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after coin jackpot RAW novel - Chapter (98)
98화 CIA요?
TV에서나 보던 연예인 중의 연예인인 진주희가 여기 있다니.
실물은 TV보다 훨씬 더 예쁜 느낌이었다. 오히려 화면이 그녀의 실물을 모두 못 담아낸 것처럼 보였다.
그런 비현실적인 외모의 소유자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어머, 대표님 저를 아세요?”
“진주희 씨는 자타공인 국민여동생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노래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정말요? 이거 영광이네요. 호호호.”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아! [모기>에 출연하시는 거죠?”
“네. 맞아요. 작중 딸로 나오는 문아영 역할로 캐스팅됐거든요.”
그러고 보니 회귀 전에도 진주희가 [모기>에 출연했었는데 잊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대스타님을 뵙게 되니 영광이네요. 이따가 사인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오히려 저야말로 요새 제일 유명하신 네뷸라 대표님 뵙게 되어 영광인데요. 그런데 사인이요? 대표님이 사인해 달라고 하시니 좀 신기한데요.”
“하하하, 제 친구놈들 중에 주희 씨 광팬들 있거든요. 그놈들 갖다 주게요.”
“호호호,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쾌활하게 웃는 그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회식 자리가 진행이 되었다.
정우는 진주희 말고도 그 유명한 송호강과 진성균과 같은 배우들과도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이번 모기에서 주연을 맡게 된 송호강입니다.”
“진짜 반갑습니다. 저 송호강 배우님 팬인데, 출연한 영화들 정말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제 팬이라구요? 네뷸라 대표님이 팬이라고 해 주시니, 이거 어깨가 승천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에이, 뭘요.”
“대표님 이런 좋은 영화에 투자해 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다 네뷸라 대표님께서 영화계에 진출을……?”
“하하하, 설명하자면 긴데, 이런 좋은 영화에 투자할 기회를 놓칠 순 없었죠. 그렇죠, 엄 감독님?”
“그렇죠. 우리 이 대표가 땡잡은 거죠. 하하하하!”
“뭐라구요? 하하하하! 아참, 진성균 배우님도 팬입니다.”
송호강 배우 옆에 있던 진성균이 웃었다.
“저도 뉴스 통해서 자주 뵙고 있습니다. 그런데 테슬라 출고 언제 됩니까?”
“예?”
“그 대표님이 일론 머스크랑 주행한 유튜브 영상 보고 바로 예약 걸었는데, 출고될 기미가 안 보여서요.”
“하하하하, 머스크한테 한번 전화해 볼까요?”
“일론 머스크한테요? 해 주시면 최고죠!”
“대신 그거 한 번만 보여 주실 수 있으세요?”
“어떤 거 말입니까? 혹시 봉골레 하나?”
“네네! 그거요! 이야- 목소리 진짜 대박입니다. 어떻게 목소리가 저렇게 동굴처럼 울리지.”
“하하하, 뭘요. 그럼 이제 대표님 차례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네, 미스터 머스크? 바쁜가요? 아, 다름이 아니라 머스크를 좋아하는 한국 친구분들이 있어서 소개 좀 해 주려고요. 자, 다들 여기 보세요. Hi~”
“와, 진짜 머스크야! Hello, I’m Korean actor Jin Seong Kyoon. Nice to meet you!”
……
머스크와 영상통화를 시켜 주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즐거워하는 배우들을 보며 정우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행복한 회식 자리가 저물어 갔다.
* * *
회식 1차가 끝나고, 2차로 가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주축은 술꾼들로 유명한 송호강과 진성균, 엄준욱 감독이었다.
“자자, 배 좀 채웠으니 이제 2차 갑시다! 오늘 이 대표님이 다 쏘신대요!”
“아니 형님, 제가 언제 그랬어요.”
“돈도 여기서 제일 많으면서 안 쏘려고?”
“그건 아니지만요. 하하하하, 알겠어요. 여러분 부담 갖지 마시고 2차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세요!”
“와-!!!!!!!”
신나서 왁자지껄해진 스텝들.
그때 정우의 근처로 누군가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진주희의 매니저였던 모양. 그가 진주희에게 가 귀엣말로 뭐라뭐라 하자 그녀가 아쉬운 얼굴로 일어섰다.
“감독님, 대표님. 저는 이만 먼저 가 볼게요. 내일 스케줄이 있어서.”
