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05)
첩자의 마교생활-105화(105/350)
105.
#죽음의 사막 (1)
묘채경이 표독스러운 미소로 말했다.
“원래 이런 일은 끝까지 아무도 몰라야 완성되는 겁니다. 한데……. 과연 삼장로께서 조카가 제 자식을 해했다는 걸 아시면 가만히 계실까요?”
맹원원의 얼굴이 멀미하듯 새하얘졌다.
가만히 있을 리가…… 당연히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의기양양해하는 묘채경을 향해 눈을 슥 올려 뜨며 물었다.
“……증거 있어?”
“무슨……?”
“없잖아. 내가 맹휘한테 그런 말 했다는 증거.”
묘채경의 얼굴이 일면 멍해졌다. 그러곤 서서히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호호호호!”
“왜 웃어?”
“바로 그겁니다, 오공녀님! 그래야 완성이 되는 거지요. 예, 맞습니다. 증거는 없지요. 당연히 없어야지요.”
묘채경이 다가와 맹원원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뭐 하는 거지? 노망이야?
어이가 없어서 노려보지만 묘채경은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당연했다. 모처럼 맹가의 인물과 뜻이 통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은데요.”
“제안?”
“별것 아닙니다. 삼장로님 앞에서 한마디만 해주시면 됩니다.”
“무슨 얘기.”
“모든 건 장이서. 그자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이지요.”
맹원원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
*
*
맹원원이 넋을 잃은 맹철용을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러곤 나직이 말했다.
“그럼 먼저 가볼게.”
“버, 벌써 말입니까?”
이에 오히려 당황한 건 묘채경이었다. 고작 그 얘기만 하고 어딜 가는가. 할 거면 제대로 장이서를 몰락시키고 가야지.
하나 맹원원 생각은 달랐다.
‘당주. 네 계획대로 장이서가 없어져 주면 다행이겠지만……. 글쎄. 그렇게 쉽게 될까? 장이서, 걔. 만만한 사람 아니야.’
더구나.
‘한마디만 하면 된댔으니까.’
영악한 건 맹원원 역시 마찬가지.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휙 돌아 나간다.
물론, 이런 정황을 알 수 없는 묘채경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청안의 광녀라 불릴 만큼 성정이 악독하다더니. 이제 보니 순 헛똑똑이지 않은가. 제가 일을 꾸며 놓고 저리 겁먹은 꼴이라니. 맹가의 명성도 여기까지구나.’
동상이몽이다. 하나 묘채경은 알까.
지금의 장이서는 과거에 자신이 알던 그가 아니라는 것을.
“도대체…… 왜!”
맹원원이 사라지고 나자 콰직! 맹철용은 고함을 치며 태사의 자체를 한주먹에 날려버렸다.
만인의 주인이 되어야 할 제 아들이 도대체 왜 칠소궁에 집착한단 말인가.
실로 생각이 많아진다.
하나 그때야말로 묘채경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재량껏 휘두를 수 있는 최적의 시간.
“왜겠습니까. 장이서가 육공자님을 현혹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간악한 자입니까. 이런 말 하기 부끄럽습니다만…….”
묘채경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맹철용의 눈매가 좁혀진다. 늘 콧대만 높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기 때문.
“얼마 전 교외에선 저희 비룡당 최정예 무사들을 해하고, 철마적의 간부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것도 제가 보는 앞에서 말이지요.”
“그럼 그것 때문에!”
맹철용의 눈에 이제야 이해가 서렸다.
묘채경 역시 자신의 실책을 감추고자 따로 보고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하게 된 것.
‘너만 그런 게 아닌 걸 알았으면, 이제 그만 격분하고 내 말대로 따르기나 하거라. 잡으러 가야 할 것 아니냐.’
사실과 뒤섞인 교묘한 거짓.
맹휘가 사라진 시점과 칠소궁에 머물렀던 시간. 그리고 장이서가 과평과 사라지게 된 배경. 그 모든 것이 감춰져 있었지만, 지금 맹철용의 귀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하나.
