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9)
양규철이 실제로 비싼 걸 얻어먹고 다녔는지는 모른다. 실제로 목격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고 질러본 저녁 드립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당황한 양규철의 반응을 통해 정우는 자신의 노림수가 통했음을 직감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정우에게 조용히 윽박질렀다.
“… 너, 그 얘기 누구한테서 들었어!”
“농담입니다, 농담. 장난인데 뭘 그렇게 정색하세요. 꼭 도둑이 제 발 저린 것마냥. 진짜 누가 보면 뭐라도 훔.치.다. 걸린 줄 알겠네.”
“후, 훔치다니! 내가 뭘 훔쳤다고…!”
“농담이라니까요. 너무 진지하신 거 아니에요?”
“…… 아, 그치? 농담인 거지? 난 또….”
“어? 그러고 보니 이걸로 쌤쌤이네요. 양 선임님도 농담하셨고 저도 농담했으니까.”
“그렇지… 쌤쌤이지… 하, 하하… 하하하.”
“그쵸? 그럼 요 녀석, 아니아니 서현 씨가 방금 무례하게 군 것은 제가 단단히 버릇 고쳐놓을 테니까 기분 푸십쇼. 서현 씨, 잠깐 나랑 얼굴 좀 볼까.”
“… 예. 양 선임님, 죄송했습니다.”
정우는 짐짓 화난 듯한 얼굴로 지서현을 데리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는 양규철은 망부석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 이럴 때가 아니야.”
그러다 급한 일이라도 생각난 건지 이내 무언가에 쫓기듯 사무실을 떠났다.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던 세 사람이 사라진 소프트웨어개발팀 사무실엔 마침내 평화가 찾아들었다.
서려 있던 긴장이 풀리자 직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푸하- 숨 막힐 뻔.”
“… 방금 서현 씨 급발진하면서 들이받는 거 봤어? 화나니까 포스 장난 아니네.”
“그보단 전 이 선임님 보고 놀랐다니까요. 그 괄괄한 양 선임님 상대로 한 마디도 안 지고.”
“맞아. 이 선임이 평소에 엄청 순하더니 한 성깔 하네.”
“저도 이 선임님이 저러는 모습 처음 보네요.”
“근데 규철 씨가 너무하긴 했지. 이혼한다는 사람한테 대놓고 면전에다가 이혼 얘길 꺼내는 게 어딨어. 진짜 무례한 거야 그거.”
“솔직히 저 같았으면 바로 죽빵을… 헙헙. 방금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십쇼.”
“근데 마지막에 이 선임이 양 선임한테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양 선임이 꼬리를 만 거야? 누구 들은 사람 있어?”
“저도 못 들었어요. 대… 학?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양 선임이 이 선임한테 뭐 약점이라도 잡힌 거 있나.”
“에이. 책임님 드라마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니에요? 요즘 세상에 약점 잡고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런가? 괜히 궁금하네.”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소프트웨어개발팀이 이러쿵저러쿵 갑론을박할 때, 정우는 지서현과 함께 사옥 옥상을 찾은 상태였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맞으니 춥다기보다는 갑갑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지만, 그와 상반되게 정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딱 봐도 화난 모습이라 지서현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옥상에 올라오자마자 일단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괜히 제가 오지랖을 부려서….”
“서현 씨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
“… 쓸데없이 나서서 선배님 곤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틀렸어.”
정우가 몸을 돌렸다. 어느새 굳어 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정우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서현 씨가 잘못한 거 없어.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해야지.”
“… 예?”
“나서줘서 고맙다고. 아주 든든하더라.”
“… 아, 다행입니다. 전 선배님이 화나신 줄 알고….”
“내가 화를 왜 내. 아까 양 선임한테 들이받을 때 속이 아주 후련하더라니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데… 혹시 서현 씨 관심법 쓰는 거 아니지? 지금도 내 생각 읽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근데 관심법이 뭡니까?”
“나는 미륵이니라… 몰라?”
“모릅니다.”
“하- 세대 차이. 이상한 드립 쳐서 내가 미안하다.”
“… 죄송합니다.”
“자꾸 죄송해하지 말라고.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선배님이 왜 미안해하십니까.”
“그야 서현 씨 이제 양 선임한테 찍혔잖아. 아니 양 선임뿐만 아니라 일부 꼰대들도 서현 씨 고깝게 볼걸? 밑의 부하직원이 하극상 벌인 거라 좋게 봐주긴 어렵거든.”
“… 아.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 서현 씨 이제 큰일 났다고!”
“진짜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는….”
“뭐?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닙니다.”
그 말과 함께 지서현이 싱긋 웃었다.
어후 저 철부지.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한지도 모르고 저렇게 해맑게 웃다니.
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치 없는 게 이럴 땐 좋네.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으니. 아무튼 서현 씨, 나는 서현 씨 편이니까 힘든 거 있으면 얘기해. 오늘 은혜 다음에 꼭 갚을 테니까.”