“아아, 그런 거라면 가 봐야지. 알겠어요. 근데 그 전에 회식 사진은 한번 남깁시다. 자자, 다들 여기 모여 봐요.”
엄준욱 감독의 리드 하에 모든 스탭이 식당 한쪽에 모여 단체 사진을 촬영했다.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한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렇게 회식이 마무리되었다.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회식 되시고 다음에 봬요! 그리고, 대표님. 오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하, 뭘요. 주희 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대표님 다음에 보면 우리 아는 척해요?”
찡긋 윙크를 날리며 그녀가 떠나갔다.
그런 진주희의 뒤를 그녀의 매니저가 뒤따랐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 정우를 슬쩍 쳐다보는 게 아닌가?
뭔가 할 말이 있다기보다는 살짝 노려보는 듯한 눈빛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 매니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 빠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이내 식당을 빠져나가 버렸다.
“……뭐지?”
순간 착각인가 싶던 그때, 옆에 있던 강철준 팀장이 물었다.
“대표님, 저 사람 아는 사람입니까?”
“아뇨.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근데 강 팀장님도 방금 봤어요?”
“예. 명백한 적의던데요.”
“그쵸? 이상하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는 까닭을 정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업을 하면서 원한이라도 진 걸까.
아니면 코인을 하면서 원한이 생긴 걸까.
물론 그렇다고 하기엔 정우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억측일 가능성이 컸다.
“……무언가 있는데…….”
무엇을 놓치고 있지?
그때 이미 강철준 팀장은 경호팀에게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릭슨, 저 진주희라고 했나? 저 연예인 매니저 뒤 한번 캐 봐.”
“그건 제 전문이죠.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이미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고 움직이는 경호팀을 보며, 문득 진주희와 관련되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스토커 때문에 난리가 났던 사건을 말이다.
……설마?
* * *
다음날.
[모기> 촬영진 중 한 명이 SNS에 올린 회식 사진은 금세 기사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영화 촬영이 화제가 되었다기보다는 바로 하나의 스캔들 때문이었다.
[이정우 대표와 진주희는 아는 사이?> [이정우 대표 ♥ 진주희, 두 사람 사이의 핑크빛 기류> [네뷸라 대표가 ‘모기’에 투자한 이유는 연인 때문?> [연예인과 기업인의 만남.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기자들은 단체 사진에서 옆에 서 있던 두 사람의 상반신만 오려 내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 냈던 것.
그리고 그 기사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한 남자의 귀에도 들어갔다.
바로, 진성그룹의 진용재 부회장이었다.
태블릿으로 스캔들 기사를 확인하는 그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하하하, 잘 어울리네. 주희 너,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 만나고 다니는구나? 아주 예뻐 죽겠어, 우리 딸~”
“아니, 아빠! 그냥 회식 자리에서 만난 것뿐이라니까요. 힝.”
자신의 아버지 진용재 부회장 앞에서 진주희가 투덜거렸다.
진 부회장이 껄껄 웃었다.
“그래서 싫어? 네뷸라 이 대표 별로든?”
“그건 아닌데…….”
“나쁘지 않지? 사람이 참 괜찮더라고.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대한민국에 이정우 대표만 한 남자가 어딨어. 안 그래?”
“뭐 그렇긴 한데…… 근데 아빠 자꾸 왜 이정우 대표 칭찬만 해요? 뭐 있어요?”
“어. 너 이정우 대표랑 선 한번 보지 않을래?”
“……선이요?”
진주희의 목소리가 떨떠름하게 흘러나왔다.
“갑자기 선은 무슨 선이에요. 제 나이가 몇인데.”
“24이면 결혼할 때 됐지.”
“아! 빠!”
“아무튼, 선보는 거로 알고 약속 잡을게. 준비하고 있어.”
“아니, 내가 언제 선본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싫어? 싫으면 취소하고.”
“흠…….”
잠시 고민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진용재 부회장은 딸의 마음을 짐작한 듯 웃었다.
그녀도 이정우 대표가 나쁘지 않았음을 확신한 것이다.
“뭐, 말이 선이지, 그냥 편하게 나가서 차나 마시고 얘기나 나누면서 놀다 와. 부담 전혀 가질 필요 없다니까. 이정우 대표도 딱 말 섞어 보니까 선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더라고.”
