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16)
첩자의 마교생활-116화(116/350)
116.
#접전의 끝
– 구룡성 중층.
상층이 아수라장으로 변모한 사이.
구유와 나락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거리를 벌린 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주변만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마을 골목 같던 풍경은 초토화된 지 오래고, 지켜보던 병자들은 뿔뿔이 도망쳤다.
어디 그뿐인가.
둘의 모습만 보더라도 지친 기색이 만연하고, 찢기고 베이고, 멍든 상처로 가득했다.
수백 합을 넘은 두 사람의 접전이 이제 슬슬 끝을 고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락으로부터 펼쳐졌다.
『섬라육검(閃羅六劍) 환(幻)』
빛줄기처럼 쏘아지던 나락의 신형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는 섬전보(閃電步)를 쓰는 나락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발출한 검기(劍氣)다.
하나 겉만 봐서는 그저 빛줄기와 같아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만안(萬眼)을 가지지 않았다면.
‘오른쪽!’
구유의 만안이 번쩍이고, 그대로 몸을 틀어 우측 빛줄기에 일권을 날렸다.
‘제법.’
정답이다. 엄청난 동체시력.
한데 그 순간.
『섬라육검(閃羅六劍) 환(幻)』
빛줄기가 또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이에 구유 역시 망설임 없이 좌측으로 몸을 따라 돌렸다.
그쪽이 진짜라는 확신.
하지만 돌아보는 순간, 그의 인상은 와락 찌푸려졌다.
『섬라육검(閃羅六劍) 응용편(應用編) 환연(幻聯)』
상대가 찾아내면 못 찾을 때까지 더 빠르게 움직이면 된다.
그것이 바로 나락.
정신없이 배회하는 빛줄기가 무한히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새 주변은 실을 뭉쳐놓은 것처럼 발출한 검기로 가득 채워졌다.
퍼퍼퍼퍽!
천장, 바닥, 벽.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초토화되는 건 순식간의 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어느 순간 구유의 만안이 나락을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야바위와 같았다.
한번 놓쳐버린 순간, 상대의 기류에 완전히 말려버린 것.
그리고 그 결과는 크나큰 피해로 되돌아왔다.
서걱!
「큭……!」
어깨 부위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베였다. 하나 얼마나 다쳤는지 확인할 만한 여유는 없다.
구유는 상대를 확인도 안 하고 곧바로 회전하며 왼손 주먹을 내질렀다. 시간적으로나 각도상으로나 나락이 확실하다.
하나.
퍼억! 터져버리는 폭음과 함께 애꿎은 왼손 살갗만 파여나갔다.
그가 쳐낸 빛줄기는 검기였다.
그렇다면 나락은……?
서걱!
「음!」
등 어딘가가 뜨겁게 달궈졌다. 또다시 배후를 빼앗긴 것.
연이어 비복근(종아리)에 혈선이 그어지고, 돌아보는 순간 가슴팍에도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털썩.
서역의 무패를 자랑하던 전장의 용, 구유.
그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앞에 이젠 악귀처럼 느껴지는 나선안(螺旋眼)의 사내가 나타났다.
삼공녀 보좌 나락.
그다.
“…….”
구유는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일대일 대결에서 이토록 수세에 몰려본 게 얼마 만이던가.
기억도 희미할 만큼 오래전의 일.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이 땅에 몇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나, 어리석은 오만이었다.
등 뒤의 마교라는 바다는 보지 않은 채 눈앞의 연못만을 보며 우쭐해 있었다.
“마교에서…… 너는 몇 번째인가.”
구유는 조금은 어눌한 중원의 말로 나락에게 물었다.
무엇이 생략된 말이었지만, 의미는 표정으로 알아들었다.
얼마나 강하냐는 물음.
이에 나락은 고개를 갸웃하곤 곰곰이 생각하다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그리고 열 개를 다 접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답했다.
“열 손가락 밖이군.”
“뭐?”
구유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서렸다.
