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89)
89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입니다
에이다가 1,000원이 무너지고 500원을 갈 때까지 무너지지 않았던 비트코인의 10,000불 지지라인.
그 지지라인이 무너져 내렸다.
[BTCUSD: 9,987USD] [BTCUSD: 8,761.3USD] [BTCUSD: 7,104USD] [BTCUSD: 6,780.5USD]……
그것도 단 1시간도 안 되어 단숨에 반토막 가까이 가격이 빠졌다.
패닉셀Panic Sell.
모든 게 휴짓조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투자자들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여기는 지지하겠지. 그래, 이번에는 지지하겠지.
그런 개미들의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비트코인은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
-하… 어떡하냐 진짜 ㅜㅜㅜㅜㅜㅜ 나 망했다
-아… 비트 너마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 몫마저 열심히 살아 주세요
-한강 수온 체크하러 갈 파티 구함
-한강 밑바닥에 회귀 버튼 누르러 갈 용자 구합니다
-엄마 미안해 ㅜㅜㅜㅜ
-ㅋㅋㅋㅋㅋ 숏으로 10만 불 먹었다 개꿀~
└이 새끼 죽이러 갈 용자 구합니다
└22222222
└3333333333
……
─────────
-70%를 넘어 -80%, -90%까지.
시드머니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리는 패닉셀에 모두가 절망했다.
극소수의 몇몇만이 돈을 벌었다고 기쁨의 세레머니를 날릴 뿐이었다.
그리고 돈을 잃은 개미들의 분노는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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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누가 우정2 거꾸로 하면 이정우라고, 네뷸라 이정우 대표가 우정2 아니냐고 했던데 ㅋㅋㅋㅋㅋ 이정우 대표 조지러 가야 하냐?
└얘는 능지가 딸리나;; 우정2가 개인이 아니라 세력이라잖음 ㅋㅋㅋㅋㅋㅋ
└ㄹㅇ ㅋㅋㅋㅋㅋ 그딴 선동글을 믿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그럼 우정2는 개인이 아니라는 거?
└그런 듯? 비탈릭이나 사토시, 우지한 같은 큰손이나 중국 코인 채굴업자 같은 세력이 관여되어 있다는 게 정론임
-비탈릭이든 뭐든 세력들 죽이고 싶다 진짜 ㅜㅜ
-이번에 트론 창시자 저스틴 선 그 새끼도 트론 0.3달러 갔을 때 물량 겁나 털었다던데, 진짜 코인 스캠판 맞는 듯
-진짜 믿을 놈 하나도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ㅅㅂ 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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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와 비탈릭을 비롯한 코인계의 대부들에 대한 비판 여론과 더불어 코인 회의론이 대두되며 시장의 거품은 그야말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시선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코인은 다름 아닌 이더리움이었다.
왜냐하면 창시자 루머에 직접적으로 비탈릭의 이름이 언급되는 바람에 이더리움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무려 500달러 선이 무너지고, 한때 최저점 285달러를 찍은 이더리움을 되살리기 위해 비탈릭 부테린이 직접 트위터에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
[vitalik.eth @VitalikButerin]-이번 사태에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세간에 떠도는 루머는 사실이 아님을 명백히 밝힙니다. WooJun2라는 트레이더는 저와 관련이 없으며, 저는 이번 코인 대세상승장에서 이더리움을 팔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이더리움을 계속 보유 중이니, 현명한 투자자분들은 선동에 주의하시고 이더리움을 홀딩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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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더리움의 아버지라는 이름값과는 다르게 SNS에서 그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태, 아니 코인 시장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진정이 되려면 꽤 시간이 소요될 듯 보였다.
* * *
이번 폭락 덕분에 가장 큰 이득을 본 이는 다름 아닌 정우였다.
200억 달러, 아니 레버리지까지 따지면 300억 달러 규모의 숏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이만큼이나 빠졌다고?”
최소 몇 달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가격지점이 불과 2주도 안 걸려서 다가오자 정우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계획한 목표가 빨리 달성되었을 뿐, 변한 건 없었다.
‘익절한다.’
가격이 최고점에서 절반 아래로만 내려와도 익절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더 많이 빠져 줘서 고마울 뿐이다.
정우는 보유한 숏포지션의 70%가량의 물량을 모두 털어 냈다.
