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캡틴! 오랜만입니다!
친척들이 티비를 통해 정우의 모습을 확인한 그 시각.
청와대에 도착한 정우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영빈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빈을 위한 만찬 등 공식 행사장으로 사용되는 영빈관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 및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맞이하기 위한 세팅이 끝난 상태였는데, 만찬을 위한 여러 원형 테이블에는 이미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총수들과 경제인들이 앉아 행사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매체를 통해서만 접한 대한민국 최고 부자들이자 실세들이 앉아 있는 모습에 정우는 살짝 긴장했다.
그런 그때 한쪽 테이블에서 익숙한 얼굴이 손을 들었다.
“이 대표! 여기에요, 여기!”
그는 바로 유일그룹의 유종범 회장이었다.
반갑다는 듯 환하게 웃는 그를 보며 정우는 그쪽 테이블로 향했다.
“휴, 아는 척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 회장님.”
“아는 척이라니요. 오히려 이 대표가 이쪽으로 와 줘서 내가 고맙지.”
“아닙니다. 너무 분위기가 진지하고 대단한 분들밖에 안 계셔서 좀 긴장했네요. 그래도 아는 얼굴이 있어서 살았습니다.”
“하하하, 젊은 양반이 이런 거로 쫄면 어떡합니까. 그리고 어차피 여기서 이 대표가 긴장할 사람은 대통령을 빼면 없을 텐데요.”
“제가요? 에이, 전혀 아닙니다.”
“과연 그럴까요?”
유종범 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총수들이 슬쩍 몸을 일으켜 정우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대한그룹의 한광표 회장이었다.
대한그룹의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처럼 작달막한 키의 그는 티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여기 자리가 비었는데 앉아도 되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주름진 얼굴의 한 회장은 유종범 회장의 동의를 예의상 구하는 척하고는 정우의 옆에 착석했다.
그리곤 곧장 정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네가 네뷸라의 이정우 대표인가?”
“네,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한 회장님.”
“나도 반갑네. 그런데 듣던 것과는 다르구만.”
“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하도 우리 대한그룹을 못살게 굴길래 어떤 막돼먹은 놈인가 싶었는데, 이거 인물이 아주 훤칠해?”
그제야 한광표 회장이 농담을 던졌다는 걸 깨달은 정우가 웃었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회장님이야말로 인물이 대단하신데요? 젊으셨을 때 인기가 대단하셨을 것 같습니다?”
“뭐? 하하하, 이거 입심도 아주 수준급이구만.”
“직장인 출신이라 회식 자리에서 익힌 스킬이죠. 하하하.”
미소 짓는 정우를 한광표 회장이 미소를 띤 채, 하지만 예리한 시선으로 훑었다.
셋째와 둘째를 애먹이게 했으며 대한그룹을 뒤흔들어 놓았던, 아니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말은 많이 나눠 보지 않았지만, 정우에게서 전해지는 특유의 긍정적인 기질에 한광표 회장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겠구만.”
“예?”
“생각보다 괜찮은 친구인 것 같다는 얘기야. 그보다, 저기 누구 오는구만.”
한광표 회장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니 거기엔 다른 총수들보다 확연히 어린, 하지만 정우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멀끔한 신사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여기 모여 계셨군요. 여기 자리가 비었는데 앉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야. 진 부회장.”
그는 다름 아닌 ‘진용재’ 진성그룹 부회장이었다.
진성그룹을 한국 1위이자,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위치까지 끌어올린 진영순 회장의 아들이자 차기 후계자로 지목된 사나이로서, 현재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진영순 회장을 대신하여 진성그룹을 이끌고 있는 사실상 그룹의 회장이자 총수라 해도 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순 회장은 곧 타계하지.’
사실상 진영순 회장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회귀하기 전 기억으로는 앞으로 1~2년 이내에 진영순 회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고, 진용재 부회장은 진성그룹을 승계하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진용재 부회장의 뇌물공여 및 부정청탁 혐의와 상속세 탈세 혐의와 같은 여러 잡음이 발생하여 2022년 하반기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회장 자리에 취임하게 되는 등 꽤나 큰 홍역을 치르게 된다.
