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0)
첩자의 마교생활-10화(10/350)
10.
– 마교 월하촌 칠소궁.
“계십니까.”
끼익. 가볍게 밀자 칠소궁의 문이 열렸다. 장이서다. 마침내 이틀이 지나 그가 보좌로서 첫 임명을 받고 이곳을 다시 찾았다.
흑색으로 나름 말끔히 차려입은 복식을 보니 지극히 평범했던 얼굴도 제법 준수해 보인다.
“폐가가 따로 없구나.”
안으로 들어온 장이서가 주변을 둘러보곤 얕은 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사자로 분장하고 찾아왔을 때도 느꼈지만 궁의 관리가 엉망이다.
대문은 문빗장이 부서져 잠기지도 않았고, 곳곳에 흉흉하게 솟은 잡초들은 허리춤에 다다랐다.
“계십니까.”
장이서가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인 채 걸음을 디뎠다. 하나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다.
“술래잡기하자는 건 아닐 테고.”
어느새 안채에 다다라 활짝 열린 장지문 너머로 실내가 고스란히 내비친다.
“이게 무슨…….”
장이서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무너진 장롱, 깨진 화분에 흙으로 가득해진 바닥. 유리 조각부터 온갖 집기가 널브러진 광경.
이틀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모습이다.
“궁에서 나간 것인가?”
이 상태로 이틀을 살았을 리는 없고.
사박. 장이서가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러자 안쪽에서 쌕쌕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자고 있는 것인가? 벌써 해가 중천인 정오인데 아직도 잠이라니. 그것도 집 안 꼴을 이대로 둔 채 잠이 오나.
사박, 사박. 장이서가 더 안쪽으로 들어섰다.
이곳이다.
이 문 안에 칠공자 마오가 있다.
“계십니까.”
장이서가 다시금 조용히 물었다. 하나 묵묵부답이다. 궁 전체가 고요해지는 기분.
“칠공자님.”
차분해진 음색으로 그를 불렀다. 더는 쌕쌕대는 숨소리가 없다. 잠에서 깨어난 게 분명했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자면.
‘들어와.’
마오가 안쪽에 숨어 입꼬리를 올린 채 일권을 내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영 인사였다. 이곳 칠소궁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기 위한 작은 선물.
그리고 툭. 장이서가 문지방을 건드리는 그 순간.
콰직! 창호지를 뚫고서 새하얀 주먹이 쏘아졌다. 일격에 코피를 뿜고 나자빠지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절로 터졌다.
“하하하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닿는 게 있어야 하는데, 허공뿐이다. 척! 오히려 붙잡힌 건 제 팔목이었다.
“뭐야?”
뭐긴.
“악!”
팔이 확 잡아당겨지며, 몸이 문을 와장창 부수고 앞으로 끌려간다. 동시에 복부에 빠악!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그 정체는…… 발?
“컥!”
마오가 털썩 무릎을 꿇는다. 벼락에 맞은 것처럼 말로 표현 못 할 고통에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이 끊어졌다.
“칠공자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툭. 완전히 혼절했다.
“반가워, 형이야.”
그의 보좌 장이서.
드디어 칠소궁에 입성했다.
*
“헉!”
마오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머리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뒤늦게 이어진 복부의 통증에 그대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 개새…….”
욕지기와 함께 주변을 보자 잘 치워진 안방의 포단 위다. 그놈이다. 그놈이 저를 걷어차고 여기다 눕혀놓은 거다.
“이 새끼 어딨어!”
마오가 소리를 꽥 지르곤 와장창! 물건을 집어 던지며 밖으로 나섰다. 죽인다. 감히 들어오자마자 주인을 걷어차? 이 천박한 조장 새끼.
“나와. 나와, 이 새끼야!”
방을 나와 복도 좌우를 살폈다. 언제 치워 놓은 것인지 바닥이 깔끔하다. 하나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
“거기야?”
모퉁이 너머에서 달그락거리며 소음이 들려오자 그곳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이내 죽일 기세로 확 돌아서자 사람은 없고, 기다란 밧줄이 내려져 있다.
“뭐야, 이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무 천장에 뚫린 구멍.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밧줄은 저 위에서 내려온 듯했다. 수리라도 하러 올라간 것인가.