“음…… 그런 거라면 오케이. 한번 보죠, 뭐.”
“잘 생각했다. 그럼 내가 이 대표한테 연락해 보고 스케줄 알려줄 테니까 일정 비워 놔.”
“이정우 대표님이 제 스케줄에 맞춰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나름 스탄데.”
“니가 바쁘겠니, 세계를 움직이는 이 대표가 바쁘겠니.”
“저도 월드스타예요, 아빠.”
“그건 그런데, 이번엔 니가 양보 좀 해라.”
“……피. 알겠어요.”
마지못해 수긍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진주희. 하지만 그녀의 입가엔 미미하게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런 딸을 보며 이정우 대표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눈치챈 진용재 부회장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참, 우리 딸 이참에 아예 들어오기로 한 거야?”
“네. 당분간 여기서 지낼게요.”
“잘 생각했어. 스토커라니…… 이놈 자식 잡히기만 하면 그냥……!”
진용재 부회장이 어금니를 까득 갈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딸 진주희에 집에 스토커로 추정되는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진주희가 겁먹은 얼굴로 물었다.
“근데 경찰에서는 아직도 연락 없어요?”
“없더라고. 몰카도 나오고 도청장치도 나왔는데, 추적을 못 한다더라. CCTV에 얼굴도 제대로 안 잡혔고.”
“무서워 죽겠어요, 진짜….”
“아빠가 보안팀이랑 경호실 쪽에 얘기해 놔서 지금 제대로 알아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마 조만간 스토커 녀석이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대신 그때까지 경호원 몇 명 붙여 줄 테니까 당분간 김 매니저랑 같이 움직여.”
“이미 소속사에서 잔뜩 붙여 줘서 많은데…….”
“어허! 너 야외 활동도 아예 못하게 한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같이 다니면 되잖아요.”
입술을 쭉 내밀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진주희.
그런 귀여운 딸의 모습을 보며 진용재 부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주희야. 걱정하지 말고 이 아빠만 믿어라.’
딸을 괴롭히는 스토커 놈은 혼내 주고, 그 대신 최고의 신랑감을 소개해 줄 생각이었다.
바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자신을 뛰어넘을지도 모를 잠재력을 지닌 천재 사업가 이정우 대표를 말이다.
이혼한 게 흠이긴 하지만, 요즘 시대에 1번의 이혼은 흠도 아니다.
하물며 악처와의 이혼이라면야.
이정우 대표라면 자신의 딸의 신랑감으로 손색이 없을 터.
무엇보다 딸과 이정우 대표가 이어졌을 때 진성그룹은 네뷸라라는 강력한 날개를 얻게 될 것이다.
솔리드스타라는 지치지 않는 날개를 말이다.
하지만 진용재 부회장도 몰랐다.
위험이 딸의 바로 근처에서 도사리고 있음을.
* * *
한편 정우는 강철준 팀장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깨끗한 인물은 아니라는 거네요?”
“예. 일반인이 초소형 카메라와 도청 장치를 구매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뒤가 구린 인물입니다.”
“음…….”
“원하시면 더 파헤쳐 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표님에게 원한을 산 증거는 잡지 못했습니다.”
강철준 팀장은 아마도 정우를 노려봤던 매니저가 정우에게 잠재적 위험의 대상이 될 거라고 판단, 이 자료들을 준비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잘못 짚었다.
“이 사람이 노리는 건 제가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진주희 씨죠. 제가 아니라.”
“……아!”
사실 과거에 진주희의 스토커 사건은 크게 회자되었었다.
왜냐하면 스토커 범인이 다름 아닌 진주희의 매니저였기 때문이다.
당시 어찌나 이슈가 크게 되었던지 정우 역시 스쳐 가듯 연예 기사를 보았었고, 그 기억을 떠올려 낸 것이다.
‘다행인 점은 별일이 생기진 않기는 하지.’
스토커는 결국 잡히게 되면서 미래의 진주희에게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어쨌든 범인이 진주희의 매니저라는 건 사실.
그리고 맥을 짚는 정우의 한마디에 눈치 빠른 강철준 팀장이 상황을 모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가정하니 이제야 아귀가 맞네요. 이 자가 대표님을 경계했던 건 연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는 거죠?”
“하하, 그런가 봐요. 전 그런 생각 1도 없었는데.”
