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of a Spy in the Demonic Cult RAW novel - Chapter (12)
첩자의 마교생활-12화(12/350)
12.
장이서가 황당함에 뒷머리를 긁적이자, 우르르 몰려 있던 왈패들이 좌우로 길을 열었다. 부두목이 당했으면 다음은 두목 차례.
“이 시건방진 놈. 제법 치는구나.”
검은 수염의 중년. 용태가 등장했다. 붉은 머리의 호남아. 무지성 망나니 마오와 함께.
“너구나. 장이수.”
마오의 눈이 부릅떠지고, 입꼬리가 길게 올라섰다. 이에 장이서 역시 마주 웃으며 답했다.
“또 뵙습니다. 칠공자님.”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마오와 장이서.
두 사람이 드디어 정식으로 대면했다.
팽팽한 기싸움과 함께.
“그날은 경황이 없어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몸은 좀 어떠하신지.”
몸? 하. 마오가 황당함에 헛숨을 뱉었다. 안하무인이면 빼놓을 수 없는 게 그이거늘, 이건 더한 놈이 나타났다. 감히 제 몸에 손을 대놓고 도리어 안부를 물어?
“너 아주 재밌는 놈이구나?”
“자주 듣긴 합니다. 그나저나 설마 저 하나 환영해 주겠다고 이리 많이 부르신 겁니까? 안 그러셔도 됐을 텐데요.”
장이서가 주변을 둘러보며 능청맞게 대꾸하자, 마오는 저보다 작은 용태의 어깨에 척 팔꿈치를 걸친 뒤 말했다.
“원래 환영 인사는 많을수록 좋은 거거든.”
“아, 그렇습니까?”
이 건방진 자식. 마오는 장이서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눈매가 찌푸려졌다. 하나 그래봤자 허장성세. 누구나 처맞기 전까지는 제가 제일 잘난 줄 안다.
“네가 내 보좌가 되겠다고.”
마오는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고 물었다.
“예. 꿈은 원대한데 보잘것없는 천민 출신이라. 저도 이참에 동아줄 잡고 한 번 가보려고요.”
“어디를.”
장이서가 검지로 위를 콕 찔렀다. 이에 마오가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살피며 말했다.
“저기를…… 가겠다고?”
내 말 못 알아들었구나. 장이서가 미간을 슥슥 긁고는 다시 정정해서 말했다.
“칠공자님 편에 서서 출세 좀 해보겠다는 얘깁니다.”
그제야 장이서의 말을 이해한 마오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뭐? 푸하하하! 바보냐? 가족도, 세상도 다 버린 내 옆에서 뭘 해? 출세?”
자기 객관화는 확실하구나. 그래, 맞는 말이다. 이미 썩다 못해 잘리고 잘려 너덜너덜해진 동아줄.
그러나.
“누가 줄에 매달려 오른답니까. 그 떨어진 줄 손에 꽉 쥐고. 내 발로 올라갈 겁니다. 저 위로.”
장이서가 다시금 검지로 하늘을 찔렀다. 이번엔 마오도 확실히 알아들었는지 동공이 커지고 좌우로 흔들렸다. 그리고 가슴이 묘하게 떨렸다.
‘이 자식 뭐야. 뭔데 저렇게 자신만만한 건데…….’
하지만 마오는 떨리는 본심을 애써 외면하곤 단호하게 외쳤다.
“말은 누가 못해? 고작해야 7급귀 주제에. 언제까지 저딴 헛소리를 계속 듣게 할 거냐?!”
마오가 사납게 소리치자 옆에 있던 용태가 매섭게 눈을 뜨고 수하들에게 명했다.
“들었냐? 조지라신다.”
스릉! 이에 검을 빼 들고 서서히 몰려드는 왈패들.
이에 장이서가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을 뒤로 물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을 상대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박살 낼 방법이 모래성의 알갱이만큼 많은 정도.
하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도 공공연한 장소에서 이런 시정잡배들과 싸우는 건 첩자의 도리가 아니다.
장이서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까 환영 인사는 많을수록 좋다고 하셨습니까?”
“뭐?”
마오가 되묻는 순간.
스스스스.
대나무 숲이 또다시 스산하게 흔들거렸다. 그것도 아까가 송풍이라면 지금은 강풍이다.
“뭐야?”
가장 먼저 낌새를 느낀 마오가 의문을 표했다. 용태와 흑룡파도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잠시 후.
수풀을 헤치며 수많은 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복면을 쓴 흑의인들. 그리고 어깨에 새겨진 자랑스러운 두 글자.
