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세미트럭도 대회에 참가하는 겁니까?
반기는 머스크를 보며 정우가 웃었다.
“머스크 형,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예?”
“……코리안 조크입니다. 그런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네요.”
“뭐가 말입니까?”
“오늘 여기서 세미트럭 공개 행사를 여는 거였어요.”
“예, 맞습니다. 근데 미스터 리, 오늘 못 온다더니 어떻게 온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머스크를 보며 정우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사실 탁세훈 본부장을 만난 순간, 정우는 머스크를 만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머스크가 말했던 테슬라 세미트럭 공개행사가 바로 오늘 이 자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가족 행사라는 이유로 스케줄을 거절했다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있나.
“사실 가족 행사가 여기 이 대회 관람이었거든요. 그런데 머스크가 말한 행사가 여기인 줄 몰랐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미스터 머스크와 함께하는 건데 말입니다.”
“하하하, 이런 우연이 있나. 그래도 이렇게라도 보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그럼 뒤에 분들은 가족인가요?”
“예. 소개할게요. 이쪽은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입니다. 서현 씨는 알죠?”
“알죠. 반갑습니다. 당신의 아드님의 절친한 친구 일론 머스크입니다.”
머스크가 웃으며 부모님과 악수를 나누었다.
두 분은 얼떨결에 악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반기나 보네.”
“당신은 나이스 투 밋츄도 몰라? 반갑다는 거잖아.”
“그건 알죠. 호호호, 저도 나이스 투 밋츄에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머스크의 옆자리에 앉아 아메리칸 트럭 레이싱 챔피언십, 일명 ATRC를 직관하게 되었다.
정우는 궁금했던 걸 물었다.
“굳이 트럭 레이싱 대회를 공개행사 장소로 정한 걸 보면, 혹시 세미트럭도 대회에 참가하는 겁니까?”
“빙고. 정답입니다. 이곳에서 공개함으로 인해 얻는 이점이 많거든요.”
“세미트럭의 퍼포먼스를 12만 명, 아니 TV중계 시청자 수까지 하면 수십만 명 이상에게 직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홍보 효과, 머스크가 노린 수가 이것 아닙니까?”
“역시, 미스터 리의 안목은 못 당해 내겠군요. 맞습니다.”
“저야 정답지를 보고 있으니 당연히 추론할 수 있었지만, 트럭 대회장을 공개행사장으로 정한다는 그 혁신적인 발상이 놀랍네요. 머스크, 당신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재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제가 원래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방법은 기가 막히게 써먹는 편이긴 한데, 미스터 리한테 천재라는 얘기를 들으니 이거 어깨가 지붕을 뚫고 올라가겠는데요?”
“뭐라구요? 하하하하.”
정우의 칭찬에 껄껄 웃으며 좋아하는 머스크.
그렇게 머스크와 떠드는 사이 ATRC 경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지 차량이 속속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현존 트럭 레이싱 대회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이베코부터 시작하여 볼보, 스카니아, 벤츠 등 유명한 브랜드의 트럭들이 오와 열을 맞춰 레이싱 트랙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테슬라 로고의 트럭은 보이지 않았다.
세미트럭의 외양을 알고 있던 정우는 의아해했다.
“세미트럭은 아직인가요?”
“이제 곧 나올 겁니다.”
머스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테슬라의 세미트럭이 들어섰다.
네모나게 각진 트럭들 사이에서 혼자 상어처럼 뾰족한 앞머리를 내세운 은빛 세미트럭이 도도한 자태를 드러냈다.
마치 2017년이 아닌 2117년에 나온 듯한 미래풍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독특한 외양의, 아니 트럭커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멋진 외관 관중석이 술렁였다.
“저거 뭐야? 저것도 트랙터야?”
“테슬라 로고다!”
“어? 설마 저거 테슬라에서 나온다는 세미트럭 아냐?”
“맞는 것 같은데?”
몇몇 관중들이 세미트럭의 공개를 눈치채기 시작했고, 연이어 관중들이 세미트럭의 등장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회 중계 카메라들은 이런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카메라가 VIP석 쪽을 비추다가 용케 일론 머스크와 정우를 찾아냈다.