거기에 중소기업의 기술이나 특허를 빼 오는 등 완벽하게 도덕적인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악인도 아닌 묘한 인물.
겉으로는 완벽한 신사이자 재벌의 표본과도 같은 그를 실제로 마주한 정우는 감회가 새로웠다.
“안녕하십니까, 진 부회장님. 네뷸라의 이정우입니다. 어려서부터 진성에 입사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이 대표가 진성에 입사하고 싶었다고요?”
“예. 대학 시절 입사 시험도 치르고 면접도 봤었습니다. 하하하.”
“그런데 이 대표를 채용을 안 했다는 거죠? 이거 당시 면접관들 다 잘라야겠는데요? 하하하하.”
정우의 말에 농담으로 응수하며 진용재 부회장이 웃었다.
“반갑습니다, 이 대표. 안 그래도 이 테이블로 온 이유가 이 대표와 얘기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만나러 오셨다구요?”
“왜 아니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 천재 아닙니까?”
“천재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띄워 주는 진 부회장의 말에 정우가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웃을 뿐이었다.
“이미 업계에서는 이 대표 칭찬 일색입니다. 하하하. 그리고 사실 여기 계신 회장님들도 다 이 대표를 보기 위해 모인 거 아닙니까?”
진용재 부회장이 대놓고 하는 말에 한 회장과 유 회장 모두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런 그때 진용재 부회장이 그에게 물었다.
“이 대표,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네. 괜찮습니다. 어떤 질문입니까?”
비즈니스 관련한 질문이겠지 싶어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진 부회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전혀 다른 맥락이었다.
“혹시 지금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예?”
“하하, 기사로 봤습니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데, 이 대표 정도면 인물도 훤칠하고 이제 슬슬 새로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아…… 아직 만나는 사람은 따로 없습니다.”
잠깐 지서현이 생각났지만, 정우가 얼떨결에 대답하자 진 부회장이 반색했다.
“아, 그래요? 이거 잘됐네. 내가 좋은 사람 아는데 한 명 소개해 줄게요. 한번 만나 볼래요?”
“아니 그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하하…….”
“부담 갖지 말아요. 진짜 좋은 사람이니까.”
“누군데 그럽니까?”
“하하하, 바로 내 딸입니다.”
“……예?”
진용재 부회장의 딸이라면, 유명 가수 겸 배우이자 진성그룹의 공주라 불리는 진주희 아닌가?
게다가 지금쯤이면 갓 스물을 넘겼을 때가 분명하다.
단순 나이 차이만 해도 10살은 날 텐데 그런 자신의 딸을 소개해 준다고?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정말로 괜찮습니다.”
“이 대표, 그러지 말고 한번 내 딸이랑 커피나 한잔해 봐요. 꼭 사귀라는 게 아니라 인연만 터놔도 그게 곧 인맥 아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따님 의향도 있을 거고, 나이 차이도…….”
“오? 우리 주희를 알아요?”
“네, 뭐 배우 한다는 것 정도는 들었습니다.”
“원래 관심이 있었으면 더 다행이네요. 아무튼, 주희 의향이야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나이 차이야 이 대표가 이렇게 동안인데 뭐가 문제겠어요? 내 언제 자리 한번 만들어 볼 테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수다나 떤다 생각하고 만나 봐요.”
“으음…….”
의외로 집요한 구석이 있는 진 부회장의 밀어붙임에 결국 정우는 빈말로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쩔 수 없네요. 알겠습니다. 시간 되면 한번 보도록 하죠.”
“하하, 접수했습니다. 이거 무르기 없습니다? 하하하하.”
껄껄 웃는 진 부회장의 얼굴에 옆에 있던 다른 회장들도 다급해졌다.
잠자코 듣고 있던 유종범 회장이 끼어들었다.
“아니, 진 부회장. 이거 상도덕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요? 이 대표랑 나랑 알고 지내도 한참 더 알았을 텐데, 갑자기 이게 뭡니까?”
“하하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대표 정도의 사윗감이라면 새치기가 뭐 대수겠습니까? 하하하하.”
“이거 진 부회장이 욕심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어쨌든 선전포고를 했으니 질 수야 없지요. 이 대표, 그럼 나도 한 명 소개해 주지요.”
“예? 유 회장님도요?”