막을 방(防). 염탐할 첩(諜).
“히, 히익! 바, 방첩대……!”
첩자 잡는 귀신. 살아 있는 권력 마차. 방첩대 등장이다.
그것도.
“이곳이 칠소궁인가. 관리비는 많이 안 들겠군. 끌끌.”
어깨까지 오는 곱슬머리에 딱 봐도 범과 같은 기개가 느껴지는 인상.
황금색 태도를 허리춤에 찬 중년의 고수.
방첩대주 겸사익.
그가 직접 행차했다.
“방첩대주 겸사익. 칠공자님을 뵙습니다.”
“칠공자님을 뵙습니다!”
척! 방첩대가 일시에 부복하며 복창했다. 대, 대주! 이를 본 용태는 영혼이 탈출했고, 마오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슴이 간질간질하면서 입술이 메말랐다.
방첩대주 겸사익이라면 그도 들어본 자다.
제 누이인 사해령의 과거 스승이자, 교주와 직접 대면하는 몇 안 되는 권력자.
한데 그런 거물이 끈 떨어진 자신을 찾아와 무릎을 꿇다니.
“방첩대가 여길 왜…….”
“한 번 식구는 영원한 내 식구라. 집 나간 놈이 나가 살겠다는데 그래도 살 집 정도는 봐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끌끌.”
그럼 저놈이 방첩대 출신……?!
‘x됐다.’
용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방첩대가 어디인가. 증거만 있으면 고위직까지 잡아 처넣는 마귀들이다. 심지어 그들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교내에서도 유명한 일.
더구나 대주까지 왔다는 건, 실세 중의 실세라는 얘기.
손발이 차지고, 머릿속이 백지로 물든다.
그리고 이에 마침표를 찍듯 장이서가 서늘하게 노려보며 툭 내뱉었다.
“아직도 안 갔나? 윗분들 말하는데 버릇없게.”
“히익!”
용태는 침을 꼴깍 삼키곤 수하들에게 눈짓하며 우르르 숲 밖으로 도주하듯 빠져나갔다.
“야, 어디 가. 야!”
이에 당황한 마오가 그들을 불러보지만, 어림없는 일.
진한 배신감과 허탈함에 두 눈이 공허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칠공자라는 이름 말고는 남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작은 위압에도 모두가 다 도망가버리는 그저 외롭고도 쓸쓸한 망나니.
장이서가 보여주고 싶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지금 그가 쌓은 관계는 이런 작은 외압에도 허물어질 만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흐음, 이래서 취임일을 알려준 것이냐. 본래라면 아무 말도 없었을 놈이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 한데 첫날부터 제 주인의 기부터 누를 줄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겸사익이 슬쩍 다가와 귓가에 중얼거렸다.
하여튼 눈치는.
장이서가 서늘할 만큼 무정하게 답했다.
“구경 다 하셨으면 그만 가십시오.”
일을 벌인 건 자신이지만, 구경거리로 계속 만들고 싶진 않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겸사익도 고개를 끄덕이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곤 바람에 흘러가듯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못 버티겠으면 돌아와라. 네 자리는 남겨둘 테니.”
뒤를 돌아보자 방첩대는 왔던 길 그대로 수풀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솨아아아-
어느새 시끌벅적하던 칠소궁도 다시금 고즈넉해진다.
이제 드디어 둘만의 시간이다.
“너…… 뭐야?”
마오가 물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칠공자님 꽉 잡고 가겠다고요.”
그리고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는 장이서.
“어딜. 자꾸 어딜 간다고 이 지랄인데?!”
마오가 입술을 꽉 물었다.
그러자 장이서가 활짝 웃으며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소교주.”
두근, 두근.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소교주(小敎主).
마교의 작은 주인.
훗날 교주가 되어 천하를 호령할 자.
아무리 단순 무지한 마오라도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어깨 위엔 태산이 내려앉은 기분이었으니.
그래서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절 소교주로 만들어주겠다니.
“너…… 이거야?”
마오가 제 귀때기에 검지를 빙글빙글 돌리며 물었다. 미쳤냐는 뜻.
“아닙니다.”
말은 바로 해야지. 미친 건 자신이 아니라 암각이다.
“그럼, 혹시 집에서 보낸 자객이야? 나 사지로 밀어 넣으래?”
“아니요.”
“뭔데, 그럼. 설마 너 첩자야?”
그건 맞고. 장이서가 대답 없이 무심히 쳐다보자 마오는 고개를 휘저으며 실소를 터트렸다.
