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91)
91화 한국에너지대상은…
지서현의 굳은 얼굴을 보고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정우가 물었다.
“서현 씨,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끄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입국 수속을 밟는 그녀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어두웠다.
* * *
한국에너지대상이 있기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에너지공단 홍보실 소속 공무원 김주창은 위에서 내려온 한국에너지대상 관련 트로피 외주 제작을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트로피에는 수상자 이름이 새겨지게 되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김주창은 이미 확정된 수상자 명단을 미리 받아서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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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대상]대한화학
[산업훈장]금탑 산업훈장: 대한화학 대표 박민수
은탑 산업훈장: 네뷸라 케미컬 대표 이정우
동탑 산업훈장: ……
[대통령표창]……
─────────
거기엔 대한화학이 에너지대상과 금탑 산업훈장을, 네뷸라 케미컬이 은탑 산업훈장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걸 본 김주창은 고개를 갸웃했다.
“주무관님, 네뷸라가 은탑이라구요? 에너지대상이나 금탑이 아니라요?”
“나도 몰라. 위에서 정한 건데 난들 아나.”
상관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도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
“와, 이번 에너지대상은 솔직히 네뷸라 케미컬이 휩쓸 줄 알았는데 충격이네요.”
“올해만 보면 그렇지. 그런데 대한화학이 그래도 거의 20년 가까이 우리나라에서 해 온 업적이 있잖아. 난 대한화학이 대상이랑 금탑 훈장 받는 게 그리 이상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약간의 의문이 들어서 검수를 진행했던 동기에게 메신저로 물어보았다.
─────────
-[김주창]: 성민 씨, 혹시 이번 에너지대상 관련해서 내부심사점수 채점된 게 있나요?
-[임성민]: 있죠
-[임성민]: 근데 그건 왜요?
-[김주창]: 트로피 외주 제작 때문에 방금 심사결과 봤는데, 대한화학이 금탑이고 네뷸라는 은탑이더라구요
-[김주창]: 뭔가 좀 이상해서… ㅎㅎ
-[임성민]: 아 그거요?
-[임성민]: 그거 저희도 좀 놀랐는데, 맞긴 해요
-[임성민]: 샘플 받아서 스펙 테스트해 봤는데 대한화학 에너맥스1000이랑 네뷸라 솔리드스타랑 스펙 점수가 완전히 똑같게 나왔거든요
-[임성민]: 기술 점수는 똑같게 나왔으니 대외 활동이나 공헌 점수 같은 걸 따져서 심사위원들이 평가하는 건데, 대한화학이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오래 했잖아요?
-[임성민]: 거기서 갈린 거죠
-[김주창]: 아하
-[김주창]: 역시 대한화학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네요
-[임성민]: 그쵸
-[임성민]: 근데 그거 아세요? 진짜 스펙 점수가 완전히 똑같이 나와서
-[임성민]: 다들 놀랐다니까요?
-[김주창]: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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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제품이 점수가 똑같이 나올 수 있나?
그런 의문이 잠시 들었지만, 담당업무도 아니고 김주창은 이내 흥미를 잃었다.
그는 다시 일하는 기계가 되어 트로피 외주제작을 위해 용역의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누군가 에너지대상과 관련하여 의문을 품을 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
“후…….”
한숨만이 맴도는 공간.
그곳은 대한화학 모듈/개발팀의 사무실 안의 풍경이었다.
코인 대폭락장이 휩쓸고 간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손해가 막심한지 한숨만 푹푹 쉬는 개발팀원들을 보며, 박학기 개발팀장이 한마디 던졌다.
“으이그…… 그러게 내가 코인 투자하지 말랬잖아.”
“……그러게요.”
“멘탈 나간 건 이해는 되는데, 한숨 좀 그만 쉬고 일 좀 합시다. 그런다고 잃은 손해가 복구되는 것도 아닌데, 월급이라도 벌어서 벌충해야지.”
“……예.”
박학기 팀장을 슬쩍 노려보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개발팀원을 보며,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안색 역시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성운이노베이션 시절 소프트웨어개발팀 팀장을 맡았던 박학기 수석.
정우가 대표가 된 이후 이직을 결심한 그가 옮긴 직장은 다름 아닌 대한화학이었던 것.
몇 개월 전 이곳 개발팀을 맡게 된 이후 그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왜냐.