“근데 정말 아무 사이 아닙니까? 회식 때 보니 즐거워 보이시던데요.”
“저어어언혀요.”
“흠, 그렇다니 알겠습니다. 그럼 이 자에 대해서는 블랙 리스트에서 제외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진주희 씨 쪽에도 연락 주시구요.”
“제가요? 저는 진주희 씨 연락처 없습니다만.”
“아, 그럼 제가 해야겠네요. 알겠어요. 그나저나 강 팀장님, 이런 자료는 어디서 구한 거예요?”
정우가 강철준 팀장이 보내온 메일을 보며 물었다.
김병춘이라는 이름의 매니저의 신상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는 신상명세서였는데, 최근에 어딜 갔고, 취미는 뭐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기록되어 있었다.
용산에서 도청 장치를 구매한 것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이 정보들 때문이었던 것.
너무나도 자세한 정보였기에 정우가 궁금해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강철준 팀장은 씨익 웃을 뿐이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저는 PMC 소속으로 일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고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죠. 대표님이 상상하실 수 없는 그런 일들을요. 그리고 그 경험들과 인맥들 속에 CIA도 있습니다.”
“CIA요? 미국중앙정보국 CIA?”
“예. 거기 특작부대에 용역으로 일해 보기도 하고, 자문도 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쪽 통하면 이런 정보 얻어 내는 건 일도 아닙니다.”
“와…… 근데 한국에서 CIA라니 생각도 못 했네요.”
“미국중앙정보국이 미국에만 있을 거로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미국의 손길은 전 세계 어디에든 뻗어 있어요. 괜히 세계 최강대국이 아닙니다.”
“후…… 저도 조심해야겠네요.”
“그러셔야 할 겁니다. 대표님은 이미 요주의 인물 1순위에 올라 있거든요. 아, 안 좋은 쪽이 아니라 보호 대상의 의미입니다.”
“하, 하하…… 그래요?”
이거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한다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하면서도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 정보를 빨리 진주희 측에 전달해야겠네요. 어우…… 이런 스토커가 매니저로 있었다니, 소름이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예. 강 팀장님, 수고하셨어요. 아차, 그리고 이거.”
정우가 카드를 내밀었다.
“어제 회식 때 술 한잔 안 드시고 경호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이따 팀원들 따로 데리고 가서 회식이라도 하세요.”
“아닙니다. 금주는 경호의 기본이니까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미안해서 그래요. 그냥 받아요.”
“어차피 자리를 한 번에 비울 수가 없어서 다 같이 회식은 어렵습니다. 정 그러시면 인센티브라도 챙겨 주시죠.”
“인센티브는 당연한 거고, 이 법카는 플러스 알파로 경호팀한테 드리는 겁니다. 편하게 사용하세요. 한도 넉넉하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자리 비우기 힘드시면 맛있는 거라도 배달시켜서 드세요. 주말인데 맛있는 거 먹어 줘야죠. 인당 20만 원짜리 스시 같은 거 어떠세요?”
“팀원들이 좋아하겠네요.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기분 좋은 얼굴로 나서는 강철준 팀장.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 주는 사람들이었기에 저들한테 쓰는 비용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경호팀의 충성심과 호감을 사기 위해서라면 앞으로 더욱 많은 돈으로 구애하고 길들일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진주희 씨 전화번호가 뭐였더라…….”
정우는 방금 들은 정보를 진주희에게 전달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뒤졌다.
아니 뒤지려던 그때였다.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진용재 부회장님>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진성그룹 부회장이 무슨 일로 전화를?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부회장님. 이정우입니다.”
-이 대표! 이거 주말이라 우리 이 대표 쉬어야 하는데 연락해서 미안해요. 하하하.
“에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다 전화를 주시고, 무슨 용건 있으신가요?”
-뭐야, 이 대표 설마 우리 약속한 거 잊어버린 건 아니죠?
“약속이요? 무슨 약속 말씀하시는 건지……?”
-정말 잊었네! 내 저번에 내 딸 소개해 주기로 했잖아요.
“아, 그거요?”
그러고 보니 청와대 그룹총수 회담 당시 진용재 부회장이 자신의 딸 진주희를 소개해 주기로 했더랬다.
“……그거 빈말 아니었나요?”
-하하하, 내가 우리 이정우 대표한테 빈말할 사람으로 보여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요. 솔직히 선은 부담이 되어서…….”