경기장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머스크와 정우의 얼굴.
“어? 저희 나오는데요?”
“뭐 어때요. 이 순간을 즐기자구요. 웃어요, 미스터 리.”
정우는 살짝 당황했지만, 머스크는 그 관심을 즐기기라도 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를 따라 정우도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관중석이 환성 소리가 더욱 거세질 때, 오토 클럽 레이스웨이 경기장에 참가한 각 트럭 브랜드 레이스팀들은 난리가 났다.
바로 네뷸라 케미컬의 대표 정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네뷸라 대표가 왔다고?”
“이런 황금 같은 기회가!”
“가서 얼굴도장이라도 찍고 오자고!”
그들도 알고 있었다. 네뷸라 케미컬의 솔리드스타가 얼마나 대단한 제품인지를.
향후 내연기관차가 도태될 것이며 반대급부로 전기차 시장이 대두되고 있는 현재 시장 상황을 모를 수가 없다.
때문에 네뷸라 케미컬 대표가 ATRC를 관람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포드, 볼보, 벤츠 등등 레이스팀을 이끄는 팀 총책임자Team Principal들은 앞다투어 정우를 보기 위해 일론 머스크의 VIP룸으로 달려왔다.
당연하게도 가드가 그들을 막아섰다.
“사전에 약속하신 경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 볼보 레이스팀 총책임자이자 기술이사직을 맡고 있는 프랭크 던컨이요. 내가 머스크나 미스터 리를 해코지할 리가 있겠습니까? 신분이 확실하니 들여보내 주시죠. 잠깐 얼굴만 보겠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고작 문 하나 두고 얼굴도 못 보게 하는 게 말이요 방구요? 꼭 좀 만나게 해 주십쇼!”
“음… 그럼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드가 인상을 굳힌 채 인이어로 내부로 연락을 취했다.
그 보고를 받은 비서가 머스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그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속삭였다.
“대표님, 지금 각 자동차 회사들 기술이사들 및 레이스팀 총책임자들이 이정우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고 합니다. 문 앞에서 대기 중이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뭐?”
그 보고에 은은한 미소를 담고 정우 옆에서 레이싱 시작을 기다리던 머스크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가 도끼눈을 뜬 채 비서를 노려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해? 당장 돌려보내! 내가 있는데 으딜 감히 내 꿀단지를 탐해!”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비서가 인이어로 머스크의 의사를 전하자 출입을 저지하고 있던 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된다는 미스터 머스크의 전언입니다. 돌아가십시오.”
“하……!”
결국, 머스크의 질투심(?) 때문에 각종 자동차 브랜드 관계자들은 별다른 소득 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그들을 모두 돌려보낸 상황은 머스크에게도 전해졌다.
“네뷸라 대표와 접촉하려는 외부인들 모두 쳐 냈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수고했어요.”
귓속말로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보고하는 비서의 말에 그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때, 옆에서 얼핏 상황을 듣게 된 정우가 물었다.
“머스크, 무슨 일이에요?”
“별일 아닙니다. 어떤 도둑놈들이 제 꿀단지에 눈독을 들여서요.”
“꿀단지요?”
정우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지만, 머스크는 미소 지을 뿐이었다.
“그런 게 있습니다. 도무지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은 꿀단지지요. 하하하.”
“흠, 그런 좋은 게 있다면 저에게도 공유 좀 해 주시죠.”
“글쎄요. 미스터 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혹시 제 얘긴가요?”
“비밀입니다.”
빙글빙글 웃으며 머스크가 정우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과 달리 그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이놈들…… 어딜 감히 우리 미스터 리를 만나려고.’
머스크는 정우가 한국에서 유일자동차와 만나는 건 허락했지만, 미국 땅에서만큼은 자기와 깊은 협력 관계를 유지 중인 정우를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머스크의 물밑 작업과 고군분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우는 아버지와 함께 트럭 레이싱 대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대회를 재밌게 보려고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작년까지는 이베코가 1등이라더구나.”
“이베코요? 이름을 자주 들어 보지는 못한 브랜드네요.”
“그냥 일반 사람들한테 그렇겠지만, 트럭커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이탈리아 브랜드지. 이백호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힘이 엄청나다고 유명했어.”