이는 황당함과 수치심. 그리고 더 나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열이었다.
「너 정도 되는 자가 그리 넘쳐난다니. 그것이 마교의 저력…….」
처음으로 마교라는 막강한 존재의 실체가 와닿게 된 순간.
구유는 살갗이 벗겨진 주먹을 꽉 움켜쥐곤 눈을 부릅떴다.
처음 전장으로 팔려 갔을 때도 강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자신은 흉노족을 책임지는 족장이자 패배를 모르는 전장의 용.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끝에 올라가 있던 건 늘 자신이었다.
「아직 올라야 할 곳이 남았다면…… 올라가 주마.」
콰악!
구유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바닥의 철판을 손끝의 힘만으로 뜯어내 나락에게 날려 보냈다.
“피곤한 구석이 있군.”
하나 이 정도 얕은수에 당할 리 만무한 일.
파아앗!
나락은 또다시 두 개의 빛줄기로 갈라져 좌우로 빠져나갔다. 섬전보는 한 번의 도약으로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쾌속의 보법.
그리고 그 와중에 검기를 발출해 반동력으로 방향을 꺾는 것이 바로 환의 묘리였다.
이 정도 피하는 건 어렵지도 않은 일.
쐐애애액!
한데 바로 그때. 또다시 철판 하나가 전방을 가로막으며 날아들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세 개다.
‘귀찮게 하는군…….’
방향을 꺾을 수는 있어도 그게 정반대로 향할 수는 없다.
결국 갈 길을 잃은 나락은 환을 포기하고, 강으로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었다.
소도를 어깨 뒤로 빼내자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차오른다. 철판마저 한 방에 꿰뚫었던 찌르기.
섬라육검 강이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번이 아니라 아홉 번!
『섬라육검(閃羅六劍) 응용편(應用編) 강연(强聯)』
파파파팍!
쇳덩이를 걸레로 만들 기세로 소도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 정도면 뚫고 나가는 것도 시간문제.
한데 그 순간.
콱!
바로 옆에서 날아들던 철판을 종잇장처럼 뚫고, 주먹 하나가 짓쳐 들었다. 구유의 반격이다.
“음……!”
다급히 검을 회수해 보지만, 늦었다. 더구나 왼팔은 아까 부서져 들지도 못하는 상태.
퍽!
결국 일격을 허용 당한 나락이 바닥을 나뒹굴며 뒤로 한참을 날아가 처박혔다.
대자로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신세라니.
전 광룡당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나락이 얕은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머리도…… 쓸만하군.”
지금까진 단순하게 덤벼들기만 하더니. 뭔 바람이 들었는지 제법 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이러면 반칙인데…….
나락이 상체를 일으키곤 앞을 바라보자 구유가 다가와 우뚝 서 있다.
아까와 반대가 된 상황.
“일어나라.”
나락이 여유를 베풀었듯 그 역시 똑같은 행동을 취했다.
이에 나락은 미약하게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보기와 달리 낭만적이군.”
그리 원한다면 똑같이 보답해주는 것이 예의.
팟!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서로를 향해 쏘아진다.
그리고 시작된 순서 없는 난전.
나락이 베거나 찌르고 나면, 그와 동시에 괴물 같은 구유의 체술이 발동했다. 비명도, 기합도 없다. 그저 서로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갈 뿐.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격정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싸움은 없는 법.
상처가 늘어가자 어느새 승패도 갈렸다.
“하…… 하아…….”
다 땀에 젖어 풀어 헤쳐진 은발에 지친 숨을 뱉으며 고개를 천장으로 올려 드는 나락.
그리고…….
털썩. 두 무릎을 꿇어버린 구유.
그렇다.
이변은 없었다.
나락의 승리였다.
아무리 괴물 같은 근력과 뼈대를 가졌다곤 하나 금도끼에 수십 번 찍히고도 넘어가지 않을 나무는 없다. 그것도 다리만 노렸다면 더더욱.
“패망한 부족치고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군.”