“그냥 입만 산 멍청이네. 날 소교주로 만들겠다고? 고작 7급귀 조장인 너 따위가? 우하하하하! 어떻게. 무슨 수로.”
“그냥…… 뭐, 어렵겠지만 잘?”
“야, 이 씨! 조목조목 똑바로 얘기해!”
“관심은 가나 보죠?”
“아니거든? 그냥 네 하는 꼴이 우스워서 묻는 거거든?”
“뭐 일단…… 관계 개선부터 좀 해야겠죠. 오늘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칠공자님은 교우 관계 엉망. 사문 관계 엉망. 가족 관계도…….”
장이서가 고갤 돌린 채 문제를 읊어나가던 찰나였다. 팟! 전방에서 풍압이 일고 마오가 범처럼 날아들었다.
“닥쳐!”
분노와 내공이 가득 실린 주먹.
하나 장이서는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은 채 파지직! 뇌전법을 운용했다.
그러자 몸 안에 뇌기가 전신을 휘감고 툭. 가볍게 손을 뻗어 그의 일권을 막아냈다.
솨아아아! 그러자 등 뒤로 강풍이 여파가 되어 대나무 숲을 휩쓸고 지나갔다.
한데도 장이서는 한 걸음도 밀리지 않은 채 기둥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러곤 오히려 화들짝 놀란 마오를 지그시 바라보며 마저 말을 이었다.
“무공도. 그리고 품격도. 전부 다 엉망.”
“너……!”
마오가 이빨 꽉 깨물고 다시 덤벼들려 하자, 장이서가 힐긋 제 손바닥에 막힌 큰 주먹을 바라보더니 가볍게 움켜쥐곤 빙그르르 돌려 앞으로 툭 밀쳤다.
“어억!”
그러자 별 대단한 힘이 아니었음에도 마오는 귀가 먹먹해지고, 일순 머릿속이 하늘과 땅을 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대여섯 걸음을 뒤로 밀려나 대문에 등을 툭 닿고서야 엉덩방아와 함께 멈춰 섰다.
“뭐, 뭐지……?”
생전 처음 겪는 기분.
지금 마오의 실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는 유연함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무당파의 근간인 능유제강의 묘리.
장이서는 얼빠진 표정의 마오를 보며 근엄한 목소리로 가르침을 내렸다.
“아시겠습니까. 지금 칠공자님이 가진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제가 바꿔드리겠습니다. 인정받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먼저 사람 구실부터…….”
“우아아아아악-!”
말하는 중에 마오가 대뜸 괴성을 내지르며 천둥벌거숭이처럼 달려들었다.
또 해보겠다는 건가? 멍청하긴.
한데 장이서가 눈매를 굳히고 내공을 일주천하려는 순간. 휙! 마오는 그를 지나쳐 대나무 숲으로 뛰쳐나갔다.
황당함에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사라진 뒤다. 장이서는 멍하니 사라진 빈자리만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새끼가 형이 말하는데…….”
진심으로 말해주면 조금은 들어 처먹을 줄 알았더니.
“뭐 일단 첫날이니까. 그래도 하나는 봐줄 만하네.”
장이서가 피식 웃고는 제 손바닥을 살폈다. 따갑고 불긋불긋하다. 뇌전법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수준.
이내 다시 뒤의 대나무 숲을 살피자 가을 낙엽처럼 사방에 떨어진 잎사귀들이 보였다.
마오의 일권이 남긴 여파의 흔적이다.
제대로 된 초식도 없이 오롯이 순수 내공과 몸뚱이만으로 말이다.
“단전 하나는 마교 제일이라더니.”
솔직히 저 정도 인재를 저리 썩혀 두고 있다는 게 더 의문이었다.
교주야 일곱 명의 자식 중에 하나를 고르는 거니 무심할 수 있다지만, 마가에서는 서자라고 해도 제 식구 아닌가.
“나중에 만나보면 알겠지.”
어쨌든 마오의 잠재력은 상상 그 이상. 늦긴 했어도 잘만 배우면 끝없이 성장하게 될 것이 자명했다. 어쩌면 진짜 상상도 못 할 절대 고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암각 최고의 요원이자 단전을 뺀 모든 분야에서 제일 기재였던 장이서의 가르침이 있다면 말이다.
“그럼 일단 오늘은……. 의리도 없이 도망간 교우 관계부터 정리해볼까. 흑룡파랬지.”
장이서가 몸을 돌려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와르르르!
태극의 문양을 희미하게 남기고, 남김없이 부서져 내린 대문을 뒤로한 채.
#보좌 장이서입니다 (3)