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66)
정우는 대한전자의 신기술이 무엇인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어떤 기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솔리드스타의 안전성이 어느정도입니까?”
솔리드스타의 안전성이라.
한성준 사장이 솔리드스타의 장점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아 친절하게 설명했다.
“당연히 리튬이온배터리에 비해 훨씬 안전하지요. 전해질이 고체상태이기 때문에 외부충격에도 강하고, 외부요인에 의해 구부러지거나 찌그러지는 등 변형이 이루어져도 정상 작동하죠. 배터리를 감싼 파우치를 열어도 문제없이 작동하구요. 심지어 잘라도 기능엔 이상이 없기 때문에 아주 얇은 형태로도 제작 가능합니다.”
안전성에 대해 어필하자 한성준 사장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구부러져도 정상 작동하는 배터리, 무언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구부러져도 작동한다…? 아!”
그제야 정우는 한 사장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깨달았다.
“설마 대한전자의 신기술이라는 것이 플렉서블 스마트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플렉서블Flexible. 말 그대로 잘 구부러지기 쉽다는 걸 의미한다.
즉, 플렉서블 스마트폰은 잘 구부러지는 스마트폰을 일컬었다. 형태가 고정된 게 아니라 변형이 되어도 정상적으로 스마트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 직사각형의 스마트폰이 아니라 얇은 종이 형태로 팔목에 감아두거나, 구겨서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크게 보고 싶을 때 늘려서 확장해서 볼 수 있는 등 공간과 크기의 제약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꿈의 스마트폰인 것이다.
다만 플렉서블 스마트폰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구부러져도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배터리와 디스플레이, 그리고 반도체가 그것이다.
“솔리드스타를 개량하면 플렉서블 기능을 구현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이미 파우치형 배터리로 만들 때 필름 형태로 셀을 쌓아올리거든요.”
일단 배터리의 경우 정우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전고체배터리를 완벽히 구현했기 때문에, 얇은 막 형태로 배터리를 제작하여 플렉서블 기능을 추가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문제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입니다. 대한전자에 그런 기술이 있습니까?”
“예. 저희가 누구입니까.”
“… 대한그룹이죠.”
“그리고 대한그룹에는 세계 1위 디스플레이 기업, 대한디스플레이가 있죠.”
“아, 그러고 보니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다는 건 언젠가 기사에서 본 것 같네요.”
“예. 이미 그 기술은 구현된 지 오래입니다.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구요. 문제는 딱 하나, 배터리였습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특성상 각형이나 원통형, 파우치형으로 형태가 고정되었는데, 플렉서블 배터리는 구현이 어려웠다.
그런데 마침 네뷸라 케미컬에서 꿈에 그리던 전고체배터리, 솔리드스타가 출시된 것이다.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성능으로 승부를 보기에는 이미 너무 상향 평준화되었습니다. 다들 고만고만한 상태인데, 브랜드 이미지 가치가 제일 높은 애플 독주 체제죠. 저는 이 독주를 깨려면 새로운 폼팩터를 개척하는 게 차기 시장 장악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실마리를 네뷸라 케미컬이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게 바로 솔리드스타군요.”
“예. 대한디스플레이의 세계1위 디스플레이 기술과 대한전자의 스마트폰 노하우, 그리고 네뷸라 케미컬의 완벽한 전고체배터리 솔리드스타. 이 세 가지 합작이라면 무언가 그림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 초대박이겠죠.”
“이 대표가 네뷸라의 솔리드스타를 저희 대한전자에 독점 공급해주신다면 지금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애플도 우습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아니 우리가 게임체인저가 될 테니까요.”
“음….”
“이 대표, 저희와 함께 하지 않겠습니까?”
한성준 사장의 제안에 정우는 생각에 잠겼다.
한성준 사장의 말마따나 대한전자에 솔리드스타를 납품한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경영자 입장에서 굳이 한 곳에 납품을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도 현재 시장 1위인 애플이나, 2위인 진성전자가 아닌 대한전자에 말이다.
“솔깃한 제안입니다. 제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어요. 그러나 대한전자에서 바라는 것은 솔리드스타의 독점 계약이겠죠?”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우는 한성준 사장의 달콤한 유혹을 떨쳐냈다.
절친한 친구 앞이라는 점.
한성준 사장이 마음에 든다는 점.
그래서 화기애애한 미팅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이런 좋은 분위기와 상황들이 즉흥적으로 계약을 하라고 내심 떠밀고 있었지만, 그는 냉철하게 판단을 내렸다.
순간적인 기분에 손해를 감수할 정도로 애송이는 아니었으니까.
미국까지 건너가 테슬라와 독점 계약을 따낸 그는 어느새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정우는 여유롭게 한성준 사장을 응시하며 거절했다.
