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3가지 요소
그것은 대한화학의 배터리사업부를 떼어 내어 [대한에너지>라는 독립된 회사로 물적분할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기존 회사인 대한화학이 새로이 분할되는 [대한에너지>의 지분을 100% 소유한 채 새로이 기업이 신설되게 된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의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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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한화학 또 떡상 가나요?
-전기차 시장 대두되면서 대세는 배터리 회사지! 우리 박 회장 판단 지렸다
-배터리사업부 분사하면서 상장해서 주식 팔아서 외부투자금을 유치… 대한화학 일 잘하누ㅋ
-로드맵도 나왔네 ㅎㅎ 상장 후 투자금 마련해서 2022년까지 에너맥스1000 생산라인 순차적으로 50GWh까지 늘린다더라
-이건 무조건 공모주 청약 넣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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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분할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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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냥 보면 대한화학에는 좀 안 좋을 수도 있겠는데? 근데 대한그룹 전체로 보면 개호재다 ㅇㅈ?
-저게 뭐가 호재야 ㅋㅋㅋㅋㅋ 다들 바보들인가 ㅋㅋㅋㅋㅋ
-이건 좀 에반데;; 상장하면 모기업의 가치가 희석되는 건 당연한 수순 아니냐? 대한화학에 장투해 놓은 기존 투자자들 통수 때리는 짓인데?
-ㅇㅈ 대한화학이 상장되어 있는데 배터리사업부만 물적분할한다? 미국 같은 데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막말로 대한화학은 그렇게 되면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는 거잖아
-미국이면 이거 바로 난리 났지 ㅋㅋㅋㅋㅋ 미국이었어 봐? 대한화학 이사들 전부 주주를 배신한 대가로 집단소송을 당함 ㄹㅇ
-ㅇㅇ 미국이면 징벌적 손해배상 손해배상제도 때문에 수백, 수천억 원 물어줘야 해서 시도도 못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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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까지.
그렇게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대한에너지>의 공모주 청약에 대한 주관사 선정 및 절차들이 마무리되고.
[“대한에너지 공모주 청약 일정, 드디어 나왔다”, 분주해진 예비 상장사들> [대한에너지 ‘청약 전쟁’ 시작되나> [2018년 상반기 최대어, ‘대한에너지’ 청약 한 달 앞으로>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청약 및 상장 일정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한 사람.
“……형님,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한동준 사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감히 그룹을 반으로 쪼개려는 도둑놈에게서 물건을 되돌려받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카페.
고즈넉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절로 행동을 조심하게 만드는 그곳에 두 사람이 마주해 있었다.
바로 대한그룹의 장자라고 알려진 한성준 사장과 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미녀, 지서현이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두 사람이 무슨 일로 사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성준 사장 쪽이었다.
“오랜만이다. 건너건너 얘기 많이 들었어.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예.”
조심스레 묻는 한 사장의 말에 지서현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런 그녀를 보던 한 사장이 목이 마른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요즘 이 대표랑은 어때.”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죠?”
“그래도 딸인데, 딸의 연애사에 관심 좀 둬야 하지 않겠니.”
딸이라니.
한성준 사장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설마 지서현이 그의 딸이란 말인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지서현 그녀의 반응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딸이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우리 엄마를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결정된 거예요.”
“……서현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니 엄마가 임신한 걸 알았으면 절대 떠나지 않았을 거야. 니 아버지, 할아버지한테 맞섰을 거라고!”
“……하지만 아저씨는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셨잖아요. 우리 버렸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자꾸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 하세요?”
“……그건…….”
“오늘 나온 것도 자꾸 이렇게 부르는 게 싫어서 부탁하려고 나온 겁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아, 대한병원 예약해 주셨던 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은혜는 제가 반드시 갚을게요.”
차가운 지서현의 반응에 한성준 사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내 딸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 너에게 흐르는 피의 절반은 한씨의 것이야.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다.”
한 사장이 조용히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테이블에 올려진 카드를 보며 지서현의 무표정한 두 눈이 그를 향했다.
“……이게 뭐죠?”
“대한병원 때도 그렇고, 네가 이 대표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미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이 대표 만나 봤는데, 사람이 참 괜찮더라.”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본론만 얘기하시죠.”
“그냥 그게 전부야. 난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이걸로 관리도 좀 받고, 쇼핑도 좀 하고 그래. 이 대표 확 사로잡으려면 지금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니?”
“……이딴 거 필요 없습니다. 저 거지 아니고, 제가 쓸 돈은 충분히 있어요. 이러시는 거 매우 불편합니다.”
