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19)
첩자의 마교생활-119화(119/350)
119.
#버티는 겁니다 (1)
흐음……. 마오가 제 턱을 어루만졌다.
‘맹휘 자식이 겁이 많긴 하지만, 움직이는 건 쥐새끼처럼 빠르지. 물론 힘으로 보나, 자질로 보나 내가 더 위지만 말이야.’
솔직히 맹휘를 쓰러트렸다고 해서 엄청나게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보다 별로 큰 것도 아니고. 붙어볼 만하잖아?’
마오가 씨익 웃었다. 어쨌든 자신도 더 강해지지 않았는가.
원래 뭐든 막 배웠을 때가 어깨에 힘이 가장 많이 들어갈 때다.
하지만 곧 이어진 장이서의 말에 이런 건방진 생각은 말끔히 지워버렸다.
“저자가 여기 왔다는 건…… 나락이 당했다는 건가…….”
삼공녀 보좌 나락. 전대의 광룡당주.
이를 들은 일행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누님 뒤에 저승사자처럼 붙어 있는 그 나락?!”
장이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말이 돼?”
안 되긴 하지. 하지만 그런 일이 눈앞에 벌어졌다. 장이서는 다소 굳어진 눈매로 구유를 살폈다. 강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나락까지 꺾고 올라올 줄이야.
‘나락은 보좌이기 이전에 마교에서 손꼽히는 절대 고수. 한데 그런 그가 당했다는 건 결코 우연일 수 없다. 확실히 재주(技)가 있는 자다.’
그야말로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의 등장.
한편 구유는 과묵한 괴물처럼 무심히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
편안한 얼굴로 아신 앞에 누워 있는 과평. 바닥에 놓인 수백 개의 대침. 그리고 서로 대치 중인 병사들과 마교 놈들.
굳이 듣지 않아도 알만했다.
기어코 저들이 광의를 풀어 과평을 살려낸 것이다.
‘진심이었나.’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뇌옥 앞에 앉아 있는 장이서에게로 향했다.
처음 과평을 살린다고 했을 땐 당연히 광의를 찾기 위한 거짓말인 줄 알았다. 한데 진짜 살려내다니. 왜?
「모두 마교에서 온 자들입니다.」
아신이 분에 찬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광의가 아닌 저 소년 때문.’
한데 과평은 대체 왜.
그의 시선이 평온히 잠들어 있는 과평에게로 향했다. 그가 깨어나 속 시원히 말해준다면 좋겠으나 안타깝게도 아직은 무리다.
그렇다면 남은 방도는 하나.
“과평을 살린 이유가 무엇이냐.”
구유는 직접 묻기로 했다.
동굴처럼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 장이서는 앉은 자세 그대로 눈 한 번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는 날 살리려다가 다쳤다. 그래서 똑같이 행한 것뿐. 또한 광의에게 구해달라 청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그와 내기했을 뿐. 그러니 과평은 그에게 빚을 진 것 또한 아니다.”
끌거나 늘어놔봤자 진의에 흠집만 가는 내용. 그래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수수하게 답했다. 그리고 이를 들은 구유의 눈매는 자연스레 좁혀졌다.
‘정말 목숨의 빚 때문이란 말인가. 신의(信義)라고?!’
솔직히 놀랐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죽어서라도 갚는다. 이것이 바로 흉노족의 신념이자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한데 협잡과 배신밖에 남지 않은 북방에서 이러한 신의를 가진 자를 만나다니.
도저히 믿기 힘든 일. 게다가 마교 출신이다.
‘하나 믿지 않기에는…….’
구유의 만안이 장이서의 몸을 솜털 하나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중독되었군.’
주먹을 쥐어 가린다고 가렸지만, 그의 눈은 피해 갈 수 없다. 청록색으로 변색된 손톱.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뜬 손등. 이는 저 팔이 중독되었고, 임시 조치했다는 얘기.
그리고 그게 광의의 짓이라면 아마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일 거다. 한마디로 제 목숨을 걸고 과평을 구했다는 것.
아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독이 퍼지는 걸 지연시키기 위함일 거였다.
그러니 장이서의 말은 진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선의만으로 행한 일.
“과평을 구한 건…… 내 목숨을 구해준 것과도 같은 일.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구유가 우뚝 선 채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본 아신과 병사들은 모두 기함했다. 그가 이리 예를 갖추는 경우는 역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
그것도 다른 이도 아닌 마교의 졸개에게 머리를 조아리다니.
하나 놀란 건 장이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구유……. 선후를 떠나 인정을 할 줄 아는 자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여러모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독자적으로 교외 세력을 이끄는 흉노족의 대장.
나락마저 쓰러트릴 정도의 강인함.
제 식솔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반면 악한 짓도 서슴지 않는 냉담함과 온후함.
그리고 그런 그를 믿고 따르는 충직하고 강인한 수하들.
게다가 이미 광의를 통해 이들의 억울함도 듣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괜찮은 사내다.
아니, 탐이 났다.
‘이자라면 마오를 지탱해 줄 기둥(柱)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장이서의 시선이 힐끗 마오를 향했다.
지금 마교에서 그의 위치는 그야말로 풍전등화.
가능성을 보여주기 전엔 누구도 그의 품에 들려 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온다고 한들 언제든 떠나갈 수 있는 자들뿐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위태롭고, 또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장이서는 그런 그를 소교주로 만들어야 했다.
그저 허명뿐인 자리가 아니라 중원을 위해 움직여줄 확실한 존재로.
‘소교주의 자리는 집을 짓는 것과도 같다. 어설프게 지어봤자 삼일천하에 그칠 뿐. 진짜는 만마를 방 안에 가득 채우고 그들의 머리 위로 마오가 벽과 지붕이 되어 올라서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바로 기둥들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게. 마인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늘을 단단히 지탱해 줄 천주(天柱)들 말이다.