“그래도 다행인 건 녀석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해(死海). 남로의 사막이지요. 바로 그곳에 육공자님과 철마적. 그리고 장이서가 머물고 있을 겁니다.”
“사해…….”
“모래폭풍이 심해 웬만한 이들은 들어갈 수 없겠으나……. 북부의 폭설도 뚫었다는 맹가의 맹갑귀마대(孟鉀鬼馬隊)라면. 그럼 얘기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어떠하십니까. 아직 바로 잡을 시간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묘채경의 수가 던져졌다. 삼장로의 눈이 흔들린다. 하나 곧 다시 세워졌다.
어차피 답은 하나.
“내가 직접 갈 것이다.”
됐다. 비룡당주 묘채경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섰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삼장로와 맹갑귀마대까지 등에 업었으니 이제 사해든, 어디든 아무 문제 없는 일.
철마적과 장이서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터. 그리고 그 공로는…….
모두 비룡당의 몫이 될 것이다.
‘장이서, 날 너무 원망하지 말거라. 네가 거기 나타난 게 죄인 것이니.’
호호호호! 그녀의 내면에 들리지 않는 마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 천산남로 타림 분지.
한편 장이서와 일행은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해가 있는 타림 분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걸린 시간은 이틀하고도 반나절.
보통 사나흘이 넘게 걸리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쉬지 않고 달렸는지 알만하다.
하나 사막에 들어선 순간부턴 행군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뙤약볕으로 달궈진 모래 위라 무더위가 더욱 극심해졌기 때문.
그 덕에 복장도 서역 상단처럼 머리와 입에 천을 두르고, 몸엔 통풍이 잘되는 흰색 장옷 하나만을 가볍게 걸쳤다.
물론 그럼에도 더운 건 여전했다.
절정 고수라면 한서불침(寒暑不侵)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기온은 무시할 수 있을 텐데도, 장이서와 소오의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철저히 단련된 철마적도 최대한 숨을 아끼며 뚝뚝 깎이는 체력을 방비했다.
그야말로 걷는 것 자체가 고행.
딱 한 명.
“하아암, 날씨 좋다.”
충만한 양기로 똘똘 뭉친 천양지체의 마오만 제하고 말이다.
「교주의 자식은 다 이런 건가? 정말 대단하군…….」
속을 모르는 과평은 입을 떡 벌린 채 마오를 재평가했다.
그렇게 무더위 탓에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지자, 과묵하던 일행도 조금씩 대화가 나누어졌다. 시작을 연 건 마오였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왜 자꾸 새끼 낙타들이 죽어 있는 거야? 어미는 어디 가고. 좀 지켜주지.”
그의 말대로다. 사막에 들어서자 죽어 있는 새끼 낙타들이 종종 보였다. 누가 봐도 이상한 광경.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이에 과평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하지만 눈빛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씁쓸함이 느껴지는 기분.
“뭐야. 뭔데.”
“알 거 없다.”
“알려줘. 뭔데.”
낌새를 느낀 마오가 귀찮게 되묻자, 묵묵히 가던 장이서에게서 답이 들려왔다.
“저건 장사(葬事)입니다.”
“장사? 죽은 사람 매장하는 거?”
“예. 유목민들은 터전이 자주 바뀌니 시체를 묻었던 장소를 기억하기 힘듭니다. 저건 그 위치를 기억하기 위함이죠. 어미와 새끼를 같이 데려가 새끼를 죽이면. 어미는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그 자리를 기억하고 찾아갑니다.”
“그, 그런 거야?!”
마오는 경악했다. 그냥 물은 질문인데 그런 속사정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럼 아까 시체들이 있던 곳이…… 무덤?!
과평은 놀란 마오를 뒤로한 채 장이서한테 물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쪽에 대해 아는 게 많군. 사해를 알던 것도 그렇고.”