“이백호…… 별명이 재밌네요.”
“그치? 그런데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트럭들이 많아서 그 유명세도 위험하다는 게 현재 평가야. 지금 차기 1등으로 유력한 건 볼보의 아이언 나이트지. 비공개 테스트에서 현존 트럭 중에 가장 높은 최고 시속을 달성했거든. 그리고 유럽에서 열린 트럭 레이싱 대회에서는 아이언 나이트가 작년에 1등을 했다더구나.”
“아이언 나이트…… 이름이 좀 유치하긴 해도 단단해 보이는 느낌은 있네요. 그런데 아버지, 정말 조사 많이 하셨는데요? 인터넷도 어려워하시던 분이 그걸 언제 다 조사했대요?”
“하하하 츄레라 매니아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우쭐해 하시는 아버지를 보니 정우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버지, 좋아하시는 일 마음껏 하실 수 있게끔 제가 팍팍 지원해 드릴게요.’
그것이 키워 준 도리에 대한 보답이자 효도일 테니.
그렇게 정우가 가족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마침내 트럭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ATRC가 진행되는 걸까?
하지만 차들은 그저 도롯가로 물러나 길을 터 줄 뿐이었다.
대신 그 사이로 은빛 동체의 세미트럭이 가로지르더니 선두에 섰다.
그리고 거기엔 이미 한 대의 차가 기다렸다는 듯 옆에 정차해 있었다.
현존 가장 빠르다고 알려진 볼보의 아이언 나이트였다.
두 차가 나란히 선 순간 대형전광판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EVENT MATCH!] [VOLVO Iron Knight VS TESLA Semi] [Rule… Quarter Mile!]쿼터마일은 미국에서 인기 있는 모터스포츠로, 직선도로를 나란히 출발하여 누가 먼저 400m 결승점을 통과하는지 순수한 스피드만을 겨루는 경기였다.
일종의 육상 100m 달리기랄까.
그 글자를 본 순간 정우는 세미트럭이 이벤트 매치에 참가했음을 깨달았다.
“어? 이벤트 매치요? 정식 레이싱 경기가 아니라요?”
“예. 세미트럭은 ATRC 규격에 안 맞거든요. 그래서 정식 레이싱 참여는 어렵고, 이렇게 이벤트 매치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쉽네요.”
“그래도 이벤트 매치만으로 우리의 목적이자 소기의 성과는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자, 지켜보시죠.”
머스크의 기대 어린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경기가 시작되었다.
3!
2!
1!
……START!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두 트랙터가 내달린다.
뒤에 달린 트레일러가 없어서일까.
마치 드래곤볼에서 피콜로가 육중한 갑옷을 벗어 던지고 전투력이 급증한 것처럼, 트랙터에 탑재된 엔진의 엄청난 마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제약을 벗어던진 트랙터들의 순간 가속도는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제로백을 달성한 두 트랙터들의 속도는 그야말로 포뮬러 경기를 보는 듯 긴박감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순식간에 끝이 나 버렸다.
불과 십여 초도 안 되어 테슬라 세미트럭의 은색 동체가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며 경기가 마무리된 것이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튜닝트럭을 제외한 현존 가장 빠르다고 알려졌던 볼보 아이언 나이트가 패배하자 관중석이 충격에 잠겼다.
“갓 댐…… 아이언 나이트가 졌다고?”
“저게 전기차 맞아? 내가 알던 허약한 전기차가 아닌데?”
“테슬라, 대체 뭘 만들어 낸 거야.”
“엄청난데……!”
충격을 받은 이들과 감탄을 하는 이들로 분분한 가운데.
정우가 있던 VIP룸에서 대기 중이던 카메라맨이 움직였다.
그가 카메라를 머스크에게 들이밀자, 머스크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이크를 집어 들어 입을 열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일론 머스크입니다.”
