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17)
첩자의 마교생활-117화(117/350)
117.
#광적인 행보 (1)
가슴에 소도가 박힌 채 한쪽 무릎만 꿇고 앉아 있는 구유. 그리고 회오리치던 나선안은 사라지고, 풀린 눈으로 주먹이 꽂힌 제 옆구리를 내려다보는 나락.
다시금 승패가 갈렸다.
“이런…….”
털썩. 은발의 나락이 두 무릎을 꿇었다. 입가는 각혈이 일어 붉게 물들었고, 두 팔은 축 늘어져 손끝도 움직일 힘이 없다.
반면 구유는 천천히 굽어졌던 두 다리를 펴고 태산처럼 일어섰다. 그러곤 제 가슴에 박힌 소도를 붙잡아 우악스레 빼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조금 더 깊었으면 심장이 뚫렸을 것이고, 지금 저 아래 있는 건 나락이 아닌 자신이었을 것이다.
단지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왜지……?”
분명 자신보다 나락이 한 발 더 빨랐다는 것이었다.
제 주먹이 틀어박히기 전에 먼저 소도가 살가죽을 꿰뚫었고, 조금만 더 들어왔어도 심장이었다.
한데 어째서.
“달라질 게…… 있나?”
나락이 힘겹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라 떠들든 패자의 변명일 뿐.
물론 이유는 확실했다.
찰나의 순간.
또다시 그놈의 말이 생각났다는 것.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이었다.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거든.’
이것이 삼공녀든, 칠공자든. 누구든 위하는 일일 거라는 충신의 예감.
거기다 하필 광폭공까지 시간이 다 되어 풀려버렸다.
광폭공은 본디 대뇌와 이어진 동공. 그리고 피를 공급하는 심장에 강제적으로 내기를 순환시켜 신체의 모든 감각을 극대화하는 마공.
하여 과용하면 현실 감각과의 괴리감이 커져 육신도 가누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바로 지금처럼.
세상은 쉴 새 없이 빙빙 돌아가고, 급류 같던 혈액순환이 갑자기 멈춰 서듯 느려지자 역으로 파도가 치듯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이 탓에 혈도와 단전이 뒤집히는 건 당연지사.
“죽여라.”
나락은 웃음을 보이며 죽음을 수용했다.
그리고 구유는 그런 나락에게서 시선을 떼고 걸음을 옮겼다.
“그냥…… 가는 건가……?”
나락의 물음에 구유는 걸음을 멈춰 세운 채 나지막이 말했다.
“달라진 건 없다. 말했던 대로 죽이지 않은 것뿐.”
구유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차피 누구 하나 죽여서 끝날 싸움도 아니었다.
교주의 자제들인 걸 알게 된 이상, 자신들이 모두 죽고 나서야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살기 위한 방도는 하나.
언제나 그랬듯 앞을 가로막은 자들을 모조리 꺾고, 항쟁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 * *
– 구룡성 상층.
마오를 비롯한 세 사람과 철마적의 대치가 만연하던 그때.
“이 빌어먹을 놈들-! 으히히히!”
팔다리가 등 뒤로 묶인 광의는 지렁이처럼 바닥을 턱으로 당기며 포복 전진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색안경 코주부 새끼는 밧줄을 왜 넣고 다니는 건지. 그것도 사타구니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
하나 그런 상황임에도 광의의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으히히히히!”
이는 그가 미치광이인 탓도 있겠지만, 아직 그의 승부수는 던져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 이긴 것 같지? 틀렸다. 너희는 날 묶을 게 아니라 죽였어야 했어. 그게 마교지! 이 애송이 자식들. 으히히히!”
전방에 사투가 계속되는 동안, 그의 눈에 집착의 병자처럼 새겨진 건 다름 아닌 추궁과혈 중인 장이서의 뒷모습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는 그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내공이다.
“히…… 히히…….”
마침내 장이서의 바로 뒤까지 다가온 광의.
그가 새하얀 눈을 희번덕거리며 혓바닥을 장이서의 몸을 향해 길게 내밀었다.
남들이 보면 이게 뭔 미친 짓인가 싶겠지만, 틀렸다.
다른 건 미친 게 맞지만, 이번만큼은 아니다.