“… 제 편이요?”
“아, 얘기하고 보니 좀 그렇긴 하네. 같은 편이라니까 소년만화마냥 ‘이! 지! 크로스!’ 이런 대사 날려야 할 거 같잖아. 겁나 오그라드네, 그치?”
“풉… 이지 크로스… 푸흐흐!”
“어? 서현 씨 웃었다. 로봇이 웃기도 하네.”
“저 로봇 아닙니다만?”
“로봇 아닌 척하는 로봇이라… 이건 귀하군. 아무튼 오늘 정말 고마웠어.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먹자고.”
“사주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고. 이제… 누구한테 밥 사주기는 좀 그래서.”
정우가 돈이 없어서 안 사주겠다는 게 아니다.
그냥… 이혼 이후로 여자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겠달까.
그런 의미였는데 지서현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아… 얘기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밥은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전재산 도박에 탕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걸 미쳐 생각 못하고 괜히 밥 사달라고 부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그건 오해라고. 도박 진짜 안 한다니까 그러네.”
“그렇다고 하시니 알겠습니다. 대신 밥은 제가 사는 걸로 하겠습니다.”
“전혀 못 믿는 눈친데? 나도 돈 있어.”
“그렇다고 해두지요. 이런, 벌써 점심시간이 끝났군요.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서현 씨, 가긴 어딜 가. 내 얘길 끝까지 좀 들어보라고. 나 그지 아니라니까? 서현 씨, 서현 씨이이이!”
먼저 내려가는 지서현의 뒤를 정우가 부랴부랴 쫓아가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깥바람의 추위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발그레 달아오른 두 볼로 내려가는 지서현은 묵묵부답이었다.
두근두근두근-
마치 정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이 오해가 풀리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할 듯 싶었다.
* * *
한편 그 시각, 아무도 없는 사옥 비상계단에서 양규철은 초조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끼익- 소리와 함께 비상계단 문이 열리더니 멀끔한 슈트 차림의 30대 남성이 걸어 내려왔다.
포마드 헤어가 잘 어울리는 남자, 성운이노베이션의 전략기획본부장 성재민이었다.
잘생긴 미간을 묘하게 일그러뜨린 채 다가온 그는 양규철의 앞에 서더니 으르렁거렸다.
“양규철 씨, 제가 업무시간에 연락하지 말랬죠. 사람 말이 우습게 들립니까?”
“보,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워낙에 급한 일이라… 악!”
용서를 구하던 양규철이 비명을 내질렀다. 성재민이 그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기 때문이다.
“엄살은. 좀 조용히 해요. 사람들 다 불러 모을 작정이 아니라면.”
“으윽… 죄, 죄송합니다.”
“그래, 그 급한 일이 뭔지 얘기나 들어봅시다.”
아픈 정강이를 감아쥐고 낑낑거리던 양규철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게… 들킨 것 같습니다….”
“들켰다고요? 누구한테요?”
“같은 팀 이정우 선임이라고… 좀 아리까리한 녀석이 있는데요.”
“이정우가요?”
“어? 본부장님도 아십니까?”
“… 그건 알 거 없고, 하려던 얘기나 계속해보세요.”
“그게… 갑자기 그놈이 저보고 요새 대한화학이랑 붙어 다니지 않냐고 얘기하는데… 왠지 느낌이 쎄하고 그래서 보고드렸습니다.”
양규철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상태로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성재민은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하… 양규철 씨, 겨우 그걸로 쫀 겁니까.”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사람이 우리가 뭐하는지 제대로 얘기한 것도 아니고, 우연히 대한화학이라는 이름이 나왔을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정우 선임이라고 했죠? 만약이란 게 있으니 그놈에 대한 건 제가 좀 알아보죠.”
“…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진행은 얼마나 됐죠?”
“… 서버를 뒤져보고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만, 아직 핵심은 못 찾았습니다. 아마도 외부에서 독립된 서버에 데이터를 보관 중인 것 같은데 거기로 접근하는 방법을 몰라서 찾느라 시간이….”
“아직도요? 하… 잘 좀 찾아보세요. 얘기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제자립니까. 갈수록 좀 실망스럽습니다?”
“… 잘하겠습니다! 믿어주십쇼!”
“말만 하지 말고 성과나 가져오세요. 욕심은 많아서 돈은 존나게 받아쳐먹고 성과가 없어요, 성과가!”
“…….”
“따로 할 얘기 또 없죠?”
“예. 죄송합니다.”
“그래도 염치는 있네요.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안 그래도 바쁜 사람 쓰잘데기 없는 걸로 시간 뺏지 맙시다, 예?”
“옙….”
