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03)
첩자의 마교생활-103화(103/350)
103.
#조금만 더 견뎌라, 맹휘
마오를 바라보는 장이서의 눈이 여려진다. 이에 소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만큼 널 신뢰한다는 거겠지? 천하의 망나니 칠공자가 바로 장 보좌 자네를 말이야. 난 그게 궁금하더라고. 도대체 둘이 무슨 사이인지. 아니, 칠공자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말이야. 내가 궁금한 건 못 참거든. 하하하!”
역시. 얘도 정상은 아니다.
“자, 그럼 나도 이만 실례. 안 자면 피부 상해서.”
소오는 제 눈썹에 검결지를 대었다 떼어내곤 옆으로 몸을 휙 돌려 누웠다.
홀로 남은 장이서는 헛웃음을 뱉었다.
그리고 잠이 든 마오를 살폈다.
태평하게 잘도 잔다.
‘이젠 제법 어른이 됐구나.’
예전의 철없던 모습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젓한 모습.
절로 입꼬리가 올라선다.
그러다 이를 자각하곤 황급히 다시 내렸다.
첩자가 정을 주는 건 임무를 망치는 가장 위험한 일.
‘이번엔 풀어야 할 일들이 많다. 묘채경도, 광의도, 전장의 용 구유도. 하지만 우선은 너다.’
장이서는 복잡한 생각은 미뤄두고 끝없는 황야를 보며 오직 하나만을 떠올렸다.
‘맹휘. 조금만 더 견뎌라.’
오직 그의 무사를 말이다.
* * *
– 천산남로 사해 구룡성(九龍城).
북쪽의 천산과 남쪽의 곤륜산맥 사이에 사막이 팔 할을 차지하는 타림 분지.
그 안에는 사해(死海)라 불리는 구역이 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
잘못 발 디디면 거센 모래폭풍에 휘말려 질식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머나먼 과거엔 커다란 마을이 자리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야말로 모래에 덮인 폐가만이 남겨진 죽음의 땅이었다.
단 하나.
철옹성처럼 겉면에 나무와 철판을 덧대어 이제는 기괴한 성탑이 되어버린 구룡성(九龍城)을 제한다면 말이다.
*
“끄…….”
미약한 신음과 함께 소년의 눈꺼풀이 떠진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공간. 너무 어두워 눈이 떠졌다는 사실도 잠시 망각했다.
“여긴…… 큭!”
돌아오는 감각에 몸을 일으키려 하자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두통이 밀려든다.
철컹!
심지어 두 발엔 쇠사슬이 벽에 붙은 족쇄까지 채워져 있다.
“미친…….”
마지막 기억을 돌이켰다.
불문객잔에 갔었고, 철마적으로 의심이 가는 자들을 따라나섰다. 어느 골목에서 별안간 기습당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그렇다.
그의 이름은 맹휘.
장이서가 무사를 바라던 바로 그 녀석이다.
“멍청하게 당해버렸네.”
막연한 절망감보다 쪽팔린 수치심이 먼저 스몄다.
어두워서 다행이다.
잔뜩 붉어진 제 얼굴이 안 보일 테니.
“미치겠네. 마오나 할 법한 짓을 내가…….”
겁이 많긴 해도 그래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었는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당해버렸다.
“설마 뒤에서 독침을 꽂을 줄이야.”
한낱 마적 나부랭이인 줄 알았는데. 더 치밀한 놈들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골목으로 간 것도 일부러 유인한 거다.
“너무 얕봤어. 근데 분명 비룡당 자식들이 날 봤을 텐데…….”
그들은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맹휘는 분명히 봤다.
기척을 숨기고 지붕 위에 숨어 있던 등에 황금색 비(飛)자가 적힌 최정예 무사들을.
솔직히 그들에게 철마적을 뺏길까 봐, 막무가내로 따라간 탓도 있었다.
“설마 그들도 당한 건가……. 그럼 더 최악인데.”
모르겠다. 일단은 당장의 상황부터 판단하는 게 우선.
“후. 겁먹지 말고 집중.”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우웅!
심법을 운용하자 공명음과 함께 몸 안에 기운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우선 단전은 멀쩡했다. 내공도 그대로. 마지막 희망은 남아 있는 셈이다.
“좋아.”
다시 눈을 뜬 맹휘가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이번엔 기감을 끌어올렸다.