“먼저 세미트럭의 대회 참석을 허가해 준 FIA 관계자분들 및 이벤트 매치에 응해 주신 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 전 이벤트 매치 잘 보셨는지요. 아마도 결과에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예상했던 결과입니다. 공기역학 디자인과 더불어 스페이스X에서 얻은 가볍고 단단한 외장재를 덧씌워 무게를 줄이고, 거기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전고체배터리 솔리드스타를 탑재하여 1,000마력을 달성하는 등 테슬라의 모든 기술을 집대성하여 만든 세미트럭이 기존 내연기관 트럭을 이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으니까요.”
1,000마력의 전기차라니.
관중석이 고요해졌다.
그 반응을 즐기듯 한동안 뜸을 들이던 머스크가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저희가 만든 세미트럭이 어떻습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 세미트럭을 있게끔 도와주신 네뷸라 케미컬의 대표, 미스터 리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미스터 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머스크가 불쑥 마이크를 내밀었다.
……이 양반이 사전 동의도 없이 다짜고짜 이러기야?
살짝 당황했지만, 정우도 이제는 산전수전 다 겪은지라 능숙하게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스터 머스크, 저에게 상의도 없이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다니 솔직히 실망인데요?”
그가 웃으면서 화난 척 연기하자 머스크도 웃으며 받아쳤다.
“하하하,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그래도 솔리드스타의 진가를 간접적으로 알릴 수 있는 자리이지 않았습니까?”
“이미 솔리드스타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요?”
“하하하하, 그렇긴 하죠. 음…… 좋습니다. 제가 기분이 상했을 미스터 리를 위해 선물을 하나 하도록 하지요.”
“선물이요?”
받아치기 어려운 애드립에 정우의 말문이 막혔을 때, 머스크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자동차 키로 보이는 테슬라 로고가 반짝이는 열쇠.
설마……?
“미스터 리, 최초의 세미트럭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세미트럭을요……?”
세미트럭을 준다는 폭탄선언은 전혀 예상치 못한지라 정우도 벙찌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정우의 눈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보였다.
……그래. 굳이 준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있으랴.
“……준다니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받아도 타고 다닐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한테 양도해도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저희 아버지입니다.”
“……아! 아버지면 인정이죠. 하하하, 좋습니다.”
머스크는 흔쾌히 아버지에게 세미트럭 차 키를 내밀었다.
영어로 대화하는지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멀뚱히 지켜만 보던 아버지는 갑자기 차 키를 받게 되자 영문을 모르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우야, 이게 뭐다냐? 머스크 저 양반이 갑자기 이걸 왜 준다냐?”
“아버지, 아까 레이싱 하던 은빛 트럭 보셨죠?”
“봤지. 세미트럭이라고 하던데? 그건 왜?”
“그 차를 머스크 씨가 준답니다.”
“뭐? 세미트럭을 준다고?!”
“예. 이제 세미트럭의 주인은 아버지세요.”
정우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아버지가 넋이 나간 얼굴로 차 키를 받아들었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고.
감격스러운 이벤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머스크가 정우에게 눈치를 줬다.
“미스터 리, 아버님에게 세미트럭을 운전해 보라고 하세요.”
“지금요?”
“네. 모두가 지켜보고 있잖아요.”
안 그래도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정우는 피식 웃었다.
그래, 이왕 판을 깔았으면 끝까지 가야겠지.
“아버지, 같이 내려가요.”
“뭐? 어딜 내려가?”
“세미트럭 받았잖아요. 그럼 타 봐야죠.”
“지금? 아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어어!”
정우는 아버지를 이끌어 VIP룸을 나섰다.
그리곤 선수용 터널을 지나 트랙으로 진입하였다.
그들이 트랙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에서 크게 호응이 일어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귀가 터져 나갈 것 같은 환호 속에서 아버지가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눈빛으로 세미트럭 앞에 섰다.
가만히 차를 만져 보는 아버지.
“이… 이게 세미트럭……!”
“멋지죠?”
“멋지다마다…… 근데 진짜 이걸 나 준다고?”
“아무렴요.”
정우가 웃었다.
“뭐 하세요, 아버지. 한번 타 보세요.”
“어어? 어…… 그래야지.”
카메라를 의식한 듯 어색하게 웃던 아버지가 조심조심 운전석 위로 올라갔다.
정우와 뒤따라온 머스크 역시 반대편 조수석에 탑승하고.
아버지가 시동을 걸었다.