그가 익절한 가격은 각각 비트코인 평균 7,000불, 이더리움 평균 400불, 리플 평균 0.7달러, 에이다 평균 0.3달러 선이었는데, 물량을 털어 내는 과정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왜냐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 에이다 이 4가지 코인 모두 최고점 가격일 때는 시총이 수백조 원에 달했던 코인들이었기에 정우의 300억 달러라는 무지막지한 물량을 소화 가능했는데, 폭락하면서 가격이 내려간 만큼 시총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물량을 털어 내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지만, 다행히 아직 코인 시장의 열기가 남아 있어서 거래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물량을 모두 소화시킬 수 있었다.
[BTC → 5,665,762,378.2USD] [ETH → 11,299,999,935USD] [XRP → 6,259,818,731.1USD] [ADA → 6,447,368,368USD]─────────
[Total: 29,672,949,412.3USD]그렇게 현금화한 자산이 무려 290억 달러.
한화로 34조원에 육박했다.
“……이게 진짜 내 돈이라고?”
숫자가 너무 길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가 지난 1년간 기다려 온 결실인 건 분명했다.
‘회귀했을 때 이더리움 100배 롱 포지션을 홀딩하면 5억 달러를 벌게 된다고 좋아했었는데.’
막상 결과를 보니, 그가 예상했던 5억 달러를 아득히 넘은 무지막지한 재산을 벌어들이게 되었다.
물론 이중 시드머니가 140억 달러였으니, 실제 수익금은 무려 150억 달러 정도였지만(숏으로는 수익률 100%가 한계지만 레버리지로 인해 그 이상 벌 수 있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벌어들인 돈이 지난 1년간의 수익보다 많은 건 분명했다.
“……나 이제 진짜 부자구나.”
290억 달러의 현금을 쥐게 되자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국 최고 부자라는 진성의 진 회장의 자산이 20조 원이라는데, 자신이 그보다 많다니.
심지어 아직도 남아 있는 숏 포지션 물량은 30%가량을 익절하면 127억 달러를 추가로 현금화할 수 있었다.
“미쳤군.”
그리고 그가 자신이 이제 진짜 부자가 되었다고 확신한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숏 포지션의 물량을 익절하면서 생긴 숏 청산 빔.
끊임없이 내려가기만 하던 차트에 그려진 붉은 빔은 하락추세를 끝내며 강력한 반등을 이끌어 냈으니까.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코인장을 보며 정우는 자신이 이제는 완전히 세력화되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난 고래였어.”
그것도 무지막지한 몸집을 가진,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몸집을 지녔다는 흰수염고래가 되어 버렸다.
바다였던 전 세계 코인시장이 이제는 연못이 되어 버렸다.
* * *
정우가 숏포지션을 익절한 직후, 그의 스마트폰은 쉬지 않고 울려 댔다.
바로 그에게 감사를 표하는 인사 메시지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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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 (사진) [봉수]: 비트코인 숏 수익률 60%! [봉수]: 이걸로 완전히 졸업했다! [봉수]: 정우야 진짜진짜 고맙다 [봉수]: 니 덕분에 내 인생이 바뀌게 되었어 [KKD]: 나도 ㄱㅅㄱㅅ [KKD]: 정우야 사랑한다 ㅋ [봉수]: 우웩! [동현]: 그건 좀……. [동현]: 암튼 나도 고맙다 정우야─────────
봉수를 필두로 김경도, 김동현 두 친구들한테서 감사 인사가 왔고.
강성열 개발팀장과 고지용 연구원한테서도 감사 인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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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열 팀장]: 수도권 집 한 채가 서울 집 한 채로 바뀌었습니다 ㅎㅎ [강성열 팀장]: 대표님 감사합니다! [고지용 연구원]: 대표님 저도 아파트 하나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지용 연구원]: 고맙습니다 대표님!─────────
그들 모두 정우를 믿고 코인에 투자한 이들이었다.
회귀하기 전, 월급에 허덕이며 직장인들에 불과했던 친구들은 수백억 자산가가 되었고.
대출을 껴서 아파트를 마련했던 강성열 책임은 팀장을 달고 번듯한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초년생인 고지용 연구원은 작은 아파트를 살 목돈을 마련하게 되어 또래에 비해 다른 출발선상에 서게 된 것은 덤이다.
“……모두가 잘되었네.”
정우는 자신으로 인해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된 주변인들을 보며 흐뭇했다.