“원래 하던 일이 누굴 좀 잡으러 다니던 일이라.”
“그렇다고 우리 흉노족의 말까지 배우긴 쉽지 않았을 텐데. 누구한테 배운 거지?”
날카로운 질문. 이에 소오도 의문인 듯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흉노족의 말은 이제는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어(死語).
단지 갑골문을 쓰는 고대 언어라 음지 계열에서 종종 익히곤 했다.
이를테면 정보원, 청소부, 자객. 그도 아니면 첩자.
뭐 그런 경우 말이다.
‘장이서. 넌 어느 쪽이냐?’
소오가 눈을 빛낸다. 애초에 장이서가 그냥 평범한 방첩대원 출신이라곤 생각도 안 했다.
한데.
“객잔 주인도 아는 건데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장이서는 픽 웃고는 도리어 소오를 물었다.
“이봐, 장 보좌. 나는 입장이 다르지!”
“뭐가 말인가?”
“나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장사치치고는 현장 지식이 꽤 능숙해 보이던데. 꼭 교외로 몰래 나가본 사람처럼.”
“어디나 예외는 있지. 응, 맞네. 흉노어가 알고 보면 쉬워.”
뭐라는 거냐. 과평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장이서와 소오는 서로를 지그시 노려보며 알게 모르게 기세 전을 펼쳤다.
그리고 그사이 생각을 정리한 마오가 원점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근데 꼭 이렇게까지 떠돌아다녀야 해? 그냥 정착해서 살면 되잖아.”
정착? 푸하! 과평은 대소를 터트리곤 일갈했다.
“도련님답게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다 하는군. 보거라. 여기 가축들이 뜯어먹을 풀이나 있는지. 척박한 이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건 오직 전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강자뿐이다. 약자들은 떠나지 않으면 죽는다. 사는 게 전쟁터라는 거지.”
“그럼 싸우든가. 너희 강하다며?”
“강하지. 한데 고작 백도 안 되는 인원으로 너희랑 무슨 수로 싸우지?”
너희? 누구. 우리?
“본교가 왜 나와.”
“그럼 누구랑 싸운단 말이냐? 이 땅의 지배자는 너희 아니더냐. 전쟁에서 승리한 일족도 너희에게 공금을 바쳐야 한다. 그것만 아니어도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하나 버티다 밉보이면? 너희 손에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설마 그렇게까지…….”
“크큭, 그것도 몰랐단 말이냐? 교주의 자식이라더니 정말 철부지 도련님이군.”
마오가 입을 떡 벌리곤 장이서를 찾았다. 이게 사실이야?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미화된 부분도 조금은 있다. 마교는 상대가 밉보여야만 죽이는 게 아니다. 그냥 때가 돼도 없앴다.
한 일족이 너무 오랫동안 군림하면, 언젠간 마교의 아성을 넘보려 할 테니까.
그래서 적당한 시점에 일족 자체를 없애버렸다. 멸족의 순환이다.
“몰랐어…….”
마오는 큰 충격을 받은 듯 중얼거렸다. 진짜 몰랐다. 한낱 서자였던 그가 바깥 정세를 얼마나 알았겠는가.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 앞에 닥친 일이 아니니 아무 관심도 없었다.
“몰랐든 알았든 달라질 건 없다. 네놈들이 마교라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
퉤! 과평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간 당한 게 억울해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마교라는 놈들이 왜 저딴 양심적인 표정을 짓고 지랄인 거냐.’
마교가 마교답지 않은 게 영 거슬린다.
무시하고 앞서가던 과평이 결국 화를 못 참고 멈춰 섰다. 그러곤 사납게 윽박질렀다.
“너희한테 한 짓이 죄악이라고? 천만에. 너흰 당해도 싸다. 우린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는 떠돌지 않고, 자식을 팔아넘기지도 않으며.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는. 그런 소소한 삶 말이다. 너희만 아니었어도……. 제기랄.”
마오의 두 눈이 충격에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