전기차라 엔진시동음이 없지만, 우우웅- 하는 녹음된 엔진음이 재생되어 흘러나왔다.
그 심장을 떨리게 하는 엔진 소리에 아버지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거…… 정말 끝내주는구나! 하하하하!”
“그쵸? 이제 한번 밟아 보세요.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한번 달려 보자꾸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가 힘차게 액셀을 밟았다.
쭉 뻗은 트랙 위를 세미트럭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감에 몸이 시트로 파묻히는 듯한 감각이 들 때,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놈 참 시원시원하구만! 이제 넌 내 거다! 으하하하하-!!!!!”
* * *
관중석에서 핫도그를 먹으며 ATRC를 관람 중이던 미국인 할리 심슨 씨.
잔뜩 기른 턱수염과 선글라스, 머리에 두른 두건까지 전형적인 미국 상남자 스타일의 그는 꽤나 유명한 트럭커이자 트럭 애호가였다.
미국트럭협회(American Trucking Associations, ATA) 소속 회원이자, 100만 유튜버인 그는 트럭을 리뷰하고 직접 운행하는 브이로그 등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특히 그가 직접 튜닝한 볼보 트럭은 해외에서 굉장히 유명할 정도였고, 그만큼 트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그래서일까.
트럭에 진심인 그는 한낱 아시아인이 벤츠 오너라고 자랑하는 게 계속 생각이 났다.
“볼품없는 아시안 따위는 트럭의 진정한 매력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
턱수염에 묻은 맥주 거품을 닦아 내며 그가 중얼거렸다.
ATRC가 시작되기 전 한 아시아인 중년인이 다가와 자신을 벤츠 오너라고 허풍을 떤 일을 안주 삼아 친구들과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 허풍쟁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기분이 나쁘잖아, 기분이. 놈은 트럭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고! 강력한 엔진은 심장과 같고, 단단한 프레임은 전사의 골격과도 같지. 그런데 그 야생마 같은 놈을 길들여 보지도 않고 주인인 척한다고……? 어림도 없지! 암!”
“그래도 요새 아시안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진짜 벤츠 오너일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하지만 그 영감은 아니야. 내 눈은 정확해. 만약 그가 벤츠 오너지? 내가 저 영감탱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하겠어.”
맥주에 취기가 돈 건지 심슨은 흥분하여 열변을 토해 냈다.
하지만 그때,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가 전방을 가리켰다.
“어? 저기 그 아시안 할배 나오는데?”
“뭐? 무슨 똥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거짓말 아니야. 앞을 보라고!”
“그게 뭔…… 음?!”
친구의 말에 경기장 대형 디스플레이를 보자, 거기엔 아까 보았던 아시안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유명한 머스크에게서 차 키를 받아들고 떨떠름해하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심슨이 물었다.
“뭐야, 지금 무슨 상황이야?”
“저 아시아인이 네뷸라 케미컬 대표 아버지라는데?”
“네뷸라 케미컬?”
심슨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솔리드스타라는 요새 핫한 신형 배터리를 개발했다는 회사가 아니던가.
근데 그 회사의 대표 아버지가 저 아저씨라고?
“……헛소리.”
“진짜라니까. 직접 봐봐. 어? 내려온다!”
차 키를 받은 그 아시안은 머스크와 네뷸라 케미컬 대표를 양옆에 끼고는 트랙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감격에 겨운 듯 세미트럭을 쓸어 보다가 이내 올라타더니, 두 대기업의 대표를 옆에 태우고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제 넌 내 거다! 으하하하하-!!!!!
아시아인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 호탕한 웃음소리만은 심슨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정말로…… 저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 아저씨라고?
심슨은 인정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상남자였다.
“심슨, 이번엔 니가 틀린 것 같은데.”
“……끙. 깔끔하게 인정하지. 내 안목이 틀렸어.”
“그럼, 아까 내기했던 건 지키는 거야?”
“무슨 내기?”
“저 영감한테 무릎 꿇고 사과한다며.”
“으음…….”
“설마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려고?”
“내가 아는 심슨은 남자 중의 남자인데, 이 기회에 X추를 떼야겠는걸?”
