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하죠. 하지만 어느순간 주인공은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요?”
“태생부터 그들은 다르다는 것을. 가난한 자신은 절대 상류층이 될 수 없다는 것을요.”
“그걸 어떻게 알게 되죠?”
“냄새요.”
“냄새?”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특유의 체취라고 해야 하나. 하류층은 모르는, 상류층만 아는 어떤 가난의 흔적이랄까요.”
“가난의 흔적?”
“음… 이를테면 제 경험인데 초등학교 때 도시락 싸 들고 다녔거든요? 근데 책가방에 넣어둔 도시락통에서 김칫국물이 좀 샜었나 봐요. 그런데 그게 가방과 옷까지 적셔서 온몸에서 김치냄새가 난 적이 있어요. 저는 그냥 물로 옷이랑 가방에 묻은 김칫국물 흔적 지우고 수업을 받았는데, 그때 친구들이 그러더라구요. 저한테 신김치 냄새가 난다고. 그러면서 반 친구들 모두가 김치냄새 난다고 엄청 놀려댔는데 얼마나 창피하던지. 저희집이 못사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이 들더라고요.”
“김치냄새… 아!”
김치냄새라는 키워드에 무언가 깨달은 듯 엄 감독이 탄성을 질렀다.
냄새. 그것은 미래에 개봉하게 되는 영화 [모기>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중 하나였다.
가난한 삶을 살던 주인공은 반지하에서 산다. 그래서인지 반지하 특유의 꿉꿉한 곰팡내나, 역류한 하수구 냄새가 배어 있었는데, 주인공을 고용한 상류층 인사는 항상 이를 은연중에 지적하며 무시한다.
그래서일까.
주인공은 몸에서 나는 가난의 냄새 때문에 자괴감과 질투,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지막에 폭발하게 되는 것.
즉, ‘냄새’야말로 [모기>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정우는 영화를 봤기에 이 내용을 알아서 슬쩍 언급해본 건데, 이때의 엄준욱은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정우가 말한 냄새라는 말에 경악하고 말았다.
“정우 씨, 잠깐만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걸까.
엄 감독은 부리나케 노트북을 켜서 급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가난의 냄새….”
“김치냄새, 곰팡내, 하수구 냄새… 몸에서 나는 체취… 옷을 빨고, 아무리 몸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
“그 냄새는 노예의 낙인처럼 가난한 사람의 육체에 배어 옥죄고 있다….”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타이핑하는 엄준욱 감독.
순식간에 집중 모드로 들어가버린 그를 보며 정우는 자신이 그에게 어떤 힌트를 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의 ‘스포일러’가 엄준욱 감독에게 도움이 된 모양.
실제 원작자에게 원작에 대한 스포를 하다니. 이런 경험을 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 말고 또 있을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 도움이 되었기를.’
지금 그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으니 이제 단타나 쳐야겠다 여기며, 정우도 노트북을 켜서 매매를 시작했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그곳엔 두 사람의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후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기다려주시고…… 오늘도 저희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 승무원들은 앞으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하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내에 울려 퍼지는 도착 안내 방송에 엄준욱 감독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얼마나 집중을 했던지 노트북에 열린 워드 프로그램엔 글자들이 빼곡했다.
‘… 풀었다!’
엄준욱 감독은 엄청난 희열과 성취감에 저도 모르게 만세를 지를 뻔하다가 체면을 떠올리며 겨우 자제했다.
최근 굉장히 골머리를 앓고 있던 [모기> 각본의 미적지근한 부분을 마침내 해결한 것이다.
사실 그는 최근에 각본이 좀 마음에 안 들어서 제작 들어가기 전에 수정을 하려고 했는데, 그 미적지근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갈피를 못잡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정우와의 대화를 통해 각본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여 단번에 풀어냈던 것.
‘시각적 컨텐츠의 끝판왕인 영화에서 냄새라는 단서를 떠올린다?’
그 정도로 엄준욱 감독조차 정말 예상치 못한 키워드였고, 덕분에 막힌 부분을 뚫을 수 있었다.
정우라는 남자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여기며 옆자리에 있던 정우를 쳐다봤다.
피곤했는지 수면 안대를 착용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정우. 그의 입가로 한줄기 침방울이 흘러내린다.
이런 허술해 보이는 남자가 바로 자신의 각본에 화룡점정을 찍어준 일등공신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아니었어.’
처음엔 아카데미상 수상이니 뭐니 이상한 얘기를 해서 뭔가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다 싶었다. 특히 각본 얘기를 주절주절 떠들 때는 업계 관계자인가 싶었는데,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상상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비범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어떤 한국인이 미국에서 한국행 퍼스트 클래스 티켓을 대수롭지 않게 끊겠는가.
그는 비로소 정우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깨달았다.
그때 안내 방송 때문에 깬 건지 정우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한쪽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내며 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걸까.
졸린 눈을 꿈뻑이며 엄준욱 감독을 쳐다봤다.
“아음… 벌써 도착했나봐요.”
“그렇네요. 잘 잤습니까?”
“네, 뭐. 퍼스트 클래스가 확실히 좋네요. 으자자자-!”