“게다가 서현 씨도 잘되었고.”
“저 말씀이십니까?”
옆에 있던 지서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정우와 그녀는 공항에 나와 있었다. 일전에 정우가 지시한 대로 이번에 네뷸라 코퍼레이션에 경호팀이 신설되었는데, 이들이 미국으로 입국한다기에 마중을 나왔던 것.
정우는 경호팀을 기다리며 최근 마무리된 코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코인 투자 대박 난 거 아니야? 나 따라서 매매하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모르는 게 이상하지. 내가 사용하는 API를 서현 씨가 만들었고, API로그는 다 서현 씨가 관리하잖아.”
“맞습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서현.
과연 그녀의 수익은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여태 얼마나 벌었어?”
“음…… 비밀입니다.”
“뭐야. 저번에는 알려 준다고 했었잖아.”
“……나중에,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거 수상한데? 돈 엄청 많이 번 거 아니야?”
“글쎄요.”
“백 억? 이백 억? 얼마나 벌었길래 그러는 거야.”
“비밀입니다.”
“흠…… 궁금하지만 오케이. 프라이버시니 이해해 줘야지. 그런데 좀 억울한데? 서현 씨는 내가 얼마나 벌었는지 다 알잖아.”
“……그만큼 제가 API에 신경을 많이 썼으니, 그 정도는 알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아무튼 알겠어.”
지서현이 워낙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거니와, 정우의 수익이 너무나 커서 비교되기 때문에 말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녀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 물어보는 건 그쯤 하기로 했을 때, 입국장에 일련의 무리가 들어섰다.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 일색의 덩치들.
딱 봐도 저들이 바로 새로 만들어진 경호팀 사람들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부진 체격의 외국인 거한들이 정우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선두에 있던 키 2m는 될 법한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동양인 사내가 선글라스를 벗더니 정우에게 악수를 청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이정우 대표님. 새로 신설된 경호팀 팀장을 맡게 된 강철준 팀장이라고 합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를 보며 정우도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이정우입니다. 유명 PMC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팀장님이 한국분이신 건 몰랐습니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보니 좋네요.”
“저도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PMC에서 아시안 팀장은 드무니까요. 그런데 저희가 직접 방문하기로 했는데 여기까지 나오셨네요.”
강철준 팀장이 얼굴을 슬쩍 굳혔다.
호의로 나온 건데, 뭔가 자신이 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서 정우가 변명했다.
“그래도 저희 회사 경호팀 팀장이 되셨는데, 마중을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인 경호에 있어서 대상의 돌발 행동은 좋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탁 트인 광장은 저격당하기 딱 좋지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도 어렵구요. 앞으로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넵넵.”
나름 잘나가는 네뷸라 케미컬 대표이자 고용주인데, 똑 부러지게 한마디 하는 강철준 팀장을 보며 정우는 속으로 뜨끔했다.
이거, 왠지 잘못 걸린 것 같은데?
* * *
강철준 팀장이 이끄는 경호팀과 조우한 즉시 경호는 시작되었다.
“경호라길래 밀착해서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그런 밀착경호도 가능은 합니다만, 일상에서까지 그러지는 않지요. 그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까요. VIP경호는 요원이 대처할 수 있는 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아,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 일론 머스크의 경호팀도 평소에는 그 존재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 점을 보았을 때 강철준 팀장이 이끄는 경호팀의 업무 수행 능력에 조금은 신뢰가 갔다.
게다가 저 단단한 근육을 보아라.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한 자만이 풍기는 아우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할 만했다.
하지만 그런 정우의 호감과는 달리 강철준 팀장은 굉장히 딱딱했다.
“대표님, 이 시간에 식당을 가신다구요?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딜리버리를 주문하는 게 어떠십니까?”
“음, 공간이 너무 트여 있습니다. 저격 스팟이 너무 많네요. 저쪽 자리가 좋겠습니다. 로버트, 입구 쪽 대기해. 거수자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다 같이 식사하자구요? 농담이시죠? 저희는 대표님 경호하러 온 거지 식사하러 온 게 아닙니다.”
“대표님, 식사하시기 전에 잠시 음식물 독성 반응 좀 체크하겠습니다.”
그는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모든 상황을 저격 및 요인 암살과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그를 경호했다.
