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직장에서 만났어요
여자 친구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그녀도 꽤나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 그게…….”
우물쭈물 대답을 얼버무리는 지서현을 보며 정우가 나섰다.
“엄마 오해한 것 같은데요, 서현 씨는 그냥 직장 동료…….”
“에이, 사귀는 것 맞구만 뭘 그래.”
“니 엄마 말이 맞다. 우리도 눈치가 있어.”
“아니 아부지까지 왜 그러세요…….”
“직장 동료가 부모님 마중 나올 때 따라오진 않잖아? 안 그래?”
“예? 그게 그렇게 되나요?”
“딱 봐도 남자 친구 부모님 오신다니까 잘 보이려고 이쁘게 하고 왔구만. 짜식이 말야, 그냥 남자답게 딱 인정하고 여자 친구 소개해 주면 될 걸 소심하게 구냐. 너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얘기하고 다니지 마라 쯧쯧.”
“아니, 진짜 그게 아닌데…….”
“시끄러워, 이 못난 놈아!”
아버지의 불호령에 정우가 쩔쩔맬 때, 어머니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그보다 서현이라고 했죠? 우리 정우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그, 그게….”
당황한 지서현이 빨개진 얼굴로 정우의 눈치를 보았다.
……나도 모르겠다.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정우는 그녀에게 눈빛으로 ‘이제부터 자기가 나서겠다’라고 눈치를 주며 나섰다.
“아, 그냥 제가 얘기할게요. 서현 씨랑 직장에서 만났어요.”
“……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던 듯 지서현은 놀란 얼굴이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머, 직장? 언제? 뭐 하다가 봤는데? 동료인 거야?”
“오, 정우야. 혹시 같은 부서냐?”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장소 좀 옮기죠.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캐리어 저 주세요.”
마치 그녀와 사귀는 것처럼 얘기를 하자 부모님이 엄청 반색하시면서 호들갑을 떠셨다.
저렇게 좋아하시는 두 분을 보고 있자니 어쩔 수 있나.
미국 여행 기간만이라도 장단을 좀 맞춰 드리자.
* * *
호텔로 이동하는 길.
정우는 부랴부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지서현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
[정우]: 미안해 서현 씨─────────
다행히 그녀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입을 맞춰 주겠다고 협조에 응했다.
왠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왜일까.
분명 부모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긴장으로 굳어 있던 지서현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부모님의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니까 우리 정우 밑에서 일하는 개발팀장이라는 거지? 나이는 26이고?”
“네, 맞습니다. 어머님.”
“하이고- 어쩜 그리 젊은 나이에 팀장을 달았대요? 팀장이면 엄청 높은 거잖아요?”
“아닙니다. 대표님이 저를 좋게 보셔서 운 좋게 달았을 뿐입니다.”
지서현이 미소와 함께 겸손하게 대답했다.
잘한다, 서현 씨!
정우가 옆에서 거들었다.
“아니야, 엄마. 서현 씨…… 아니 서현이는 코텍 나온 인재야.”
“코텍? 그거 엄청 똑똑한 사람들만 다니는 대학교 아니니?”
“맞아. 한국의 MIT공대 같은 곳이야. 고등학교랑 코텍대 조기 졸업하고 연구소 생활하다가 우리 회사에 22살인가에 들어왔을걸? 맞지 서현아?”
“23살입니다. 연구소 생활도 좀 했거든요.”
“아아, 맞아맞아. 그리고 겨우 3년도 안 되어서 팀장을 달았으니, 서현이가 얼마나 똑똑한지 알겠지?”
“엠아이티인지 엠비티아이인지 뭐시긴지는 잘 모르겠고, 우리 서현 씨가 정말로 참하다는 건 알겠네. 서현 씨, 우리 정우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네, 어머님.”
어머니는 조신한 그녀가 퍽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근데 우리 아들 어떻게 좋아하게 된 거예요?”
“음…… 일할 때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그런 배려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배려 중요하지. 우리 아들이 착해서 배려를 참 잘해요. 호호호.”
“그리고 일에 열중하실 때 그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어머어머. 맞아. 남자들이 일할 때 멋지긴 하지. 근데 우리 아들도 그런 멋이 나오나 봐요?”
“네. 그 샤프하신 옆얼굴이 멋지십니다.”
“옆얼굴이? 하긴 누가 만들었는데. 호호호.”
호텔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하하 호호 웃는 사이 두 사람은 꽤 친해진 듯 보였다.
“그럼, 내일 트럭 대회 보러 가는 것도 우리 서현이도 같이 가는 거야?”
어느새 말을 편하게 한 어머니가 물었다.
그래도 내일은 그녀를 쉬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건 우리끼리 가는 게…….”