‘구유. 당신이 그중 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그럼 마교 내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제3의 세력이 생기는 거다.’
거기다 이들은 제대로 된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들. 분명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만 해도 임무 완수에 한 발 더 크게 다가간 기분.
하나.
‘아직 풀어야 할 게 많다. 밖에는 삼장로가 날을 세운 채 기다리고 있고, 위치를 알았으니 아마 비룡당까지 들이닥칠 공산이 크다. 그리고 뭣보다도…….’
장이서가 눈매를 좁혔다.
숙였던 고개를 든 구유의 눈에서 기세를 읽었기 때문.
이는 절대 호의가 아니었다.
완전한 적의.
살기가 물씬 묻어나는 위화감이었다.
도대체 어째서.
“너희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다.”
쿵! 심지어 구유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엄포가 떨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감사를 표한다고 해놓고, 이 무슨 모순이란 말인가.
“이봐, 고마우면 호위하며 길 안내를 해줘도 모자랄 판국에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야?”
마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밖에 우리 쪽 사람들 쫙 깔렸거든?”
“알고 있다.”
“아는 사람이 이래? 나도 너희 사정은 대충 들었어. 솔직히 다치게 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그냥 비켜. 더는 책임 안 물을 테니.”
흔들림 없는 눈빛. 당당한 마오의 호연지기에 도리어 구유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나 정말 잠시뿐.
오래지 않아 구유는 차가운 눈매로 이렇게 물었다.
“광의는 어디 있지?”
“뭐……?”
마오는 당황했다. 광의가 어딨냐니. 그거야 나도 모르지. 모래폭풍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곧장 빠져나왔는데.
곧바로 시선이 장이서에게로 향했다.
“장이서, 그 영감탱이 어딨어?”
“…….”
장이서는 침묵했다. 이에 구유는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이잉! 거친 바람 소리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바닥엔 평소에 쌓이지 않을 모래가 수북했다. 이는 분명 뇌옥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 그것만으로도 예상은 충분했다.
“죽었나?”
“뭐?!”
마오는 경악했고, 구유는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구룡성에는 중독된 자가 수십 명에 달한다. 손발 끝부터 천천히 사지가 썩어들어가 끝에는 심장까지 닿아 죽음을 맞이하지. 광의는 그걸 불사독이라고 불렀다.”
“불사독…….”
죽지 않는 독이라니.
마오가 치를 떤다. 이건 지켜보는 자도, 죽어가는 자도 모두에게 지옥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를 치료할 방법은 그의 해독제를 먹는 것뿐. 한 달에 한 번. 주기적으로 계속 먹어야만 하지.”
“그런…….”
“광의는 그것으로 우릴 이용했다. 그는 갇혀 있었지만, 사실 갇힌 건 우리였다. 미혼산을 푼 것도…… 그게 그가 내건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미친 새끼…….”
마오의 입에서 절로 욕지기가 뱉어졌다.
그리고 장이서는 이제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기분이었다.
분명 광의를 붙잡아 놓고 있으면서 어째서 아직도 병자들이 이리 많은지. 미혼산을 만들 여력은 되면서, 왜 그들을 치료할 여력은 되지 않는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이 모든 게 광의의 마수였다니…….
“아마 광의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죽으면 내가 너희를 살려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고오오오오!
구유의 기세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방금까진 한참 올려봐야 할 거인이었다면, 지금은 까마득한 초 거인.
절로 침이 삼켜질 만큼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마오는 당황하며 말했다.
“이봐! 광의의 독을 치료할 의원은 본교에도 충분해! 일단 우릴 풀어주면 나중에라도……!”
“모레다.”
“뭐……?”
“모두가 해독제를 복용해야 할 날이.”
이런……! 일행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너희는 과평을 살려준 은인이다. 하지만 너희의 그 섣부른 판단으로 우리는 수많은 이를 잃게 되었다. 그 죗값은 오직 죽음뿐.”
이것이었구나.
고맙다고 한 그에게서 느껴졌던 위화감이.
구유는 처음부터 모든 걸 직감했던 것이다.
결과는 이것뿐이라는 걸.
솨아아아-!
구유를 비롯한 철마적 사이에서 강렬한 살기가 빗발쳤다.
“너희를 시작으로 밖에 있는 마교도들에게 흉노족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협상 결렬.
그야말로 최악의 전개다.
“우리 아무래도 x된 거 같은데? 이제 어떡해?”
마오가 묻는다. 맹휘와 소오도 그를 바라본다. 아무리 봐도 이젠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황.
“장이서……?”
한데 이상하다.
장이서는 낙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진중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러곤 장고 끝에 철마적 쪽은 들리지 않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뭔데.”
“아직도 살리고 싶으십니까?”
“야, 이 씨! 뭘 살려. 지금 우리가 다 죽게 생겼는데.”
“그래도 방도가 있다면요.”
“그게…… 가능해?”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대신 지금부터 누구 하나 죽이지 않고 버텨야 합니다.”
“뭐. 뭘 버텨…….”
마오를 비롯한 일행이 불안감을 가득 안고서 장이서를 바라본다. 그러자 그의 시선은 먼발치의 누군가에게 향했다.
솨아아아아-!
가공할 압박감을 뿜어내며 우두커니 서 있는 괴물.
전장의 용, 구유에게로.
“미치겠네, 진짜!”
지렁이도 군번이 있다. 한데 이건 주제를 넘어도 한참을 넘은 상황.
나락을 꺾은 자를 상대로 무슨 수로 버티란 말인가.
하나…….
“진짜 살릴 수 있는 건 맞아?”
마오의 떨리는 가슴은 머리와는 다른 말을 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