“내려와. 당장 내려와, 이 새끼야!”
마오가 성질을 못 이기고, 빠악 줄을 잡아당기며 외쳤다.
그러자.
“어억!”
퍽! 천장에서 커다란 화분이 떨어져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휘청이며 털썩 쓰러졌다.
“칠공자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다시금 또 혼절했다.
“거, 조심 좀 하지.”
그리고 이를 보며 씨익 웃는 장이서가 있었다.
*
“헉!”
다시 벌떡 일어선 마오. 머리를 만져보자 붕대가 감겨 있고, 고통이 뼈를 쑤신다.
“아아아아악!”
분노 가득한 비명이 칠소궁에 울렸다.
하나 이번엔 전처럼 벌떡 일어나 날뛰지 않았다.
“이 자식 뭐야.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했다. 처음엔 우연히 몰라보고 그랬다고 치자. 근데 이번엔 왜 천장에 그 무거운 화분을 숨겨 놓은 것인가. 그것도 보란 듯이 밧줄을 내려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자객이야?”
아니다. 그러기엔 또다시 치워 놓은 방에 자신을 눕혀놨다. 이건 생전 처음 보는 유형이다.
“뭐야, 이게.”
무심코 옆을 바라보자 곱게 접힌 서신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없던 것이다. 신경질적으로 주워 들곤 활짝 펼쳐 읽었다.
【곤하신 듯해 오늘은 이만 물러가고, 이틀 뒤 다시 정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시죠. – 보좌 장이서】
“이 미친 자식-! 그렇게 하시죠?”
파르르 몸이 떨렸다. 저를 이 꼴로 만들어두고 뭐가 어째?
“이 개같은 조장 새끼…….”
마오가 살기를 번뜩이며 와락 서신을 구긴 채 그대로 입에 넣었다. 그러곤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장이수. 기대해. 여기로 온 거 내가 제대로 후회하게 해줄 테니.”
오랜만에 칠소궁에 진한 열기가 넘쳐흐르는 날이었다.
과연 누가 기대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
“거기 말고 더 아래. 응. 그래, 거기.”
한편 그 시각 장이서는 절세 미녀인 취홍란의 무릎을 베고 팔자 좋게 누워 있었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귀 파주는 모습을 보니 예삿일인 듯했다.
“그래서 그러고 그냥 오셨단 말입니까?”
오늘의 전말을 들은 취홍란은 자식 걱정하는 어미의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망나니라도 칠공자이거늘. 그런 그를 때려 기절시키다니. 그것도 두 번이나. 죄명으로 치면 역모고 참형이다.
“인사만 한 거야. 어차피 말로 해서 될 놈이 아니거든.”
물론 좀 아팠겠지만.
장이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코웃음을 치며 일어나 손바닥으로 귀를 탁탁 털었다. 그러곤 화제를 바꿔 물었다.
“조사한 건?”
“예.”
짝, 짝. 취홍란이 손벽을 두 번 치자 드르륵 장지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온 여인들은 관계도가 그려진 기다란 족자를 벽에 펼쳐 걸었다.
그러자 취홍란이 보고를 시작했다.
“이름은 마오. 나이는 올해로 열아홉에 올랐으며, 마교 3대 가문 중에서도 제일 가문으로 꼽히는 마가 출신입니다.”
마오. 발가벗겨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씨익. 장이서의 입가에 웃음이 서렸다.
*
마교에는 대대로 장로들을 비롯해 수많은 이를 요직에 앉혀 온 명문가가 있다.
일장로의 자리를 무려 4대에 걸쳐 연임해 온 과묵한 이무기. 일장로 마일성의 마가(麻家).
천산의 분란을 중재해 온 지혜로운 마선(魔仙). 이장로 천오산의 천가(千家).
우직한 충성심과 용맹함으로는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진 잔혹한 군장. 삼장로 맹철용의 맹가(孟家).
이들 가문을 일컬어 당대 마교의 3대 명가라고 칭했다.
천마전을 제하면 그들의 힘이 안 닿는 데가 없었고, 그 권력의 입김은 새벽녘에 퍼지는 안개처럼 자욱했다.
그리고 칠공자 마오는 바로 이런 명가의 핏줄이었다.