“무슨 소리! 나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
친구들 앞이라 자존심을 세우려 소리쳤다.
하지만 무릎 꿇고 빌어야 한다니.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상남자.
뒤를 모르고 직진만을 알기에 굽히지 않았다.
“나 할리 심슨이야! 100만 유튜버 리얼 트럭커 심슨이라고!”
“워워, 진정해 친구. 우린 그저 니가 허풍을 떨어 대는 것 같아서 놀린 것뿐이라고.”
“감히 이 몸을 놀릴 생각을 해?”
“농담인데 뭐 어때.”
“그 농담 당장 사과할 준비나 하시지. 나는 한다면 하는 남자니까 따라오기나 해! 증명해 보일 테니!”
곧장 그길로 대회는 뒷전으로 미루고 그 아시아인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미트럭을 반납하고 머스크와 정우와 함께 흐뭇한 얼굴로 VIP룸으로 향하던 그 아시아인을 경기장 복도에서 발견했다.
“정우야, 정말 고맙다. 아들 잘 둔 덕분에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 보는구나. 으하하하하!”
“뭘요. 머스크가 준 건데 머스크한테 감사 인사를 전해야죠.”
“그렇지? 아이고- 고마워요, 머스크 씨. 내 언제 갈비 한번 거하게 대접할게요.”
“……가루비?”
“갈-비-! 코리안 미트! 오케이?”
“하하하, 한국식 소고기면 좋습니다.”
화기애애한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 앞을 심슨과 그의 친구들이 막아섰다.
“이봐, 거기 아시안. 할 말이 있다.”
선두에 있던 2미터가 넘는 그가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온 순간 머스크의 경호원들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거기 정지! 신원을 밝혀라!”
“A팀 신원불명의 거수자들 다수가 나타났다. 지금 바로 지원을 바란다.”
“저놈 생긴 게 범상치 않아! 절대 긴장을 놓지 마!”
“Yes, Sir!”
심슨의 떡대와 그 옆에 있던 그의 친구들의 험악한 인상을 보고 긴장한 경호팀장이 소리쳤다.
당사자인 심슨은 황당할 뿐이었다.
“아니아니, 잠깐 얘기 좀 하러 온 거요!”
“얘기? 허튼수작 부리지 마! 뒤로 물러서!”
심슨이 가까이 다가오자 경호팀이 총을 꺼내 겨누었다.
총을 꺼낼 줄 몰랐던 심슨은 깜짝 놀라서 손을 번쩍 들었다.
“아니 진짜라니까! 거기 아시안! 나 몰라? 아까 트럭 앞에서 얘기했잖아!”
“어? 너는…… 볼보 트럭?”
경계하다가 뒤늦게 심슨을 알아본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들이 경호대상과 구면인 걸 알게 된 경호팀도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겨우 재회하게 된 두 사람.
아버지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저 코쟁이는 왜 나를 찾아왔대?”
“왜 찾아왔냐는데요?”
정우가 중계에 나서서 묻자 심슨이 최대한 정중하게 대답했다.
“사과하고 싶어서 그랬다. 아시안, 아까 벤츠 오너라고 했을 때 거짓말쟁이라고 무시해서 미안하다.”
“아까 아부지 허풍쟁이로 몬 거 미안하다는데요?”
“뭐야. 그럼 아까 지 차 앞에서 씨부리던 게 내 욕했던 거였어? 이거 못된 코쟁이네.”
“그럼 사과받아 주지 말까요.”
“근데 뭐 어쩌겠어. 저렇게 사과하는데 용서해 줘야지.”
“아, 알겠어요. 심슨 씨라고 했죠?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십니다.”
중간에서 통역하던 정우가 말하자 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지만 옆에 있던 친구들이 한마디씩 던졌다.
“뭐야, 이대로 끝낸다고?”
“심슨, 아까 무릎 꿇고 제대로 사과한다며. 설마 빈말은 아니겠지?”
“……빈말이라니. 날 뭐로 보고! 난 남자 중의 남자야! 한다면 한다고!”
속으로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자존심이 뭐라고, 심슨은 큰소리치고 말았다.