나락이 노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본래 나락은 함부로 상대를 평하지 않는다. 본래 성정이 죽음의 문턱에서도 무뚝뚝한 편.
하나 구유는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자신을 수차례나 놀라게 했다.
무시무시한 동체시력. 가열하듯 갈수록 더 빨라지는 동작. 공포가 느껴지는 힘. 그리고 비명 한 번 안 지르는 근성까지.
“한데 그 힘을 고작 이런 곳에서 썩히고 있다니.”
나락이 슬며시 주변을 훑었다.
지레 겁먹고 숨어서 엿보는 병자들. 아무리 봐도 분향이 가득한 무덤이다.
“뭘…… 안다고 떠드는 거지?”
나락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내려 살폈다. 그의 나선안에 구유의 만안이 담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에 찬 두 눈이.
“뭘 더 알아야 하나?”
“우리가…… 우스운가?”
구유의 어눌한 물음에 나락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렇군.”
무시는 아니다. 구유는 자신을 놀라게 한 자였으니. 마땅히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이 우스운 건 맞았다.
“왜……. 마교가 보기엔 우리의 삶이 하찮아 보이는가?”
“내가 온정에 휩쓸려 병자들에게 휘둘리는 삶을 보며 고결함을 느낄 성정은 아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 선택. 내가 우습다 말할 일은 아니다.”
“그럼……?”
“지킬 자가 있으면서 본교를 건드린 것. 그것도 하필 존자(尊子)들에게 손을 댄 거지.”
존자라니. 구유가 알기로 마교에서 높을 존(尊)자를 사용하는 이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천마지존……. 그럼 그 아이가……!”
“교주님의 후계들이지. 몰랐나 보군.”
몰랐다. 지니고 있던 부서진 창이 범상치 않아 보여 높은 집안의 자제일 거로 생각은 했었다. 한데 그 집안이 설마 천마였을 줄이야.
‘그래서 구룡성 앞에 기마대가…….’
구유의 눈에 공허함이 깃든다. 풀기 어렵게 엉킨 실타래처럼 상황이 꼬였다. 하나 어디부터 꼬였는지를 되짚지는 않았다.
“……달라질 건 없다.”
그저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구유라는 인물.
누구였든 납치를 했을 것이고, 또 누구였든 선택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악행임을 알기에 부정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들이 맹수가 범람하는 지옥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그렇군.”
나락도 동의했다. 맞다. 달라질 건 없다. 그저 아쉬울 따름.
“그럼, 이만 가지.”
나락이 천천히 소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구유는…….
‘움직여라.’
퍽! 사정없이 두 주먹으로 제 다리를 내려쳤다.
승패는 인정한다. 죽음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죽으면 이곳 구룡성 전체가 무너진다. 마교는 절대 자신의 목숨만으로 만족하지 않을 터.
그러니까…….
‘움직여라.’
퍽! 나락을 노려보며 제 다리를 내려쳤다.
구유는 일생을 전장에서 떠돈 자.
살면서 생존의 위기를 느꼈던 게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빙하에 갇혀 얼어 있는 시체를 뜯어 먹으며 수십 일을 생존한 적도 있었고, 적진에서 고문 끝에 탈출을 감행해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수천의 병사를 뚫고 나온 적도 있었다.
어느 상황에도 구유의 정신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육신은 정신을 따른다.
이것이 그가 전장의 용으로 살아남은 이유.
쐐애애애액!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심장을 향해 빛줄기가 쏘아졌다.
두 눈에 고도의 집중이 발휘되고, 시간이 멎은 것처럼 날아들던 빛줄기가 천천히 본 모습을 드러낸다.
양날의 뾰족한 소도. 그리고 이를 내지르는 나락.
소도에 튕겨 떠다니는 먼지마저 생생하게 눈에 담긴다.
이것이 만안의 극!
그리고…….
꿈틀. 구유의 두 다리가 반응했다.
눈빛에선 패왕의 기운이 도사리고, 다시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그 순간.
꽈아앙!
거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