“독점 계약 제안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 역시 그렇게 되는군요. 이해합니다.”
한성준 사장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정우의 눈을 보고 그의 결정이 쉽게 번복되지 않을 거라 여겼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독점 계약 제안은 저희가 생각해도 염치가 없기는 했네요.”
“염치가 없다니요. 그런 말씀은 마세요.”
“이미 게임체인저인 솔리드스타의 위세에 호가호위하려 했는데 염치가 없는 게 맞지요.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소량이라도 공급 제안을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소량이라… 그것도 확답은 드릴 수 없겠습니다.”
정우는 자신이 가진 무기의 가치를 잘 알았다.
미팅 스케줄을 잡자고 하자마자 대한전자 사장이 몸소 본사까지 찾아왔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솔리드스타는 이제 부르는 게 값이었다.
애플, 진성, 대한 3사만 경쟁하듯 입찰시켜도 가격을 뻥튀기 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여기에 중국 거대 자본까지 뛰어든다면?
‘차츰 솔리드스타의 가격을 낮춰야 하긴 하지만.’
당장은 프리미엄 전략이 좋을 듯 하니 가격을 높게 받는 전략이 좋아보였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았다.
“다른 업체들과 미팅을 해보고 말씀드리지요.”
간이고 쓸개고 빼줄 것처럼 굴다가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 정우를 보며 한성준 사장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 이 대표를 보니 누군가가 떠오르는군요.”
“예? 누구 말씀이신가요?”
“바로 제 동생입니다. 대한디스플레이 사장이죠.”
“아…!”
기사를 본 적 있다.
형인 한성준 사장을 밀어내고 현재 대한그룹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다고 꼽히는 인물이 바로 대한디스플레이 한동준 사장이었으니까.
“에이, 그런 대단한 사람과 저를 비교하시다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 대표가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제 동생한테 안 보이는 겸손함이 보이거든요.”
“하하하, 제가요? 저 전혀 겸손하지 않습니다. 그치 동현아?”
“쟤가 좀 주먹을 부르긴 해요.”
거물들의 대화라 끼어들지 못하고 묵묵히 듣고 있던 김동현이 그제야 한마디 거들었다.
친구인 두 사람의 대화에 한성준 사장이 빵 터졌다.
“주먹을 부른다고요? 하하하, 재밌네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네? 한 사장님, 벌써 저에 대해 파악하신 겁니까?”
“그냥 재밌는 사람이라는 정도? 하하하.”
이후 한참을 계약과는 동떨어진 얘기로 수다를 떨던 한 사장은 미팅을 마무리 지었다.
“이 대표, 오늘 즐거웠습니다.”
“저도요. 근데 여기까지 오셨는데 긍정적인 답변을 못 드려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이 대표와 친해진 것만으로도 성과는 달성했네요.”
“저도 한 사장님과 인연이 닿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뭐야, 따로 연락 안 할 건 아니죠? 멘트가 작별 인사인데.”
“에이, 절대 아니죠. 나중에 따로 술 한잔 하시죠.”
“기대해야겠네요.”
“아, 근데 제가 벼락부자라 어디가 좋은지는 잘 모릅니다.”
“오호? 그렇다면 제가 아는 곳들 많은데 소개해드려야겠네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드리지요.”
그렇게 대한전자의 네뷸라 케미컬과의 미팅은 별 소득 없이 마무리되었다.
회의실을 나서며 1층 로비로 향하는 길, 한성준 사장이 김동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김동현 대리라고 했죠?”
“예, 사장님.”
“오늘은 여기서 퇴근하세요.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봤는데 회포를 풀어야지.”
“하지만….”
김동현이 미팅단 쪽을 힐끔 보면서 장 팀장의 눈치를 보며 얼버무리자, 한 사장이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업무는 신경 쓰지 말고 여기서 퇴근해요. 내가 그쪽 부서에 잘 얘기해놓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뜻밖의 반차를 얻게 된 김동현의 안색이 밝아졌다.
한성준 사장을 배웅해주려 따르고 있던 정우가 씨익 웃었다.
“어이고, 신났다?”
“신나기는. 너 그동안 말도 안 한 거 괘씸해서라도 오늘 겁나 비싼 거 얻어먹을 테니까 각오해라.”
“크크큭, 알았어알았어. 원하는 거 말만 해라. 다 사줄게.”
그들이 티격태격 속닥거리며 로비로 향하던 그때.
1층 로비에 도착한 정우와 김동현, 그리고 대한그룹 미팅단 모두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거기엔 우글우글한 양복무리가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 이정우 대표님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진성전자 유화종 사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JK이노베이션에서 온….”