고개 숙인 양규철을 두고 성재민은 비상계단을 빠져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몸을 바로 한 양규철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하 시발… 누군 찾기 싫어서 안 찾는 줄 아나…! 나도 존나게 찾고 싶다고…!”
성운이노베이션의 사활이 달린 프로젝트, ‘마이크로그래핀 음극재’ 기술의 데이터를.
* * *
점심시간에 있었던 마찰 때문이었을까. 그날 하루 소프트웨어개발팀의 사무실 분위기는 살얼음을 기는 것처럼 긴장감이 가득했다.
물론 양규철 역시 찔리는 점이 있었는지 정우를 투명인간 취급하였기에 트러블이 또 생기지는 않았다.
“근데 뭐라고 하셨길래 양 선임님이 꼼짝도 못하신 겁니까?”
“음… 그런 게 있어. 서현 씨는 몰라도 돼.”
“궁금하네요.”
지서현이 조심히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모든 업무가 끝나고 퇴근길. 정우와 서현은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러 호프집에 들렀다.
지서현이 도와줘서 고맙다며 기어코 밥을 사기로 했던 것이다. 식욕이 있지는 않아서 그들은 간단히 맥주 한잔 하기로 했다.
치킨 한 조각을 베어물며 정우가 미안해했다.
“맛있네. 근데 굳이 안 쏴도 되는데. 오히려 서현 씨가 나서줘서 내가 도움 받았으면 받았지, 전혀 고마워할 필요 없다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쌤쌤이잖아.”
“그 이야기는 아까 끝난 거 아닙니까. 보답해야겠다고 사는 거 아니라 그저 직장동료간의 가벼운 술 한잔일 뿐이니 부담가지지 마십시오.”
“끙… 왠지 적선 받는 기분이 들어서 그러는데 나 진짜 그지 아니다? 서현 씨가 오해하는 거 같아서 얘기하는 거야.”
“도박하신다면서요. 아닌가요?”
“어디서 그런 괴상한 소문이 퍼졌는지 모르겠는데 전혀 아니야. 그냥 코인 좀 하는 것뿐이지.”
“코인이요?”
지서현의 눈이 커졌다.
“비트코인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서현 씨도 알아? 아, 하긴 개발자면 비트코인을 모르는 게 이상하긴 하지.”
“좀 아는 편입니다.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오픈소스 이용해서 암호화폐 하나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거든요.”
“코인을 만들어봤다고?”
정우는 놀랐다. 대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지나가다 들어봤을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
비트코인 몇만 개로 피자 한 판을 바꿔먹었다는 얘기에 당시에는 ‘그런 데이터 쪼가리를 누가 피자를 주고 사냐’라고 비웃고 넘어갔더랬다. 당연히 비트코인이란 것에 대해서 알아보거나 채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위상은 역전되었다. 이제는 피자 몇백 판을 갖다줘도 비트코인 하나를 구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직접 채굴을 시도하고 심지어 코인도 만들어봤다고 하니 신기했던 것.
“무슨 코인을 만들었었는데?”
“비트코인의 핵심 중 하나인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이 있어서 이 기술을 활용하되 전송속도를 극대화해보자라는 취지로 알트코인을 만들었었죠. 그때 원하는 속도를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완성하기는 했는데 배포하려니 문제가 생겼었습니다.”
“무슨 문제?”
“비트코인 네트워크 풀 이용료가 상당히 비싸더라구요.”
코인을 배포하는 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P2P 즉, 사람들간의 직접 거래를 통한 코인 배포 방식과 기존 코인의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네트워크 풀을 이용하여 비트코인 보유자에게 몇날 몇시에 새로 만든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에어드랍(AirDrop: 무상으로 배포하는 행위) 방식이다.
하지만 이 방식의 문제점은 해당 네트워크를 사용하기 위해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트코인 트랜잭션 수수료가 상당하더라구요.”
“하긴 서현 씨 대학생 때면 불과 2~3년 전이니까, 그때도 비트코인이 가격이 꽤 나가긴 했지. 하나당 20만 원 정도 했나.”
“저희가 대학생들이라 지갑이 가볍기도 했죠. 그래서 그 비용을 충당하려고 비트코인 채굴도 시도했었습니다.”
“채굴도 했었다고?”
“예. 근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제 에이수스 랩탑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구요. 채굴 프로그램을 돌려놓기는 했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흐지부지되어버렸습니다.”
“아쉽네.”
“그래도 그때 채굴한 비트코인이 꽤 됩니다.”
“엥? 비트코인을 채굴해놨다고?”
“예. 지금도 저희집 PC로 채굴해놓은 상태입니다만.”
회귀하기 전에도 몰랐던 난생 처음 듣는 얘기였다. 서현 씨가 비트코인을 채굴 중이었다니.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어, 얼마나 갖고 있는데?”
“마지막에 봤을 때 100개 정도 갖고 있었던 것 같네요.”
“… 뭐? 100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