이건 그가 장이서와의 내기를 받아들인 회심의 한 수였다.
‘지금까지 치료를 마치면 말을 바꾼 놈들이 어디 네놈뿐인 줄 아느냐? 틀렸다. 전부 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말을 바꿨다! 약속 하나 지킬 줄 모르는 이 버러지 같은 놈들!’
광의의 눈에 짙은 살기가 번진다.
지금껏 자신이 치료한 병자의 수는 대략 500여 명.
하나 그중 대가로 사지를 내놓기로 한 약속을 어긴 자도 500여 명.
그리고.
‘으히히히! 서역의 황족도 내게 대가를 치렀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아-!’
그가 끝내 대가를 받아낸 자 역시 500여 명.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가 저항했고,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
“으, 으히히히히힣!”
툭. 공손절의 혀가 마침내 장이서의 허리에 닿았다.
그러자.
『흡성요법(吸星妖法)』
수와아악!
장이서의 단전에 관을 꽂은 것처럼 그의 마기가 광의의 혓바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광의가 20년 전, 천마전에서 탈취해 간 비법.
천마의 부 무공 중 하나이자, 상대의 내공을 빼앗아버리는 흡성요법이다.
“으히, 으히히히히!”
빠르게 보충되는 단전에 광의는 혀를 내민 채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려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오랜 시간 내공이 고갈 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마,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마기가 있을 줄이야! 아아아아아!’
살아생전 맛보지 못했던 지고지순한 마기의 정수.
바로 천마의 맛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에 장이서가 구규지체라는 생각은 아예 끼어들지도 못했다.
희열감에 아랫도리는 이미 축축해졌고, 백색에서 원색으로 돌아온 두 눈은 맛이 가버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좋아?”
폭포수처럼 들어오던 내공이 뚝 끊어지고, 냉랭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이에 초점을 잃었던 검은 두 눈에 그의 모습이 담겼다.
무력하게 추궁과혈 중인 모습이 아니라.
제 앞에 우뚝 선 채 포식자처럼 내려다보는 장이서의 모습 말이다.
“어, 어떻게……?”
“추하게 늙으면 그렇게 꼴사납다더니. 틀린 게 없네. 설마 흡성요법까지 익혔을 줄이야.”
“이, 이이익!”
팍! 광의가 밧줄을 찢어발기고 벌떡 일어섰다.
이내 후두둑 떨어진 밧줄은 청록색으로 썩어들어간다.
이를 본 장이서의 눈이 번뜩였다.
‘독공이구나.’
애초에 광의는 독공의 초고수인 마의와 사형제.
그가 이쪽 계통임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이놈! 추궁과혈이 벌써 끝날 시간이 아닐 텐데?”
광의의 외침에 장이서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과평은 여전히 잠들어 있고, 온전히 치료가 끝난 건 아니다.
하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위기는 넘겼다. 온전히 회복되려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익……! 치료의 근본은 정성이거늘! 그따위로 하고 놈이 살길 바라느냐!”
“입 닫아. 이게 어떻게 얻은 내공인데 감히 혓바닥을 들이대?”
천마한테 죽다 살아난 걸 생각하면…….
“지금부터는 그리 평화적이진 않을 거야.”
장이서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으흐흐…… 으히히히히! 아깝구나, 아까워! 조금만 더 늦게 깨어났으면 볼품없게 삐쩍 곯은 목인형이 되었을 텐데.”
“미안하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신용이 너무 없지 않나? 생긴 것부터 하는 짓까지 전부 다. 그거 알아? 최악이야, 당신.”
“그 입은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구나. 하나 어쩌냐. 이미 네놈의 달콤한 내공을 내가 먹어버린 것을. 아예 없었다면 모를까. 조금만 있어도 너희 같은 애송이들 따위야…… 으히히히!”
우우웅!
광의의 몸에서 청록색 연기가 미약하게 뿜어져 나온다. 이어 메케한 향이 코를 찌르자 장이서가 뒤로 한 걸음을 물렸다.
닿은 것도 아닌데 피부에 빨간 반점이 오르고, 콧속까지 따갑다.
실로 지독한 독공.
“네놈 사부가 누구더냐.”