그가 그만둔 네뷸라 케미컬이 솔리드스타로 초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그냥 남아 있을걸.’
당시 그는 크게 후회했다.
남아 있었으면 인센티브가 장난 아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직한 기업은 대한민국 최고의 배터리기업이라는 대한화학. 그는 그 저력을 믿고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하지만 웬걸?
솔리드스타의 여파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고, 대한화학의 주가는 연일 하한가를 맞았다.
게다가 유일자동차에 납품한 NMC배터리의 불량 리콜 사태로 그야말로 바닥을 쳤을 때는 눈치가 보여서 하루하루 일을 다니는 게 고역이었다.
다행히 에너맥스1000을 발표하면서 대한화학의 나락은 진정되었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코인이라는 또 다른 열풍이 회사에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옆팀 누가 하루만에 1억을 벌었다더라.
소재팀 누구는 30억을 벌어서 퇴사했다더라.
이런 소문들이 비일비재하게 들려왔고, 개발팀 내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하루에 수백만 원을 벌었다는 인증이 사내메신저로 우후죽순 올라왔다.
그걸 보면서 박학기 팀장은 그들이 부러우면서도 한편 전 회사 사람들이 떠올랐다.
‘……코인 투자하라고 했었는데.’
네뷸라의 대표부터가 코인으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인물이었고, 강성열 책임과 고지용 연구원이 이를 옹호하면 코인에 크게 투자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있는 박 팀장으로서는 코인이라는 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투자하지 않고 버텼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상황은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자신은 그냥 월급 받는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는데, 누구는 코인으로 돈을 벌어서 차를 바꾸고, 집을 사며 인생이 달라졌던 것.
‘만약 그때 투자했더라면…….’
남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때부터 박 팀장은 두고두고 코인거래소 앱을 열어 보면서 코인 시세 동향을 매일 확인했다.
하루 만에 수백 퍼센트 올라가는 코인을 보며 진즉에 코인에 투자할걸, 그때 투자했으면 지금 얼마인데, 이런 생각을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가자니 너무 오른 것 같아서 투자하기는 무섭고, 그저 애증의 대상으로 코인시장을 바라보길 한 달째.
문득 코인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팀원이 말해 준 얘기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회는 매일 온다고 하지만, 그 기회를 잡는 건 제 몫이잖아요?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기회의 크기도 다르구요. 코인 시장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가만히 그 기회를 놓치는 게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서 저라면 지금이라도 들어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래도 너무 올랐는데. 위험하잖아.”
“에이, 팀장님. 리스크 생각하면 코인 쪽은 쳐다도 보시면 안 되죠.”
“안 봐. 알잖아? 나 코인에 회의적인 거. 절대 투자 안 할 거야.”
“하하하, 그래도 계속 코인 얘기하시는 거 보면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으신 것 같은데요?”
“내가? 무슨 소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커피나 마시자고.”
조언해 준 직원에게 툴툴거리긴 했지만, 박학기 팀장 역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 이런 기회가 흔치 않지.’
심지어 그날도 리플과 에이다 등 코인들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수백 퍼센트 오르는 코인을 보며 박학기 팀장은 마침내 결심했다.
코인에 투자하기로.
그는 과감하게 아파트 적금을 깨고 코인거래소에 입금하여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코인에 투자했다.
바로 리플이었다.
‘전송속도도 탑급으로 빠르고, 그나마 송금용으로 많이 쓰이기도 하니까.’
그런 생각에 리플에 투자했는데, 그게 큰 실수였다.
그가 투자하자마자 리플은 끝도 없이 추락했던 것.
아파트를 사려고 모아 둔 2억 원이 한순간에 반토막이 되자 그는 미칠 지경이었다.
속이 타들어 가고, 가만히 있어도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내한테 어떻게 말하지?
1억 원을 잃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게다가 하소연할 주변인들도 없었다.
계속 코인 회의론자 행세를 하며 코인에 투자하는 직원들을 나무라기만 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그의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고, 설상가상 반토막 났던 코인은 -50%를 지나 -80%를 찍고 말았다.
‘……죽고 싶다.’
지난 몇 년간의 노력이, 아니 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에 그는 그냥 죽고만 싶었다.
그저 그가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연말 인센티브로 어떻게든 손해를 메꾸려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것뿐.
그렇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박학기 팀장이 또 하루를 버티기 위해 업무를 시작할 때였다.