멀뚱멀뚱 서 있는 아시아인 앞에 심슨의 거구가 주춤주춤 섰다.
얼굴이 시뻘게진 그가 잠시 망설였다. 이제라도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친구들 때문에 이제는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결심한 듯 그의 무릎이 천천히 굽혀질 때였다.
상황을 눈치챈 정우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서 그를 만류했다.
“아이고! 아니 남자가 무슨 무릎을 꿇으려고 해! 어서 일어나요!”
“아니, 나는 무릎 꿇고 사과를 해야……!”
“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진정성은 충분히 전해졌으니까 그만해요. 정우야, 빨리 이분 좀 말려 봐라.”
“네, 아버지. 저기요. 그만하셔도 됩니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하지만 이건 친구들과의 약속이……!”
“그건 그쪽 사정이지요.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저희를 더 불편하게 만들 뿐입니다.”
“으음…… 알겠다.”
정우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 듯 심슨이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불편하게 할 의도까지는 없었으니까.
그런 그의 앞에 아버지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볼보 양반, 아까는 기분이 좀 나빴지만 그래도 이렇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줄 아는 걸 보니 당신 진짜 멋진 남자 같구만.”
“아버지가 당신이 멋지답니다.”
“하하하, 당연하지. 근데 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당신은 내가 만나 본 아시안 중에 가장 쿨한 것 같군. 뭐, 앞으로 트럭을 타고 다녀도 인정해 주지.”
심슨도 악수를 받아 주며 웃었다.
“그래요? 하하하, 아부지, 저 남자가 아빠가 쿨하대요.”
“쿨하다는 건 좋은 말 아니냐? 으하하하하! 이 코쟁이 놈도 이 애비의 매력을 눈치챈 모양이구나! 좋아요.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니 앞으로 친하게 지내 봅시다.”
악수하며 껄껄 웃던 아버지가 고개로 바깥을 가리켰다.
“어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밥이나 한 끼 하는 게? 내 한국식 갈비를 대접하고 싶은데.”
“저기, 아버지가 이것도 인연인데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괜찮으세요?”
“밥?”
“예. 코리안 갈비입니다. 고기 좋아하시면 입맛에 맞으실 거예요.”
“갈비라…….”
심슨이 친구들을 쳐다봤다.
그들이 나쁘지 않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자 심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콜.”
“그럼 가시죠. 탁 본부장님, 근처에 괜찮은 한식당 좀 예약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하, 그거야 어렵지 않죠. 맡겨만 주시죠.”
* * *
정우 일행은 단체로 한식당을 찾아 한국식 갈비를 맛보게 되었다.
지글지글 익어 가는 갈비를 보며 아버지는 자기가 만든 음식도 아닌데 신이 나서 권했다.
“헤이! 디스 이즈 코리안 갈비! 츄라이츄라이!”
“코리안 갈비라…… 오, 이거 정말 맛있군! 코리안 갈비 정말 끝내주는구만!”
“……코리안 갈비 이즈 어썸? 정우야, 뭐라는 거냐. 맛있다는 거지?”
“하하하, 끝내준대요.”
“한국 요리가 이렇게 맛있는지 처음 알았어. 거기 아시안 친구, 고마워.”
“심슨이 아버지한테 고맙다네요.”
“고맙긴. 사는 건 우리 아들놈이 사는 건데 울 아들한테 고마워해야지.”
아버지가 멋쩍게 웃을 때 심슨이 물었다.
“근데 이봐, 이름이 뭐야? 친구인데 이름은 알아야지.”
“우리 아버지요? 아버지 이름은 이 태곤입니다.”
“태…… 콘? 아! 태퀀도?”
“아니요. 태곤이요, 이, 태, 곤!”
“태콘…… 어려운 이름이군. 아무튼 알았어. 태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구. 혹시 SNS 하는 거 있어?”
“SNS요?”
중간에서 통역하던 정우는 아버지가 SNS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버지 인터넷도 어려워하시거든요. SNS는 안 하시고 있으신데…….”
그때 SNS라는 단어를 듣고 정우가 말하던 영어의 의미를 눈치챈 걸까.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SNS가 왜 없어!”
“예?”