-어차피 어제 우리 주희 봤다면서요? 별로였어요?
“그것도 아니긴 한데…….”
-그거면 충분하네. 나쁘지만 않으면 됐지. 조만간 시간 한번 내요. 우리 딸이랑 커피나 한잔하고 수다 좀 떨고. 젊은 친구끼리 친해지는 거지. 혹시 알아요? 나중에 이 대표가 연예계 사업할 때 우리 주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선이 아니다라는 말씀이시죠?”
-맞아요. 그냥 편하게 봐요, 편하게.
“음…….”
정우는 잠시 고민했다. 선이 아니라니 나쁘지 않을지도?
게다가 생각해 보니, 어차피 매니저 건으로 진주희에게 말할 것도 있었다.
결국, 정우의 선택은 예스였다.
“알겠어요. 한번 보죠 뭐.”
-하하하,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럼 시간 언제 괜찮아요?
“오늘 저녁 어떤가요? 마침 주말인데.”
-오늘 저녁이라…… 본격적이라 좋네요. 그래요. 내가 주희한테 전화해 보고 연락 줄게요.
“네,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통화를 마치고.
정우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아이고 내 팔자야.”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는 신세란.
하지만 예전에는 그저 월급 받으면서 수동적으로 일하는 개미였다면, 지금은 주도적으로 한다는 게 다른 점이랄까.
자신의 손으로 탄생하는 사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쉴 수가 없었다.
정우는 잠시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한 이후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돌렸다.
네뷸라의 미래가, 그리고 자신의 꿈이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 * *
열심히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제야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진용재 부회장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었다.
-5시에 신성호텔 라운지에서 봅시다.
현재 시각은 4시 40분.
얼마나 집중했던 건지 문자가 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가 약속에 늦게 생겼다.
놀란 나머지 정우가 단말마 비명을 질렀다.
“으헉!”
“무슨 일이십니까!”
대표실 문이 벌컥 열리며 강철준 팀장이 들어섰다.
그는 정우의 비명을 듣고 무슨 일이라도 발생한 줄 알았던 모양이다.
“대표님,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아뇨아뇨, 그냥 약속에 늦어서요.”
“약속이라 하시면……?”
“5시까지 신성호텔 가야 하는데, 깜빡해 버렸네요.”
“이런…… 바로 모시겠습니다.”
정우는 부랴부랴 경호팀의 인솔하에 신성호텔로 향했다.
하지만 경호팀의 대단한 운전 실력으로도 주말의 꽉 막힌 서울의 도심을 헤쳐 나간다는 건 어려웠다.
결국,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
30분이나 늦어 버렸다.
“……이거 난리 났는데.”
로비를 통과한 정우가 서둘러 라운지로 향했다.
거기엔 기다리고 있던 듯 진주희가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정우가 미안한 얼굴로 그녀 앞에 섰다.
“미안해요, 주희 씨. 제가 시간을 깜빡해서 늦었네요.”
“어, 대표님 오셨네요. 아니에요. 갑자기 약속이 잡혔는데 늦을 수도 있죠.”
“오래 기다렸죠? 얼마나 기다린 거예요?”
“얼마 안 됐어요. 호호호, 그보다는 제가 미안해요. 아빠가 워낙 한번 꽂히시면 추진력이 강하셔서…….”
“아아, 그런 거라면 괜찮습니다. 덕분에 주희 씨 같은 미인이랑 얘기하게 됐는데 마다할 수 있나요.”
“어? 그 멘트 좀 오글거렸는데요?”
“하하하, 미안합니다. 아재라서. 그나저나 차 뭐 드실래요? 커피? 주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저는 주스 마실게요. 으, 커피는 아무리 먹어도 쓴맛이 적응이 안 되어서. 한약 먹는 느낌이랄까요.”
“대표님, 아재라기보다는 초딩입맛인데요?”
“뭐라구요? 하하하하.”
이후 간단히 커피 한잔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었다.
진주희와의 대화는 의외로 편했다.
연예인과 사업가. 관심사가 다르기에 말이 그리 잘 통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비슷한 공통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여행이었다.
“하하하, 전 미국 음식 잘 안 맞더라구요. 대체로 워낙 짜서. 그래도 한국인 추천 맛집은 먹을 만하긴 한데, 현지인 식당은 어휴…… 소금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미슐랭 레스토랑도 맛있긴 했어요.”
