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08)
첩자의 마교생활-108화(108/350)
108.
파앗!
맹철용의 흑창이 뒤로 끝까지 당겨지는 순간, 장이서가 옆으로 몸을 날렸다.
“음?!”
내기의 흐름상 더는 초식을 무를 수 없는 순간이 되자 절묘하게 빠져나가 버린 것.
이에 맹철용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정확히 펼쳐내는 순간을 잡아 피해낼 줄은 생각도 못 한 일.
‘우연인가. 아니면 읽은 건가.’
무엇이든 내심 크게 놀랐다.
그리고 그사이 장이서는 다섯 걸음이나 옆으로 몸을 피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히 피해낼 수준. 이내 스스로의 무사를 확신하고 안도의 숨을 삼켰다.
한데.
“어리석구나.”
“음?!”
콰과과과과과!
사신의 충고와 함께 창끝에서 쏘아지는 회오리. 장이서는 이를 보며 기함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어째서 맹철용과 맹휘가 같다고 생각했을까.
맹휘의 회오리가 뱀이라면 맹철용의 회오리는 용이었다.
그것도 세상을 다 찢어발길 만큼 거대한 용!
고작 다섯 걸음으로 피해낼 수준이 아니라 최소 스무 걸음은 벗어났어야 했다는 얘기.
‘이건…… 못 피한다.’
뇌전법을 펼쳐도 치명상은 불가피한 상황.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한데 그 순간.
「이거로 아까 그 빚은 갚은 거다.」
낯익은 음색과 함께 장이서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서렸다. 그리고 위풍당당하게 쿵! 말을 탄 사내가 착지하며 바로 앞을 막아섰다.
“과평……?!”
그였다. 그가 장이서를 바라보며 피식 웃는다.
그리고.
콰과과과과! 거대한 회오리가 말과 함께 그를 집어삼켰다.
“과펴어어어엉-!”
장이서의 외침이 무색하게도, 태풍은 일대를 잔혹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남겨진 자리엔 피범벅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 과평과 그 앞에 멍하니 선 장이서가 있었다.
“……마적과 손을 잡은 게 사실이었구나.”
맹철용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저 별 볼 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을 땐, 그런 놈에게 제 아들이 꿰였다는 사실에 화가 났었다.
하지만 이젠 저렇게 유망한 놈이 한낱 마적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격노했다.
지금도 보라.
마적 하나가 당했다고, 곧고 당당하던 두 눈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쓸데없는 정에 휘둘리는 건 삼장로 맹철용이 가장 혐오하는 정신머리.
휘이이잉-!
어느새 이각이 다 지난 것인지 다시금 바람이 몰아치고, 서서히 누런 모래가 시야에 담기기 시작했다.
맹철용은 조금씩 닫혀가는 구룡성의 문을 향해 다그닥, 다그닥 걸어가며 수하들에게 명했다.
“비룡당주에게 데리고 가라.”
“예!”
장이서의 주변으로 맹갑귀마대가 사방을 옥죄며 다가온다.
맹철용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계속 앞으로 향했다.
상상 이상으로 유능한 인재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흔치는 않으나, 없지는 않은. 고작해야 이른 나이에 절정 초입에 오른 영재일 뿐.
‘어리석었던 네 행동을 탓하거라.’
맹철용은 본교의 인재에 대한 아쉬움을 싹둑 잘라냈다.
그놈은 끝났다.
맹갑귀마대는 모두가 일류 끝자락에 달하는 무사들. 더구나 세력전과 다대일 전투에 있어선 가히 최고라 평할 수 있다.
그러니 일 대 일이라면 모를까, 장이서가 혼자서 제 수하들을 감당할 순 없다.
더구나 저리 사기가 꺾인 상태라면 더더욱.
한데.
파지직!
뒤에서 벼락이 친 듯한 소음과 함께.
“크아아악!”
“커헉!”
맹철용의 귀에 이해할 수 없는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장이서는 혼자인데 어째서 여럿의 소리가 나오는가.
이에 미간이 찌푸려지고, 천천히 돌아서는 그 순간.
번쩍!
수십 명의 맹갑귀마대원들 사이로 검은빛이 터져 나오고, 이내 제 수하들이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음……?”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수많은 수하와 모래바람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하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상황을 인지할 틈도 없이 수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고 있다는 것.
“크악!”
누군가는 팔이 그어졌고, 또 누군가는 갑옷이 부서진 채 나가떨어졌다.
‘놈이…… 맹갑귀마대를 홀로 상대하고 있다?!’
분명히 그러했다.
자신이 재단한 그의 실력으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설마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경지가 초절정을 넘어 어느새 입신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는 맹철용쯤 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다수 보이게 된다.
그중 하나가 그 사람의 몸에서 아지랑이처럼 뿜어져 나오는 기의 경지다.
그 색이 선명할수록 깊이가 좋은 것이고, 양이 방대할수록 쌓은 공력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움직일 때마다, 혹은 내기를 사용할 때마다 은연중에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이서의 경지는 아까부터 늘 일관됐었다.
절정 초입. 그리고 극도로 정순한 마기.
한데 그런 장이서가 맹갑귀마대를 지금 홀로 쓰러트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아무리 몸놀림이 좋다고 한들 분명 한계가 있을 터이거늘.
“죽어야 할 이유가 더 늘었구나.”
맹철용의 얼굴에 짙은 사신의 그림자가 서렸다.
누군가에겐 장이서의 이런 모습이 흥미가 될 수 있겠지만, 맹철용은 피아 구분이 확실한 자.
유능한 적이라면 싹일 때부터 가차 없이 말발굽으로 찍어 누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맹철용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이고, 그의 손은 흑창을 꽉 움켜쥐었다.
우우웅!