다만, 그 프로페셔널함이 지나쳐서 첫날인데도 피곤함이 느껴질 정도라는 게 문제다.
경호팀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오붓한 시간을 기대 중이던 정우는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강 팀장님, 그…… 보호해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너무 과한 것 같아서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게끔 하겠습니다.”
“……충분히 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그래도 답답하시다니 조금 더 루즈하게 가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벽창호는 아닌지 그의 이야기는 곧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지서현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강 팀장님, 초면에 죄송합니다만, 요인 경호에 있어서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이 조금 불편해하시더라도 경호 수준은 최상급으로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서현 씨 그게 무슨 말이야?”
“대표님은 이제 혼자가 아닙니다. 대표님 어깨에 수많은 직원의 밥줄이 달려 있는데, 건강과 안전에 더욱 신경을 쓰셔야죠.”
“아니, 누가 날 노린다고 그래.”
“정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지서현이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조그맣게 ‘코인’을 얘기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정우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 말대로 자신에게 무지막지한 재산이 있는데, 누가 그의 목숨과 재산을 노리고 달려들지도 모르는 거니까.
“……알겠어. 내가 졌다 졌어.”
“왕이 되려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법입니다. 대표님,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감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강 팀장님, 들으셨죠? 경호 수준은 최고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이쪽은 개발팀장님이라고 들었는데…… 어찌 비서 같습니다만? 혹시 비서이십니까?”
“네?”
강 팀장의 질문에 지서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듣다 보니 아닌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저는 개발팀장이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무튼 경호 수준은 지금처럼 유지할 테니 대표님, 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네…… 부탁드릴게요…….”
정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행히 며칠 지내 본 결과, 정우는 강철준 팀장이 마음에 들었다.
식사를 할 때마다 독극물 체크나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일상에 변화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강철준 팀장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신경 써 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점점 호감이 생겼다.
‘게다가 확실히 뛰어나단 말이야.’
강철준 팀장은 한국인 출신으로서 해군 UDT/SEAL을 나오고 이라크 파병을 통해 굉장히 많은 군사작전을 소화했다.
그 과정에서 PMC업계에서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로 명성을 쌓았고, 전역 이후 블랙호크라는 유명 PMC에 스카웃되어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보통 PMC는 1년에 가까운 면접 기간이 있는데, 강철준 팀장은 이 기간을 뛰어넘고 곧바로 스카웃되었으니, 그 특출남이야 오죽하랴.
블랙호크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팀장급으로 승진하여 하나의 팀을 맡게 되었고, 이번에 블랙호크 PMC 컨트랙터(PMC 내에서 전투 및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물)를 통해 네뷸라 코퍼레이션과 계약하게 된 것이다.
보통 PMC 대부분이 외국인 용병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거친 소굴에서 팀장을 맡고 있는 그의 대단함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근데 좀 아쉬운데…….”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강 팀장님. 그 고용계약서를 보니까 정규 계약이 아니라 단기 고용이라고 되어 있더라구요.”
“예. 정확합니다.”
“서류가 틀린 게 아니었네요. 강 팀장님이 그렇게 계약하신 것 같은데, 혹시 이유가 있나요?”
정우가 강철준 팀장에게 물었다.
그렇다.
강철준 팀장은 정규 계약으로 네뷸라 코퍼레이션의 경호팀을 맡게 된 것이 아니라, 6개월짜리 단기 계약이었던 것이다.
사방을 경계하며 강 팀장이 흘러가듯 입을 열었다.
“저희 컨트랙터 통해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나 보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 필요해서 이번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돈이요?”
“예. 6개월에 백만 달러를 제시하셔서 수락했을 뿐입니다.”
“아…….”
김 비서에게 얼마가 들든 상관하지 말고 최고의 경호팀을 수소문해 달라고 했더니만, 이런 사정이 있었다니.
“아무튼, 저희는 돈이 필요해서 단기 고용이 된 것일 뿐입니다. 다만 6개월 이후에는 떠나기 전까지 후임자를 만나게 되면 인수인계는 철저하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니, 인수인계 때문이 아니라요. 저는 강 팀장님이 계속 경호팀을 맡아 주셨으면 좋을 것 같아 그럽니다.”
“제가 말씀이십니까?”