그의 자리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예, 개발팀장 박학기입니다.”
-박 팀장님, 지금 대표실로 올라오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대표실이라는 말에 박학기는 허겁지겁 위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그가 아는 대한화학 대표, 박민수 부회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마침 잘 왔어요. 모듈팀 개발팀장 박학기 수석 맞죠?”
“예? 예.”
“성운이노베이션이랑 네뷸라 케미컬에서도 근무했고요. 그때 솔리드스타 관련하여 전고체배터리 스크립트 작업을 해 본 적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박학기 팀장이 물었지만, 박 대표는 오히려 되물을 뿐이었다.
“좋네요. 그럼 박 팀장, 하나 물어보고 싶습니다. 혹시 입이 좀 무거운 편입니까?”
“네?”
입이 무겁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박학기는 순간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코인 때문에 사면초가에 몰려 있던 상황인지라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제가 이 나이 먹도록 여기 위치에 있는 게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하긴 박 팀장님 나이면 은퇴할 때 되긴 했죠. 그래도 살아남은 걸 보면 눈치가 좀 있는 편인 것 같고…… 좋습니다. 박 팀장님한테 맡겨 보지요.”
“맡겨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맡겨 주신다는 건지……?”
“간단해요. 곧 에너지대상 앞두고 샘플 하나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샘플에 대해서 모듈화 작업을 하나 해 주면 좋겠습니다.”
“샘플이요?”
“예. 에너맥스1000입니다.”
“아……!”
에너맥스1000이라는 말에 박학기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굳이 저를 부를 필요도 없이 프로젝트 하나 올려 주셨으면 되는데요.”
“제가 대표인데 그런 것도 모를까요? 이거 눈치가 있다더니 좀 실망스러운데.”
“……아!”
자신을 노려보는 박민수 부회장을 보며 박학기 팀장이 그제야 그의 부탁에 무언가 숨겨진 게 더 있음을 깨달았다.
“……대표님, 혹시 구린 일입니까?”
“그럴지도요. 아무튼 이 작업은 모듈개발팀 모르게 박 팀장 혼자서 해야 하고, 그 누구한테도 알려지면 안 됩니다. 할 수 있겠어요?”
“…….”
박학기 팀장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에너맥스1000이라는 이름을 들은 후였기에 돌이키기엔 늦었다.
만약 여기서 거부한다면 그의 자리가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그의 선택은 하나였다.
“……무조건 하겠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모듈 작업을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시간도 촉박하구요.”
“그건 문제 없습니다. 이미 완성된 모듈에 몇 가지 코드만 수정하면 되는 작업이니까요.”
“이미 완성되어 있다구요?”
“자세한 건 이거 확인해 보고 처리해 주세요.”
박민수 부회장이 USB 하나를 내밀었다.
박 팀장은 그걸 받아들고 멀뚱히 서 있자 박민수 부회장이 한마디 했다.
“뭐 해요? 안 가고.”
“아, 알겠습니다!”
“시간 별로 없으니까 다른 업무 제쳐 놓고 최우선으로 처리 부탁합니다.”
“예!”
대표실을 나선 박학기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와 PC에 USB를 연결했다.
그러자 복잡한 설계도와 함께 이미 완성된 모듈 스크립트 하나가 보였다.
모듈이란 배터리셀을 8개나 12개 단위로 묶은 형태고, 이 묶은 배터리셀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발열이나 충전율과 방전량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모듈 제어 시스템이었다.
이 모듈이 여러개 모인 게 배터리팩이었고, 박학기 팀장이 다니는 모듈개발팀은 이 모듈시스템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듈 스크립트를 보고 살피자마자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모듈 시스템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기존에 있던 대한화학NMC배터리의 모듈과 굉장히 흡사했던 것.
그런데 어딘가 좀 달랐다.
‘NMC배터리셀이 아니잖아?’
NMC배터리모듈이라면 NMC배터리셀을 바탕으로 모듈을 만들어야 하는데, 해당 스크립트에 담긴 셀은 NMC배터리셀이 아닌 전혀 다른 셀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아하, NMC배터리 모듈을 가지고 에너맥스1000의 모듈을 만들려는 거구나.’
박학기 팀장은 그렇게 납득했다.