“서현아. 네가 거지라는 게 아니라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야. 딸 연애사에 도움을 주려는 건데, 그것도 안 되니?”
“정말 그것뿐인가요? 당신이 바라는 게 그것 뿐이냐구요.”
“……그래.”
한성준 사장이 그녀와 두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서현은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자신이 이정우 대표와 잘된다면?
앞서 혈연관계를 들먹이던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나를 통해 대표님을 이용하려고……?’
여자의 예리한 촉이 경종을 울렸다.
그 사이,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듯 한성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얘기해. 내 발 벗고 도와줄 테니.”
“필요 없습니다.”
“성격 하고는…… 딱 니 엄마를 닮았구나.”
“엄마 이름 들먹이지 마세요. 불쾌합니다.”
“알았다, 알았어. 서현아,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하고…….”
한성준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서현이 몸을 일으켜 나가 버렸다.
테이블에 놓인 카드와 이미 식어 버린 커피잔.
“……쉽지 않구만. 쉽지 않아.”
커피잔 위로 한 사장의 씁쓸한 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를 때.
스마트폰이 진동하였다.
[대한생활 금정기 대표]바로 대한생활 대표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대표님. 한성준입니다.”
-한 사장님, 지난번에 얘기했던 대한전자 지분 관련해서 말인데, 대주주 한 분이 매각 의사를 보이셔서, 조만간 한번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주주분이라면……?”
-그 아시죠? 부동산 쪽에서 유명한 김명철 선생님이십니다.
“아, 그런 거라면 당연히 봬야죠. 제가 바로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언제 편하실까요?”
전화를 받으며 호텔을 나서는 한 사장.
어느새 아까의 씁쓸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얼굴은 냉철한 사업가 그 자체로 변모해 있었다.
* * *
-……대표님, 아무래도 여행은 같이 못 갈 것 같습니다.
“못 간다고? 갑자기?”
-일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일이야? 나한테 얘기해 봐.”
-별일 아닙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지서현에게 온 전화에 정우는 당황했다.
한국에너지대상 시상 이후 그녀와 함께 스키장으로 놀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이 일방적으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날인가.”
여자의 속내란 알 수가 없다.
왠지 침울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별일 아니겠지 하고 정우는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시간이 붕 뜨는구만.”
뭘 해야 하지.
다행히 할 일은 많았다.
아니, 놀러 가는 게 미안할 정도로 그게 처리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우선 솔리드스타의 경우 안정적으로 사업 확장 및 생산이 진행 중이었지만, 그럼에도 전 세계에 솔리드스타를 납품하려면 아직까지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공장 확보가 더 필요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한국과 미국에만 있는 솔리드스타 공장을 다른 나라에도 짓기 위한 협의가 각 나라에서 밀물처럼 몰려오고 있어서 이를 확인하고 결재하는 데만 해도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는 고작 하나. 이제 막 태동 중인 그래핀 태양전지인 이클립스의 생산라인 확보까지 따지면 일은 2배로 늘어났고.
마지막으로 정우가 새롭게 구상 중인 사업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신규 태스크포스까지 합치면 일은 그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았다.
“사실 잘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놀러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김 비서의 핀잔에 정우가 울상을 지었다.
“그냥 논다는 게 아니라 공기 좋은 곳에서 바람도 쐬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일 처리하겠다는 거였는데요? 어차피 결재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잖아요.”
“그래도 수장이 직접 있는 경우만 하겠습니까? 자, 이거 확인 부탁드립니다.”
“뭐죠?”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래핀 사업과 관련하여 각 팀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그렇다.
그것은 정우가 염두에 두고 있는 그래핀 사업과 관련하여 각 팀에 주문한 미래사업계획안들이었다.
그래핀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어떤 사업에 어떤 방향으로 투자할 것인가를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양이 생각보다 방대했다.
“어우…… 이거 다 검토하려면 눈 빠지겠는데요?”
“그래서 각 팀에서 나름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들은 위로 빼 두었습니다. 그 보고서 위주로 해서 빠르게 훑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흠…… 앞으로 10년, 아니 2~30년을 결정할 사업방향을 정하는 건데 소홀히 할 수 없죠. 배려는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다 읽어 볼게요.”
정우는 선정된 보고서뿐만 아니라 올라온 모든 보고서를 전부 확인했다.
말 그대로 ‘이러이러한 사업이 좋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파생된 보고서라 구체적인 계획안이라기보다는 막연한 상상으로 채워진 터라, 마치 초등학생 학예회 같은 수준의 졸작 보고서도 즐비했지만, 그중에서는 정말 사업성이 괜찮아 보이는 보고서들도 있었다.