꿉꿉한 냄새. 멀리까지 퍼지는 숨소리. 그리고 미약한 신……음?
“크으…….”
정신이 번쩍 든 맹휘가 벌떡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낯선 이의 신음이 들려왔기 때문.
“누, 누구야!”
귀신인가? 그럴 리가.
“신입……인가……? 쿨럭…….”
이번엔 정확히 들었다. 안쪽 구석에서 탁한 음색이 들렸다. 자신 외에도 이 안에 사람이 있다.
눈매를 좁혔다. 컴컴해 잘 보이지 않는다. 하나 내공을 운기하자 안개가 걷히듯 실내의 전경이 서서히 눈에 담겼다.
“당신은…….”
반대 측 벽에 대(大)자로 매달린 것처럼 팔다리에 쇠고랑이 채워진 노인.
얼마나 굶은 것인지, 헐거운 옷에 뼈밖에 안 보인다.
게다가.
‘누, 눈이…….’
고개를 든 그의 눈동자가 뿌연 백색이었다.
“이번엔 꽤 어린 녀석이 왔구나. 클클클…….”
“당신…… 여기 계속 갇혀 있었던 거야?”
“그랬지.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좀 풀어다오……. 제발…….”
노부가 애원하듯 말하자 맹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피폐한 모습만 봐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만하다.
하지만.
“나도 도와주고 싶긴 한데…….”
제 다리에도 이미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그나마 쇠사슬이 있어 노인처럼 아예 벽에 딱 달라붙은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도와주기엔 너무 먼 거리.
“미안. 묵흑이라도 있다면 부수고 도와줄 텐데. 지금은 무리야.”
“무……리?”
“어.”
맹휘가 머쓱하게 답하자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곤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쳤다.
“무리? 무리? 무리……?! 무리이이이이이-!”
“왜, 왜 이래! 미쳤어?”
“이런 쓸모없는 놈! 병신 같은 새끼! 머저리 같은 년! 네가 깨어나는 걸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제 와 무리라고? 으히히히히! 으하하하하하하!”
노부가 광인처럼 웃어젖히자 맹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미친 영감탱이…….”
백색 안구는 광자처럼 따로 돌아가고, 떡 벌어진 입은 꿈에 나올까 무서운 모습이다.
“여기 어디야! 그거나 말해!”
위기감을 느낀 맹휘는 경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한참을 웃던 노인이 돌연 정색하고는 또박또박 중얼거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 널 잡아 온 저놈한테 물어야지.”
뭐?
맹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끼이이익!
그러자 철문이 열리며 후광과 함께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중 맹휘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웃통을 벗고 선 엄청난 근육의 사내였다.
풀어 헤쳐진 긴 머리에 보기만 해도 위축되는 섬찟한 붉은색의 눈.
그리고 상체를 휘감듯이 그려진…….
‘용(龍)?’
“낄낄낄. 꼬마야, 조심하거라. 저놈이 바로 널 잡아 온 철마적의 수장이자 이곳 구룡성의 패자. 구유이니.”
“저자가……!”
그렇다. 이른바 전장의 용.
머나먼 과거 흉노족을 전성기로 이끌었던 2대 족장 묵돌(冒頓)의 환생이라 추앙받는 구유였다.
“…….”
그가 무심한 눈으로 노인과 맹휘를 번갈아 살폈다.
이내 고갯짓하자 한 줄기로 땋은 머리의 여인이 다가온다.
과평과 함께 철마적의 간부인 아신이다.
“마셔라.”
그녀가 다가와 신경질적인 어조로 수통을 던졌다.
툭!
한데 맹휘는 그저 멀뚱히 서 있기만 할 뿐. 다가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에 아신이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하자 차갑게 대꾸했다.
“멀어.”
하. 누가 마교 녀석 아니랄까 봐, 어린 게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아신이 겨우 인내하곤 다가와 수통을 주웠다. 그러곤 지척까지 와 이를 손으로 건넨다.
“받아라.”
맹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허리춤을 살폈다.
가지런히 꽂혀 있는 짤막한 칠흑색의 단창.
그의 신물인 묵흑이다.
‘너희는 내 내공부터 금했어야 했다.’
수통을 받는 척 손을 뻗는 맹휘. 순간 그의 눈빛이 맹수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파팍!