“우리 집구석에도 그 발레 한다고 외국물 먹은 조카 딸이 있는데, 애가 참 참해. 우리 이 대표 색시 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한번 만나 봐요.”
“그게…….”
정우가 난처해했지만, 유 회장이 도끼눈을 떴다.
“설마 진 부회장 부탁은 들어주고 우리는 거절하려고? 그러면 실망이 클 것 같은데?”
유 회장의 서슬 퍼런 기세에 결국 정우가 백기를 들었다.
“……아닙니다. 만나 봐야죠.”
“그럼 이 대표. 우리 쪽도…….”
그런 그들의 모습에 한광표 회장도 안달이 난 듯 입술을 달싹이던 그때였다.
영빈관 만찬장에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이 배치되더니 분주하고 소란스러워졌다.
딱 봐도 본격적으로 행사가 진행될 느낌에 모두가 엄숙하던 그때.
“곧 대통령 입장하십니다! 식전에 앞서 사진 촬영이 있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진행자의 안내에 모두가 착석한 자리에서 일어나 영빈관 만찬장 정면에 일렬로 섰다.
보여 주기식 의례이긴 하지만, 만찬에 앞서 양국의 대통령이 입장하며 악수하는 행사가 진행될 거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드디어 보게 되는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앞에서 대통령을 보게 되니 가슴이 떨렸다.
그것도 조국인 한국의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도 함께라니.
아무리 성장한 그였어도 살짝은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한광표 회장을 필두로 유종범 회장, JK그룹 최종섭 회장, 진성 진용재 부회장, 그리고 정우와 다른 기업 대표 및 경제인들 순서대로 섰다.
이제 대통령들이 입장하면서 차례대로 인사와 악수를 할 터.
그때 마침내 영빈관 입구 멀리서 양국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경호원과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여 이동하는 두 대통령은 미소 띤 얼굴로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는데, 순간 정우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마주쳤다.
사람을 마치 꿰뚫어 보는 듯한 그 강렬한 눈빛에 정우는 순간 시선을 돌릴 뻔했지만, 이미 많은 카메라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라 애매해서 그대로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시선을 트럼프 대통령 역시 피하지 않았다.
마치 눈싸움을 하는 듯 트럼프 대통령은 뚫어져라 정우를 쳐다보면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그의 앞에 섰다.
이미 앞쪽에 서 있던 한광표 회장과 다른 기업 총수들을 모두 제친 채로, 제일 먼저 정우 앞에 선 그가 물끄러미 정우를 응시하다가 입술을 떼었다.
“당신이 네뷸라의 미스터 리요?”
“……예? 예, 그렇습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반가워요. 트럼프요.”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정우는 얼떨떨했지만, 일단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
……이거 무슨 상황이야?
* * *
정우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1시간 전.
청와대까지 그를 수행한 강철준 팀장과 경호팀은 청와대 경호실에 딸린 대기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청와대 경호실 소속 경호원이거나 내부 출입 허가를 받지 않고서야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기 중이었는데, 네뷸라 경호팀 팀원들은 청와대 방문을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살다 살다 사우스 코리아의 블루하우스Blue House를 다 와 보네요.”
“왜 촌놈처럼 굴어. 우리도 이라크 때 대통령궁도 구경해 봤잖아.”
“진입도 못 하고 멀리서 잠깐 구경한 건데요 뭘. 이런 걸 보면 우리 고용주가 참 대단한 것 같긴 합니다.”
“릭슨, 그걸 이제 알았냐. 난 진즉에 미스터 리가 대단한 사람인 걸 알고 있었어.”
경호팀 피터가 떠들자 다른 팀원들이 피식 비웃었다.
“야, 피터. 머리도 우리 중에 제일 나쁘면서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나? 얼마 전에 휴가 때 테슬라에서 새로 나왔다는 모델S-SP 타 봤는데, 차가 아주 좋더라고.”
“진짜로? 근데 너 전기차 안 좋아하잖아. 전기차는 아줌마들이나 타고 다니는 차라고 하더니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경호팀원 릭슨이 묻자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가 전기차 깔보긴 했지. 근데 막상 타 보니 내연기관이랑은 다른 부드러운 맛이 있더라고. 게다가 충전도 매일 안 해도 된대? 배터리가 엄청 오래 가나 봐.”