“무슨 소리야. 여기까지 왔는데 따로 보자고? 그럼 소개를 해 주면 안 되었지. 정우 여자 친구도 당연히 가야 맞는 거야.”
“……예,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지서현도 웃는 얼굴로 맞장구쳤다.
“그렇지! 분명 서현이 너도 트럭 레이싱 대회의 매력을 느끼게 될 거다. 하하하하!”
“이이는 참……! 서현아. 부담되면 안 와도 돼. 여자들한테 트럭 대회 따위가 뭐가 재밌겠니. 안 그래?”
“아닙니다. 저도 궁금하던 참입니다.”
“거봐. 온다잖아. 당신은 그냥 잠자코 있어.”
“아, 당신이나 좀 잠자코 있어 봐요. 요즘 애들이 그런 걸 퍽이나 좋아하겠다! 참, 눈치가 저렇게 없어서야.”
“내가 눈치가 없긴 뭐가 없어! 내가 왕년에 별명이 여우였는데 무슨!”
“여우가 아니라 곰탱이겠지.”
“이 여편네가 진짜……!”
또 시작이다.
근데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을 보던 정우는 두 분의 대화에서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잠깐만요. 아버지, 트럭 ‘레이싱’ 대회요?”
“어? 어. 그게 뭐?”
“트럭 ‘풀링’ 대회 아니에요?”
“풀링 대회? 그게 뭐다냐?”
“아니, 뒤에 트레일러 짐짝 무지막지한 거 달고 100m 달리는 대회요. 그거 보는 거 아니었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보려는 건 그 뭐다냐, 아메리칸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 그건데?”
“……예?”
아버지의 말에 정우가 당황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 다른 대회 알아본 거야?”
“……아니 트럭 대회 치니까 그게 나오던데요? 일정도 마침 내일이고요.”
“아메리칸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도 내일이다.”
“……헉. 이거 호텔을 아무래도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뭐야. 그럼 미국까지 와서 우리 대회 구경도 못 하는 거냐? 그런 거야?”
낙담하는 아버지를 보며 정우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그건 아니구요. 어떤 대회인지 일정은 알았으니 가서 보면 되죠. 미국 땅끝만 아니면 비행기 타면 하루 안에 갈 수 있습니다.”
“……꼭 좀 보게 해 다오. 내 소원이다.”
“걱정 마세요.”
다행히 아버지가 말씀하신 트럭 레이싱 대회가 열리는 장소는 정우가 숙소를 잡은 LA와 멀지 않았다.
바로 티켓팅에 들어갔는데, 인기가 대단한지 벌써 예약이 꽉 차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온라인 옥션 사이트에 올라온 티켓 매물이 있어서 웃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었다. 너무 늦게 구한 탓인지 VIP석 티켓은 구할 수 없었지만, 이거라도 어디랴.
정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십년감수했네요.”
“내일 볼 수 있는 거냐?”
“네. 내일 가서 점심 먹고 구경하면 될 것 같아요.”
“드디어……!”
“그렇게 좋으세요?”
“아무렴. 내가 얼마나 이날을 고대했는데! 전 세계 최고의 트럭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더냐. 이걸 구경한 건 내 평생 술안주가 될 거다. 하하하하.”
“이 양반이 술은 무슨 술!”
“맞아요, 아부지. 술은 좀 줄이세요.”
“크흠……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어머니의 핀잔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좋으신지 실실 웃으셨다.
아이처럼 들떠 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정우도 흐뭇해졌다.
과연 내일 트럭 레이싱 대회는 어떤 대회일까.
그도 조금은 궁금해졌다.
* * *
국제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일명 FIA, 또는 모터스포츠협회로 불리는 국제자동차연맹은 자동차 운전자 및 관련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협회로서, 각종 모터스포츠 관련 후원 밑 대회를 운영해 오고 있다.
FIA의 대표적인 모터스포츠 대회로는 대부분 포뮬러와 같은 카레이싱이 대표적이며, 오픈 휠 레이싱, 투어링 카 레이싱, 스포츠 카 레이싱, 랠리, 오프로드, 언덕 오름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카레이싱 대회를 보자면 단연컨대 트럭 레이싱이 가장 유명했다.
FIA 유러피안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FIA European Truck Racing Championship.
1985년에 개최된 이 대회는 1994년부터는 유러피안 트럭 컵 시리즈를 열었고, 2006년부터는 유러피안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으로 변모하였다.
현재는 메르세데스-벤츠 및 볼보트럭, 스카니아, 르노트럭 등등 트럭 매니아나 운전자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트럭 브랜드는 전부 참여하는 유명한 레이싱 대회로 거듭나고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대회는 원래 유럽 대회였는데, 국제자동차연맹은 미국에 이 대회를 여는 걸 추진했다.
