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04)
첩자의 마교생활-104화(104/350)
104.
#삼장로의 분노
「……송구합니다.」
머리를 한 줄기로 땋은 어두운 피부색의 미녀.
아신이 맹휘의 신물을 다시 챙기고 돌아와 고개를 숙인다.
이에 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데 실력이 제법이군. 저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다른 방에 가둬라.」
「예.」
그의 명에 아신이 다시금 맹휘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노부가 조소를 퍼부으며 중얼거렸다.
“낄낄낄, 애와 여인은 건들지 않는 게 자네 원칙 아니었나? 이제 보니 다 위선이었구먼. 애새끼를 죽도록 패다니. 크크크큭. 으히히히히!”
이 와중에도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보통 노인이 아니다.
물론 듣고만 있을 아신이 아니다.
그녀가 가던 걸음을 멈추곤 재빠르게 달려 나갔다.
타타타탓!
그리고 빠악!
“끼아아악!”
노인의 가슴에 거침없이 일각을 꽂아 넣었다.
구토할 것 같은 얼굴로 새 같은 비명을 지르는 노인.
구유는 이를 무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널 살려두는 이유를 잊지 말아라. 광의.”
광의(狂醫)!
구유는 분명 그렇게 말하였다.
광의 공손절.
육장로 독산마의와 동문수학한 자이자 미혼산을 만들어낸 주범.
그가 이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크, 크큭…… 으히히…….”
그의 음산한 웃음만을 남기고.
끼이이익. 쿵!
다시금 구룡성 뇌옥에 어둠이 찾아들었다.
* * *
육공자 맹휘가 실종됐다!
충격적인 소문은 천산에 날개를 단 것처럼 빠르게 퍼졌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아직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한 곳만은 달랐다.
“다시 말하여라. 누가 사라져?”
천산 동부 끝 언덕 위에 홀로 지어진 맹가의 장원.
삼장로 맹철용은 태사의에 앉아 흉신악살의 얼굴로 기세를 내뿜었다.
드드드드!
이윽고 몸에서 뿜어지는 위압적인 마기에 방 안에 있는 온갖 기구들이 지진인 인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챙그랑!
도자기는 떨어지고, 화분은 깨져 흙이 주르륵 흘렀다.
그야말로 장로의 위상이 느껴지는 엄청난 공력.
‘늙은이가 기력이 그새 더 좋아졌구나. 도대체 뭘 처먹는 것이야?’
소식을 전하러 온 전인(專人)은 놀란 속을 숨기고자 애써 고상한 척 탁상의 차를 호록 들이켜고 말했다.
“정확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납치입니다. 철마적이란 놈들에게 잡혀가셨지요.”
서신을 읽듯 냉혹하게 납치를 선고하는 새하얀 매.
마교의 실권자 중 하나이자,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주범.
비룡당주 묘채경이다.
그녀가 맹가로 직접 비보를 전하러 온 것이다.
그것도 평소 견원지간이라는 삼장로 맹철용에게 직접!
“확실한 것인가?”
솨아아아-
맹철용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졌다. 꼭 수작 부리면 심장에 구멍을 뚫어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처럼 들린다.
‘제 자식이 납치됐다는데 끝까지 허세는.’
하나 묘채경의 눈엔 그마저도 부질없는 발악처럼 보였다.
무공에 있어선 당연히 삼장로가 위일지 모르지만, 자신은 제자리에서 만리를 관장하는 새.
수 싸움에선 두말할 것도 없이 위라고 여겼다.
“제가 직접 확인한 사안입니다.”
콰직! 맹철용이 주먹을 내리치자 태사의 손잡이가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인가.
제 아들이. 맹가의 핏줄이. 한낱 마적 따위에게 납치나 당하다니!
거기다 그걸 비룡당주에게 듣고 앉았으니 말이다.
‘지존께서 아셨으면 파양하실지도 모르겠구나…….’
그야말로 참담 그 자체.
맹철용의 눈에 불똥이 번졌다.