기지개를 편 정우가 언제 졸았냐는 듯 부지런히 짐을 정리하고 노트북을 확인했다.
모니터에 무언가 차트 같은 게 떠올라 있는 걸 보면 비즈니스맨일까.
엄준욱 감독은 문득 그가 궁금해졌다.
“정우 씨,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요? 저는 뭐… 그냥 사업하고 있습니다.”
옆자리 남자, 정우가 씨익 웃었다.
“사업이요?”
“네, 거창하진 않구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아, 그래도 정우 씨 식견이면 잘될 것 같네요.”
“에이, 제가 식견이 어딨다구요.”
“아니에요. 정우 씨 때문에 저도 방금 비행기에서 각본 막힌 부분 뚫었거든요.”
“오? 정말요?”
“네. 사실 최근에 각본에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느껴지는데 그게 뭐다라고 딱 꼬집어 얘기하기는 애매한, 그런 게 있었어요. 그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꽤나 고심 중이었는데 쉽지 않더라구요.”
“원래 창작이란 게 그렇죠. 창작의 고통이 제일 끔찍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여튼 그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었을 정도였어요.”
“네? 하하하.”
엄준욱 감독이 자신의 흰머리 염색을 가리키며 자학유머를 날리자 정우가 빵 터졌다.
그런 그를 보며 엄준욱 감독이 진지하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이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진짜 정우 씨가 알려준 ‘냄새’가 핵심이었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정우 씨.”
“뭘요. 제가 아니어도 잘 해내셨을 겁니다. 엄준욱 감독님이라면 반드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실제로 미래에 당신은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니까요.
정우는 뒷말을 삼켰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엄 감독은 정우의 겸손함에 더더욱 그가 마음에 들었다.
“이건 진짜 제가 제대로 보답하고 싶은데, 서울에 계실 거면 나중에 술 한잔 하시죠?”
“저야 좋죠. 엄 감독님과 술이라니… 친구들에게 평생 자랑할 술 안주 겟했네요.”
“술안주요? 하하하, 이왕 술 안줏감 드리는 거 제가 거하게 만들어드리죠.”
“기대하겠습니다.”
아이처럼 좋아하는 정우를 보며 엄 감독은 그에게 진짜 거하게 대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랜만에 거기로 가볼까.’
가격은 비싸지만 분위기 하나는 끝내주는 바를 알고 있었다.
거기라면 여기 자신의 팬이자 은인에게 큰 보답이 될 터.
하지만 그는 몰랐다.
정우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를.
전세계가 지금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 *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비행하니 편하긴 했지만, 역시나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은 몸을 녹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우… 순간이동 장치라도 개발되면 좋겠네.”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 역시 비행은 할 게 못 된다고 여기며 입국수속을 마치고 캐리어를 끌고 나갔다.
어느새 친구처럼 친해진 엄준욱 감독도 함께였다.
“정우 씨,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꼭 저장해놔요.”
“기다릴게요. 근데 밖에 누구 연예인이라도 왔나요? 저기 엄청 시끌시끌한데요?”
“음… 기자들인가 봅니다. 저 때문에 왔나 보네요.”
“아, 맞네요. 엄 감독님 스타셨지!”
“스타는 무슨… 그냥 그저 그런 일개 감독일 뿐이죠.”
엄 감독은 겸손하게 받았지만, 어깨는 으쓱 올라갔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앞인데 기자들이 알아서 판을 깔아주니 오죽하랴.
‘나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는 느낌이라 콧대가 치솟는달까.
하지만 그 콧대는 환영홀을 겸하는 입국장으로 나선 순간 금세 무너져 내렸다.
“어? 이정우 대표다!”
“왔다!”
두 사람이 입국장으로 나서자마자 대기 중이던 기자들의 고개가 모두 그들에게 꽂혔다.
일사분란하게 두 사람을 향하는 시선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느낄 때, 섬광탄처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눈부신 불빛에 정우와 엄준욱 감독이 당황할 때,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인터뷰할 테니 밀지 마십시오. 어어-!”
엄준욱 감독이 이런 일은 많이 겪어보았다는 듯 프로페셔널한 자세로 기자들을 대하려 했는데, 기자들이 내미는 마이크는 그를 지나쳐 정우에게로 향했다.
순간 엄준욱 감독은 벙쪄버렸다.
‘… 뭐야? 나 인터뷰하려는 거 아니었어?’
그가 당황해할 때, 갑자기 마이크 뭉텅이를 받아들게 된 정우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어…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네뷸라 케미컬 이정우 대표님이시죠?”
“… 어? 네,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XBN입니다. 최초의 상용화 전고체배터리 솔리드스타 개발로 인해 전세계가 이정우 대표님을 주목 중인데요. 이와 관련하여 소감이 어떠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뷸라 케미컬 이정우 대표라는 말에, 기자들에 의해 옆으로 밀려난 엄준욱 감독은 그제야 그가 누군지 깨달았다.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사나이.
전고체배터리 솔리드스타를 개발한 남자.
그가 바로 비행 내내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이번에 사귄 친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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