“호호호, 그건 그렇죠. 근데 미국 현지 식당 전체가 다 짤 거라고 오해하면 안 돼요!”
“그래요?”
“네. 언제 저랑 뉴욕에 한번 가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맛집 있는데 소개시켜 드릴게요.”
“거긴 안 짜나요?”
“안 짜고 진짜 맛있어요. 최고최고!”
엄지를 척 세우는 진주희의 모습이 귀엽다.
그나저나 슬슬 얘기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정우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주희 씨, 혹시 요새 이상한 일 없어요?”
“이상한 일이요?”
“예. 뭐 물건이 없어진다든지…… 누가 지켜보고 있다든지 하는 그런 느낌……?”
“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이미 시작되었나.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를 보며 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왠지 스토커에 시달리고 계실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맞아요. 안 그래도 집에 몰카가 나와서 한바탕 난리 났거든요.”
“몰카요?”
“예. 경찰에서 수사 중이라고는 하는데 소식이 없네요. 지금은 그래서 집 나와서 부모님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어요.”
“잘하셨습니다.”
“근데 대표님 그건 어떻게 안 거예요?”
“그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다가 그냥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주희 씨도 저희 강철준 팀장님 아시죠?”
“아, 어제 회식 때 본 그분이요? 덩치 엄청 크신.”
“네, 맞아요. 지금 조오오기 옆에 앉아 계신 분이요.”
“오? 언제 와 있었대요? 온 줄도 몰랐네요. 안녕하세요.”
진주희가 저만치 옆 테이블에 앉아서 경계 중인 강철준 팀장을 보며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강 팀장은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하하하, 제 경호팀장님이십니다. 아무튼, 저분이 어제 회식 이후에 누군가 의심쩍다면서 조사를 좀 했거든요?”
“조사요?”
“예. 뭐…… 떳떳한 작업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어쨌든 그 조사 과정에서 주희 씨 스토커가 누군지 알아낸 것 같아요.”
“스토커를요? 누군데요?”
“잠시 이리로 좀…….”
속삭이려는 뉘앙스를 취하자 진주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숨 막히게 예쁜 얼굴이 코앞에 다가오자 정우는 살짝 당황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의 아름다움.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스토커에 대해 전했다.
“……김병춘 매니저를 조심하세요.”
“……뭐라구요?”
“쉿! 그러다 걸려요.”
“아, 네네. 그런데 김 매니저님이 스토커를……?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요.”
“관련 자료는 제가 메일로 따로 보내 드릴 테니까 판단은 주희 씨가 하세요. 아무튼, 저는 경고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자료 보내 주시면 확인해 볼게요.”
스토커 얘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대화는 약간 침울하고 어색해졌다.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럼, 여기까지 하고 일어나죠?”
“벌써요? 저녁은 안 사 주세요?”
“저녁이요?”
“지금 6시잖아요. 저녁 먹고 헤어지면 딱일 것 같은데. 그리고 예쁘게 하고 나왔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집에 돌아가라구요?”
“그건 아닌데…… 좋습니다. 저녁 뭐 좋아하세요?”
“전 회요!”
“오? 저도 회 좋아하는데.”
“정말요? 무슨 회 좋아하세요?”
“딱히 가리는 건 없어요. 생선 각각의 맛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도 전 약간 기름진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참치나 대방어?”
“오, 어떻게 아셨어요?”
“호호, 저도 그런 쪽 좋아해요. 대표님, 말 나온 김에 참치 먹으러 가요.”
“좋습니다. 가시죠. 제가 아는 곳 있는데, 좋아하실 겁니다.”
“기대할게요.”
즉흥적인 저녁 약속을 잡고 호텔을 나서는 두 사람.
강철준 경호팀장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그때였다.
“어?”
문득 익숙한 단발머리의 뒤통수가 황급히 몸을 돌리더니 도도도 걸어가는 걸 발견했다.
저 사람은……?
그는 저도 모르게 재빨리 걸어가 그 사람을 앞질러 섰다.
그리곤 단발머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새하얀 피부의 그녀는 다름 아닌 지서현이었다.
“……서현 씨. 여긴 어쩐 일이야?”
“……대표님.”
정우를 보는 지서현의 눈동자가 어색하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