본신의 힘을 드러낸 광의가 대뜸 묻는다. 이에 장이서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건 왜 묻지?”
“내 생전 이리 맛있는 내공은 처음이다.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마기라니.”
“그래서?”
“내 이곳을 나가면 네 사부부터 찾아가 공력을 깡그리 먹어 치울 것이다.”
“하하하!”
장이서가 두 눈을 크게 깜빡이곤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왜 웃는 게냐?”
“왜긴. 지금 네가 누굴 노리겠다는 건지 알기나 하냐? 죽고 싶으면 차라리 부탁을 해. 죽여달라고.”
“으히히히! 네놈이 날 잘 모르는 모양인데. 마의 그놈이 처세술이 능해 그렇지, 본래 실력은 내가 더 위였다!”
어쩌라고. 그럼 천마한테 도전장이라도 내밀어 보든가.
“충고 하나 하지. 까불지 말고 얌전히 죗값 치러. 물론 무엇으로도 용서는 힘들겠지만.”
“이런 발칙한 놈. 너는 여전히 내가 우스운가 보구나. 오냐. 어차피 네 사부한테 가기 전에 네놈부터 먹고 갈 참이었다. 으히히히히!”
흐읍! 광의가 숨을 크게 들이켜자 뿜어져 나왔던 연기가 다시 그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두꺼비처럼 볼때기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딱 봐도 알겠다.
‘뱉으려는 거구나. 이대로 장내에 독이 퍼져나가게 두면 안 된다.’
뒤를 살피자 접전이 한창이다. 만일 이대로 독기를 뿜어내면 다른 이는 내공으로 견디겠지만, 마적들은 치명상을 피하지 못할 터.
모두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전에 우선…….
‘광의의 힘줄이 청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의 피가 곧 독의 근원이라는 얘기. 베는 건 안 된다.’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파지직!
장이서는 단숨에 뇌전법을 극한까지 돌리곤, 몸 밖으로 전류를 뿜어내며 한순간에 번쩍! 사라졌다.
그리고 그대로 광의의 목전에 나타나 아래턱을 손바닥으로 올려 쳤다.
“카하아악!”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고, 천장을 향해 독 연기를 뿜어내며 뒤로 나자빠진다.
이내 장이서는 소매로 입가를 가린 채 소리쳤다.
“전부 밖으로 나가-!”
그의 우렁찬 외침에 그제야 접전을 벌이던 이들도 상황을 깨달았다.
“뭐, 뭐야! 저게.”
「독……?」
싸움은 한순간에 소강으로 접어들고, 아신은 상황을 인지하곤 수하들에게 곧장 명했다.
「모두 숨을 참고 밖으로 대피해라!」
「도, 독이다! 피해라!」
마적들도 독이라면 치가 떨리는지 일사불란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염병!”
“공자님!”
그 와중에 마오는 위협을 무릅쓰고 과평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단숨에 둘러멘 채 장이서를 살피자,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외쳤다.
“먼저 가십시오!”
“……지면 죽는다!”
다시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가는 마오.
장이서는 픽 웃음을 흘리곤 다시 광의를 살폈다.
한데…… 없어?
“키하아아아아!”
바로 그 순간, 측면에서 어둠을 뚫고 광의가 개구리처럼 날아들었다. 자세는 엉망이지만, 제법 날카롭다.
하나.
‘뼈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몸에 되찾은 내공이라고 해봤자 고작해야 한 줌. 원래 실력이 어느 정도이든 간에.’
지금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
빡!
“키헉!”
장이서가 명치에 일장을 꽂자 광의는 그대로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이, 이 쳐 죽일 놈이…… 어웁!”
이에 욕지기와 함께 벌떡 일어난 그 순간. 독기를 내뿜으려던 그의 입 속에 뭔가가 들어와 목젖까지 꽉 채워졌다.
‘처, 천 조각?!’
정확히는 장이서가 찢어낸 소맷자락이었다. 독이든, 욕이든. 아무것도 뱉지 못하게 원천 차단하겠다는 얘기.
“꽉 물어. 턱 나간다.”
광의가 눈을 부릅뜨고 두 손을 올려 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그 순간.
뻐억!
명치에 장이서의 손바닥이 가차 없이 꽂혔다.
“카억!”
이, 이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