마치 뻗은 독사가 된 것처럼 순식간에 아신의 팔목에 요혈을 쳐냈다.
“흡!”
퉁! 저릿한 감각에 수통을 떨어트리고,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그녀는 뒤로 한 발을 물렸다.
이내 허전해진 제 허리춤을 살피고 다시 고개를 들자.
까앙!
어느새 묵흑을 손에 쥔 맹휘가 제 다리의 족쇄를 부서트리고 있었다. 제대로 방심했다. 고작 지학(15살)의 나이이지만, 엄연히 절정의 벽을 넘은 마교의 고수.
아신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감히……!”
“감히는 내가 할 말이고. 물 주면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 내가 아주 우스워 보였나 본데.”
파아앗!
자유를 얻은 맹휘의 신형이 앞으로 화살처럼 쏘아졌다. 이에 아신이 입술을 물고 일각을 펼쳐 응수한다.
한데 그 순간, 분명히 제 앞에 왔어야 할 맹휘가 사라졌다.
휙 고개를 돌리니 옆으로 빠져나간 것.
몸을 회전하지 않고 한순간에 직각으로 방향을 트는 맹가의 보법 마횡보(馬橫步)였다.
순식간에 사라져 처음 겪는 자들은 대부분 당황하기 마련.
“이봐, 영감! 딱 기다려!”
맹휘는 열린 문으로 나가는 쪽이 아니라 갇힌 영감을 향해 내달렸다. 그부터 풀어주겠다는 전략.
“으히히히히! 오거라! 어서 오거라! 어서, 어서, 어서! 어서어어어어!”
으…… x나 가기 싫어.
하지만 상대는 둘.
어쨌든 저 미치광이 영감이 여기 갇혀 있는 것 자체가 저들의 적이라는 얘기.
처지가 같다면 무조건 한편!
오월동주(吳越同舟)다.
“힘 꽉 줘! 안 주면 손목 나간다!”
맹휘는 달리면서 좌수를 앞으로 뻗어 단창을 내지를 자세를 취했다.
단 한 수만에 수십 보 밖까지 열 구멍을 뚫어버리는 대파열창술 제2식, 십광파(十光波)다.
아직 경지가 낮은 맹휘로서는 세 걸음이 한계였지만, 지금으로선 그거면 충분했다.
‘간다!’
그리고 어느새 지척에 다다른 그가 창을 내지르는 순간.
그의 시야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이 담겼다.
분명 입구에 서 있었거늘, 지금 제 앞을 가로막고 선 사내.
“…….”
구유.
철마적의 대장이자, 전장의 용으로 불리는 자.
바로 그였다.
『대파열창술(大破裂槍術) 제2식 십광파(十光波)』
도저히 무를 수 없는 상황.
‘죽어도 원망 말라고!’
맹휘가 이 악물고 그의 육신에 창광(槍光)을 쏘아냈다.
그리고.
“컥!”
삽시간에 맹휘의 시야가 천장으로 뒤바뀌며 바닥에 뒤통수가 쾅! 떨어져 내렸다.
위이잉- 귀에서 쇠가 갈리듯 이명이 울리고 온몸에는 힘이 빠진다.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어, 어떻게…….”
맹휘는 도저히 방금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에게 십광파를 쏘아 보냈고, 창광이 그의 육신에 열 개의 구멍을 내어줄 차례였다.
한데.
‘왜 내가 누워 있는 거지?’
놀랍게도 구유는 그 짧은 순간, 열 번의 찌르기를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피해내고 그의 이마에 일장을 날렸다.
그리고 지금이 그 결과였다.
“사, 사술……?”
맹휘가 고통에 파르르 떨며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말을 뱉었다.
사술.
그게 아니고선 도저히 믿기 힘든 일.
어떻게 그 짧은 거리에서 막아낸 것도 아니고, 열 번의 공격을 다 피하고 반격한단 말인가.
“이 개 같은 자식들…… 내가 이대로 당할 줄 알아!”
맹휘가 마지막 힘을 다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명이 울리고 어지럽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야말로 필사즉생의 각오로 다시 노부에게로 날아들려는 그 순간.
타타타탓! 퍽!
“어……억…….”
우두커니 선 구유의 옆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온 아신의 일각이 맹휘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와당탕! 그대로 날아가 벽에 머리를 처박고 쓰러지는 맹휘.
시야에 암전이 닥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