그리고 이를 본 묘채경은 코웃음 치는 표정을 짓고는 차만 호록 마셨다.
바로 저 무식함이 그녀가 삼장로를 싫어하는 이유였다.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막막하면 그냥 도와달라고 빌면 될 일을. 나이가 몇인데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지.
“날 직접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도 저 권위적인 말투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저리 죽일 듯 노려보면서 쏘아붙이는 꼴이라니.
“누가 보면 제가 납치라도 한 줄 알겠습니다.”
“날 비웃으러 온 거라면 헛걸음이다. 육공자님의 안위는 지존께서 고려하실 일. 그러니 몸 성히 나가고 싶다면, 지금 꺼져라.”
“비웃다니요. 장로께선 제가 그리 한가해 보이십니까? 그리고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아직 위엔 보고하지 않았으니.”
맹철용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보고를 안 했다니. 그럼 천마전에선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인가.
묘채경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탁상의 찻잔으로 손을 가져가려는 그 순간.
파앗!
삼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뻗자 한 측 진열대에 걸린 창 한 자루가 날아와 그의 손에 붙잡힌다. 그러곤 단숨에 작살처럼 내던졌다.
콰직!
그러자 한순간에 눈앞에 먼지가 폭풍처럼 일더니.
“이…… 무슨…….”
탁자와 찻잔은 온데간데없고, 가루가 된 잔재와 바닥에 꽂힌 고고한 창 한 자루만이 남겨져 있었다.
지이잉!
까불지 말라는 듯 미세한 잔떨림이 남은 삼장로의 창만이 말이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맹철용이 지독히 매서운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전신에 구멍이 송송 뚫리는 기분.
이것이 신창마귀라 불리는 삼장로 맹철용의 위엄!
묘채경은 처음보다 다소 공손해진 어투로 답했다.
“수작이라니요.”
“육공자님의 일은 맹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분은 지존의 영식(令息). 광명우사께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한데 만일 네가 내게 뭔가를 얻어내려는 수작이었다면……. 당주는 이 자리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부터 하는 말은 심사숙고하라는 얘기.
묘채경은 얕게 침을 삼키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번 일은 단순한 마적의 소행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칠공자 보좌 장이서. 모든 건 그가 계획한 일입니다.”
쿵! 그녀의 입에서 기어코 그의 이름이 뱉어졌다.
“장이서……?”
“예. 그가 철마적과 내통하여 육공자님을 납치하였습니다. 즉, 내부의 소행이란 얘기지요.”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장이서라면 맹철용도 아는 자였다.
처음 보좌가 생겼다고 했을 때 이미 인명록부터 훑었으니.
하나.
‘고작 7급귀 출신의 결함이 있는 자가 아닌가. 그런 자에게 맹휘가 납치되었다?’
믿어달라고 사정해도 믿기 힘든 일.
한데 묘채경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한동안 육공자께서 칠소궁에 머무셨던 건 알고 계십니까. 그곳에서 사이가 아주 가까워지셨다는 것도요.”
맹철용 무섭게 인상을 찌푸렸다.
“당주.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니다. 내가 언제까지 네 세 치 혀에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
더는 들을 가치도 없으니 그만 꺼지라는 얘기.
하지만 묘채경은 온갖 권모술수가 넘쳐나는 비룡당의 주인.
이미 이 정도는 예상했다.
맹철용은 자존심이 강해 자신이 직접 보기 전까진 제 치욕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것이 분명했다.
해서.
‘이곳에 오기 전에 내 미리 준비해둔 것이 있지.’
그녀의 입가에 졸렬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커다랗게 외쳤다.
“들어오시지요!”
이내 뒤쪽에 문이 열리며 빼꼼 모습을 드러내는 소녀.
맹철용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존의 다섯 번째 영애.
맹가의 자부심 중 하나.
“백부님, 안녕.”
맑은 눈의 광인.
오공녀 맹원원, 바로 그녀였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맹철용이 묻는다. 그러자 맹원원이 답했다.
“맹휘는…….”
“음?”