“이 대표님, 저희가 먼저 왔습니다!”
정우를 발견한 그들이 로비 경비원들을 뚫고 정우에게 우르르 몰려 들었다.
얼핏 뉴스에서 본 기억이 있는 사장급 이상의 인사들이 앞다투어 정우에게 접견을 요청했다.
벙쪄 버린 그가 친구에게 중얼거렸다.
“동현아… 아무래도 오늘 술 못 먹겠는데…?”
“… 인정.”
김동현도 질렸다는 듯한 표정이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에서 저 사람들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주, 줄을 서시오?
* * *
거의 도떼기 시장처럼 변해버린 지옥을 뚫고 대한그룹 미팅단은 철수할 수 있었다.
대한전자 본사로 돌아가는 길.
한성준 사장이 창가를 보며 중얼거렸다.
“계약을 따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만.”
“예. 어설픈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능구렁이였습니다.”
그의 비서가 말을 받았다.
실제로 젊은 외모와 달리 이정우 대표는 능수능란하게 미팅을 이어갔으니까.
홀로 대한그룹 미팅단을 상대하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 모습에서 한성준 사장은 그가 왜 지금 전세계에서 주목을 받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기에 주목을 받는 것이다.
“… 의외로 나쁘지 않네.”
“예?”
“아냐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튼 김동현 대리가 무슨 팀이랬지?”
“기업영업본부 기업영업4팀입니다.”
“그렇구만. 김 대리한테 나중에 면담 한번 하자고 전해.”
“면담이요?”
“김동현 대리가 네뷸라 케미컬과의 협상에 있어서 키 카드야. 이 대표와 그렇게 친한 사이인지 누가 알았겠어?”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기업영업4팀장이 팀원 중에 커넥션이 있다고만 해서….”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어쨌든 김 대리한테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야. 면담도 그런 차원에서 하는 거고. 혹시 모르지. 김 대리한테 무슨 고충이 있을지. 그리고, 친구가 네뷸라 케미컬 대표인 걸 알았는데 계속 우리 회사 다닐지도 미지수고.”
“… 이직하지 않게 붙잡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따로 면담 일정 잡아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한성준 사장은 김동현 대리가 고마웠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기업 협상에 있어서 그런 든든한 연줄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는가.
비록 원하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김동현 대리의 존재로 인해 이정우 대표라는 걸출한 인재와 돈독한 인맥을 다지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억만금의 값어치를 한 셈이었다.
그런 든든한 카드가 떠나버린다?
“… 최대한 붙들어놔야 해.”
한성준 사장은 인맥의 힘을, 자신의 카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 * *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일 생각에 원래는 대한그룹과의 미팅이 끝나자마자 놀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무지막지한 숫자의 미팅단으로 인해 그 계획은 무산되었고, 정우는 꼼짝없이 오후 8시까지 미팅 강행군을 이어나갔다.
진성전자, JK이노베이션, 유일자동차, 삼익자동차 등등.
스마트폰, 자동차, 배터리 등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들이 찾아와 솔리드스타 납품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다들 솔깃한 제안을 했는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진성전자에서도 플렉서블 스마트폰을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 역시 사람들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니까.”
“글쎄. 난 모르겠는데.”
정우의 말에 술잔을 기울이던 김동현이 맞받았다.
미팅이 끝나고 두 사람은 늦게 술자리를 가지는 중이었다. 전에 탁세훈 본부장의 소개로 온 일식집이었는데, 분위기가 요리가 나쁘지 않았다.
참치 한점에 사케 한 모금을 축이니 하루의 고단함이 날아가는 걸 느끼며 정우가 물었다.
“크… 죽인다. 근데 뭘 몰라?”
“그냥 너 보니까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똑같은 것 같지 않아서. 분명 같이 공부하고 놀았는데 이렇게 커버린 걸 보니까 기분이 묘하달까.”
김동현의 얼굴은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렇고 정우의 친구들 김씨 삼형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지냈는데, 어느새 친구가 한 기업의 대표가 되어 TV에도 나오고, 심지어 자기 회사 사장과 대등하게 미팅하는 걸 보니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는 모양이었다.
“사실 니들이랑 만나고 놀 때 얘기는 안 했지만 나 요새 회사생활 좆 같거든.”
“전에 꿀보직이라고 하지 않았어? 관리직이라고 그랬잖아.”
“팀 옮긴지 꽤 됐어. 영업 쪽으로. 근데 알잖아. 내 성격 좀 내성적인 거.”
“알지. 니 MBTI가 INTJ였나.”
“뭐? MBTI가 뭔데?”
아, 이때는 MBTI가 유행하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 게 있어. 아무튼 영업 쪽이면 빡세겠네.”