트럭커 하면 떠오르는 서부를 질주하는 상남자들의 나라이자 트럭의 본고장이 미국인데 당연한 흐름이었고, 누구나 예상했듯이 대회는 초대박이 났다.
현재는 유러피안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에 비해 규모가 1.5배 이상 크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미국에서의 그 인기는 상상 초월이었다.
“와…… 이게 진짜 트럭 대회라구요?”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LA에서 동쪽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주. 그곳의 한 도시인 폰타나에 오토 클럽 레이스웨이라 불리는 유명한 자동차 서킷이 있다.
해당 자동차 서킷은 그 유명한 나스카NASCAR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곳이었는데, 나스카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이싱 대회를 소화 가능한 트랙이 이 자동차 경기장만의 매력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메리칸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을 주최 중인 오토 클럽 레이스웨이는 인산인해였다.
총 12만 명의 관중을 소화 가능한 경기장이 그야말로 꽉 차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 관중들을 전부 소화하지 못해서 경기장 주변에도 사람들과 차들이 한가득이었고, 트럭 레이싱 대회답게 상남자 미국인들이 온갖 대형 트랙터들을 몰고 와서 경기장 주변에 주차해 놓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 곳곳에 핫도그 파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대마초의 매캐한 풀냄새가 뒤섞인 가운데, 여기저기서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한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즐겁게 떠들어 댔다.
마치 콘서트라도 온 듯한 열기와 분위기 속에서 정우도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다.
“이야…… 엄청 큰 축제였네. 서현 씨… 아니 서현아, 이런 거 본 적 있어?”
“……전혀요. 저도 처음입니다.”
지서현에게 묻자 그녀도 처음이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사복 차림의 그녀의 반응이 오늘 따라 생기가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신기해하는 지서현을 보며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이도 신기한가 보네. 근데 저게 다 츄레라니?”
“엄마, 츄레라가 아니라 트랙터요.”
“트랙터? 트랙터는 농기계 아니니?”
“음…… 큰 트럭을 트랙터라고 할걸요? 한번 검색해 보죠. 아, 나왔다. ‘트랙터Tractor란 대상을 끌고 잡아당기는 식의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류를 총칭하는 말로, 트랙션(Traction: 견인력)을 일으키는 기계장치라 하여 트랙터Tractor라 불리게 되었다’라네요.”
“말이 어려운데 아무튼 저 츄레라가 트랙터라는 거지?”
“네. 농업용 트랙터도 있지만, 뒤에 뭘 끄는 대형 트럭을 트랙터라고 보시면 돼요. 아빠가 산 것 같은 벤츠 악트로스도 트랙터구요.”
“아하, 이해했어. 아무튼 오늘 대회가 트랙터들로 레이싱을 하는 대회인가 보네?”
“맞아요. 근데 저는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신기해서 경기장 내외부를 여기저기 구경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내 지친 얼굴이었다.
“아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이 빠지는데 우리 자리는 어디니?”
“저희 자리는 VIP석은 아닌데, 경기장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프론트석이에요. 저 따라오세요.”
“잠깐만요. 아버님이 안 보이십니다만?”
“음?”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샌가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아니, 아부지는 말도 없이 어딜 가신 거야.”
“어? 저깄습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거대한 트랙터 앞에 서 있는 어떤 미국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미국인은 키가 거의 2미터는 되어 보이는 그야말로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상남자 같은 중년의 백인이었다.
“유 츄레라 이즈 쏘 굿!”
“Oh, Thanks. Haha(오, 고마워. 하하).”
“왓츠 유어 모델?”
“Mine? hm, maybe you can’t buy this(내 거? 아마 너는 못 살걸).”
“뭐라는 거야. 헤이! 아 해브 벤츠 투! 아임 벤츠 오너!”
“You? Benz? hahahah, Are you kidding me(니가? 벤츠? 나한테 농담하냐?)”
“Hey, what are you talking about with that old Asian(야, 너 그 늙은 동양인 할배랑 뭐라 떠드는 거냐)?”
“I don’t know. He said he owns a Benz(나도 몰라. 그는 자기가 벤츠 오너래).”
“Fucking kidding me(장난해)? He must be crazy so stop wasting time and come get some hotdogs(그는 미친 게 분명하니까 시간 낭비 그만하고 와서 핫도그나 먹어).”
“OK(알았어).”
상남자 미국인이 코웃음을 날리더니 자리를 떠나고.
남은 아버지가 영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기분이 나쁜 듯 씩씩거렸다.
“뭐라는 거야, 저 코쟁이 놈들.”
“아버지, 뭐하고 계셨던 거예요?”