“앞으로 칠소궁에 머물고 싶댔어.”
“그게 무슨?!”
“그래서 그거 허락받으려고 철마적한테 간 거야. 공이라도 세우면 백부님 생각이 달라질까 해서.”
맹철용은 기함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맹휘가 그런 생각을 품다니.
하나 다른 이도 아닌 맹원원의 증언.
이는 저 간악한 비룡당주의 혓바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맹휘가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그의 정신이 멍해지고,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사이 맹원원과 묘채경은 서로를 살폈다.
눈빛은 딱 이렇게 말을 하는 듯했다.
‘잘하셨습니다.’
‘뒤처리는 확실한 거지?’
사전에 얘기된 거래.
그랬다.
맹원원이 오늘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하나.
앞서 묘채경이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
*
*
– 며칠 전, 천산 동부 주마지.
오공녀 맹원원은 말들이 뛰어노는 언덕 위에서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앉아 있었다.
“히, 히이익!”
칠소궁을 다녀온 후로 수풀이 흩날리는 작은 소리에도 경기를 일으켰다.
보좌인 왕우는 몸져누워 한 달 넘게 요양해야 하고, 하사받은 신물은 빼앗겼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예지안으로 바라본 미래였다.
『백뢰(白雷)』
번쩍이며 검은 번개를 쏘아내던 괴물.
바로 장이서 말이다.
그에게 맛본 죽음이 너무도 섬찟했고, 생생했다.
솔직히 미래를 본 적은 여러 번이지만, 진짜 죽음을 본 건 처음이었다.
아프고, 무섭고, 우울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맹가의 핏줄이자 교주의 자식인 자신을 누가 진짜 죽이려 들겠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데…… 그런 미친놈이 칠소궁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무서운 장이서라는 미친놈이.
“어떡하지? 맹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날 죽이러 올 거야.”
이빨 사이에 낀 엄지가 질겅질겅 씹힌다. 극도의 불안감. 그렇게 두려움에 서서히 미쳐가고 있던 때였다.
“이곳에 계셨군요.”
언덕 아래를 내려다 살피니 웬 하얀 도포의 무사들 틈에서 매 한 마리가 저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비룡당주……?”
비룡당주 묘채경. 만리신조로 통하는 그녀였다.
지척까지 다가온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뒤쪽에 대기하던 비룡당의 정예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경신술로는 마교 내에 따를 조직이 없다더니 명불허전이다.
한데…….
겨우 그딴 거나 인증하려고 나타난 건 아닐 테고.
“여긴 무슨 일이지? 당주는 맹가라면 이를 갈던 거 아니었어?”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하던 오공녀다. 당연히 말이 곱게 나갈 리 없다.
하나 묘채경은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평소 늘 웃는 척, 재밌는 척. 가면을 쓰던 모습이 실로 가증스러웠거늘. 오늘은 그래도 솔직한 편이다.
그러니 본론.
“육공자께서 홀로 철마적을 뒤쫓다 납치당하셨습니다. 하여 가족분들께 이 비보를 전하러 온 것이고요.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뭐라고?! 납치!”
맹원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다. 그리고 이에 정비례하듯 묘채경의 입꼬리는 길쭉하게 올라섰다.
“이미 시간이 지나 생사는 확인이 어렵고……. 축하드립니다. 오공녀님. 호호호! 결국 뜻한 바를 이루시는군요. 집안의 경쟁자를 숙청한 기분이 어떠십니까.”
“숙청이라니! 그게 무슨 헛소리야!”
“숨기실 것 없습니다. 이미 철마적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게 오공녀님이라는 걸 모두 확인하였으니 말이죠.”
파르르. 맹원원의 눈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 그건……!”
“괜찮습니다. 서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경쟁하고, 빼앗고, 없애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본교에서 정당함을 찾는 게 더 우스운 일이지요. 오히려 전 그 마음을 칭찬해 드리고 싶군요. 단…….”
다정히 웃던 묘채경의 얼굴이 싸늘히 식는다.
“들키지는 마셨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