“봐봐, 나 유튜바도 하는 남자야!”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엔 아버지가 개설한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채널명은 [정우아빠>.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름과 함께 십여 개의 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편집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주로 일상의 일들이나 트럭 관련 영상들이 대부분이었고 구독자 수도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채널을 보여 주는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듯 보였다.
“봤지? 니 아빠 유튜바다. 으하하하!”
“어휴…… 나이 먹고 주책이야, 정말.”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그럼 그 나이에 유튜바가 어울려요? 주책이지!”
옆에서 듣던 어머니가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하자 아버지가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채널은 본 심슨은 껄껄 웃어댔다.
“하하하! 태콘, 너도 유튜버였구만! 이거 동종업계 사람이었어!”
“미? 예쓰! 아임 유튜바 투!”
“이거 나중에 같이 영상이라도 하나 찍자고.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내가 자네 유튜브에 출연해도 될까? 세미트럭 리뷰를 해 보고 싶은데.”
“음…… 말이 너무 빠르니 못 알아듣겠다. 정우야, 뭐라는 거냐?”
“같이 영상 찍고 싶대요. 심슨도 유튜버인가 본데요?”
“그래? 콜! 좋아좋아. 같이 영상 하나 찍어 보자고.”
“알겠어. 조만간 일정 한번 잡아 보자고. 내가 태콘 유튜브 팍팍 밀어줄게.”
“오케이오케이. 자, 우리 친구가 된 김에 한잔하자고!”
“좋아. 나 이 소주라는 게 참 마음에 들더라고.”
커다란 유리잔에 한가득 소주를 채운 심슨의 잔과 아버지의 소주잔이 부딪쳤다.
정우가 먼 이국땅에서 노년의 새로운 우정이 피어오르는 현장을 흐뭇하게 지켜볼 때, 뒤늦게 머스크가 한식당을 찾았다.
ATRC가 끝나고 참석한 것이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ATRC 우승 시상식까지 보고 오니 시간이 좀 걸리네요.”
“아닙니다. 저야말로 아버지 핑계로 중간에 빠져서 죄송하네요. 근데 누가 우승한 거예요?”
“결국, 볼보의 아이언 나이트가 2017 ATRC에서 우승했어요.”
“오? 볼보면 이벤트 매치에서 세미트럭에 밀린 차 아닌가요?”
“예. 덕분에 세미트럭이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되었달까요.”
“와…… 아이언 나이트는 우승의 영광이 빛바래서 마음이 아프긴 하겠네요. 근데 혹시 그것까지 의도하신……?”
왠지 천재인 머스크라면 이 결과마저도 의도하고 이벤트 매치 상대로 볼보를 노리지 않았을까?
정우의 추측과 달리 머스크는 미소와 함께 대답을 회피했다.
“하하하, 글쎄요. 그나저나 배고픈데 메뉴가 뭡니까?”
“한국식 갈비예요. 저는 좋아하는데 입맛에 맞을까 모르겠네요.”
“저도 좋아합니다.”
한상차림을 두고 마주한 머스크에게 한식을 권하자 그가 익숙한 듯 갈비를 쌈에 싸서 먹었다.
먹는 모습을 보아하니, 한두 번 먹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맛있네요. 여기 맛집Mat Jip인데요?”
“이야- 맛집이란 표현도 알아요?”
“하하하, 미스터 리 덕분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졌거든요. 그래도 어설프게 배운 한국어를 잘 써먹은 것 같군요.”
“어설프기는요. 정말 멋진 한국어였습니다. 그보다 미스터 머스크, 이거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 뭐가 말입니까.”
“저희 아버지에게 세미트럭을 선물해 주신 것 말입니다. 테슬라의 기술을 총동원해서 만들었을 텐데 덥석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만들어 둔 세미트럭은 몇 대 더 있어요. 그러니 부담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저희 아버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신 건 갚고 싶네요. 그래서 말인데, 머스크. 혹시 세미트럭에 옵션을 추가할 생각이 없습니까?”
“옵션이요? 무슨 옵션을 말하는 겁니까?”
고개를 갸웃하는 머스크를 보며 정우가 답례를 꺼냈다.
“이를테면 그래핀으로 만든 태양전지라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