“맞아. 일은 적응이 안 되지, 위에선 팀장이 개지랄하지. 죽겠다 아주 그냥.”
“고생이 많구만.”
“힘들지. 그래서 니가 부럽다. 넌 니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성공한 것 같아서.”
김동현은 한껏 부러워하는 얼굴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글쎄. 나라고 개발을 처음부터 좋아했겠냐. 나도 게임이나 할 줄 알았지, 그냥 먹고 살려고 시작한 거야.”
“그래? 듣고 보니 너 개발자였지 배터리쪽이랑은 상관도 없었잖아. 어쩌다가 배터리 개발한 거냐?”
“개발은 무슨. 그냥 운 좋게 돈 벌어서 회사 인수했는데 대박이 난 거지.”
미래 기술을 가져와서 개발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와… 운도 좋네. 그럼 니가 좋아하는 일은 뭔데?”
“돈 버는 거.”
“돈 버는 거?”
“어. 그냥 돈 버는 게 제일 재밌어. 매일 새롭고 짜릿해.”
“미친 새끼. 그래서 얼마 벌었는데?”
“글쎄.”
조 단위라고 얘기하면 믿을까.
정우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미소에서 김동현은 친구가 어마어마하게 벌었음을 확신했다.
“존나 벌었나보네. 하, 개부럽다.”
“부럽냐? 크크큭.”
“어. 돈 많이 번 것도 부럽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아는 것도 부럽다.”
김동현이 씁쓸한 얼굴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술이 쓴 건지, 기분이 우울한 건지 알 수 없어 묘한 친구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실 대학 갈 때만 해도 뭔가 꿈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까 회사 영업직이네. 내 꿈이 회사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난 아직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한 회사의 대표가 된 친구를 보니 김동현의 심정이 복잡한 듯 보였다. 자신은 아직 회사원이었는데 친구는 대표가 되어 있고, 회사 생활은 어렵고 힘들고.
내색은 안했지만 마음이 심란한 듯 보였다.
정우가 그를 위로했다.
“야, 니가 좋아하는 거 있잖아.”
“뭔데?”
“랩 좋아했잖아.”
“… 랩?”
“기억 안 나? 너 대학교 때 랩동아리에 있었잖아. 랩 트레이닝도 받고 녹음도 했었지 아마?”
정우의 말에 김동현은 그제야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한때 랩에 꽂혀 음악에 미쳐 살았던 자신을.
하지만 삶에 치여 음악이라는 걸 잊어버렸다.
“맞네. 그런 시절이 있었지.”
“너랑 노래방 가면 옆에 여자들 와서 구경하고 그랬잖아.”
“지금은 그렇게 잘 못 해. 감 다 죽었거든.”
“뭐 어때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리고 실력이 뭐가 중요하냐, 네가 좋아하는 거면 그걸로 장땡이지.”
“그런가.”
“생각해봐. 돈 벌어서 유유자적 네가 좋아하는 음악 하고 사는 삶, 재밌지 않겠어?”
상상하는 듯 김동현의 눈이 몽롱해지더니 이내 끄덕였다.
“… 확실히 재밌겠네.”
“그치? 그럼 된 거야.”
“근데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난 너처럼 돈이 많이 있는 게 아니잖아. 근데 지금 와서 음악을 해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 리도 없고.”
“누가 음악만 하랬냐. 일 다니면서 취미생활로 해도 되잖아.”
“기왕이면 음악만 하고 싶은데 안 되려나.”
“가능하긴 하지. 돈을 겁나 많이 벌어서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 돼.”
“경제적 자유라… 맞네. 정우야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
“나 니네 회사에 꽂아줄 수 있냐?”
훅 들어오는 김동현의 부탁에 정우가 피식 웃었다.
“왜. 우리 회사 와서 내 빽 믿고 월급 루팡 하려고?”
“어? 어.”
“꺼져, 인마. 다른 직원들한테 민폐야 그거.”
“그런가. 알았다. 생각해보니 존나 염치 없는 부탁이었네.”
빠르게 납득하는 친구를 보며 정우가 깔깔 웃었다.
“푸하하하, 장난이야 장난.”
“뭐야. 그럼 진짜 뽑아주려고?”
“아니. 직원으로 뽑는 건 안 돼. 대신 내가 너 부자로 만들어줄 순 있다.”
“부자로? 어떻게?”
솔깃해하는 김동현에게 너만 들으라는 듯 속삭였다.
“야 이 나쁜 놈아, 너는 친구들 생각도 안 나냐?”
“어?”
이어지는 말에 당황하는 동현의 얼굴을 보며 씩 웃어 보인 정우가, 나직이 이어 말했다.
“경도랑 봉수 새끼도 불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