그렇다면 이게 그 소문만 무성했던 에너맥스1000의 배터리셀인가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잠깐, 이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그러다 박학기 팀장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모듈에 기존 원통형 배터리셀이 아닌 파우치 형태의 셀을 넣게 되어 있는 설계도.
거기에 맞추어 제작해야 하는 스크립트.
파우치형 셀을 본 순간 그는 그걸 어디선가 보았다는 걸 떠올렸다.
‘솔리드스타?’
바로 네뷸라 케미컬 재직 시절 보았던 솔리드스타의 모듈 스크립트와 흡사했다.
“에이, 설마…….”
억측이다.
파우치형 셀이 시장에 한두 개가 아니고, 그 장점이 입증되어서 차츰 여기저기서 도입하는 추세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대한화학의 에너맥스1000도 파우치형 셀을 채택한 것뿐일 터.
‘……그것뿐이겠지.’
하지만 왜일까.
USB에 담긴 내용물을 확인하는 박학기 팀장은 자꾸 박민수 부회장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입이 무겁냐고 묻던 그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 * *
한국에너지대상 발표 및 시상식은 대한민국에서 비싸다고 소문난 임페리얼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렸다.
“……한국에너지대상은…… 대한화학! 축하드립니다!”
사회자의 발표에 이어 대한화학의 대표인 박민수 부회장이 시상대로 올라 대상 트로피를 수여받았다.
그 모습을 연회장에 마련된 테이블 자리에 앉은 정우와 성태규 전무가 바라보았다.
성 전무가 아쉬워했다.
“결국, 대한화학이 대상이군요. 이번에 저희도 대상도 노려 볼 만했는데, 아쉽습니다.”
“뭘요. 은탑 훈장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이미 정우는 솔리드스타로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 훈장을 수여받은 상태였다.
솔직히 대상도 조금 기대하긴 했지만, 훈장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명예였기에 그는 만족 중이었다.
그렇기에 대상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듯 보였다.
“……대한화학이 대상이라고? 좀 그런데.”
“전고체배터리 상용화랑 그래핀 태양전지, 이 중 하나만 나왔어도 당해 대상은 따놓은 거나 마찬가진데, 이해할 수 없네.”
“그래도 대한화학이잖아. 20년 넘게 한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늦었지만 전고체배터리 상용화에도 성공했으니 올해는 대상 받을 만하지.”
“그런가.”
시상식에 참여한 다른 기업인들과 연구원들, 에너지업계 종사자들이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그 정도로 이번 에너지대상은 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박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동준 사장이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마침내 시상식이 모두 끝나고.
연회가 마련되어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서 정우는 당연코 최고 스타였다.
“안녕하십니까. 에스에이오일 한국지사 대표 하재성입니다.”
“이 대표님,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진성DC 진준모 사장입니다.”
“JK이노베이션 최종섭 사장입니다. 이 대표, 솔리드스타 관련하여 기술 제휴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
업계에 내로라하는 관계자들, 그것도 일개 임원이 아니라 차기 그룹을 이끌어 갈 후계자와 대표들이 앞다투어 정우와 한마디라도 섞기 위해 그의 주변을 에워쌌다.
“에스에이오일! 저도 기름 거기서 많이 넣습니다. 하하하.”
“하하, 반갑습니다. 아, 진 사장님.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정말 뵙고 싶었어요.”
“아, 기술 제휴요? 죄송하지만, 그건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연락처요? 당연히 드려야죠. 여기 제 명함입니다.”
……
정우가 정신없이 그들을 상대하던 그때였다.
“이정우 대표.”
나직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차갑지만 잘생긴 마스크의 남자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대한그룹의 한동준 사장이었다.
정우가 그를 쳐다보자 무표정하던 한동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반갑습니다, 대한디스플레이 한동준 사장입니다.”
“아, 한동준 사장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제 얘기를요?”
“유능하시다는 얘기요. 그래서 한번 뵙고 싶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거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시는 분이 그런 얘기를 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안 그래도 저도 만나 뵙기를 고대했는데.”
“저를요?”
“아, 모르셨나보군요.”
한동준이 정우를 보며 웃었다.
“지금 대한화학 경영에 저도 참여 중이라서 말이죠.”
한동준 사장이 경영에 참여 중인 건 몰랐던 정우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능숙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이거 알고 보니 경쟁자셨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솔리드스타 발표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던지…… 주가 복구하느라 참 애먹었습니다.”