“오호…… 이거 괜찮은데?”
그중 정우의 눈을 사로잡은 하나의 보고서.
그것은 한국이 아닌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네뷸라 케미컬 지사에서 올라온 보고서였는데, [플라스틱을 대체할 그래핀 소재의 미래와 시장주도를 위한 사업 계획 및 방향성>이라는 복잡한 이름과 함께 앞으로 그래핀 소재를 이용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고 시장에 침투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 할지 꽤 구체적인 청사진이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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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로부터 풍요로운 현대 사회는 보다 더 빠르게, 보다 더 많이, 보다 더 뛰어나게를 지향하며 발전해 왔다. 이런 사회에서 소재만으로도 압도적인 뛰어남을 보이는 그래핀을 활용한 사업은 그야말로 사업가에게 있어서 꿈만 같은 일일 것이다.
……
의식주衣食住라는 말을 아는가.
의복Clothing, 음식Food, 그리고 주거 환경Shelter을 일컫는 말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3가지 요소를 말한다.
의식주 중에서 의복은 현대 사회와 가장 밀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스타그램만 보아도 스타들이 화려한 의상을 매일, 아니 몇 시간씩 갈아입으며 사진과 영상으로 뽐내는 시대니까.
하지만 그 이면에는 원래 의복의 목적, 사람을 바이러스나 병균, 외부의 공격과 같은 취약점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기능에 대한 고찰은 적어지는 추세다.
필자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대해 역행하자는 게 아닌, 본래의 의복의 취지에 맞게끔 의복의 개량에 대해 고민해 보면 어떨까 한다.
현대 사회가 과거보다는 현저하게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전쟁터나 탄광, 해저 시추 작업, 그리고 우주 환경과 같은 극한의 환경에서는 의복의 중요성은 말을 안 해도 잘 알 것이다.
만약 평상복처럼 매우 얇은 소재로 이루어졌음에도 방탄, 방검 기능이 들어 있는 의복이 있다면?
자체에 내장된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체열이나 태양광 같은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것) 기술 때문에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이 충전된다면?
……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섬유 역시 따지고 보면 플라스틱이다. 이런 플라스틱의 경우 그래핀으로 대체가 가능하며, 그래핀 섬유로 만든 의복의 기능이 더욱 뛰어날 것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 우선 기존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섬유기업의 인수를 통해 섬유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그래핀소재와 접목시켜 그래핀 섬유를 제조하는 게 우선이 될 것이다.
……
그 다음으로는 의복의 확장이다.
의복은 보통 몸에 걸치는 옷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식주의 의Clothing는 몸에 걸치는 모든 것, 장갑이나 양말, 신발 등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 역시 이에 포함이 된다.
따라서 현대 기술의 꽃이라 불리는 스마트폰 역시 의복에 포함된다고 간주할 수 있으며, 의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는 것 역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항목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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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의복에 집중하여 그래핀 섬유의 개발 및 의류 산업으로 진출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한 보고서였다.
꽤 그럴듯한 계획들이었기에 정우는 관심이 가면서도 특히 ‘의식주’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췄다.
“……의식주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3가지 요소, 의식주.
의복과 식생활, 주거 환경은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다.
이 모든 게 어느 정도 충족이 되어야 비로소 인간은 문화생활도 누리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
“……그러고 보니 우리 일상생활에 알게 모르게 의식주와 관련된 사업이 있구나.”
평소 인지만 못 할 뿐이지, 의식주는 이미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만약 이 의식주를 지배할 수만 있다면?
“……이거다.”
그래핀 섬유로 만들어진 옷과, 그래핀 소재와 그래핀 반도체로 만들어진 스마트폰으로 의복을 지배하고.
그래핀 신소재로 만들어진 건물을 짓는다면?
“……대박인데…… 문제는 식생활이구만.”
그래핀으로 음식을 만들 수는 없으니 일단은 패스.
그래도 의식주라는 사업방향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식품 쪽 사업은 나중에 따로 구상해 보면 될 터.
“……이 사람 장난 아니잖아?”
정우는 이 멋진 아이디어를 제공한 직원이 누군지 확인했다.
‘케이든 스미스’라는 이름의 이제 막 네뷸라 케미컬 미국지사에 입사한 경력사원이었는데, 전 직장이 구글이라서 그런 걸까. 그 혜안이 꽤 날카로웠다.
“……이거 칭찬 좀 해 줘야겠는데.”
그는 곧장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탁세훈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하, 대표님. 전화 주셨네요. 휴가는 잘 보내고 계시죠?
탁세훈은 전화를 받자마자 눈치도 없는 듯 쾌활하게 물었다.