강철준 팀장이 정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고작 며칠 봤다고 쉽게 마음을 여시면 곤란합니다. 다수의 에이전트가 심리를 꿰고 있기 때문에 그런 호의를 파고들어 접근해 오기 때문입니다. 파티나 그런 일상의 자리에서 말이죠.”
“헐…… 강 팀장님 말대로라면 세상에 믿을 사람 한 명 없겠는데요?”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는 말입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아무튼 정규 계약을 제안해 주신 점은 감사합니다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이번 임무를 끝내면 다음 오퍼를 곧바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이 급하신가 봅니다?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정우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강철준 팀장이 입을 열었다.
“……250만 달러입니다. 이번 6개월 경호 임무가 끝나면 바로 아프리카로 가서 150만 달러짜리 오퍼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아하. 150만 달러짜리 오퍼는 기간이 짧나 보네요.”
“최장 3개월짜리입니다.”
“그렇게 두 개 끝내서 250만 달러를 버는 게 목적이군요?”
“예.”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정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강철준 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런 사적인 얘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습니다.”
“프라이버시, 뭐 그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고용주와 사견을 섞다가 쓸데없는 정보를 주입하는 건 위험하니까요.”
“궁금한데…….”
“…….”
강 팀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 대쪽 같은 고집이란.
답답하기보다는 절대 자신의 일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의외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애가 아프다던데요?”
“네?”
팔로알토에 위치한 네뷸라 코퍼레이션 사무실.
무려 290억 달러라는 거액의 총알이 생긴 김에 네뷸라의 미래를 논하고 중장기 프로젝트를 회의하기 위하여 탁세훈 본부장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에서 스카웃해 온 실무진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여러 가지 혁신적인 안건들이 올라오고 한창 마라톤 회의가 진행되다가 겨우 휴식 시간이 생겨서 탁세훈 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탁 본부장이 강철준 팀장이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려 준 것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 옆에 노란 머리 아시죠? 피터. 그 사람이랑 담배 한 대 태우면서 얘기 들었는데요?”
“아…….”
뭐야. 강철준 팀장은 입이 무겁지만, 팀원들은 아닌가……?
어쨌든 궁금했던 이야기였던지라 계속 들어 보았다.
“근데 애가 아픈 건 뭐예요? 누구 애가 아프고,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길래 250만 달러나 필요하다는 거죠?”
“아 그게, 팀원 중에 로버트랬나? 아무튼 그 사람 아들이 있는데, 무슨 병이라더라……. 아무튼, 근위축증인가 희귀병에 걸렸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 치료제가 무려 220만 달러랍니다.”
“220만 달러요? 무슨 치료제가 그렇게 비싸요?”
“얘길 들어 보니까 그게 일반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유전자를 아예 바꾸는 뭐 그런 건가 보더라구요. 근데 절대적인 게 아니라 개개인의 DNA염기서열? 뭐, 그런 거에 맞춰서 맞춤 제작해야 하고 이러저러해서 비싸대요.”
“아…… 그렇구나. 그럼 경호팀은 전부 그걸 위해서 일하는 거예요?”
“예. PMC에서 250만 달러를 벌면 수수료 떼고 220만 달러 받게 되는데, 전부 그 치료제 구입에 쓴다고 하더라구요. 팀원들 전부 페이 없이요.”
“……와.”
조금 놀랐다.
팀원의 자식을 위하여 무려 9개월을 무상으로 노동한다는 그들의 의리가.
무엇보다 강철준 팀장 정도면 페이가 한두 푼이 아닐 텐데, 거의 1년을 무상 봉사한다는 결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들이네요.”
“그렇죠? 진짜 남자 중의 남자라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이러면 돕고 싶어지는데.”
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탁세훈 본부장이 눈을 크게 떴다.
“네? 대표님 설마 도우시게요? 한두 푼도 아니고 250만 달러……. 아니, 220만 달런데요?”
“그게 중요한가요.”
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애가 아프다는데 도와줘야죠.”
“아니 그래도 남인데…….”
“남은요. 가족이죠.”
“가족이요?”
“한번 우리 회사에 온 이상 가족입니다.”
“아…….”
정우의 단호한 눈빛에 탁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가족이면 챙겨야죠.”
“로버트 아들 치료제 건은 지원해 주시구요. 이참에 회사 직원들 전수 조사 한번 진행해 주세요.”
“직원들 전부요?”
눈을 크게 뜨는 탁세훈을 보며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장으로서 가족들 고충을 들어 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