그것도 최고로 손꼽히는 마가의 핏줄.
가주인 일장로 마일성의 아들 말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교주의 눈에 발탁돼 양자로 입적까지 하였으니……. 남들이 보기엔 꽃가루가 아름답게 흐드러진 인생이었죠.”
취홍란의 시적 표현에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말. 겉만 보면 분명히 그랬다.
가문 좋지, 자질 좋지, 생긴 것도 반반하지.
그야말로 깔 게 없는 인생.
“하지만 속은 썩은 독초의 가루였습니다. 본디 마가에서 교주의 양자가 되길 고대했던 자는 그의 형이자 마일성의 장자인 마이신. 칠공자는 서자 출신으로 우연히 바닥을 쓸다 교주의 눈에 든 것이었죠.”
마가는 당황했다.
적자도 아니고, 무공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바닥 쓸던 서자가 한방에 고귀한 신분으로 수직 상승한 것이니.
그야말로 주객전도.
이건 사촌이 사도 배 아픈 땅을 노비 놈이 훔쳐 간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러니 어찌 좋게 보이겠는가.
덕분에 집안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냉랭해졌다.
“대외적으론 마가에서 집안의 경사라며 급히 포장했지만, 이미 알 사람은 다 알던 기사(奇事)지. 교주 진우광이 마가를 견제하기 위함이란 얘기도 있었고.”
장이서가 부언을 보태자 취홍란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지만 아는 사람이 그리 흔한 건 아니었다.
마가에서 입막음을 세게 한 터라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
‘마교에 주인님이 모르는 게 있긴 한 걸까.’
오늘도 어김없이 드는 의문이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설명을 이었다.
“예, 그래서 가문에서도 버려진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친인 마일성이 천가의 식솔인 대공자 천무기를 밀어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죠.”
그래, 맞다.
생각해 보면 누가 감히 칠공자를 뒤에서 망나니라 수군거릴 수 있겠는가. 그것도 마교에서. 능지처참 안 당하면 다행이지.
한데도 그런 소문이 계속 돈다는 건, 대신해서 나서줄 아군이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더 퍼트릴 적군이 있으면 모를까.
‘한데 그런 녀석을 소교주로 만들라니. 혹시…… 암각주가 노망난 거 아니야?’
설마. 장이서는 오싹함에 몸을 파르르 떨고는 고개를 휘젓고 말했다.
“어쨌든 마일성 그 양반도 참 독해. 아무리 그래도 제 핏줄인데 말이야. 곳간도 텅 비었더라.”
활동지를 파악하는 건 첩자의 기본. 마오를 기절시킨 건 버릇을 고쳐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칠소궁을 탐색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본 칠소궁은 그야말로 휑했다. 아마 모르고 봤으면 빈집인 줄 알았을 거다.
“한데, 주인님…….”
“응?”
“꼭 그의 보좌가 되셔야 하는 겁니까? 칠공자는 평소 왈패들과 어울릴 만큼 성품도 좋지 않지만, 그저 용무늬만 남은 텅 빈 수레와 같습니다. 무얼 하시려는 진 몰라도 걱정이 앞섭니다.”
취홍란이 용기를 내 제 의견을 뱉었다. 그래 놓고선 너무 무례했다고 생각하는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게 그녀의 성정이다.
장이서는 피식 웃고는 오므라드는 그녀의 손등을 툭 치고는 담담히 말했다.
“네 마음은 아는데 이번엔 그래야겠다. 이해해 주라.”
안 그러면 심장이 터지거든. 사인은 고독사(蠱毒死).
“예…… 주인님…….”
감격에 겨워하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곤 장이서가 먼 바깥을 살폈다.
어쨌든 임무를 받았으니 그를 소교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그냥 소교주가 아니라 최소한 인간다운 소교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마교에 숨어 사는 정도인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일 테니.
그리고 어쩌면 칠공자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인정받지 못한 삶일수록 가시가 많아지고, 미련이 쌓이듯.
누군가가 저에게 다가와 다정히 손을 내밀어, 어디로 가야 존중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안내해 주기를.
장이서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좋아. 그럼 그 골칫덩이가 뭘 하고 다니는지. 한 번 볼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보좌 장이서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