정우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거 파토 났어요.”
-예? 왜요? 서현 씨랑 무슨 일 있었어요?
“뭐 일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무튼 그게 아니라 본부장님, 거기 미국 지사에 케이든이라는 직원 있나요?”
-케이든이요? 아아, 그 친구요? 예. 잘 있죠? 근데 왜요?
“이번에 보고서 올라온 거 확인했는데, 그 친구 기똥차더라구요.”
-아아, 그 섬유사업 쪽으로 진출하자는 그 계획서요? 안 그래도 저도 그 얘기 드리려 했는데.
“괜찮죠? 그래서 말인데, 케이든 그 친구랑 한번 얼굴 좀 보고 싶네요. 같이 사업 얘기도 좀 하고, 겸사겸사 인센도 좀 챙겨 주고요.”
-인센이요?
“예. 사업안 채택됐는데, 좀 챙겨 줘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긴 하죠. 인센으로 얼마 책정하실 생각이신가요?
“한 100만 달러면 되겠죠?”
-100만 달러요? 와우-!
탁세훈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정우가 되물었다.
“별론가요? 너무 적나.”
-아뇨. 오히려 너무 많죠. 그리고 부러워서 그래요 부러워서. 저는 인센도 못 받고 일하는데, 쳇.
“그러게 제가 챙겨 드린다고 했잖아요.”
-에이, 남자가 한 입 갖고 두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대표님, 다음 내기는 제가 무조건 이깁니다!
탁세훈 본부장은 작년에 정우와의 DOE사업에 대한 지원금 맞추기 내기에서 진 이유로 스스로 인센티브를 거절했다.
정우는 내기고 뭐고 그냥 챙겨 주려다가 하도 탁세훈이 거부해서 결국 성과금 없이 지나갔던 것.
“하하하, 알겠어요. 제발 꼭 좀 이겨 주세요. 인센 두둑이 좀 챙겨 드리게요.”
-다음에 억 소리 나게 받아 갈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십시오. 하하하하! 아무튼, 케이든 그 친구한테 이 좋은 소식 빨리 전해 줘야겠네요. 엄청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조만간 제가 미국으로 건너갈게요. 그때 봐요.”
-예, 대표님.
“아차차, 그리고 본부장님. 사업안 보면 아시겠지만, 섬유기업 인수할 대상 있나 확인 좀 해 주세요.”
-사업계획안 바로 시행하시려구요?
“예. 자세한 건 좀 더 논의해 보고 구체화해야겠지만, 섬유기업 인수는 서둘러야 진행이 빠를 것 같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알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정우는 한숨 돌렸다.
“휴, 이제 좀 쉬어 볼까.”
하지만 그는 쉴 수 없었다.
이내 그의 전화기가 다시 울렸기 때문이다.
액정에 떠오른 [아버지>라는 이름을 보고 정우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무슨 일이긴. 하도 연락이 안 되어서 전화했다. 설날에 올 거지?
“예? 설날이요?”
그러고 보니 곧 설날이 코앞이었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설 연휴가 다가온 것도 몰랐던 것이다.
“설인데 얼굴은 봬야죠. 시간 내서 본가 한번 들를게요.”
-알겠다. 바빠도 이번엔 꼭 좀 와라. 친척들 다 온다더라.
“……친척들이 온다구요?”
친척들이 온다는 말에 정우의 안색이 굳어졌다.
왜냐하면 부모님과 형제들이 할머니의 재산을 가지고 다투었기 때문에 그는 친척들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회귀하기 전에도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에 큰집인 부모님 집에 한 번도 안 왔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갑자기 온다?
“아니, 그 사람들이 무슨 염치로 여길 온대요? 그때 할머니 재산 가지고 그렇게 싸워 놓고선.”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핏줄인데 어쩌겠냐. 아무튼 올 거지?
“글쎄요……. 갑자기 가기 싫어지는데.”
-그래도 와. 오랜만에 친척들 얼굴도 보고, 그 뭐냐. 종근이 알지? 사촌들 얼굴도 봐야지.
“안 본 지 한 10년은 된 것 같은데…… 아무튼 알겠어요.”
떨떠름하게 통화를 마치고.
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뭐 콩고물 없나 노리고 오는 것 같은데…….”
본지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는 남이나 다름없는 친척들. 그들이 갑자기 찾아오는 게 영 불편하기만 하다.
이거 어떻게 하면 설날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무언가 빠질 핑곗거리가 없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대표님. 김 비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김 비서가 대표실로 들어섰다.
정우가 물었다.
“김 비서님, 무슨 일입니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청와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