“그 얘기 듣긴 했는데, 진짜 좋긴 좋은가 보네. 나중에 하나 질러 봐?”
“서둘러야 할걸? 지금 없어서 난리잖아. 타 봤더니 하도 좋아서 나도 바로 계약 걸었는데, 1년 뒤에나 나온다더라.”
“1년 뒤에? 미친…… 차라리 그럴 바에 중고차를 사는 게 더 빠르겠는데?”
“중고차는 값을 2배는 줘야 한다더라.”
“2배? 농담이지?”
“농담이긴. 뉴스도 안 봤냐. 지금 테슬라 모델S-SP는 시세가 미쳤어.”
“뭐? 젠장…….”
피터의 말에 혀를 내두른 릭슨이 강철준 팀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캡틴, 혹시 미스터 리한테 부탁할 수 없습니까?”
“뭘?”
“모델S-SP 하나 빠르게 출고시켜 달라고요.”
“……릭슨 이 멍청아, 클라이언트한테 그딴 부탁을 요구하는 요원이 어딨어? 정신 좀 차리자.”
그렇게 농담식으로 그들이 영어로 수다로 떨던 그때였다.
그들을 감시하듯 지켜보고 있던 청와대 경호실 소속 경호공무원이 강철준에게 한마디 던졌다.
“거기 한국인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여긴 청와대입니다. 곧 미 대통령 방문도 잡혀 있는데, 조금만 정숙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살짝 무안한 얼굴로 강철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국어를 못 알아들은 팀원들이 물어봤다.
“뭐랍니까?”
“조용히 하란다, 이 자식들아. 여기가 동네카페도 아니고, 수다는 나중에 나가서 해.”
“……아. 죄송합니다.”
강철준 팀장의 한마디에 깨갱 한 팀원들.
그렇게 네뷸라의 경호팀이 대기 중이던 그때, 방금 강철준에게 한마디 건넸던 경호공무원이 계속 의심스러운 얼굴로 강철준의 얼굴을 뜯어 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강 팀장이 그런 그를 쳐다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냥…… 어디서 본 얼굴 같아서… 아! 혹시 UDT……?”
“어? 맞습니다. 48-2기였습니다. 그쪽도 UDT입니까?”
“예. 근데 48-2기라면…… 아!”
그제야 강철준 팀장의 얼굴을 기억해 낸 듯 경호공무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강철준?”
“저를 압니까?”
“……알지. 너를 왜 모르겠어. 48-2기수 전체 수석 수료생이었던 너를. 근데 넌 나 기억 안 나냐?”
“……전혀. 누군데?”
강철준 팀장을 노려보며 경호공무원이 입을 열었다.
“너랑 같은 48-2기 황정태라고 하면 알려나?”
“……황정태? 황정태라면… 아, 그게 너였냐.”
그제야 강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황정태라는 남자.
그는 UDT 시절에도 사사건건 자신과 대립했던 동기였던 것이다.
“이제 기억이 나네. 니가 차석이었던가?”
“……맞아.”
“흠, 별로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어쨌든 오랜만이다. 십 년은 훌쩍 지났는데 용케 기억했네. 얼굴 많이 변했을 텐데.”
“많이 늙어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이야, 천하의 강철준도 훅 가는구나? 세월에 장사 없네.”
마치 비웃듯 얘기하는 황정태를 보며 강철준은 그가 아직 자신에 대한 적의가 남아 있음을 깨달았다.
“글쎄. 경호원이 피부가 하얗다라…… 나보다는 니 걱정을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다, 대통령을 걱정해야 하나?”
황정태의 허여멀건 피부를 지적하자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만큼 그가 훈련에 게을리한 것 같다는 뉘앙스였기 때문이다.
“……누가 요새 실외에서 훈련해? 실내에서 하지.”
“그건 모든 상황이 실내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 얘기고. 아, 니가 그 멍청이라는 걸 깜빡했네.”
“뭐야? 지금 말 다 했냐?”
“그렇다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눈싸움을 하는 듯 한동안 양측의 시선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하지만 승자는 강철준이었다.
‘……무슨 눈빛이……!’