창끝에 엄청난 양의 내공이 깃들고, 이내 불그스름한 막이 둘러싸인다.
극소수의 초고수들만이 펼칠 수 있는 유형화된 기운. 나뭇가지도 명검으로 만들어준다는 그 유명한 검기. 아니, 창기(槍氣)다.
이는 그가 본 실력을 드러냈다는 것이고, 장이서가 그 어떤 수를 쓴다고 해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생겼음을 의미했다.
필패(必敗).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준비를 마친 맹철용의 눈빛이 사납게 변한다. 이내 말을 박차고 날아오르려던 그때였다.
“흡!”
그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신음이 뱉어졌다.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로 황급히 허공에 창을 휘둘렀다.
잠시 후.
카아앙!
일말의 물러섬이 없는 마찰음이 흩날렸다.
“크음…….”
그리고 천하의 맹철용 입에서 신음이 뱉어졌다.
하나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투둑. 맹철용이 타고 있던 명마가 두어 걸음을 밀려난 것. 서역에선 마왕으로 불리며 황소가 부딪쳐도 물러서지 않는 마력(馬力)을 가진 중종마(重種馬)가 말이다.
심지어 맹철용은 전력을 다해 창을 휘둘렀다.
한데도 상대와 똑같이 밀려났다.
그리고 그 이유는 더없이 차분해진 그의 입에서 직접 흘러나왔다.
“나락.”
은발의 미공자.
삼공녀 사해령의 보좌, 나락이다!
그가 흐린 안개처럼 목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공자 무한성이 점령한 삼소궁에서 빠져나온 그가 마오와 장이서를 쫓아 여기까지 뒤따라온 것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실로 무덤덤한 인사. 그의 손에 들린 화려하지 않은 일 척 (30cm) 길이의 두 자루 소도(小刀)가 아니었다면, 조금 전 맹철용의 맹공을 막아선 게 그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저쪽은 그냥 보내주시지요.”
하나 이어진 그의 말에 상황은 명명백백해졌다. 그가 장이서의 편을 들고 나선 것.
이건 나락이 삼장로 맹철용에게 작정하고 대적하겠다는 뜻이다.
“진심인가?”
맹철용이 물었다. 하지만 물음은 무의미했다.
그가 아는 나락은 절대 허튼소리 할 위인이 아니었으니.
“예.”
여기에 나락의 재통보가 이어졌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보.
직급으로 보나, 세대로 보나, 무공으로 보나. 엄연히 맹철용은 그보단 한 단계 위다.
아무리 삼공녀의 보좌라 하나 맹철용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분개하여 목을 쳐도 할 말이 없는 일.
“…….”
하나, 그럼에도 맹철용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고수했다.
심지어 장이서가 제 수하들을 뚫고, 과평을 등에 업은 채 구룡성으로 도망치는데도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당연했다.
맹철용의 눈에는 보였기 때문이다.
나락의 몸에서 거미줄처럼 뿜어져 나오는 저 막대한 기운이 주변을 모조리 장악했다는 것을.
게다가.
‘나락…… 목숨까지 걸겠다는 것이냐.’
분명 경지로 보자면 나락보다는 맹철용이 한 수 위였으나, 단 한 가지.
생사를 건 혈투만큼은 자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죽더라도 적장만큼은 반드시 물어 죽인다는 전대 광룡당주(狂龍堂主) 나락이기에.
특히 지금처럼 동공이 회오리치듯 찢겨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자네가 광폭공(狂爆功)까지 펼쳐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니…….’
20년 전, 고작 열아홉이었던 나락이 사도련 진영에 쳐들어가 수뇌부 셋의 목을 베고 올 수 있게 해준 마공이 바로 광폭공이었다.
동공과 심장에 내기를 끌어올린 뒤, 그 안에서 내공을 선회하게 하여 일시적으로 감각을 증폭시키는 마공.
오래 사용할수록 급격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제약이 있지만, 적어도 그가 광폭공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장로들도 무시할 수 없는 절대 강자였다.
하여 그때 사도련 사이에서 붙여진 별호가 바로 대적장(大敵將).
적장 중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라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리고 꼭 광폭공이 아니어도 맹철용이 단언컨대, 나락은 그 나이 또래에 최고의 살수이자 기재였다.
물론, 맹철용이 침묵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강해서만은 아니었다. 광폭공은 오래 사용치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위험은 있겠으나, 그가 꺾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다만.
‘나락이 나섰다는 건 배후에 삼공녀님이 계신다는 뜻. 이건 단순히 한낱 보좌의 일탈이 아니다.’
장이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무언가 어긋난 듯한 불편한 감정.
맹철용이 고집이 세고, 저돌적인 성정임은 맞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원점부터 다시 의문을 품어봐야 할 일.
‘삼공녀님께서 납치에 가담하셨을 리는 없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구나.’
그리고 연달아 떠오르는 건 바로 음흉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호호호호!
비룡당주 묘채경.
권모술수를 밥 먹듯이 부려대는 늙은 여우.
“조금만 시간을 주시지요.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에 맹철용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래를 내려 살피자 나락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곤, 스스스 연기처럼 사라진다.
쿠웅!
그리고 수십 보 앞에 있던 바닥의 철문도 완전히 닫혔다.
맹철용은 잠시간 침묵한 채 점점 거세게 불어닥치는 모래폭풍을 마주했다.
“사상자를 수습해라. 돌아간다.”
짤막하게 명을 남기고 몸을 돌린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 삼소궁에서 직접 책임을 지겠다니 한 보 물러선다.
단, 그 시간은 한 시진 후. 모래폭풍이 멎고 다시금 문이 열릴 때까지만.
만일 그때까지도 별다른 해명이 없다면…….
‘나락. 너 또한 나의 적이다.’
사해에 따가운 바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