“아니, 저 코쟁이 놈 츄레라가 멋지길래 말 좀 붙여 봤는데, 뭐라고 씨부리는데 통 알아먹을 수 있어야지.”
투덜거리는 아버지의 말을 들은 어머니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날렸다.
“그러길래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요. 잠자코 구경이나 하지.”
“당신은 남자의 낭만을 몰라. 여기 저 녀석 봐봐. 얼마나 크고 아름다워? 저 코쟁이 놈이 기분 나쁜 놈이긴 해도 츄레라를 보는 안목은 제대로 박힌 놈이 분명해.”
“……하이고, 츄레라 박사 납셨네! 박사 납셨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어머니를 보며 정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여기까지 와서 왜 티격태격해요. 그러지 말고 두 분 우리 자리로 가요. 이제 곧 경기 시작할 겁니다.”
“좋아. 아들~ 니 아빠 버려 두고 빨리 가자~”
“버리긴 누굴 버려. 가자 정우야. 크흠!”
“아부지, 방향 거기 아니에요. 이쪽이에요.”
“……그, 그래? 흠흠…….”
이상한 길로 앞장서는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겨우겨우 프론트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경기장이 워낙 크고 인파가 어마무시해서일까. 입구를 찾기 어려운 것과 더불어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진이 훅훅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이러다 경기 시작하겠는데.”
“정우야, 우리 경기 못 보는 거 아니냐?”
“걱정 마세요. 조금만 더 가면 저희가 앉을 A-1섹터 나와요. 오! 저깄다.”
겨우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려던 그때였다.
“어? 대표님!”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누구지 하고 뒤를 돌아보자 거기엔 말끔한 슈트 차림의 탁세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엥? 탁 본부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만, 대표님 오늘 못 오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예? 오늘 제가 못 온다고 했다구요? 여길요?”
묘하게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
뭔가 미묘하게 대화가 어긋나는 위화감을 느낄 때, 부모님이 끼어들었다.
“아들~ 이분은 누구셔? 본부장님?”
“아, 우리 회사 본부장님이신 탁세훈 씨입니다. 탁 본부장님, 여긴 저희 부모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탁세훈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유- 영광이라니요. 저야말로 우리 부족한 정우 도와주신다니 고마울 뿐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정우 종종 잘 부탁합니다.”
“하하하, 염려 마세요. 대표님은 제가 꽈악 쥐고 있겠습니다.”
탁세훈이 씨익 웃었다.
“아무튼 대표님, 오늘 대회 보러 오신 거 보면 자리 잡으셨겠네요. VIP 몇 번 방이시죠?”
“네? 저희 일반 프론트석인데요.”
“일반석이라구요? 세상에…… 티켓 못 구하셨으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바로 구해 드렸을 텐데.”
“아…… 부모님 관광시켜 드리는 거라 너무 사적인 부탁이라서요. 그래서 좀 민폐 같아서…….”
“에이, 저희 사이에 민폐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이럴 게 아니라 저랑 같이 가시죠.”
“예? 탁 본부장님이랑요?”
“오시는 게 나으실 겁니다. VIP석 잡아 놨거든요. 거기가 훨씬 쾌적하니 부모님께서도 편하실 겁니다.”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알겠습니다.”
정우 일행은 탁세훈을 따라 VIP석으로 향했다.
다행히 VIP석으로 갈수록 인파는 줄어들었다.
그 사이 정우는 탁세훈과 아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아까 제가 여길 못 온다고 했다는 얘기는 뭐예요? 전 탁 본부장님한테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다? 머스크 씨가 대표님 스케줄 때문에 오늘 트럭 대회 행사 참석 못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대신 저라도 참석해 달라고 연락 와서 온 건데…….”
“잠깐! 머스크가 말했다구요?”
“예. 오늘 트럭대회 행사 참석 못 하신다구요.”
“그렇다면 설마……?”
그제야 정우는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을 때, VIP석에 도착했다.
“여기입니다.”
가드가 열어 주는 문을 통해 VIP석에 입장하자 쾌적한 공간이 그들을 맞았다.
레이싱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위치와 거대한 통창. 거기에 개인마다 테이블이 구비되어 있어 간단히 간식거리를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거기엔 이미 자리를 잡은 ‘선객’들이 있었다.
오다가다 본 낯이 익은 얼굴들이 정우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미스터 리?”
“미스터 리!”
“네뷸라 대표님 오셨다!”
어디서 본 건지 기억을 더듬을 때 정우를 발견한 선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자리에 몸을 파묻은 채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던 익숙한 뒤통수가 휙 고개를 돌렸다.
금발에 가까운 갈색머리의 남자가 정우를 발견하고는 만면에 화색을 띠었다.
“……머스크 씨?”
“오! 미스터 리!”
그는 바로 일론 머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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