황정태가 강철준의 살기 어린 눈빛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시선을 피해 버린 것이다.
먼저 피해서 마치 진 것 같은 상황에 황정태가 부끄러움을 회피하려는 듯 소리쳤다.
“……그래 봤자 사설경호원 주제에 어디서 청와대 경호처 소속 공무원에게 눈을 부라려? 당신 미쳤어?”
“말이 많군. 불만이 있으면 와서 얘기해. 하룻강아지마냥 왈왈대지 말고.”
“이 새끼가 진짜……!”
청와대 경호처 소속 경호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아니면 협박이라도 하려는 듯 황정태가 정장 마이를 젖히며 허리춤의 걸린 권총을 드러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실 쪼개면서 이 상황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던 네뷸라의 경호팀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구의 경호원들이 한 번에 자리에서 일어나자 순식간에 대기실이 꽉 찬 듯한 압박감과 긴장감이 흘러나왔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청와대 경호처 소속 경호원들 역시 바짝 긴장한 채 허리춤으로 손을 갖다 댔다.
양 진영 간에 당장이라도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유리해 보이는 건 당연하게도 총을 휴대하고 있는 경호처 경호원들이었다.
동료들의 비호 속에서 황정태가 기고만장하게 비웃었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체포할 거니까 알아서 해.”
하지만 그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네뷸라의 경호팀원들은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캡틴, 그냥 확 쓸어버릴까요? 10초만 주시면 그냥 다…… 악!”
살기 어린 목소리로 속삭이는 피터의 뒤통수를 강철준이 후려갈겼다.
보는 사람도 아파 보일 정도의 강스파이크에 피터가 철퍼덕 엎어졌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 왜 때려요!”
“이 멍청아. 쓸어버리긴 뭘 쓸어버려. 여기서 싸우면 다 모가지 날아가는 거 몰라?”
“아니, 고작 이 피라미들한테 우리가 당한다고요?”
“그건 아니지만, 그 이후에는 어쩔 건데? 한 나라의, 그것도 국가최고기관에서 난리를 치고 나서 국가를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냐. 그리고 우리 고용주님은 얼마나 난처해질지 생각은 안 해 봤고? 제발 생각 좀 하자.”
“……쳇.”
그제야 납득한 듯 뒤통수만 어루만지는 피터를 보며, 강철준이 한숨을 내쉬며 황정태를 바라보았다.
“진정하고 이쯤 하자. 우리도 잘못했고, 그쪽도 잘한 건 그리 없는 것 같으니.”
“무슨 소리야. 우리는 청와대 테러 혐의로 지금 당장 니들 체포해도 상관없는데?”
“……기어코 일을 키우겠다는 거냐?”
“그렇다면?”
마치 아까 강철준이 했던 말을 되돌려 주기라도 하듯 답하는 황정태.
그렇게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하던 그때였다.
벌컥 대기실 문이 열리며 일련의 무리가 들어섰다.
그들은 다양한 인종이 섞인 정장 차림의 요원들이었다.
다부진 체격에 딱 봐도 경호원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이 대기실 상황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이거 무슨 재밌는 구경거리입니까?”
“블루 하우스에서 싸움이라도 난 겁니까?”
“……미스터 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재밌다는 듯 상황을 구경하는 다른 경호원들과 달리 선두에 있던 검은 머리의 거한만이 유일하게 진지한 얼굴로 묻자, 그의 옆에 서 있던 경호처장 김상범이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미스터 조,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야! 황정태!”
“예? 처장님!”
“지금 미국 대통령 경호실에서 온 거 안 보여? 이게 무슨 소란이야!”
“그게…… 사실 네뷸라 경호팀 쪽에서 갑자기 적의를 표하기에 수상하여 체포하여 검문하려던 참이었습니다.”
“뭐? 아니 타이밍이 뭔……!”
황정태의 보고에 김상범 경호처장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지금 당장이라도 저 거수자들을 제압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미국 대통령 경호실의 미스터 조라 불린 남자와 강철준 팀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
“어?”
마치 서로 안면이 있던 것처럼 눈이 커진 두 사람.
이내 미국 대통령 경호실장 로건 조가 강철준 팀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헤이, 캡틴!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