“저런, 저희 때문에 피해를 보셨다니 안타깝네요. 그래도 에너맥스1000으로 만회하시지 않았습니까? 최근에 대한화학 주가 많이 올라왔던데.”
“네뷸라에 비하면 멀었죠.”
“저희요? 저희는 아직 상장도 안 했는데요.”
“상장만 안 했을 뿐, 여기 있는 모두가 알 겁니다. 네뷸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한동준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아마 네뷸라가 상장한다 치면 침 흘리며 달려든 하이에나들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에이, 그래도 이제 대한화학에서 에너맥스1000도 나왔으니 그 정도는 아니죠.”
“그럴지도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상장 계획은 따로 없는 겁니까?”
“상장이요?”
정우가 되묻자 한동준 사장이 덧붙였다.
“뭐,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전고체배터리를 양산하는 기업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오게 되지 않았습니까. 최근에는 공장도 굉장히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구요. 수중에 자금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을 것 같아서 슬슬 상장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물어보는 겁니다.”
그런 한동준 사장을 정우가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가 지금 이런 걸 대놓고 물어보는 이유가 뭘까.
느낌이 온다.
“이거 아무래도 한 사장님도 저희 네뷸라를 노리는 하이에나쪽인 것 같은데, 제 착각입니까?”
“아마도요. 그렇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전 이 대표만 좋으면 당장이라도 투자할 용의가 있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나오는 그를 보며 정우가 웃었다.
“하하하, 글쎄요. 아직 상장이나 기업 매각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혹시 생각이 들면 연락 줘요. 이건 제 명함입니다.”
“연락드릴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꼭 그것뿐만 아니더라도 제가 이 대표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뭐,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한동준 사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정우가 그걸 받아들며 지나가듯 물었다.
“근데 한 사장님, 에너맥스1000이 저희 솔리드스타와 좋은 경쟁 상대가 될 것 같아서 기대 중이긴 한데, 언제 정식으로 출시되는 거죠?”
정우의 질문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사실 이는 의도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그가 아는 미래에 대한화학이 전고체배터리를 개발한 기억은 없었으니까.
물론 정우가 과거로 돌아와 진행한 솔리드스타의 개발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만, 그보다는 무언가 야료가 있음을 정우는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기에 슬쩍 찔러본 것이다.
속마음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 정우를 응시하던 한동준 사장이 대답했다.
“……곧 좋은 소식 들려올 겁니다.”
“……기대가 되네요.”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상태로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었다.
정우는 한동준 사장의 손이 이상하게 차갑다고 느꼈다.
* * *
한국에너지대상 시상식이 모두 마무리되고, 언론에는 한국에너지대상을 대한화학이 차지했다는 기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에너지공단, 대한화학에 대상과 금탑 산업훈장 수여> [한국에너지대상 대한화학이 휩쓸어> [네뷸라 케미컬, 한국에너지대상 은탑 산업훈장 수여>……
에너지대상이 업계에서는 나름 권위 있는 상이긴 하지만, 연예뉴스 등이 주를 이루는 언론에서 그리 자극적인 기삿감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시작이라도 한듯 한국에너지대상에 대한 뉴스는 신문 1면과 대형 포털 상위를 장식하였고, 이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
─────────
-대한화학 대상 ㄷㄷ
-네뷸라가 될 줄 알았는데 대박이네
└ㅇㅈ 매출이나 국위선양 성과만 따지면 비교도 안 될 텐데
└└ㄴㄴ 우리나라 배터리 쪽 20년 이끌어 온 기업인데 당연한 결과임
└└└이게 맞지 ㅋㅋㅋㅋㅋ 20년 매출이 고작 1년 반짝한 거랑 갖겠냐?
-대한화학 주식 좀 사야 하나
-난 이미 사 놓은 지 오래임 ㅋ 에너맥스 이후로 오랜만에 호재인데 주가 좀 올랐으면 좋겠다
-대한화학 100만 원 가즈아!
─────────
여론이 반으로 나뉜 상태에서, 대한화학 주주들은 호재 등장에 반색하며 환호했다.
그리고 주주들의 기대를 반영하기라도 한 듯 새로운 뉴스가 포털을 장식했다.
[대한화학, 배터리사업부 분사 전격 발표!>바로, 대한화학의 배터리사업부 분사 발표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